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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 이집트 | 리비아 | 모로코 | 튀니지 | }}}}}}}}} |
알제리 축구 국가대표팀 | |||
منتخب الجزائر لكرة القدم | |||
<colbgcolor=#D4D4D4><colcolor=#06A15F> 정식 명칭 | [1]منتخب الجزائر لكرة القدم Équipe d'Algérie de football[2] | ||
FIFA 코드 | ALG | ||
축구 협회 | 알제리 축구 연맹 (FAF) | ||
대륙 연맹 | 아프리카 축구 연맹 (CAF) | ||
지역 연맹 | 북아프리카 축구 연맹 (UNAF) | ||
홈 경기장 | 1962년 7월 5일 경기장 (Stade 5 Juillet 1962 / 64,000석) | ||
별명 | الأفناك (사막 여우) الخُضر (녹색) محاربي الصحراء (사막 전사) | ||
감독 | [[스위스| ]][[틀:국기| ]][[틀:국기| ]] 블라디미르 페트코비치 (Vladimir Petković) | ||
주장단 | C 리야드 마레즈 (Riyad Mahrez) | ||
VC 라미 벤세바이니 (Ramy Bensebaïni) | |||
라이벌 | [[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 모로코]] | ||
FIFA 랭킹 | 37위 (2024년 11월 28일 기준 / #) | ||
Elo 랭킹 | 48위 (2024년 11월 21일 기준 / #) | ||
공식 웹사이트 | | | | | | ||
{{{#!wiki style="color: #FFF; margin: 5px -10px -5px" {{{#06A15F {{{#!folding [ 대표팀 기록 보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color=#06A15F><colbgcolor=#D4D4D4> A매치 최다 출전 | 아이사 만디 (Aïssa Mandi) - 103경기 / 6골 | |
A매치 최다 득점 | 이슬람 슬리마니 (Islam Slimani) - 101경기 / 45골 | ||
월드컵 최다 득점 | 살라 아사드 (Salah Assad) - 2골 (1982) 압델무메네 자부 (Abdelmoumene Djabou) - 2골 (2014) 이슬람 슬리마니 (Islam Slimani) - 2골 (2014) | ||
첫 국제경기 출전 | 알제리 vs [[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불가리아]] 2:1 승 (불가리아 소피아 / 1963년 1월 6일) | ||
최다 점수차 승리 | 알제리 vs [[예멘 축구 국가대표팀| 남예멘]] 15:1 승 (리비아 트리폴리 / 1973년 8월 17일) | ||
최다 점수차 패배 | 알제리 vs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헝가리]] 2:9 패 (헝가리 부다페스트 / 1976년 8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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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 [진출] 4회 [최고] 14위/16강 (2014)[3] | ||
올림픽 | [진출] 2회[4] | ||
대륙대회 | |||
네이션스컵 | [진출] 20회 [최고] (1990, 2019) | ||
아프로-아시안 네이션스컵 | [진출] 1회 [최고] (1991) |
유니폼 컬러 | 홈 | 어웨이 |
상의 | ||
하의 | 22 | 21 |
양말 |
[clearfix]
1. 개요
알제리의 축구 국가대표팀. 사막 여우들(Les Fennecs)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역대 FIFA 랭킹 최고 순위는 15위(2014년 10월 23일), 최저 순위는 103위(2008년 6월 4일)이다.국명을 로마자순으로 정렬했을 때(Algeria) 역대 월드컵 대표팀 중 가장 먼저 오게 된다.[5]
2. 플레이 스타일
굉장히 끈적끈적한 축구를 한다. 때문에 어지간한 강호들도 알제리 상대로는 힘이 빠진다. 특히 독일이 알제리 상대로 많이 고전했는데 1982년 월드컵 당시의 서독은 알제리한테 참패하는 바람에 월드컵 사상 가장 더러운 짓거리를 통해 겨우 당시 2라운드 12강[6]에 올라와야 했으며 2014년에는 이런 알제리를 연장혈투까지 가는 개고생을 한 끝에 간신히 이겼다. 상대의 공격을 옭아묶고 농락하는 축구를 하는 탓에 2014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알제리에게 2-4로 패한 게 납득이 될 정도였다.3. 상세
히혼의 수치 이후 24년 동안 계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다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플레이오프 끝에 이집트를 따돌리고 24년만에 3번째 월드컵에 진출했다.그리고 32강 조별리그에서 미국, 잉글랜드, 슬로베니아와 조에서, 잉글랜드에게 0-0 무승부 클린시트 승점 1점을 기록하고, 미국과 슬로베니아에 각각 0-1로 단 2실점으로 아쉽게 패하였고, 승점 1점 1무 2패 월드컵 28위로 라이벌 프랑스(29위)를 제치며, 다음 월드컵에서 더 선전할 가능성이 보였다.
