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디 나탈레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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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11 · 2011-12 · 2012-13 |
안토니오 디 나탈레의 기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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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비에타나 칼초 | ||
Orvietana Calcio | ||
<colbgcolor=#ce1d00,#191919> 이름 | 안토니오 디 나탈레 Antonio Di Natale | |
출생 | 1977년 10월 13일 ([age(1977-10-13)]세) | |
이탈리아 나폴리 | ||
국적 | [[이탈리아|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70cm | 체중 73kg | |
직업 |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 감독 | |
경력 | <colbgcolor=#ce1d00> 선수 | 엠폴리 FC (1996~2004) → 이페르졸라 (1997~1998 / 임대) → AS 바레세 1910 (1998 / 임대) → AC 비아레지오 (1998~1999 / 임대) 우디네세 칼초 (2004~2016) |
감독 | 카라레세 칼초 (2021~2022) | |
경영 | 오르비에타나 칼초 (2022~ / 부회장) | |
국가대표 | 42경기 11골 (이탈리아 / 2002~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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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 현역 시절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우디네세 칼초에서 2년 연속 세리에 A 득점왕에 오르는 등 맹활약하며 통산 446경기 227골을 기록해 구단 역대 최다 득점 및 최다 출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1][2]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엠폴리 FC
8세에 축구를 시작하여 14세 때 엠폴리 FC에 입단하였다. 1996-97 시즌에 세리에 B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했는데, 이 클럽에는 고향이며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빈첸초 몬텔라, 루카 토니도 소속하고 있었다. 그 이후 세리에 A로 승격한 엠폴리를 나와 세리에 C1이나 세리에 C2에 소속된 팀에 임대되었다. 1998-99 시즌 세리에 C2의 AC 비아레지오로 임대 이적해 12골을 넣으며 활약하였다. 1999-2000 시즌에 세리에 B로 강등한 엠폴리에 복귀하면서 주전 자리를 얻었다. 2001-02 시즌에는 38경기 16득점의 활약으로 세리에 A 승격의 원동력이 되었다. 2002-03 시즌 레지나 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통산 27경기 13득점을 기록하였다. 엠폴리에서의 통산 득점 기록은 177경기 55골.2.1.2. 우디네세 칼초
2003-04 시즌 엠폴리가 강등되어 우디네세 칼초로 이적하였다. 2004-05 시즌 팀의 4위 약진에 기여하였고, 2005-06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 리그에 데뷔하였다. 2007-08 시즌은 자신 최다 득점인 17골을 기록하였다. 2009-10 시즌 2010년 5월 9일 AS 바리를 상대로 세리에 A 통산 100골을 달성하였다. 시즌 종료 후 29골으로 첫 득점왕에 올랐다. 이 활약으로 오스카르 델 칼치오 이탈리아인 축구 선수상을 수상하였다. 2010-11 시즌 11월 14일 레체 전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하였고, 우디네세가 13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동안 15골을 기록하였다. 3번의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통산 28골로 2년 연속 득점왕을 수상하며 우디네세의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 획득에 공헌하였다.2014년 1월 6일 2013-14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를 표명하였으나 번복할 가능성이 있다. 4골밖에 못 넣은 상당히 부진한 상황에서 은퇴를 표명하였으나 후반기에 13골을 넣었고, 마지막 라운드엔 해트 트릭까지 했다. 결국 은퇴를 번복하고 더 뛰기로 하였다. 셀링 클럽으로 유명한 우디네세에서 10년 가까이 현역으로 뛸 정도면 사실상 프랜차이즈 스타나 다름없는 선수다.
그리고 은퇴를 번복하고 치른 개막전에서 혼자 팀의 두 골을 모두 넣으며 D 나탈레는 죽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2014년 8월 23일에는 코파 이탈리아 테르나나 칼초와의 경기에서 4골을 몰아치며 5-1 대승에 기여했는데, 상대가 세리에 B의 약체이긴 했지만 한국 나이로 서른여덟 살의 노장이 보여준 활약이라기엔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그리고 2015년 5월 3일에는 베로나를 1-0으로 꺾는 골을 득점하면서, 205골의 로베르토 바지오를 넘어 마침내 세리에 통산 득점순위 6위에 올랐다. 5월 12일에는 우디네세에서 한 시즌 더 뛸 의사가 있음을 선언했으며, 2016년 여름까지의 재계약에 성공했다. 2014-15 시즌에는 리그에서만 14골을 기록, 팀 내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리며 여전히 팀의 핵심임을 증명했다.
하지만 15/16 시즌에는 리그에서 단 한 골밖에 기록하지 못하며 심각한 부진을 겪었고, 결국 4월 30일(한국시간) 우디네세 공식 트위터를 통해 팀을 떠나는 것이 확정되었다. 이후 5월 16일(한국시간) 마지막 라운드에서 골을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고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2015-16 시즌 성적은 25경기 4골 4어시스트.
