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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c143c><colcolor=#fff> | |||
출생 | 생년 미상 | ||
사망 | 기원전 36년 (향년 ?세) | ||
재위기간 | 카파도키아 국왕 | ||
기원전 42년 ~ 기원전 36년 (5~6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dc143c><colcolor=#fff> 부모 | 아버지 아리오바르자네스 2세 어머니 아테네 필로스토고스 2세 | |
배우자 | 없음 | ||
자녀 | 없음 | ||
형제자매 | 아리오바르자네스 3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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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파도키아 왕국 14대 국왕.2. 생애
카파도키아 왕국 제12대 국왕 아리오바르자네스 2세와 폰토스 왕국 제8대 국왕 미트리다테스 6세의 딸 아테네 필로스토고스 2세의 차남이다. 형으로 아리오바르자네스 3세가 있었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기록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로마의 시리아 총독 아울루스 가비니우스에게 뇌물을 주고 보호받아야 할 정도로 무능했다고 한다. 그러던 기원전 51년, 반로마 세력이 아리오바르자네스 2세를 암살했다. 형이 뒤이어 왕위에 올랐지만, 콤마나의 대제사장 아르켈라오스가 정권을 뒤엎으려 들었다. 이때 킬리키아 총독으로 부임한 키케로가 개입하여 형의 왕위를 공인했다. 그 과정에서 형를 폐위하고 자신을 옹립하려는 음모에 어머니 아테나이스까지 가담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형은 어머니를 국외로 추방했지만 그는 건드리지 않았다.기원전 47년 젤라 전투에서 폰토스 왕국의 파르나케스 2세를 격파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자신을 적극적으로 도와준 카파도키아 왕국에 보답하고자 소 아르메니아를 카파도키아에 편입시키면서, 그를 그곳의 왕으로 임명했다.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 사건을 주동한 후 시리아 총독으로 부임한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는 친 카이사르 인사인 아리오바르자네스 3세를 경계해 제거해버리기로 했다. 결국 기원전 42년, 아리오바르자네스 3세는 카시우스가 보낸 로마군에게 살해당했고 그가 카파도키아의 새 군주로 등극했다. 그러나 기원전 36년, 제2차 삼두정치에서 동부 지중해 세계를 맡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아르켈라오스를 카파도키아 왕으로 세우기로 하고 그를 처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