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안드로니코스 람파르다스 (영어:Andronikos Lapardas, 그리스어: Ἀνδρόνικος Λαπαρδάς) |
출생 | 미상 |
사망 | 1182년 |
직위 | 동로마 장군 |
반란 대상 | 안드로니코스 1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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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콤니노스 왕조의 반란자. 마누일 1세의 여러 원정에 가담했고, 마누일 황제 사후 안드로니코스 1세의 집권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킨 요안니스 콤니노스 바타치스를 토벌하는 임무를 맡았으나 패전했다. 이 일로 안드로니코스 1세의 의심을 사 반역 혐의를 뒤집어쓰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2. 생애
세바스토스의 직책을 역임하였으며, 1167년 7월 시르미온 전투에서 우익 부대를 이끌고 헝가리군을 섬멸하는 데 기여했다. 1176년 마누일 1세의 룸 술탄국 원정에 가담했으나 미리오케팔론 전투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는 걸 막지 못했다. 1180년 마누일 1세가 사망한 뒤 어린 아들 알렉시오스 2세가 즉위하고 안티오키아의 마리아 황후가 섭정하였다. 그러나 황후가 자신의 동족인 서방인들을 중용하는 것에 분개한 이들이 소요를 일으키면서, 제국은 혼란에 휩싸였다.헝가리 국왕 벨라 3세는 이 틈을 타 1182년 베오그라드와 브라니체보의 동로마 요새를 공격했다. 당시 국경 수비대장이었던 그는 알렉시오스 브라나스와 연합하여 헝가리군과 대치했다. 그러던 중 안드로니코스 1세가 마리아 황후를 교살한 뒤 알렉시오스 2세를 실명시키고 단독 황제로 집권하자, 두 사람간의 의견 대립이 심해지면서 더 이상의 전투는 어려웠다. 결국 동로마군은 트라야누스 성문으로 후퇴했고, 헝가리군은 약탈을 자행한 뒤 본국으로 돌아갔다.
얼마 후, 마누일 1세의 조카인 요안니스 콤니노스 바타치스가 서부 아나톨리아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안드로니코스 1세는 그에게 대군을 맡겨 이들을 무찌르게 했다. 그러나 그는 필라델피아 인근에서 반란군에게 격파당했다. 그렇지만 바타치스가 1182년 5월 16일 병사하면서, 반란군은 뿔뿔이 흩어졌다.
안드로니코스 1세는 그가 바타치스와 밀약을 맺었기에 일부러 패했으리라 의심했다. 얼마 후 황제는 그를 긴급 체포한 뒤 반역 혐의를 뒤집어 씌워 실명시키고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판테파테스 수도원에 감금했다. 그는 그곳에서 얼마 안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