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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2 22:27:02

체사레 프란델리

체사레 프란델리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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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대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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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사레 프란델리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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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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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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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축구감독
파일:15961.jpg
<colbgcolor=#f0f0f0,#222222><colcolor=black,white> 이름 체사레 프란델리
Cesare Prandelli
본명 체자레 클라우디오 프란델리
Cesare Claudio Prandelli
출생 1957년 8월 19일 ([age(1957-08-19)]세)
롬바르디아주 브레시아현 오르지누오비
국적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76cm
직업 축구 선수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f0f0f0,#222222><colcolor=black,white> 선수 US 크레모네세 (1974~1978)
아탈란타 BC (1978~1979)
유벤투스 FC (1979~1985)
아탈란타 BC (1985~1990)
코치 아탈란타 BC 유소년 (1990~1997)
감독 아탈란타 BC (1993~1994 / 감독 대행)
US 레체 (1997~1998)
엘라스 베로나 FC (1998~2000)
SSC 베네치아 (2000~2001)
파르마 AC (2002~2004)
AS 로마 (2004)
ACF 피오렌티나 (2005~2010)
이탈리아 대표팀 (2010~2014)
갈라타사라이 SK (2014)
발렌시아 CF (2016)
알 나스르 SC (2017~2018)
제노아 CFC (2018~2019)
ACF 피오렌티나 (2020~2021)
국가대표 없음

1. 개요2. 축구인 생활3. 수상
3.1. 선수3.2. 감독3.3. 개인 수상
4.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이탈리아축구 선수 출신 감독.

한국에서는 슈틸리케 이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렸던 것[1]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본인은 뜻이 없었다 한다.

2. 축구인 생활

2.1. 선수 경력

1979년에 아탈란타에서 유벤투스로 이적한 수비형 미드필더다. AC 밀란과의 코파 이탈리아를 마지막으로 아탈란타로 컴백하게 된다.

세리에A에서 총 197경기를 뛰었다. 총 1골을 넣은 걸로 알려져 있다.

2.2. 감독 경력

2.2.1. 피오렌티나 이전

1990년 아탈란타에서 유소년 감독을 맡으며 경력을 시작했다. 7년 동안 성공적인 시간을 보낸 뒤 1997년 US 레체감독으로 선임됐으나 이듬해 1월에 경질됐다. 이후 엘라스 베로나의 감독으로 선임되어 2시즌 동안 지휘하며 세리에 A로 승격시켰다. 승격 이후에는 매우 좋은 모습을 보이며 팀을 9위로 끌어올리는 역량을 발휘했다. 이후 파르마 AC를 거쳐 2004-05 시즌을 AS 로마에서 보내게 됐으나, 얼마 안 되어 아내의 건강 때문에 데뷔전도 치르지 못하고 사퇴했다.

2.2.2. ACF 피오렌티나

2005년, ACF 피오렌티나의 감독으로 선임되어, 직전 시즌 강등권에서 헤매던 팀을 4위까지 끌어올리며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칼치오폴리사건에 연루되어, 챔피언스 리그 출전 자격을 박탈당하고 15승점을 깎인 채 06-07 시즌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시즌을 6위로 마쳐 UEFA 유로파 리그 출전권을 얻었다. 07-08시즌, 유로파 리그는 4강에서 레인저스 FC와의 승부차기 끝에 탈락했고, 리그에서는 4위를 차지하며 챔스 진출권을 얻었다. 이 시즌에 아내가 세상을 떠났는데, 이는 프란델리의 노력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프란델리는 세리에 A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08-09시즌에도 피오렌티나를 다시 한 번 4위에 올려놓았다. 2009년에는 AC 밀란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첼시로 떠난 후, 현직 세리에 A 감독 중 최장수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풀비오 베르나르디니를 넘어 피오렌티나 역사상 최장수 감독이 되었다. 09-10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 올림피크 리옹, 리버풀 FC, 데브레첸 VSC과 한 조가 되어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특히 리버풀을 상대로는 홈 어웨이 더블을 기록했다. 16강 상대는 바이에른 뮌헨이었는데, 1차전 원정 경기에서 톰 오브레보[2]의 오심으로 뮌헨의 미로슬라프 클로제오프사이드가 골로 인정되며 2:1로 패했다. 2차전 홈 경기에서 3:2로 이겼지만 원정 다득점에서 뒤져 억울하게 탈락했다. 리그에서는 이전의 성공을 재현하지 못하며 11위[3]로 마치고 시즌 종료 후 사임했다.