2.2. 국가대표 경력
이탈리아 대표팀은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 시절 2002년 11월 20일 친선 경기 터키 전에서 데뷔하였다. 2004년 2월 11일 체코와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 첫 골을 기록하였다. 2006 독일 월드컵에는 선발되지 못했으며 유로 2008에는 소집되어 출전했으나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4번째 키커로 나서 실패하면서 탈락의 원흉이 되었다.[3]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었고 조별리그 슬로바키아 전에서 1골을 득점하였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2-3으로 패하며 2무 1패, 조 최하위로 탈락하고 만다.
유로 2012에서도 국가대표팀에 합류. 여담으로 이 당시 조수미가 뜬금없이 화제가 되었는데, 유로 2012 스페인과의 조별 예선 경기 때 선발로 나온 마리오 발로텔리가 득점을 내지 못하자, 조수미는 "내가 프란델리라면 디 나탈레를 투입시키겠다"는 말을 트위터에 적었다.[4] 프란델리는 후반에 발로텔리를 빼고 디 나탈레를 투입시켰는데 정말로 디 나탈레가 선제골을 넣었다. 스피드를 활용하여 안드레아 피를로의 패스를 받아 수비진 배후로 침투한 뒤 정확한 슈팅으로 골망 구석을 가르는, 자신의 장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골이었다.[5] 아쉽게도 3분 뒤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동점골을 넣으면서 무승부로 끝이 났지만.
그래도 디 나탈레의 득점은 스페인이 유로 2012 기간 동안 허용했던 유일한 실점이었다. 즉, 그만큼 단단한 수비를 자랑했던 스페인의 골문을 뚫어낸 유일한 선수가 바로 디 나탈레였다는 것.
프란델리에게 전술 지시하는 디 나탈레 덕후 조수미
A매치 총 기록은 42경기 11골이다.
3. 플레이 스타일
주 포지션은 투톱에서의 공격수이다. 신장이 작아서 체급에 한계가 있기에 원톱 스트라이커로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며[6], 프로 초창기인 엠폴리 시절과 우디네세 초기에는 윙어 또는 윙포워드 위치에서 뛰었고 본격적인 중앙 공격수로써의 활약은 선수생활 중, 후반부이다.[7]. 호마리우가 연상될 정도로 슈팅 테크닉이 매우 뛰어나 발리슛, 중거리슛, 아크로바틱한 슛에 프리킥까지 모두 잘 찼으며, 박스 안쪽으로 침투하여 좋은 공간을 선점한 다음에 패스를 받아 골로 연결시키는 플레이에 능했다. 신장이 작은 공격수에게 거의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스피드도 평균 이상이었으며, 아주 화려한 발재간을 선보인 적은 별로 없었지만 좋은 기본기를 활용한 드리블 돌파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다만 스피드를 이용한 치달은 젊은 시절에나 가끔 보여주고 자주 시도하는 편은 아니었고, 동료와의 연계 플레이를 통한 득점에 능했는데, 축구 지능이 좋은 편이었다. 주로 이탈리아 세리에 A, 그것도 빅클럽과는 거리가 먼 팀에서 주로 선수생활을 한 탓인지 국제적으로 알려진 편은 아니며, 득점력이 만개하고 국가대표팀에서 빛을 본 것도 30줄이 넘어서인지라[8] 재능에 비해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2009-10, 2010-11 시즌 득점왕도 차지하는 등 세리에 A의 정상급 공격수였다.
4. 은퇴 이후
2018년 8월, 스페치아 칼초 코치로 부임했다.2019년 7월, 스페치아 칼초 U-17 감독으로 부임했다.
2021년 4월 11일, 카라레세 칼초 감독으로 부임했다.
2022년 7월 11일, 카라레세 칼초와 계약 해지 후 팀을 떠났다.
2022년 9월 29일, 세리에 D의 오르비에타나 칼초의 부회장으로 임명되었다.#
5. 기록
5.1. 개인 수상
- 세리에 A 득점왕: 2009-10, 2010-11
- 세리에 A 올해의 팀: 2010-11, 2011-12, 2012-13
- 세리에 A 올해의 이탈리아 선수: 2010
- 세리에 A 올해의 득점자: 2011
- 세리에 A 페어플레이상: 2010
-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 2014-15
- 팔로네 디아르젠토: 2011
- 가에타노 시레아 경력모범상[9]: 2011
6. 기타
- 2002년 6월에 결혼했으며,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고 한다.
- 우디네세 칼초의 친한 팀 동료였던 피에르마리오 모로시니가 2012년에 리보르노로 임대를 갔을 때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그에게 홀로 남겨진 장애인 누나를 지금까지 돌보고 있다고 한다.
- 별명은 'Totò '이다. Antonio 'Totò' Di Natale.
