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ff><colcolor=#000> 프로이센 왕국의 왕자 아우구스트 빌헬름 폰 프로이센 Prinz August Wilhelm von Preußen | |
이름 | 아우구스트 빌헬름 하인리히 귄터 빅토어 폰 프로이센 (August Wilhelm Heinrich Günther Viktor von Preußen) |
출생 | 1887년 1월 29일 독일 제국 프로이센 왕국 포츠담 |
사망 | 1949년 3월 25일 (향년 62세) 연합군 점령하 독일 뷔르템베르크바덴 슈투트가르트 |
배우자 |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의 알렉산드라 빅토리아 공녀[1] (1908년 결혼 / 1920년 이혼) |
자녀 | 알렉산더 페르디난트 |
아버지 | 빌헬름 2세 |
어머니 |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아우구스테 빅토리아 |
형제 | 빌헬름, 아이텔 프리드리히, 아달베르트, 오스카, 요아힘, 빅토리아 루이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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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제국의 마지막 황제 빌헬름 2세의 사남.2. 생애
1905년경에 촬영한 사진 |
1930년대에 나치가 정권을 장악하자 열렬히 나치를 지지하였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자 돌격대(SA)로 들어갔다. 반면 빌헬름 2세는 점차 나치를 불신하기 시작했고, 1938년 11월, 수정의 밤 사건이 터졌을 때 빌헬름 2세 앞에서 공개적으로 포그롬을 옹호한 사건으로 인해 큰 질책을 받고 이후 외인 취급을 받았다.[2]
1945년 5월 8일 미군에 체포된 아우구스트는 전범재판에서 2년 6개월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석방된 뒤에도 소련 점령지에서의 소송에 휘말려 포츠담 법정에 의해 체포 영장이 발부되었다. 하지만 병에 걸려 슈투트가르트의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사후 랑엔부르크의 호헨로헤랑엔부르크(Hohenlohe-Langenburg) 묘지에 매장되었다.
3. 가족관계
자세한 내용은 호엔촐레른 가문 문서 참고하십시오.3.1. 자녀와 후손
알렉산드라 빅토리아 공녀와의 사이에서 외아들 알렉산더 페르디난트를 두었다. 알렉산더 페르디난트는 귀천상혼을 해서 계승권이 박탈되었으며, 이후 남계후손이 없어서 아우구스트 빌헬름의 가계는 단절된다. 알렉산더 페르디난트의 외아들 스테판 알렉산더는 하이데 슈미트와 결혼해서 슬하에 외동딸을 두었고 이혼했다. 스테판 알렉산더의 외동딸 스테파니 빅토리아 루이제 공주는 탄자니아 출신의 마디 음바라카 바오와 결혼해서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고, 1999년 또 이혼했다.
4. 여담
- 빌헬름 2세의 자녀들 중에서 증조할아버지 빌헬름 1세, 할아버지 프리드리히 3세가 살아있을때 태어난 마지막 자녀다. 밑에 동생들인 오스카와 요아힘, 빅토리아 루이제는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사후에 태어났다.[3]
5. 대중매체
Hearts of Iron IV의 유명 모드 카이저라이히에서는 독일의 동방주가 된 폴란드의 왕이 되어 있다. 다만 현실에 비해 딱히 개념차린 건 아니라 여전히 주 관심사는 보석과 예술품이고 성격은 유약한 주제에 정치적으론 절대군주적인 성향이라 아버지 빌헬름에게나 새로운 국민인 폴란드 국민들에게나 미움받고, 폴란드 정계는 대안부재의 심정으로 독일이 꽂아놓은 왕정을 용인하고 있는 상황이다.플레이어가 폴란드를 잡으면 아우구스트의 왕정을 유지하면서 정신차리고 진정으로 폴란드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새로운 독폴 동맹을 열던지, 아니면 1차세계대전 말엽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영향력 경쟁에서 밀려서 독일 제국과의 관계가 나빠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원을 받고 친오스트리아 민주공화국을 만들거나, 아예 한발짝 더나가서 2차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서방 사회주의 영불의 지원을 받는 생디칼리스트 좌파 아니면 보리스 사빈코프의 지원을 받는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대규모 전시 봉기로 독일의 지배 자체를 엎어버릴수도 있다.
[1] 이모 카롤리네 마틸데와 프리드리히 페르디난트의 차녀로 이종사촌이다.[2] 정작 프랑스 침공이 성공한 후에는 빌헬름 2세도 나치를 지지하게 되었다.[3] 오스카가 태어날때는 증조할머니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아우구스타는 살아있었지만 요아힘, 빅토리아 루이제는 증조할머니 사후에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