협회 로고 |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선 1980년 대회 준우승, 1982년 4위, 1984, 1988년 3위를 거둬들였고 1990년 자국에서 개최한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다. 그러다가 2010년 대회에서 모처럼 4위를 거둬들였지만[7] 2012년 대회에선 모로코와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에 밀려 지역예선 탈락을 하더니 2013년 대회에선 튀니지와 토고에 패하면서 일찌감치 16강 조별리그에서 탈락(13위)했다.
3.1.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지역예선(아프리카)에선 말리, 베냉, 르완다와 같은 조를 이뤘는데 5승 1무로 거뜬하게 최종 플레이오프로 진출했다. 최종예선에서 부르키나파소와 격돌했는데 1차전 원정에서 2:3으로 지면서 불안감을 줬으나 안방에서 1:0으로 이기면서 1승 1패, 3:3 동률이지만 원정다득점 우위로 통산 4번째이자 2회 연속 월드컵 진출에 성공했다.2013년 12월 7일에 있었던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본선 조추첨식 결과 대한민국과 같은 32강 H조에서 대결하게 되었다. 한국과 함께 조 최약체로 언급되고, 언론에 의해서도 거의 승점자판기 수준으로 치부되었다.
게다가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준비 과정에서 감독 할릴호지치와 알제리 축구협회, 언론 삼자간의 대립이 심해지며 불화설 등 별의별 소문들이 나돌았고, 조 최약체로 거론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보니 대반전. 할릴호지치 감독의 뛰어난 용병술과 선수들의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혼으로 전세계의 찬사를 받으며 성과를 거두고, 깊은 인상을 남기는데 성공한다.
특히 한국전이 최대 하이라이트였는데, 초반부터 맹공을 퍼부으며 한국을 뒤흔들더니 전반에만 12분동안 3골을 터뜨리는 화력을 뽐내며 3-0으로 앞서갔고 결국 4-2로 한국을 이기면서 1982 스페인 월드컵 이후 32년만에 월드컵에서 역대 통산 3번째 승리를 거둬들였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의 모로코 이후 28년만의 북아프리카 국가 16강 진출 가능성도 매우 유력해졌고 월드컵 무대에서 아프리카 팀의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도 갈아치웠다. 이 승리로 졸지에 1위를 확정지은 벨기에에 이어 조 2위로 16강 진출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리고 마지막 본선 3차전. 러시아와 1-1로 비기면서 사상 처음으로 2라운드를 진출, 16강전에서 독일과 맞붙게 되었다. 알제리의 16강 진출로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모로코가 16강에 진출한 지 28년만에 북아프리카 나라로 토너먼트를 넘은 것과 동시에 나이지리아와 같이 16강에 진출하며 아프리카 나라로서 처음으로 두 나라가 한 대회에 같이 2라운드를 진출했다.
16강에서는 바로 이번 월드컵을 우승한 최강 독일을 만나 싱겁게 끝날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빠른 역습과 훌륭한 중원압박, 골키퍼의 선방을 앞세워 선전했으나 체력의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연장에서 1-2로 석패했다. 패했지만 알제리는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냈는데 무려 그 독일의 슈팅 29개를 선수 전원이 이를 악물고 육탄방어했다. 조별리그에서 후반 70분 이후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평을 들었던 팀이었으나 독일전에서만큼은 90분 내내 버텨냈고 연장전에 2골을 허용했음에도 최후의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뛰어서 만회골을 성공시켜 아무리 강한 상대를 만나도 주눅들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는 스포츠 정신을 보여줬다. 근육 경련으로 그라운드에 널부러지는 사람이 속출했고, 실점 이후 눈물을 흘리면서도 상대 선수를 향해 돌진하는 등 그야말로 투혼 그 자체. 게다가 알제리 선수들은 바로 라마단이라 금식한 채로 경기에서 나서고도 연장전까지 경기를 벌였다는 걸 생각하면 독일 언론에서 알제리 겨우 이긴 걸 마구 비난하거나 반대로 알제리를 호평한 게 괜히 그런 게 아니다. 종료 휘슬이 울린 뒤에도 승자 독일보다 혼신의 힘을 다한 패자 알제리가 더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야말로 명예로운 패자. 게다가 그 독일이 개최국이자 우승후보 브라질을 4강전에서 아주 역사적인 굴욕으로 대파한 미네이랑의 비극을 이끌어내고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한 걸 생각하면 알제리의 연장전 투혼은 정말 극찬하고도 남을 명승부였다.