2.2.3.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2010년 여름, 이탈리아 대표팀의 신임 감독으로 내정됐다. 부임 직전 남아공 월드컵에서 최악의 성적으로 조별 리그 탈락을 맛본 이탈리아를 다시 재건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세대 교체를 통해 새로운 팀으로 만들어내면서 유로 2012에서 준우승으로 이끄는 지도력을 보였다. 특히 델보스케가 이끌던 스페인과의 조별 리그 1차전은 21세기 최고의 전술 싸움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에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호성적 또한 기대되었다. 그런데 잉글랜드, 우루과이, 코스타리카와 죽음의 조를 형성했다.[4] 첫 경기인 잉글랜드전에서 2-1 승리를 거뒀으나 코스타리카전에서 0-1로 패배하면서 불안감을 조성하더니, 마지막 우루과이전에서 마르키지오의 퇴장으로 수적 열세 속에 0-1로 패배했다. 이탈리아는 1승 2패로 16강 진출에 실패하면서 2연속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프란델리는 대회 종료 후 사임했다. 이후 대표팀이 그보다도 못한 최악의 암흑기에 빠지면서 현재까지 월드컵 본선에서 이탈리아 대표팀을 이끈 마지막 감독으로 남아있다.

2.2.4. 갈라타사라이 SK

이후 2014년에 만치니의 뒤를 이어 갈라타사라이 SK의 감독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리그와 유럽 대항전에서의 부진으로 인해 반 시즌도 안되어 경질당했다.[5] 리그에서는 6승1무3패로 선두에 승점 1점 뒤진 3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 1무4패에 -12라는 골득실이라는 처참한 경기력이 경질의 빌미가 되었다. "리그가 최우선"이라는 프란델리의 발언은 팬들과 프런트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갈라타사라이는 유럽무대 단골 터키 클럽이며 유럽대항전에서 가장 성공한 터키 클럽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프란델리의 전술과 선수 선발도 언론의 비판을 받았는데, 그가 지휘한 16경기 모두 다른 라인업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프란델리의 후임 함자 함자오글루는 리그와 컵대회 더블을 달성했고, 선수들은 프란델리의 경질 이후 프란델리와 함께 했던 것이 불편했음을 종종 토로했다.

2016년에는 계속되는 부진 때문에 감독을 여럿 바꾼, 발렌시아 CF의 감독으로 부임하는 것이 거의 확정되었다. 자기 사단 소속의 코치 셋 과 함께 올 것이라고 한다. 계약은 2년인데 '1년 + 옵션 1년'[6]과 '고정 2년' 사이에서 서로 조율중이라고 한다.

2.2.5. 발렌시아 CF~알 나스르 SC

2016년 10월 1일, 프란델리 감독이 발렌시아의 새 감독으로 부임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계약 기간은 2년이다.

부임 후 스포르팅 히혼과의 첫 경기에서 2-1로 승리했다. 발렌시아의 경기력이 예전보다 나아졌다는 평이 많다. 이탈리아어로 기자회견과 인터뷰를 진행중인데 의사소통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는 서로 사투리격인 언어이므로 별로 놀라울 것 없는 현상이다.

바르셀로나 전에서, 비록 팀이 3-2로 지긴했지만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역전골을 넣고 몇번이나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발렌시아 팬들에게 찬사를 받고있다. 팬들의 반응은 드디어 발렌시아를 다시 강호의 위치에 올려놓을 감독이 왔다는 평.

그러나 2016년 12월 30일, 발렌시아 감독직에서 돌연 사임했다. 애초에 시모네 자자 등 본인이 원하는 선수를 비롯한 스쿼드의 보강을 약속받고 부임했으나 FFP 때문에 영입을 제대로 못하게 되자 구단주와 마찰을 빚어 사임했다.

이후 2017년 5월 25일, UAE 리그의 알 나스르 SC로 부임하였으나 2018년 1월, 성적 부진으로 부임한지 6개월만에 경질되었다.

2.2.6. 제노아 CFC

이반 유리치 감독이 경질 된 후 제노아 CFC 감독이 되면서 세리에 A 무대로 복귀하였다. 물러난 이후에는 한동안 소식이 알려지지 않았다.

2.2.7. ACF 피오렌티나 2기

2020년 11월 10일, 주세페 이아키니의 후임으로 피렌체 복귀가 확정되었다. 중도 부임 후 기대를 모았지만 21경기에서 승점 21점을 얻는 게 그치는 부진을 겪었다. 결국 개인적인 사유와 그로 인한 성적 부진으로 2021년 3월 23일, 부임한지 1년도 되지 않아 조기 사임하였다.

후임으로는 다시 주세페 이아키니가 부임했다.

3. 수상

3.1. 선수

3.2. 감독

3.3. 개인 수상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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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축구협회가 감독 선임을 위한 과정에서 아르센 벵거에게 접촉했고 벵거가 프란델리를 추천하며 벵거의 주선으로 프란델리와 몇 차례 미팅을 가졌다.[2] 2008/09시즌 챔피언스 리그 4강 첼시 대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편파 판정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주심이다.[3] 아드리안 무투가 금지 약물인 시부트라민을 복용한 사실이 밝혀져 1년 출장 정지를 당한 것이 컸는데, 9승 3무 6패였던 피오렌티나는 사건 이후 20경기에서 단 4승에 그쳤다.[4] 이렇게 된 원인은 예선에서 본선진출을 확정지은 뒤 약체인 아르메니아와 비기는 바람에 피파랭킹 추락으로 스페셜 포트를 배정받았기 때문이다.[5] 총 16경기 6승 3무 7패 15득점 29실점[6] 유로 대항전 진출 등[7] 1위로 승격[8] 4위로 승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