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Anthony Norris |
생년월일 | 1963년 6월 6일 |
출신지 | 미국 플로리다 주 레이크 얼프레드 |
신장 | 188cm |
체중 | 138kg |
1. 개요
1990년대 중반 WWF에서 활동했던 프로레슬링 선수.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버지 밑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학창 시절에는 풋볼 선수였다. 그의 업적을 꼽자면 WWF 최초의 흑인 출신 인터컨티넨털 챔피언이라는 것과 요코주나를 바디슬램 한 선수들 가운데 요코주나가 그나마 가장 몸무게가 많이 나갔을 때 그를 바디슬램 했다는 것이다.[1] WWE에서도 그를 많이 푸시해주긴 했지만[2] 커리어 중간에 큰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푸시가 끊겼고 벨트도 내려놓아야 했다.존슨의 마지막 WWF 출연은 1998년 2월 텍사스에서 열린 유료 시청 노 웨이 아웃 오브 텍사스에서 샴록과 DOA(체인즈, 스컬, 8볼)과 함께 내셔널을 상대로 한 경기였다.이후 WWF를 탈퇴했는데 이유는 텍사스에 있는 동안 존슨은 진실위원회의 한 코너에 출연하기로 예약되어 있었고, 그곳에서 구타를 당하고 입구 경사로를 따라 끌려갔다. WWF 경영진도 모르게, WWF의 열렬한 팬이었던 존슨의 여동생은 암과 싸우고 있었다. 존슨은 여동생이 매주 WWF를 시청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심각한 병에 걸린 동안 동생이 목을 맞고 끌려가는 이미지를 원하지 않았다. 존슨에 따르면, 경기가 예정되어 있다가 공격을 받기 15분 전에 여동생이 "정말 안 좋다"며 플로리다에 있는 여동생 병원으로 즉시 와야 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존슨은 빈스 맥마흔을 만나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한 후 곧바로 WWF를 떠나 플로리다로 날아가 다음 주 여동생이 사망했다. 존슨은 이후 WWF 경영진에게 당시 자신의 퇴사 이유를 말하지 않은 이유는 "문제로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공감을 위해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2021년 7월 인터뷰에서 존슨은 처음으로 인종차별이 퇴사의 또 다른 이유라고 주장하며 "가족 문제로 인해 제 관심이 필요했지만, 그 외에도 저와 맞지 않는 다른 일들이 뒤에서 벌어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저는 많은 인종차별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 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WCW로 이적했으나 인상적인 활약은 펼치지 못했다.[3][4] 그는 계속되는 체중 문제로 인해 얼마 지나지 않아 WCW에서 방출되었다.
노리스는 WCW에서 방출된 후 레슬링을 멀리하다가 2002년 텍사스 알링턴에 기반을 둔 프로 챔피언십 레슬링에서 재러드 스틸을 상대로 복귀전을 치렀다. 그는 2003년 맥시멈 프로 레슬링의 태그 팀 매치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렀고, 몬티 브라운과 팀을 이루어 사부와 갱그렐을 상대로 패배했다.
그의 신체사항은 신장 188cm에 체중 138kg으로 풋볼 선수 출신답게 우람한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복근이 두드러지지 않는 불룩한 배가 옥의 티 라면 티. 2003년에 현역에서 은퇴해 현재는 사업을 하고 있으며 아내와 딸과 함께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과거의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듯한 우락부락한 비주얼은 온데간데 없고, 완전히 비만한 체형의 순둥이 인상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애지중지 귀하게 키우던 딸도 장성해 시집을가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 손주 둘 딸린 할아버지가 되었다.
노리스는 플로리다에서 자랐다가 딸 니나와 함께 텍사스 휴스턴에 거주하게 되었다. 은퇴 후 대학으로 돌아와 휴스턴-틸로슨 대학교에서 범죄학 학위를 취득했다.
2016년 7월, 노리스는 레슬링 선수들이 재임 기간 동안 외상성 뇌 손상을 입었고 회사가 부상 위험을 숨겼다고 주장한 WWE를 상대로 제기한 집단 소송의 일부로 지목되었다. 이 소송은 WWE를 상대로 한 여러 소송에 참여한 콘스탄틴 카이로스 변호사가 제기한 소송이다. 미국 지방법원 판사 바네사 린 브라이언트는 2018년 9월에 소송을 기각했다.
