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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11 09:38:12

아메드 존슨

파일:Ahmed-1.jpg
본명 Anthony Norris
생년월일 1963년 6월 6일
출신지 미국 플로리다 주 레이크 얼프레드
신장 188cm
체중 138kg

1. 개요
1.1. 기술1.2. 커리어
2. 기타3. 둘러보기

1. 개요

1990년대 중반 WWF에서 활동했던 프로레슬링 선수.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버지 밑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학창 시절에는 풋볼 선수였다. 그의 업적을 꼽자면 WWF 최초의 흑인 출신 인터컨티넨털 챔피언이라는 것과 요코주나를 바디슬램 한 선수들 가운데 요코주나가 그나마 가장 몸무게가 많이 나갔을 때 그를 바디슬램 했다는 것이다.[1] WWE에서도 그를 많이 푸시해주긴 했지만[2] 커리어 중간에 큰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푸시가 끊겼고 벨트도 내려놓아야 했다.

존슨의 마지막 WWF 출연은 1998년 2월 텍사스에서 열린 유료 시청 노 웨이 아웃 오브 텍사스에서 샴록과 DOA(체인즈, 스컬, 8볼)과 함께 내셔널을 상대로 한 경기였다.이후 WWF를 탈퇴했는데 이유는 텍사스에 있는 동안 존슨은 진실위원회의 한 코너에 출연하기로 예약되어 있었고, 그곳에서 구타를 당하고 입구 경사로를 따라 끌려갔다. WWF 경영진도 모르게, WWF의 열렬한 팬이었던 존슨의 여동생은 암과 싸우고 있었다. 존슨은 여동생이 매주 WWF를 시청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심각한 병에 걸린 동안 동생이 목을 맞고 끌려가는 이미지를 원하지 않았다. 존슨에 따르면, 경기가 예정되어 있다가 공격을 받기 15분 전에 여동생이 "정말 안 좋다"며 플로리다에 있는 여동생 병원으로 즉시 와야 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존슨은 빈스 맥마흔을 만나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한 후 곧바로 WWF를 떠나 플로리다로 날아가 다음 주 여동생이 사망했다. 존슨은 이후 WWF 경영진에게 당시 자신의 퇴사 이유를 말하지 않은 이유는 "문제로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공감을 위해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2021년 7월 인터뷰에서 존슨은 처음으로 인종차별이 퇴사의 또 다른 이유라고 주장하며 "가족 문제로 인해 제 관심이 필요했지만, 그 외에도 저와 맞지 않는 다른 일들이 뒤에서 벌어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저는 많은 인종차별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 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WCW로 이적했으나 인상적인 활약은 펼치지 못했다.[3][4] 그는 계속되는 체중 문제로 인해 얼마 지나지 않아 WCW에서 방출되었다.

노리스는 WCW에서 방출된 후 레슬링을 멀리하다가 2002년 텍사스 알링턴에 기반을 둔 프로 챔피언십 레슬링에서 재러드 스틸을 상대로 복귀전을 치렀다. 그는 2003년 맥시멈 프로 레슬링의 태그 팀 매치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렀고, 몬티 브라운과 팀을 이루어 사부갱그렐을 상대로 패배했다.

그의 신체사항은 신장 188cm에 체중 138kg으로 풋볼 선수 출신답게 우람한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복근이 두드러지지 않는 불룩한 배가 옥의 티 라면 티. 2003년에 현역에서 은퇴해 현재는 사업을 하고 있으며 아내와 딸과 함께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과거의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듯한 우락부락한 비주얼은 온데간데 없고, 완전히 비만한 체형의 순둥이 인상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애지중지 귀하게 키우던 딸도 장성해 시집을가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 손주 둘 딸린 할아버지가 되었다.

노리스는 플로리다에서 자랐다가 딸 니나와 함께 텍사스 휴스턴에 거주하게 되었다. 은퇴 후 대학으로 돌아와 휴스턴-틸로슨 대학교에서 범죄학 학위를 취득했다.

2016년 7월, 노리스는 레슬링 선수들이 재임 기간 동안 외상성 뇌 손상을 입었고 회사가 부상 위험을 숨겼다고 주장한 WWE를 상대로 제기한 집단 소송의 일부로 지목되었다. 이 소송은 WWE를 상대로 한 여러 소송에 참여한 콘스탄틴 카이로스 변호사가 제기한 소송이다. 미국 지방법원 판사 바네사 린 브라이언트는 2018년 9월에 소송을 기각했다.

1.1. 기술

스파인 버스터, 크로스라인, DDT
피니시 무브: 펄 리버 플런지(Pearl River Plunge, 싯아웃 더블 언더훅 파워밤[5])

1.2. 커리어

2. 기타

3. 둘러보기

파일:WWE 로고.svg 미들 이스트 컵 토너먼트 우승자
창설 아메드 존슨
(1996)
[[타이거 알리 싱]
(1997)

[1] 그 당시 요코주나의 체중이 대략 275kg이었다. 참고로 WWF에서 최초로 요코주나를 바디슬램 한 인물은 렉스 루거.[2] 97년 여름쯤에는 언더테이커와 1대1 챔피언십 매치가 잡히기도 했다. 뜻밖의 부상으로 베이더로 급 교체되었지만.[3] 부커 T, 스티비 레이와 함께 활동한 것이 WCW에서의 가장 큰 활약이었다.[4] WWF 데뷔초반에는 탑로프플랜챠 등 육중한 체구에 공중기술 감각까지 갖추고 있었지만 부상이 거듭될수록 경기력마저 저하되어 경기패턴도 점점 단순해진다.[5] 흔히 타이거 드라이버로 불리는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