비록 8강 문턱에서 탈락(14위)하였지만 2라운드 진출한 것은 알제리에게 놀라운 성과였다. 이 성과에는 할릴호지치 감독의 공이 매우 컸는데 이 감독은 변화무쌍한 선수기용과 과감한 전술로 약체라고 알제리를 얕잡아보던 팀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 대회에서 치른 4경기에서 알제리의 선발 명단은 매번 바뀌었고, 그중 압권이 한국전. 선발 명단 11명 중 무려 5명을 바꿨고, 결국 이 선수기용은 딱 맞아떨어졌다. 할릴호지치 감독은 부임 이래 지속적으로 알제리 축협, 언론과 심하게 마찰을 빚어왔는데 평가전 횟수에 관해서 마찰이 심했고 알제리 축협에선 선수 선발 라인업까지 간섭하려 드는 등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한다. 애초에 월드컵 끝나면 사임이 결정 되어 있긴 했지만 벨기에 1차전에서 패배하자 라오우라와 회장은 직접 경기장을 찾아 관전한 벨기에전이 끝난 후, 할릴호지치 감독의 선수 기용과 전술에 큰 불만을 드러내고 최후 통첩까지 보냈다 한다. 거기다 선수들과의 불화설 및 내분설까지 있었다. 때문에 기자들, 해설진, 라스 특집 방송 등 각종 매체에서 이 불화설을 매우 심도있게 보도했지만 해당 선수는 불화설을 애초에 아니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한국전에서 첫골이 들어가자마자 알제리 축협 관계자, 코치진, 기자들은 모두 서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등 완전히 위 아 더 월드가 되었고 할릴호지치 감독은 이후 기자회견에서 그제야 기세등등하게 당신들은 나를 믿지 않았지만 팬들은 나를 믿어줬다고 면전에서 기자들을 디스했다. 그러자 기자단의 대표가 바로 일어나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이제부턴 100% 신뢰를 약속하겠다 하여 훈훈하게 화해했다고.. 그리고 독일전 후 할릴호지치 감독이 울면서 선수들을 하나하나 안아주고 눈물의 포옹을 나누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혀 감동을 주었다. 당초 불화설이 있었던 선수 골키퍼 음볼리는 모두가 감독의 덕이었다며 공을 돌렸고, 수비수 부게라는 하찮은 우리에게 자신감을 준 감독님이라며 감사함을 표했다.
그리고 귀국날, 알제리 선수단은 역사에 유례없던 국민영웅급 대접을 받았다. 알제리의 수상이 직접 공항으로 마중까지 나온데다 선수들이 항공기에서 내리기 시작하자 모든 환영인파가 신은 위대하시다와 함께 할릴호지치의 이름을 끝없이 연호하며 감독의 공을 칭송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거스 히딩크가 받았던 대접을 생각하면 될듯. 심지어 수상이 마련한 환영식 후에는 시청까지 카 퍼레이드를 하며 수만명의 시민들이 몰려들었고 거의 우승팀 대접을 받았다 한다. 그야말로 금의환향. 아프리카팀 역사상 최다 득점, 조별 리그 통과, 32년만의 대승에다 그 우승후보 독일을 상대로 역대급 경기까지 보여줬는데 이정도 대접을 받는것도 무리가 아니다. 거기다 현지 방송사는 고마워요 영웅들이라는 프로그램을 편성했고 알제리의 대통령 역시 이는 알제리의 자랑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한다.
한편 할릴호지치 감독은 계약이 끝나서 떠날 가능성이 높지만, 알제리의 축구팬들과 축협 모두가 제발 떠나지 말아주세요.라며 그를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고있다고 한다. 알제리 SNS 유저들 사이에선 할릴호지치 감독에게 제발 남아달라고 간청하는 트윗이 우후죽순으로 올라오고 있고 알제리 총리는 물론 대통령까지 발벗고 나서서 이번 알제리 대표팀은 우리 역사상 최고의 팀이었고 감독이 남기를 원한다”라며 개인면담까지 들어갔다고 한다. 대통령까지 나선 이상 남는다면 이전과는 달리 파격적인 지원책도 보장될듯 하다. 그러나 결국 할릴호지치 감독은 물러나 2005년에 몇달이나마 잠깐 감독을 맡았던 터키 트라브존스포르 감독으로 재계약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일본으로 옮겼다.
