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 계약 당시 | |
소속팀 | <colbgcolor=#ffffff,#191919>AC 밀란 (세리에 A) |
등번호 | 7 |
기록 | |
226경기 127득점 29도움 | |
59경기 29득점 10도움 | |
13경기 4득점 5도움 | |
16경기 7골 2도움 | |
3경기 3득점 | |
1경기 1득점 | |
1경기 | |
합산 성적 | |
322경기 175득점 46도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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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드리 셰브첸코의 AC 밀란 경력을 소개하는 문서2. 이적
1999-00 시즌을 앞두고 셰브첸코는 이탈리아의 명문 구단 AC 밀란으로 이적하였다.[1] 그리고 데뷔 시즌 득점왕이라는 엄청난 업적과 함께 성과를 이루어나간다.[2]2.1. 1999-00 시즌
1999/00 시즌: 45경기 29골 11도움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세리에 A | 32 | 29 | 3 | 24 | 6 |
UEFA 챔피언스 리그 | 5 | 4 | 1 | 1 | 3 |
코파 이탈리아 | 4 | 4 | - | 3 | 1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 1 | 1 | - | 0 | 1 |
합계 | 45 | 33 | 12 | 29 | 11 |
1999년 8월 29일 세리에 A 개막전 US 레체 원정에서 올리버 비어호프의 헤딩을 득점으로 연결해 AC 밀란 유니폼을 입고 첫 득점에 성공했다.
9월 12일 AC 페루자와의 2라운드 홈경기에서는 후반 14분 세르지뉴의 짧은 크로스를 헤딩슛으로 2경기 연속 득점을 기록했다. 이 골은 결승골이 되었다.
9월 21일 갈라타사라이 SK와의 챔피언스리그 홈경기에서 밀란 유니폼을 입고 챔피언스리그에서 첫 득점을 기록해 2-1 승리에 기여했다.
10월 3일 SS 라치오 원정에서 3-1로 뒤쳐진 상황에서 페널티킥을 포함해 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괴력을 발휘하며 4-3 역전을 이끌었으나 밀란은 4-4 무승부를 기록했다. 세리에 A에서의 첫 해트트릭 기록.
10월 17일 칼리아리 칼초와의 홈경기에서 페널티킥으로 득점했다. 10월 23일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원정경기에서 커리어 첫 밀라노 더비를 치렀고 후반 27분에 행운의 동점골을 기록해 2-1 역전승의 발판을 놓았다. 인테르 수비수가 걷어낸다는 것이 셰브첸코의 발을 맞고 득점이 되었다.
한동안 득점감각이 주춤하다가 12월 11일 토리노 FC와의 홈경기에서 1골(페널티킥)과 1어시스트로 2-0 승리에 기여했다. 12월 19일 레지나와의 홈경기에서 직접 프리킥 등으로 2골을 넣어 1999년이 끝나기 전에 세리에 A에서 10골을 채웠다.
2.2. 2000-01 시즌
2000/01 시즌: 51경기(선발 49경기) 34골 5도움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세리에 A | 34 | 33 | 1 | 24 | 4 |
챔피언스 리그 | 12 | 12 | 0 | 5 | 0 |
코파 이탈리아 | 3 | 2 | 1 | 1 | 1 |
챔피언스 리그 예선 | 2 | 2 | 0 | 4 | 0 |
합계 | 51 | 49 | 2 | 34 | 5 |
2.3. 2001-02 시즌
2001/02 시즌: 38경기(선발 36경기) 17골 5도움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세리에 A | 29 | 28 | 1 | 14 | 3 |
유로파 리그 | 6 | 6 | 0 | 3 | 2 |
코파 이탈리아 | 3 | 2 | 1 | 0 | 0 |
합계 | 38 | 36 | 2 | 17 | 5 |
2.4. 2002-03 시즌
부상과 이에 따른 컨디션 난조로 리그 5골에 그치며 극도로 부진했던 2002-03 시즌을 제외하면 매시즌 20골 언저리를 기록하며 세리에 A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우뚝선다. 그러나 이 부진했다는 2002-03 시즌 후반기 머리를 삭발하고온 그는 조별 리그 1차전에서 만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결승골을 뽑아 팀을 1위로 16강에 진출시키고, 8강 아약스를 상대로 천금같은 동점골, 4강에서 벌어진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에서도 2차전 골을 기록하여 원정다득점 원칙에 따라 팀을 결승에 올렸고, 결승에서는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PK를 성공시키는 등 팀의 6번째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적잖은 공헌을 하였다.2002/03 시즌: 39경기(선발 30경기) 12골 2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세리에 A | 24 | 18 | 6 | 5 | 1 |
챔피언스 리그 | 10 | 10 | 0 | 4 | 1 |
코파 이탈리아 | 4 | 1 | 3 | 1 | 0 |