- 유독 피파시리즈에서 사랑받은 선수이기도 하다. FIFA13에서 그 인기가 절정이었는데 세리에 A 덱에서 최상위 선수 카드였다. 이후 FIFA 14, 15시리즈에서 조금씩 능력치가 하향을 먹었는데 해외 FUT 관련 사이트에서 보면 "더 이상 나의 영웅[10]을 너프시키지 마요" 같은 댓글들을 많이 확인할 수 있다. 피파온라인3에서도 많이 사용되었는데 출시 초기 최상위 덱(호즐메/베) 다음급으로 평가됐었고 이후 시즌카드가 출시되면서 대장케미에도 포함되기까지 하였다. 게임 때문에 국내에도 팬층이 있는 편이다.
- 피파22에 FUT Heroes에 포함되면서 얼티밋 팀에서 볼 수 있게 되었고 이반 코르도바와 함께 세리에 최고급 카드로 평가 받고 있다.
- 2010년대 세리에 A 최다 득점자이다.
- 무관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선수 중 대표격으로 뽑히는 선수다. 전성기 때는 명실상부 세리에 A 최고의 공격수일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지만 커리어 내내 메이저 대회 우승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 클럽 경력에서는 우승을 노릴 만한 팀으로 이적한 적이 아예 없었고, 국가대표 경력에서는 이탈리아의 전성기와 본인의 전성기가 맞물리지 못한 것이 매우 컸다. 그나마 유로 2012에서 이탈리아가 준우승했을 때가 디 나탈레의 첫 우승에 가장 가까웠던 시기였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 손흥민과도 비슷한 느낌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디 나탈레를 뛰어넘는 무관의 아이콘이 잉글랜드에 등장했다.....
7. 같이 보기
1 부폰 · 2 파누치 · 3 그로소 · 4 키엘리니 · 5 감베리니 · 6 바르잘리 · 7 델 피에로 ⓒ · 8 가투소 · 9 토니 10 데 로시 · 11 디 나탈레 · 12 보리엘로 · 13 암브로시니 · 14 아멜리아 · 15 콸리아렐라 · 16 카모라네시 · 17 데 산치스 18 카사노 · 19 잠브로타 · 20 페로타 · 21 피를로 · 22 아퀼라니 · 23 마테라치 |
로베르토 도나도니 |
1 부폰 ⓒ · 2 마조 · 3 키엘리니 · 4 오그본나 · 5 티아고 모타 · 6 발자레티 · 7 아바테 · 8 마르키시오 · 9 발로텔리 10 카사노 · 11 디 나탈레 · 12 시리구 · 13 자케리니 · 14 데 산치스 · 15 바르잘리 · 16 데 로시 · 17 보리니 18 몬톨리보 · 19 보누치 · 20 조빈코 · 21 피를로 · 22 디아만티 · 23 노체리노 |
체사레 프란델리 |
[1] 우디네세 소속으로 출전한 리그, 컵 및 클럽 대항전 경기에서의 기록을 종합한 수치로, 리그에서는 385경기에서 191골을 넣었다.[2] 또한 세리에 A 통산 445경기 209골을 기록했는데 이는 통산 득점 6위에 해당한다. 5위의 주세페 메아차와는 7골로 뒤지며 7위의 로베르토 바조를 네 골 차이로 제치는 기록이다.[3] 앞서 2번 키커로 나왔던 다니엘레 데 로시가 실패해서 위기를 맞았다가 이탈리아의 키퍼 잔루이지 부폰이 스페인의 킥을 하나 막아내 분위기를 끌어온 상황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순간이었다.[4] 사실 이 경기에서 발로텔리는 결정적인 찬스를 어이없는 플레이로 날려먹는 등 전반전 동안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5] 이외에도 조수미는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제발 카사노를 빼고 디아만티를 투입하라'는 트윗을 하기도 했는데, 이후 프란델리 감독은 정말로 카사노를 불러들이고 알레산드로 디아만티를 교체출전 시켰고, 디아만티는 승부차기의 마지막 키커로 나서서 골을 성공시키면서 팀의 4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조수미는 로마에 살 동안 AS 로마와 프란체스코 토티의 팬으로 지낸 적이 있어 이탈리아 축구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6] 물론 키가 170cm 정도로 작은 편이었기에 원톱 롤을 소화하기엔 무리가 많이 따랐다는 뜻이지, 피지컬이 딱히 약점인 선수는 아니었다. 키가 작은 대신 몸의 균형이 좋아서 키가 큰 수비수가 달라붙는다고 해서 피식 쓰러지는 스타일은 아니었다.[7] 사실 스트라이커 중에서도 훌륭한 개인 전술과 스피드, 그리고 연계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윙어로 기용되어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특히 현대 축구에 들어서 이 두 포지션에서 겹치는 역할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8] 처음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건 2002년 월드컵 이후였고, 이후 꾸준히 대표팀에 선발되지는 않았다. 메이저 대회에 출전한 것도 2008년이 처음이었으며, 유로 2012 준우승에 일조하면서 늦게나마 빛을 보았다.[9] Premio Nazionale Carriera Esemplare "Gaetano Scirea"[10] 후술하겠지만 디 나탈레는 훗날 영웅(Heroes)카드로 피파에 귀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