한편, 알제리 대표팀이 FIFA로부터 받은 상금은 전액 가자 지구에 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나 이는 단순한 루머로 밝혀졌다.
3.2. 이후
2018 월드컵 2차 예선에선 탄자니아를 홈에서 7-0, 원정에서 2-0으로 대파하고 거뜬히 최종 예선에 올랐다. 다만, 최종 예선이 그야말로 죽음의 조가 되었다. 나이지리아, 카메룬, 잠비아랑 오로지 1장 뿐인 1위 자리를 두고 다투게 된 것. 최종 예선에서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며 다시 옛날의 승점자판기 신세로 돌아갔으며[8], 그와 함께 일찌감치 광탈이 확정되었다.그러다가 2019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이집트에서 29년 만에 우승을 하면서 다시금 부활의 조짐이 보이는 중이다.
하지만 2021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카메룬에서는 디펜딩 챔피언의 명성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조 꼴찌로 24강 조별리그에서 광탈(20등)하면서 벌써부터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최종예선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 후유증을 빨리 극복하지 못한다면 지난 대회에 이어 2연속 본선 진출에 실패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하필이면 상대가 카메룬이다. 결국 32개국 본선에 진출 실패하면서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9]
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 튀니지 축구 국가대표팀처럼 프랑스 태생 선수들이 굉장히 많은 나라다. 특히 알제리는 과거 프랑스 식민시절에도 프랑스가 특별 관리가 아닌 아예 자국 행정에 넣어버렸을 정도로 긴밀했던 관계였기에 알제리계 프랑스인들이 모로코, 튀니지계보다 훨씬 많다. 그 유명한 지네딘 지단과 카림 벤제마도 알제리계. 그렇기에 이중국적의 효과를 톡톡히 보는 팀이다. 리야드 마레즈, 소피앙 페굴리, 아담 우나스, 아이사 만디, 이스마엘 베나세르를 모두 그렇게 프랑스에서 데려왔다. 그렇다고 국내 풀도 나쁜게 아니라서, 이슬람 슬리마니, 힐랄 수다니, 바그다드 부네자 등의 좋은 공격수들은 알제리 본토 출생이다.
카타르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세대교체를 감행하면서 대표팀에 새로운 재능들이 채워지고 있다. 바그다드 부네자가 여전히 부동의 대표팀 스트라이커이지만 튀니지계 신성이고 대표팀 공격수 계보를 이을 후보로 각광받고 있는 모하메드 아무라와 프랑크푸르트의 파레스 샤이비, 울버햄턴의 라얀 아이트누리가 알제리의 미래로 주목받고있다.
현재 대표팀 감독 자멜 벨마디는 오랜기간 레퀴야와 알 두하일을 지휘하면서 남태희와도 인연이 깊다. 현역시절 발랑시엔에서 같이 뛰던 남태희를 레퀴야에 데려온 감독이 벨마디 감독이며 2013년까지 한솥밥을 먹었었다.
2023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조별리그에서 매우 나쁜 성적을 보여 조별리그에서 탈락해서, 피파랭킹이 41위로 11계단 떨어지고, 점수도 38점이나 잃었다.[10]
한국과의 역대전적은 1승 1패로 백중세. 1985년 열린 평가전에서 한국에 0:2로 패배했으며, 이후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상술한 대로 한국에 4:2 승리를 거두었다.
현재 유니폼 스폰서는 아디다스이다.
