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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리 셰브첸코/클럽 경력/AC 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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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셰브첸코 밀란 이적.jpg
▲ 1999년 계약 당시
소속팀 <colbgcolor=#ffffff,#191919>AC 밀란 (세리에 A)
등번호 7
기록
파일:세리에 A 로고.svg
226경기
127득점 29도움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가로형 화이트).svg
59경기
29득점 10도움
파일:UEFA 유로파 리그 로고 화이트.svg
13경기
4득점 5도움
파일:코파 이탈리아.png
16경기
7골 2도움
파일:Supercoppa_logo.png
3경기 3득점
파일:UEFA 슈퍼컵 로고_white.svg
1경기 1득점
파일:인터image.jpg
1경기
합산 성적
322경기
175득점 46도움
1. 개요2. 이적
2.1. 1999-00 시즌2.2. 2000-01 시즌2.3. 2001-02 시즌2.4. 2002-03 시즌2.5. 2003-04 시즌2.6. 2004-05 시즌2.7. 2005-06 시즌

[clearfix]

1. 개요

안드리 셰브첸코AC 밀란 경력을 소개하는 문서

2. 이적

1999-00 시즌을 앞두고 셰브첸코는 이탈리아의 명문 구단 AC 밀란으로 이적하였다.[1] 그리고 데뷔 시즌 득점왕이라는 엄청난 업적과 함께 성과를 이루어나간다.[2]

2.1. 1999-00 시즌

1999/00 시즌: 45경기 29골 11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A 32 29 3 24 6
UEFA 챔피언스 리그 5 4 1 1 3
코파 이탈리아 4 4 - 3 1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 1 - 0 1
합계 45 33 12 29 11

2.2. 2000-01 시즌

2000/01 시즌: 51경기(선발 49경기) 34골 5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A 34 33 1 24 4
챔피언스 리그 12 12 0 5 0
코파 이탈리아 3 2 1 1 1
챔피언스 리그 예선 2 2 0 4 0
합계 51 49 2 34 5

2.3. 2001-02 시즌

2001/02 시즌: 38경기(선발 36경기) 17골 5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A 29 28 1 14 3
유로파 리그 6 6 0 3 2
코파 이탈리아 3 2 1 0 0
합계 38 36 2 17 5

2.4. 2002-03 시즌

부상과 이에 따른 컨디션 난조로 리그 5골에 그치며 극도로 부진했던 2002-03 시즌을 제외하면 매시즌 20골 언저리를 기록하며 세리에 A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우뚝선다. 그러나 이 부진했다는 2002-03 시즌 후반기 머리를 삭발하고온 그는 조별 리그 1차전에서 만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결승골을 뽑아 팀을 1위로 16강에 진출시키고, 8강 아약스를 상대로 천금같은 동점골, 4강에서 벌어진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에서도 2차전 골을 기록하여 원정다득점 원칙에 따라 팀을 결승에 올렸고, 결승에서는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PK를 성공시키는 등 팀의 6번째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적잖은 공헌을 하였다.

2002/03 시즌: 39경기(선발 30경기) 12골 2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A 24 18 6 5 1
챔피언스 리그 10 10 0 4 1
코파 이탈리아 4 1 3 1 0
챔피언스 리그 예선 1 1 0 0 0
합계 39 30 9 12 2

2.5. 2003-04 시즌

파일:ELpkgDbWkAAqSoX.jpeg.jpg
계속해서 발롱도르 순위권에 들던 셰브첸코는 2004년 세리에 A 우승과 득점왕을 동시에 차지하며 마침내 발롱도르를 수상하게 된다. 다만 해당 년도 셰브첸코의 수상에 대해서는 2001년의 마이클 오언의 수상과 함께 발롱도르 역사상 가장 논란이 컸던 사례 중 하나로 남아 있다.[3][4]

2003/04 시즌: 45경기(선발 43경기) 29골 4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A 32 30 2 24 3
챔피언스 리그 9 9 0 4 1
코파 이탈리아 1 1 0 0 0
수페르코파 1 1 0 0 0
슈퍼컵 1 1 0 1 0
인터컨티넨탈컵 1 1 0 0 0
합계 45 43 2 29 4

2.6. 2004-05 시즌

다만 2004-05 시즌에는 팀을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으로 올리는 활약을 했으나, 리버풀에게 이스탄불의 비극을 맛본다. 셰브첸코는 이 경기에서 크레스포의 골을 어시스트했지만 예지 두덱에게 수 차례 결정적인 슈팅이 막혔고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섰을 때도 실축하면서 리버풀에 우승을 내주게 된다.[5]

2004/05 시즌: 40경기(선발 38경기) 26골 8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A 29 27 2 17 6
챔피언스 리그 10 10 0 6 2
수페르코파 1 1 0 3 0
합계 40 38 2 26 8

2.7. 2005-06 시즌

2005-06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 5차전에서 페네르바흐체를 상대로 혼자 4골을 득점하였고 4강에서 만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2차전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헤딩골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골은 파울로 취소되었는데 이것은 카를레스 푸욜할리우드 액션으로 인한 오심이었다. 그는 첼시로 건너가기 전 챔스 득점왕(9골)에 올랐지만, 아쉬움을 남기며 4강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 시절의 셰브첸코는 정확한 골 결정력과 동유럽호나우두[6]라고 불릴 정도로 빨랐던 스피드, 상대 수비수들을 초토화시키는 몸싸움, 준수한 테크닉, 윙 포지션도 소화할 수 있는 전술적 이해도[7]까지, 무결점 스트라이커란 칭송이 아깝지 않았다.