챔피언스 리그 예선 | 1 | 1 | 0 | 0 | 0 |
합계 | 39 | 30 | 9 | 12 | 2 |
2.5. 2003-04 시즌
2003/04 시즌: 45경기(선발 43경기) 29골 4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세리에 A | 32 | 30 | 2 | 24 | 3 |
챔피언스 리그 | 9 | 9 | 0 | 4 | 1 |
코파 이탈리아 | 1 | 1 | 0 | 0 | 0 |
수페르코파 | 1 | 1 | 0 | 0 | 0 |
슈퍼컵 | 1 | 1 | 0 | 1 | 0 |
인터컨티넨탈컵 | 1 | 1 | 0 | 0 | 0 |
합계 | 45 | 43 | 2 | 29 | 4 |
2.6. 2004-05 시즌
라치오와의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3-0 대승을 이끌었다. 리그에서는 2라운드 볼로냐 원정에서 PK로 결승골을 득점하며 첫 득점을 뽑았다. 9월 26일 4R 라치오 원정에서는 암브로시니의 퇴장으로 수적 열세인 상황에서 홀로 동점골, 역전골을 뽑아내는 원맨쇼로 2-1 역전승을 이끌었다. 9월 29일 셀틱과의 홈경기에서도 1골 1어시스트로 3-1 승리를 이끌어냈다. 10월 3일 레지나와의 세리에 5R 홈경기에서는 2골 1어시스트로 팀의 3골을 모두 만들어내며 3-1 승리를 이끌어냈다. 세리에 5R까지 5골로 좋은 감각을 이어갔다.10월 20일 챔피언스리그 바르셀로나와의 홈경기에서 결승골을 득점해 1-0 승리를 이끌었다. 10월 30일 세리에 9R 삼프도리아 원정에서 결승골을 득점했다. 바르셀로나 원정경기, 로마와의 홈경기까지 3경기 연속 득점포를 가동했다.
11월 14일 시에나와의 세리에 A 12라운드 홈경기에서 홀로 두 골을 득점하며 세리에 A 통산 99, 100번째 득점에 성공했다. 리그에서 9번째 골로 리그 득점 공동선두가 되었다.
12월 12일 피오렌티나와의 세리에 A 15라운드 홈경기에서 두 골을 득점하며 세리에 A에서 11골째를 득점했다. 그리고 다음 날 발롱도르 수상자가 되었다.
2005년 1월 6일 레체와의 세리에 A 17라운드 홈경기에서 1골 2어시스트로 5-2 대승을 이끌었다. 1월 16일 우디네세와의 홈경기에서도 1골 1어시스트로 3-1 승리를 이끌었다. 전반기에만 셰브첸코는 리그에서 13골을 득점했다.
1월 30일 볼로냐와의 세리에 A 21라운드 홈경기에서 전반 중반 슈팅 도중 볼로냐 수비수 알레산드로 감베리니에 발목을 채이는 부상으로 교체아웃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2월 6일 23라운드 라치오와의 홈경기에서 교체투입되어 득점에 성공했지만 2월 29일 칼리아리와의 세리에 A 25라운드 홈경기에서 전반 14분 만에 상대 선수와 경합하다가 안면 골절 부상을 당해 오랫동안 팀을 이탈했다.
4월이 돼서야 부상에서 돌아왔고 셰브첸코는 인테르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 1,2차전에서 1골씩 득점하면서 성공적인 복귀를 알렸다. 4월 26일 PSV 에인트호번과의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 홈경기에서도 선제골을 뽑아 2-0 승리에 기여했고 4월 30일 피오렌티나와의 세리에 A 34라운드 원정경기에서는 홀로 동점골과 역전골을 만들어내는 괴력으로 2-1 역전승에 기여했다. 이렇게 팀을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으로 올리는 활약을 했으나, 리버풀에게 이스탄불의 비극을 맛본다. 셰브첸코는 이 경기에서 크레스포의 골을 어시스트했지만 예지 두덱에게 수 차례 결정적인 슈팅이 막혔고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섰을 때도 실축하면서 리버풀에 우승을 내주게 된다.[5]
2004/05 시즌: 40경기(선발 38경기) 26골 8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세리에 A | 29 | 27 | 2 | 17 | 6 |
챔피언스 리그 | 10 | 10 | 0 | 6 | 2 |
수페르코파 | 1 | 1 | 0 | 3 | 0 |
합계 | 40 | 38 | 2 | 26 | 8 |
2.7. 2005-06 시즌
아스콜리와의 개막전에서 중거리슛으로 득점하면서 패배를 막았다. 2라운드 시에나와의 홈경기에서 1골 1어시스트로 3-1 승리를 이끌었다.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 5차전에서 페네르바흐체를 상대로 혼자 4골을 득점하였고[6] 4강에서 만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2차전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헤딩골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골은 파울로 취소되었는데 이것은 카를레스 푸욜의 할리우드 액션으로 인한 오심이었다. 그는 첼시로 건너가기 전 챔스 득점왕(9골)에 올랐지만, 아쉬움을 남기며 4강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 시절의 셰브첸코는 정확한 골 결정력과 동유럽의 호나우두[7]라고 불릴 정도로 빨랐던 스피드, 상대 수비수들을 초토화시키는 몸싸움, 준수한 테크닉, 윙 포지션도 소화할 수 있는 전술적 이해도[8]까지, 무결점 스트라이커란 칭송이 아깝지 않았다.