4. 히혼의 수치
1982년 스페인 월드컵 24개국 본선에 처음 진출하여 서독과 오스트리아, 칠레랑 같은 조를 이뤘는데 당시 UEFA 유로 1980 우승국이였던 서독을 상대로 2:1로 이기면서 세계적인 화제를 몰고 왔는데, 역대 서독-독일 국가대표팀이 치른 18번의 월드컵 첫 경기에서 패배한 유일한 경기이다. 참고로 1980년 친선경기에서 그 서독에 0:5로 대패하면서 역사상 최다실점을 당했던 게 알제리 국대팀이었다.칠레를 3:2로 이기고 오스트리아에 0:2로 졌다. 2승 1패임에도 서독과 오스트리아가 마지막 24강 조 3차전을 서로 짜면서(서독이 1-0으로 이김) 2승 1패를 이루며 골득실로 앞서 알제리가 조 3위 월드컵 13위로[11] 12강 진출에 실패했다. 당시 본선 24개팀이 6개조로 나눠서 조 1,2위팀 총 12개팀이 2라운드 12강에 진출하여 2라운드 12강 조별리그에서 또 3팀씩 4개조로 나누어져 조 1위팀 한팀만 4강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구조였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만 되었더라도 2라운드가 12강에서 16강으로 바뀐대회라서 2승 1패였으면 무난히 24강 조 3위 간 경쟁에서 앞서 16강에 진출했을테다. 막말로 1982년엔 서독과 칠레라는 유럽과 남미의 상당한 강호를 잡았지만 2014년에는 이긴 게 아시아의 한국밖에 없다.
자세히 말하자면 이 서독과 오스트리아 경기는 이미 오스트리아가 0-3 정도로 패하지만 않으면 다음 라운드 진출을 할 수 있었고 서독 대표팀이 오스트리아를 이기기만 하면 다음 라운드 진출이 확정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조별 리그 각 팀별 최종전은 동시에 진행되지 않은 데다가 B조의 다른 멤버인 알제리와 칠레 사이의 경기가 서독과 오스트리아 사이의 경기보다 하루 먼저 진행되었기 때문에 때문에 두 팀은 B조의 다른 멤버인 알제리와 칠레 경기 결과를 알 수 있었다. 따라서 경기당일 서독이 전반 10분 첫 골을 넣은 후 양 팀은 경기 내내 공격적이지 않은 플레이와 볼 돌리기를 통해 시간을 보내는 데에만 열중했으며, 당연히 경기가 종료되자 알제리는 조 3위 월드컵 13위로 24강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승부조작 논란에 휩싸였다.
자세한 내용은 히혼의 수치 문서 참고하십시오.
관중석에서 비난과 야유가 터져나왔고 알제리에서도 당연히 분노하고 서독, 오스트리아 양국 언론조차도 부끄럽다면서 서로 자국 대표팀을 비난하기에 이르렀지만 FIFA가 경기 결과 번복이나 실격 등 다른 조치를 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독일은 본선 진출에 성공하게 된다. 당시 서독 축구팬이 조국의 수치라며 항의하다가 결국 자살하고 프랑스에서 노벨평화상감 경기라고 호되게 비난했다. 이를 히혼의 수치라고 부른다.
우습게도 알제리에 원수같은 프랑스가 이 대회 2라운드 12강 조별리그에서 오스트리아를 탈락시켰다. 하지만 프랑스는 준결승전에서 서독에게 승부차기로 져서 결승진출에는 실패했다. 대신 서독은 이탈리아에 패해 준우승했다. 결국 이 경기 여파로 피파는 본선 조별리그 3차전은 각 본선 경기 시간을 종전처럼 차이를 두지 않고 같은 시간에 동시에 다른 경기장에서 치르도록 변경했다.
하여튼 알제리는 12강 조별리그에 진출할 기회를 저렇게 승부조작으로 날리고[12] 그 다음인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스페인, 브라질, 북아일랜드와 죽음의 조를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아예 승점 1점 1무 2패 월드컵 22등으로 허무하게 탈락해 버렸다. 스페인에 0-3 패, 브라질에 0-1 패, 북아일랜드와 1-1 무승부 승점 1점에 그친 것이다.