밀라노 더비 역대 최다 득점 기록 보유자이며 레전드 군나르 노르달에 이은 구단 역대 최다 득점 2위(173골)로 사실상 노르달의 기록을 깰 수 있으리라 기대를 모았었다.

2005/06 시즌: 40경기(선발 38경기) 28골 10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세리에 A 28 27 1 19 7
챔피언스 리그 12 11 1 9 3
합계 40 38 2 28 10
319경기 173골[8] 45도움

[1] 자신의 우상인 마르코 반 바스텐이 뛰었던 클럽이라 밀란을 선택했다고 한다.[2] 세리에 A 역사상 데뷔시즌 외국인 득점왕은 과거 유벤투스미셸 플라티니UEFA 회장과 셰브첸코 뿐이다.[3] 2003-04 시즌 리그와 함께 챔피언스 리그에서 포르투의 언더독 신화를 이끌면서 더블을 달성하고 유로 2004에서도 주전으로서 포르투갈의 첫 메이저 대회 준우승을 이끌고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상, 올해의 미드필더상을 동시에 수상한 데쿠나 2003-04 시즌 PL로의 명칭 변경 이후 2021년 현재까지도 유일무이한 아스날무패 우승을 이끌고 리그 득점왕과 유러피언 골든슈, PFA 올해의 선수, FWA 올해의 선수, PL 올해의 선수 등 PL 내에서 받을 수 있는 개인상은 모두 차지한 티에리 앙리, 무관이었지만 바르셀로나 이적 이후 매 경기 센세이셔널한 기량과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던 호나우지뉴가 더 적합했다는 의견이 컸었다. 실제로 셰브첸코는 이 시즌 주요 기록이 세리에 A 우승 하나와 리그 득점왕이 전부였고, 심지어 리그 득점수도 24골로 같은 시즌 30골을 넣은 앙리보다 적은 편이었다.(다만 이 당시 세리에 A는 34라운드 체제였다.) 거기에 셰브첸코는 챔스도 앙리와 똑같이 8강 탈락에, 유로 2004도 조국 우크라이나가 아예 예선에서 탈락한 상태였다.[4] 이에 대해 옹호를 해주자면 셰브첸코는 2004-05 시즌 전반기에 경기 당 1골에 가까운 기록을 남기고 월드컵 예선에서도 대활약하는 등 발롱도르 투표 시점에서 보여준 임팩트가 컸으며, 또한 당시까지는 세리에 A가 세계 최고의 리그라는 인식이 강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앙리는 새가슴기질이 있는 반면, 셰브첸코는 이때까진 빅게임에서 매우 강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셰브첸코의 발롱도르 수상이 후대에 와서 더 논란이 되는 이유는 앙리는 훗날 바르샤에 이적해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주선으로서 트레블에 어느 정도 기여를 했었던 반면에 셰브첸코는 잘 알려지다시피 첼시 이적 이후 첼시와 밀란 임대 복귀 시절 먹튀가 되면서 무결점의 스트라이커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너무 크게 몰락해 이미지가 깎여 버린게 큰 문제였다. 어떻게 보면 리버풀 이후 향후 커리어가 제대로 안풀리며 위상이 추락한 면과 스스로의 행보로 인해 어느 곳에서도 자기를 지지해주는 팬덤이 없어져서 후대에 큰 논란이 생긴 2001년 수상자 마이클 오언과 비슷한 케이스로 보면 된다.[5] 셰브첸코는 선수 시절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세 번 경험했는데, 세 번 모두 승부차기로 승패가 갈렸고, 직접 출전한 두 번 모두 승부차기의 마지막 키커를 맡았다. 2003년 유벤투스와의 대결에서는 골을 성공시키며 팀의 우승을 확정시켰지만, 2005년 리버풀과의 대결에서는 상술했듯 슈팅이 막히며 즉시 리버풀의 우승이 확정되었다. 또한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벤치에 머물렀던 2008년 결승전에서도 승부차기로 준우승에 그쳤다.[6] 하지만 셰바의 팬들은 이 별명을 싫어한다고 한다. 셰브첸코가 호나우두 못지않은 대단한 선수인데도 2인자로 전락하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다고.[7] 카를로 안첼로티는 연습 때 종종 선수들의 포지션을 변경해 테스트를 하곤 했는데, 솁첸코는 수비수의 위치에서도 합격점을 받았다고 했다.[8] AC 밀란 역대 득점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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