1.1. 기술
스파인 버스터, 크로스라인, DDT 등피니시 무브: 펄 리버 플런지(Pearl River Plunge, 싯아웃 더블 언더훅 파워밤[5])
1.2. 커리어
- 1995년 10월 23일 WWF RAW에서 데뷔.
-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5)에서 숀 마이클스, 브리티시 불독, 사이코 시드와 팀을 이루어 요코주나, 오웬 하트, 레이저 라몬, 딘 더글라스 팀과 경기를 가졌다. 참고로 이때 요코주나에게 바디슬램을 시전하였으며, 끝까지 생존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 WWF 인 유어 하우스 5: 시즌즈 비팅즈에서 버드 랜들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 WWF 로얄럼블(1996)에서 제프 제럿에게 DQ승을 거두었다.
- WWF 킹 오브 더 링(1996)의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에서 골더스트에게 승리.
- WWF 로얄럼블(1997)에서 파룩에게 승리. 이후 30인 로얄럼블 경기에 2번으로 나왔는데 파룩이 등장하자마자 파룩을 잡기 위해 상단 로프를 넘어 가면서 자진 탈락의 형태가 되었다.
- 1997년 잠시 네이션 오브 도미네이션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 WWF 인 유어 하우스 15: 어 콜드 데이 인 헬에서 네이션 오브 도미네이션의 크러쉬, 사비오 베가, 파룩과 건틀렛 매치를 가졌다.
- WWF 킹 오브 더 링(1997)의 토너먼트 세미파이널에서 트리플 H를 만났다.
- WCW 수퍼브롤 10에서 빅 T라는 링네임으로 부커 T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 스티비레이, J빅스, 캐쉬와 함께 할렘히트 2000 멤버로 활동하였다.
2. 기타
- 마크 헨리가 Busted Open Radio 팟캐스트를 통해서 WWF 시절때 자신이 마시던 차에 마약을 섞는 걸 봐서 정말로 그를 죽일 뻔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이것도 모자라 누가 이런 못된짓을 했냐면서 화내던 마크 헨리한테 묵묵부답으로 나왔고, 함께 동행하던 리키쉬도 이 인간 때문에 쓸데없이 피해를 입어야 했는데 이 양반의 잘못때문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마크 헨리가 자긴 아무짓도 안했다며 해명한 리키쉬 마저도 마크 헨리가 자기 차에서 쫓아내버렸다.
- 한편 스티브 오스틴을 인종차별자라고 아메드 존슨이 발언한 것도 늘 타인을 음해하고 자신을 정당화 하려는 목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탓을 하려는 그의 성향으로 생긴 거짓이라고 말하였다. 애초에 오스틴은 꽤나 리버럴한 성향이다.
- 이것말고도 선수시절 이전이나 현역선수 시절 주변사람들과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있었으며, 그중 어떤사람과 시비가 붙어 거의 초주검이 될때까지 뚜까패서 형사처벌(!)까지 받은적도 있었다고 한다. 사실 그는 선수생활 이전에 미 육군에서 복무한 이력이 있었는데 복무중에도 항명과 상관폭행으로 군 교도소에 수감되어 불명예 전역을 한 이력도 존재한다. 이런 전적으로 볼때 확실히 유한 성격을 가진 것과는 거리가 있어보이는 것 같다.
- 그래도 자신이 인정하거나 좋아하는 사람들과는 무척이나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었다고 한다. 그와 친한 사람들 가운데 인격적으로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을 정도로. 하지만 문제는 상단의 마크 헨리 사건처럼 개념없는 짓거리를 본인이 조금이라도 친해졌다고 생각하면 주저없이 하였기 때문에 주변에 적도 꽤나 많은 편이었다고 한다.
- 1995년부터 1998년까지 WWE에서 활동할 당시. 그는 WWE의 얼굴로 평가되었지만 이후 소리 소문없이 사라졌다. 그 이유는 빈스 맥맨과 사이가 틀어졌기 때문이다. 아메드 존슨은 오늘날까지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지 않았고 언급조차 없다.
- 현재 거의 듣보잡이 되었지만 1997년 당시만 해도 숀 마이클스와 대립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인종차별로 취소되었고, 이후에는 언더테이커까지 이기고 WWE 챔피언에 등극할 뻔했지만 이 역시 부상을 당하면서 결국 폐지되었다. 그날 부상만 아니었어도 아메드 존슨의 인생은 정말 달라졌을 것이고 지금까지도 많은 팬이 있었을 것이다.
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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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 | → | 아메드 존슨 (1996) | → | [[타이거 알리 싱] (19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