5. 역대 감독
알제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
{{{#!wiki style="margin: 0 -10px;" {{{#53bb72,#0733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555555,#aaaaaa | 1963년 ~ 현재 | |||||
1대 피루 | 2대 카바투 | 3대 이브리르 | 4대 카바투 | 5대 레뒤크 | ||||||
6대 아마라 | 7대 주바 & 벤 티푸르 | 7대 주바 | 8대 메크루피 | 9대 엘 켄즈 & 셀랄 | 10대 아마 | ||||||
11대 마크리 | 12대 메크루피 | 13대 칼레프 | 13~14대 칼레프 & 랴코프 | 14대 랴코프 | ||||||
15대 로고프 & 마우치 & 사단 | 16대 칼레프 | 17대 주바 | 18대 칼레프 | 19대 사단 | 20대 로고프 | ||||||
21대 레무이 | 22대 케르말리 | 23대 이길 | 24대 마제르 | 25대 페르가니 & 압델루아하브 | ||||||
26대 주바 | 27대 메흐다위 | 28대 피굴라 & 이길 | 29대 사단 | 30대 샤레프 | ||||||
31대 마제르 | 32대 산쟈크 | 33대 쟈다위 | 33~34대 쟈다위 & 라둘레스쿠 | 35대 주바 & 케르말리 | ||||||
36대 마제르 & 벤사울라 | 37대 주바 | 38대 레이컨스 | 39대 사단 | 40대 바세지 | ||||||
41대 페르가니 & 벨루미 | 42대 이길 | 43대 카발리 | 44대 사단 | 45대 벤시카 | ||||||
46대 할릴호지치 | 47대 구르퀴프 | 48대 네기즈 | 49대 사단 | 50대 라예바치 | ||||||
51대 레이컨스 | 52대 알카라스 | 53대 마제르 | 54대 벨마디 | ||||||
현직 | ||||||
55대 페트코비치 | ||||||
6.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wiki style="margin: -1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top, #fff, #fff)"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ff><tablebgcolor=#fff> | 알제리 축구 국가대표팀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000,#ddd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ffffff> 순서 | 선수 이름 | 출전 횟수 | 첫 경기 | 마지막 경기 |
1 | 이슬람 슬리마니 | 101회 | 2012.5.26 | 2024.1.23 | |
2 | 아이사 만디 | 100회 | 2014.3.5 | 2024.10.14 |
7. 현재 선수 명단
{{{#!wiki style="margin: 0 -10px;" {{{#53bb72,#0733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rowcolor=#fff>포지션 | 등번호 | 이름 | 생년월일 | 출장 | 골 | 소속 클럽 | |
GK | 1 | 알렉시스 겐두즈 (Alexis Guendouz) | 1996년 1월 26일 ([age(1996-01-26)]세) | 0 | 0 | 페르세폴리스 FC | ||
16 | 알렉상드르 우키자 (Alexandre Oukidja) | 1988년 7월 19일 ([age(1988-07-19)]세) | 6 | 0 | FC 메츠 | |||
23 | 앙토니 만드레아 (Anthony Mandréa) | 1996년 12월 25일 ([age(1996-12-25)]세) | 4 | 0 | SM 캉 | |||
- | 무스타파 제그바 (Moustapha Zeghba) | 1990년 11월 21일 ([age(1990-11-21)]세) | 7 | 0 | 다마크 FC | |||
- | 우사마 벤부트 (Oussama Benbout) | 1994년 10월 11일 ([age(1994-10-11)]세) | 0 | 0 | USM 알제 | |||
DF | 2 | 아이사 만디 (Aïssa Mandi) | 1991년 10월 22일 ([age(1991-10-22)]세) | 98 | 5 | LOSC 릴 | ||
3 | 나우엘 카세프 (Naoufel Khacef) | 1997년 10월 27일 ([age(1997-10-27)]세) | 2 | 0 | CR 벨루이즈다드 | |||
4 | 모하메드 아미네 투가이 (Mohamed Amine Tougai) | 2000년 1월 22일 ([age(2000-01-22)]세) | 17 | 1 | 에스페랑스 스포르티브 | |||
5 | 지네딘 벨레이드 (Zineddine Belaid) | 1999년 3월 20일 ([age(1999-03-20)]세) | 3 | 0 | 신트트라위던 VV | |||
13 | 자우안 하잠 (Jaouen Hadjam) | 2003년 3월 26일 ([age(2003-03-26)]세) | 2 | 0 | BSC 영 보이즈 | |||
