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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ulf | ||
생몰년도 | 미상 ~ 601년 | |
출생지 | 미상 | |
사망지 | 스폴레토 | |
재위 기간 | 591년/592년 - 601년 |
1. 개요
스폴레토 공국 2대 공작.2. 행적
기원은 전혀 전해지지 않으며 스폴레토 공국 초대 공작 파로알트 1세와 어떤 관계인지도 알 수 없다. 591년 또는 592년에 파로알트 1세가 사망한 뒤 스폴레토 공작에 선임되었다. 591년 여름,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쳐들어갔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라벤나 총독부에 구원을 요청했지만, 라벤나 총독 로마누스는 섣불리 로마를 구원하러 갔다간 랑고바르드군이 라벤나를 급습할 거라 여기고 움직이지 않았다.결국 그레고리오 1세는 아리울프와 협상해 공물을 바침으로써 그가 철수하게 했다. 이때 랑고바르드군에 전염병이 돌자 그레고리오 1세가 우유를 주식으로 삼으라고 권했고, 이에 따르자 전염병이 완화되었다고 한다. 이후 그레고리오 1세는 라벤나의 조반니 대주교에게 "총독이 랑고바르드족에게 공물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면, 아리울프는 제국과 평화를 맺거나 제국에 충성할 것이다"라는 서신을 보냈다. 이로 볼 때, 그레고리오 1세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로마 제국의 편에 붙는 선택지를 고려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592년 그레고리오 1세가 랑고바르드 국왕 아길루프와 협상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로마누스는 협상이 이뤄지게 내버려뒀다간 움브리아 회랑이 랑고바르드 왕국에게 넘어갈 것이라 여기고 이를 막기로 했다. 그는 그해 7월 라벤나에서 출진하여 해로를 따라 로마로 이동한 뒤, 움브리아 회랑의 도시들을 재정복했다. 이로 인해 협상이 깨지자, 아길루프는 분노하여 로마 시를 포위하였고, 로마누스는 이번에도 구원해주지 않았다. 결국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교황청의 재산을 털어서 랑고바르드군에게 바칠 수밖에 없었고, 아길루프는 이에 만족하여 물러갔다. 이때 아리울프도 아길루프 왕의 원정에 동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598년, 오시모를 정복하고 나폴리를 포위 공격하는 베네벤토 공국의 아레치스 1세를 지원했다. 나폴리 공략이 실패로 돌아가자 귀환길에 올랐다가 카메리노 인근에서 '황실 공작(dux imperiale)' 바한의 급습을 받았지만 성공적으로 격퇴했다. <랑고바르드 왕국의 역사>를 집필한 8세기 수도자이자 역사가 파울 부제에 따르면, 스폴레토의 순교자인 성 사비누스가 카메라노에서 위태로운 지경에 처한 아리울프를 도와줬고, 그는 이에 감화받아 가톨릭으로 개종했다고 한다. 601년 사망한 뒤 파로알트 1세의 아들들간의 내전이 벌어졌다가 테오델라피우스가 최종적으로 승리하여 스폴레토 공작에 선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