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의 영빈관에 대한 내용은 아카사카 이궁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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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어소 [ruby(仙, ruby=せん)][ruby(洞, ruby=とう)][ruby(御, ruby=ご)][ruby(所, ruby=しょ)] | Sentō Imperial Palace | |
아카사카 어소 전경 | |
아카사카 어용지의 사메가하시 문([ruby(鮫, ruby=さめ)]が[ruby(橋, ruby=はし)][ruby(門, ruby=もん)]) | |
<colbgcolor=#8C003B> 형태 | 궁전 |
용도 | |
주소 | 도쿄도 미나토구 모토아카사카2초메 1-8 東京都港区元赤坂二丁目1-8 |
소유주 | 궁내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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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 모토아카사카의 아카사카 어용지(赤坂御用地)에 위치한 궁궐로, 현재 선동어소이다.본래는 어료지(御料地)와 함께 황실 재산이었으나 일본국 헌법 시행 후에는 궁내청의 소유로 옮겨져 국유 재산으로서 황실에 제공되고 있다.
2. 구조
철근 콘크리트 지상 2층에 지하 1층 건물이며, 어좌소동(御座所棟)과 사무동(事務棟)으로 나뉘어 있다.3. 역사
3.1. 아키히토 황태자
아카사카 어소는 동궁어소이던 시절에 '아카사카 동궁어소(赤坂東宮御所)'라고도 불렸다. 아카사카 어소는 1960년(쇼와 34년), 예전 데이메이 황후의 대궁어소였던 자리에 동궁어소로서 건설되었다. 처음 입주한 사람은 데이메이 황후의 장손 부부인 아키히토 황태자와 미치코 황태자비였다.1989년(쇼와 64년)에 쇼와 천황이 붕어하고 아키히토가 천황으로 즉위했지만, 그 뒤에도 한동안 계속 거주하였다.
3.2. 나루히토 황태자
1993년(헤이세이 5년)에 황거 내 어소가 완공되자 아키히토 부부와 노리노미야 사야코 내친왕이 그쪽으로 이주하였고, 그때부터 나루히토 황태자 일가가 입주하여 2019년 5월 1일 새 천황으로 즉위한 후에도 계속 천황 내외가 지내고 있다.3.3. 아키히토 상황
원래대로라면 천황 일가가 된 나루히토 황태자 일가가 황거로 간 이후에는 다음 황위 계승 예정자인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황사 가족이 여기에 들어가야 하나, 아키히토 상황(上皇) 부부 내외가 다시 입주할 예정이다. 이 예정에 맞추어 황거와 동궁어소가 대대적으로 리모델링되어서 황거의 작업이 끝날 때까지 황태자 일가는 잠시 동궁어소에 더 머무르게 되었다. 아키히토 부부 내외 역시 다카나와 황족저에서 임시 기거할 예정이었으나 아키히토 상황 내외의 건강 문제로 이러한 계획의 시작점인 황거에서 임시 거처로의 이사가 계속 지연되고 있다.2019년 4월 22일, 궁내청은 어소 정식 명칭을 아카사카 동궁어소(東宮御所)에서 아카사카 어소(御所)로 변경하고 상황과 상황후가 되는 아키히토 내외가 거주하게 되는 동궁어소를 선동어소로 칭하는 방안을 공개했다.
2019년 5월 1일 나루히토의 천황 등극에 따라, 아카사카 어소에 임시로 삼종의 신기를 보관할 전용 방을 만들어서 천황 내외가 황거로 옮기기 전까지 삼종의 신기를 보관하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삼종의 신기는 원칙상 무조건 천황 거처에 두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1]
2019년 10월 7일 기준으로 아키히토 상황 내외 이사 계획대로 진행 중인 건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이 지내는 저택[2] 개보수 정도이기에 현재까지 나루히토 천황은 공무가 있을 때마다 아카사카 어소에서 고쿄로 출퇴근 중이다.
2022년 4월 12일 아키히토 상황 내외가 아카사카 어소에 정식으로 거주하게 된다. 2022년 기준으로 아카사카 어용지에는 아키히토 상황 내외, 황사 아키시노노미야 가문(구 지치부노미야 저택에서 거주), 방계 황족 미카사노미야 가문(다카마도노미야 포함)의 저택이 있다. 참고로 상황 아키히토의 동생 히타치노미야 마사히토의 저택은 아카사카 어용지가 아니라 시부야구에 자리한 구 히가시후시미노미야 저택 부지의 일부[3]에 지내고 있다.
[1] 이 삼종의 신기의 소재는 천황의 정통성 그 자체를 상징하여 삼종의 신기는 천황이 바뀌는 즉시 천황의 거처로 이전되어야 한다. 이것 때문에 남북조시대의 대립이 이어졌고 오랫동안 남북조정윤론 논쟁까지 끊이지 않았던 흑역사가 있었다.[2] 후미히토는 결혼 당시에는 고모들 중 하나인 다카쓰카사 가즈코가 지내던 저택에서 살았으나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의 저택으로 옮기게 된다.[3] 1960년 해당 부지에 지내던 형 아키히토 당시 황태자 내외가 아카사카 어소 정비가 끝나자 그곳으로 이사를 가면서 일본 정부는 마사히토 저택 부지를 제외한 나머지 부지를 매각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