15 | 라얀 아이트누리 (Rayan Aït-Nouri) | 2001년 6월 6일 ([age(2001-06-06)]세) | 12 | 0 | 울버햄튼 원더러스 FC | |||
20 | 유세프 아탈 (Youcef Atal) | 1996년 5월 17일 ([age(1996-05-17)]세) | 42 | 2 | 알 사드 SC | |||
21 | 라미 벤세바이니 (Ramy Bensebaïni) | 1995년 4월 16일 ([age(1995-04-16)]세) | 64 | 8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 |||
- | 아메드 투바 (Ahmed Touba) | 1998년 3월 13일 ([age(1998-03-13)]세) | 13 | 1 | US 레체 | |||
- | 케빈 판던케르크호프 (Kevin Van Den Kerkhof) | 1996년 3월 14일 ([age(1996-03-14)]세) | 11 | 0 | FC 메츠 | |||
MF | 6 | 라미즈 제루키 (Ramiz Zerrouki) | 1998년 5월 26일 ([age(1998-05-26)]세) | 38 | 3 |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 ||
8 | 후셈 아우아르 (Houssem Aouar) | 1998년 6월 30일 ([age(1994-06-30)]세) | 12 | 4 | 알 이티하드 FC | |||
14 | 아메드 켄두시 (Ahmed Kendouci) | 1999년 6월 22일 ([age(1999-06-22)]세) | 4 | 0 | 세라미카 클레오파트라 | |||
19 | 아뎀 조르가네 (Adem Zorgane) | 2000년 1월 6일 ([age(2000-01-06)]세) | 16 | 0 | 로얄 샤를루아 SC | |||
22 | 이스마엘 베나세르 (Ismaël Bennacer) | 1997년 12월 1일 ([age(1997-12-01)]세) | 46 | 2 | AC 밀란 | |||
- | 나빌 벤탈렙 (Nabil Bentaleb) | 1989년 12월 21일 ([age(1989-12-21)]세) | 54 | 5 | LOSC 릴 | |||
- | 이샴 부다위 (Hicham Boudaoui) | 1999년 9월 23일 ([age(1999-09-23)]세) | 18 | 0 | OGC 니스 | |||
- | 파레스 샤이비 (Farès Chaïbi) | 2002년 11월 28일 ([age(2002-11-28)]세) | 14 | 2 |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 |||
FW | 7 | 리야드 마레즈 (Riyad Mahrez) | 1991년 2월 21일 ([age(1991-02-21)]세) | 95 | 31 | 알 아흘리 SFC | ||
9 | 바그다드 부네자 (Baghdad Bounedjah) | 1991년 11월 24일 ([age(1991-11-24)]세) | 73 | 30 | 알 사드 SC | |||
10 | 사이드 벤라마 (Saïd Benrahma) | 1995년 8월 10일 ([age(1995-08-10)]세) | 30 | 2 | 올랭피크 리옹 | |||
11 | 아민 구이리 (Amine Gouiri) | 2000년 2월 16일 ([age(2000-02-16)]세) | 7 | 2 | 스타드 렌 FC | |||
12 | 야신 벤지아 (Yassine Benzia) | 1994년 9월 8일 ([age(1994-09-08)]세) | 10 | 6 | 가라바흐 FK | |||
18 | 모하메드 아무라 (Mohamed Amoura) | 2000년 5월 9일 ([age(2000-05-09)]세) | 28 | 6 | VfL 볼프스부르크 | |||
26 | 아니스 하지 무사 (Anis Hadj Moussa) | 2002년 2월 11일 ([age(2002-02-11)]세) | 4 | 0 |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 |||
- | 바드레딘 부아나니 (Badredine Bouanani) | 2004년 12월 08일 ([age(2004-12-08)]세) | 3 | 0 | FC 로리앙 | |||
출처: 영문 위키피디아 / 마지막 수정 일자: 2023년 07월 09일 | ||||||||
8. 역대 전적
8.1. FIFA 월드컵
역대 월드컵 전적 순위 : 47위⑯
연도 | 결과 | 순위 | 경기 | 승점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 프랑스의 식민지 | |||||||||
1930년 우루과이 | 독립 이전(프랑스령 알제리) | ||||||||
1934년 이탈리아 | |||||||||
1938년 프랑스 | |||||||||
1950년 브라질 | |||||||||
1954년 스위스 | |||||||||
1958년 스웨덴 | |||||||||
1962년 칠레 | |||||||||
※ 알제리 인민 민주 공화국 | |||||||||
