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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비 제국 제7대 황제 아바스 2세 شاه عباس دوم | |
<colbgcolor=#008000><colcolor=#fff,#fff> 이름 | 아바스 미르자 / 솔탄 모하마드 미르자 عباس دوم / سلطان محمد میرزا Abbas Mirza / Soltan Mohammad Mirza |
출생 | 1632년 8월 30일 사파비 제국 카즈빈 |
사망 | 1666년 10월 26일 (34세) 사파비 제국 카샨 |
재위 기간 | 1642년 5월 15일 ~ 1666년 10월 26일[1] |
아버지 | 샤 사피 |
아들 | 솔레이만 1세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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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شاه عباس دوم부하라 칸국의 사신을 접견하는 아바스 2세 |
샤 사피의 장남으로, 체르케스계 후궁 안나 카눔의 소생이다. 9세의 나이로 즉위하여 재상 사루 타키와 모후 안나 카눔이 섭정하였다. 제왕 교육을 받던 아바스 2세는 15세가 된 1645년, 사루 타키를 비롯한 관료층을 숙청하고 친정에 나섰다. 전쟁으로 얼룩진 부왕의 치세와 달리 아바스 2세는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을 피하고, 우즈베크인들과 친선을 꾀하며 평화를 이어갔다. 다만 1638년에 상실한 칸다하르의 수복을 위해 무굴 제국을 공격하여 1649년 일대를 회복하였다. 이에 무굴 제국은 1649, 52, 53년의 세 차례에 걸쳐 칸다하르를 공격했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1651년에는 일전에 그에 의해 폐위된 카케티 국왕 테이무라즈 1세가 루스 차르국의 도움으로 복위를 시도했으나 아바스 2세는 1653년까지 테레크 강 남안의 러시아 거점들을 축출하며 승전하였다. 1659-60년 아바스 2세는 조지아 인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이슬람으로 개종한 바크탕 5세 (샤 나와즈)를 카르틀리 국왕으로 인정하였다. 군사적, 외교적 재능을 발휘하던 아바스 2세는 1666년 34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사파비 왕조 후반부의 유일한 명군으로 여겨지는 그의 죽음에 많은 이들이 애도하였고, 사후 아들 솔레이만 1세가 황위를 계승하였다.
2. 생애
2.1. 재위
무굴 제국의 사절단과 만나는 아바스 2세. |
이후 로스톰 칸의 양자 바크탕 5세를 카르틀리의 국왕으로 임명했으나 그 아래에 있던 카르틀리 반군 수괴들은 모조리 처형해버렸다.
2.2. 내치
관료와 대화하는 아바스 2세
17세기 중반부터 반세기 이상 이란을 엄습하게 되는 경제 침체가 당도하자 1654년 아바스는 세수 확보를 위해 경제학자 모하마드 베그를 재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의 노력 역시 부질없었고, 더 나아가 그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게서 뇌물을 받거나 친족들을 여러 관직에 임명하는 등의 행위로 재정을 악화시키기도 하였다. 1661년 모하마드 베그는 병약하고 미온적인 관료인 미르자 모하마드 카라키로 대체되었는데, 후자는 왕세자인 삼 미르자의 존재를 모를 정도로 왕실의 일에 대해서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3. 평가
브루클린 박물관 소장 아바스 2세 초상화
사파비 왕조 최후의 절대 군주이자, 선대 및 후대의 샤들과 달리 스스로 정사를 보아 돋보였던 군주였다. 이란에서 그는 정의를 사랑한 군주이자 사파비 조의 쇠퇴를 일시적으로 거스르며 번영, 안정, 평화의 시기를 열었던 통치자로 기억된다. 물론 그의 죽음과 함께 그 시대는 저물었다..
서구 학자들은 아바스 2세를 반란을 야기하지 않고, 외국인들의 안전한 여행을 보장했던 관대하며 너그러운 군주로 기록하였다. 일부 학자들은 부친을 닮은 그의 잔혹함과 페르시아 유대인에 대한 강제 개종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기독교도에 대한 관용만큼은 다들 인정한다.
[1] 혹은 9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