밀라노 더비 역대 최다 득점 기록 보유자이며 레전드 군나르 노르달에 이은 구단 역대 최다 득점 2위(173골)로 사실상 노르달의 기록을 깰 수 있으리라 기대를 모았었다.
2005/06 시즌: 40경기(선발 38경기) 28골 10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세리에 A | 28 | 27 | 1 | 19 | 7 |
챔피언스 리그 | 12 | 11 | 1 | 9 | 3 |
합계 | 40 | 38 | 2 | 28 | 10 |
319경기 173골[9] 45도움
[1] 자신의 우상인 마르코 반 바스텐이 뛰었던 클럽이라 밀란을 선택했다고 한다.[2] 세리에 A 역사상 데뷔시즌 외국인 득점왕은 과거 유벤투스의 미셸 플라티니 前 UEFA 회장과 셰브첸코 뿐이다.[3] 2003-04 시즌 리그와 함께 챔피언스 리그에서 포르투의 언더독 신화를 이끌면서 더블을 달성하고 유로 2004에서도 주전으로서 포르투갈의 첫 메이저 대회 준우승을 이끌고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상, 올해의 미드필더상을 동시에 수상한 데쿠나 2003-04 시즌 PL로의 명칭 변경 이후 2021년 현재까지도 유일무이한 아스날의 무패 우승을 이끌고 리그 득점왕과 유러피언 골든슈, PFA 올해의 선수, FWA 올해의 선수, PL 올해의 선수 등 PL 내에서 받을 수 있는 개인상은 모두 차지한 티에리 앙리, 무관이었지만 바르셀로나 이적 이후 매 경기 센세이셔널한 기량과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던 호나우지뉴가 더 적합했다는 의견이 컸었다. 실제로 셰브첸코는 이 시즌 주요 기록이 세리에 A 우승 하나와 리그 득점왕이 전부였고, 심지어 리그 득점수도 24골로 같은 시즌 30골을 넣은 앙리보다 적은 편이었다.(다만 이 당시 세리에 A는 34라운드 체제였다.) 거기에 셰브첸코는 챔스도 앙리와 똑같이 8강 탈락에, 유로 2004도 조국 우크라이나가 아예 예선에서 탈락한 상태였다.[4] 이에 대해 옹호를 해주자면 셰브첸코는 2004-05 시즌 전반기에 경기 당 1골에 가까운 기록을 남기고 월드컵 예선에서도 대활약하는 등 발롱도르 투표 시점에서 보여준 임팩트가 컸으며, 또한 당시까지는 세리에 A가 세계 최고의 리그라는 인식이 강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앙리는 새가슴기질이 있는 반면, 셰브첸코는 이때까진 빅게임에서 매우 강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셰브첸코의 발롱도르 수상이 후대에 와서 더 논란이 되는 이유는 앙리는 훗날 바르샤에 이적해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주선으로서 트레블에 어느 정도 기여를 했었던 반면에 셰브첸코는 잘 알려지다시피 첼시 이적 이후 첼시와 밀란 임대 복귀 시절 먹튀가 되면서 무결점의 스트라이커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너무 크게 몰락해 이미지가 깎여 버린게 큰 문제였다. 어떻게 보면 리버풀 이후 향후 커리어가 제대로 안풀리며 위상이 추락한 면과 스스로의 행보로 인해 어느 곳에서도 자기를 지지해주는 팬덤이 없어져서 후대에 큰 논란이 생긴 2001년 수상자 마이클 오언과 비슷한 케이스로 보면 된다.[5] 셰브첸코는 선수 시절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세 번 경험했는데, 세 번 모두 승부차기로 승패가 갈렸고, 직접 출전한 두 번 모두 승부차기의 마지막 키커를 맡았다. 2003년 유벤투스와의 대결에서는 골을 성공시키며 팀의 우승을 확정시켰지만, 2005년 리버풀과의 대결에서는 상술했듯 슈팅이 막히며 즉시 리버풀의 우승이 확정되었다. 또한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벤치에 머물렀던 2008년 결승전에서도 승부차기로 준우승에 그쳤다.[6] 페네르바체 홈팬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7] 하지만 셰바의 팬들은 이 별명을 싫어한다고 한다. 셰브첸코가 호나우두 못지않은 대단한 선수인데도 2인자로 전락하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다고.[8] 카를로 안첼로티는 연습 때 종종 선수들의 포지션을 변경해 테스트를 하곤 했는데, 솁첸코는 수비수의 위치에서도 합격점을 받았다고 했다.[9] AC 밀란 역대 득점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