1966 잉글랜드 | 기권 | ||||||||
1970년 멕시코 | 본선 진출 실패[16개국] | ||||||||
1974년 서독 | |||||||||
1978년 아르헨티나 | |||||||||
1982년 스페인 | 조별리그[14] | 13위 | 3 | 6 | 2 | 0 | 1 | 5 | 5 |
1986년 멕시코 | 조별리그 | 22위 | 3 | 1 | 0 | 1 | 2 | 1 | 5 |
1990년 이탈리아 | 본선 진출 실패[24개국] | ||||||||
1994년 미국 | |||||||||
1998년 프랑스 | 본선 진출 실패[32개국] | ||||||||
2002년 한일 | |||||||||
2006년 독일 | |||||||||
2010년 남아공 | 조별리그 | 28위 | 3 | 1 | 0 | 1 | 2 | 0 | 2 |
2014년 브라질 | 16강 | 14위 | 4 | 4 | 1 | 1 | 2 | 7 | 7 |
2018년 러시아 | 본선 진출 실패[32개국] | ||||||||
2022년 카타르 | |||||||||
2026년 북중미 | ? | ? | ? | ? | ? | ? | ? | ? | ? |
2030년 월드컵 | ? | ? | ? | ? | ? | ? | ? | ? | ? |
2034년 사우디 | ? | ? | ? | ? | ? | ? | ? | ? | ? |
합계 | 본선진출 4회 / 16강 1회[18] | 13 | 12 | 3 | 3 | 7 | 13 | 19 |
현재까지 4회 진출해 총 성적 3승 3무 7패 승점 12점으로 월드컵 순위에서는 47위를 기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출전했던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선전으로 아프리카에서는 나이지리아, 카메룬, 가나 다음으로 순위가 높았으나, 이후 알제리가 2018 러시아 월드컵과 2022 카타르 월드컵 진출에 연거푸 실패하며 호주, 튀니지,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에게 역전당하며 5계단이 하락했다. 자칭 사막의 전사라는 이름답게 공격축구를 지향하는 팀이었고 이게 2014 월드컵에서 먹히면서 팀 자체가 재평가를 많이 받았다.
다른 나라들과의 상대전적은 다음과 같다. 우승 경력이 있는 팀과 1승이라도 있을 경우는 볼드체 표시.
브라질 : 1패(1986) 독일 : 1승 1패(1982, 2014) 잉글랜드 : 1무(2010) 스페인 : 1패(1986) 벨기에 : 1패(2014) 러시아 : 1무(2014) 칠레 : 1승(1982) 오스트리아 : 1패(1982) 북아일랜드 : 1무(1986) 미국 : 1패(2010) 대한민국 : 1승(2014) 슬로베니아 : 1패(2010) |
대륙별 상대전적은 다음과 같다.
유럽 : 1승 3무 5패 남미 : 1승 1패 북중미 : 1패 아시아 : 1승 |
유럽을 상대로 한 유일한 승리가 바로 1982년 24강 조별리그 서독전 2:1 승리로서, 월드컵 5대 이변으로 꼽히는 기록이기도 하다.[19] 아시아를 상대로 한 1승은 바로 2014년 대한민국전, 전반전에만 세 골을 몰아넣고 상대팀에게 슛을 단 하나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4:2로 승리했는데, 이는 아프리카 팀 한 경기 최다득점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알제리가 패배를 기록한 상대는 오스트리아(1패), 브라질(1패), 스페인(1패), 슬로베니아(1패), 미국(1패), 벨기에(1패), 독일(1패)로 총 7개팀인데, 이 중에 독일을 제외한 나머지 여섯팀을 상대로 전패를 기록중이다. 그리고 가장 많은 승점을 얻어간 팀은 독일, 칠레, 대한민국으로 전부 한 경기씩 이겼다.
한 경기 최다득점 기록은 2014년 32강 조별리그 한국전 4:2 승으로 한 경기에서 네 골을 넣은 유일한 아프리카 팀이다. 심지어 아시아, 북아메리카, 오세아니아를 전부 합산했을 경우에도 멕시코(1970년 엘살바도르전 4:0 승)와 더불어 공동 최다득점 타이기록이다. 멕시코의 경우 같은 북중미 대륙의 월등한 전력차이가 있는 팀을 홈에서 만났지만, 한국의 경우는 알제리가 오히려 열세라는 평가였음을 감안한다면... 한 경기 최다실점 기록은 1986년 24강 조별리그 스페인전 0:3 패로, 의외로 승점자판기로 치부받던 시절에도 우승후보급 팀들을 상대로 상당히 선전했다.
이 글을 보는 축구팬들은 이미 잘 알겠지만 지네딘 지단, 카림 벤제마. 사미르 나스리 등 많은 선수들이 알제리계 프랑스인이다. 알제리에서 이민 온 프랑스 2세들. 국력이 약해서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쌓아두고 있는 가능성의 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타 아프리카와는 달리 이슬람 문화권의 북아프리카 국가여서 흑인 선수들 찾아보기도 힘들고,[20] 체격과 멘탈적인 면에서도 유럽 선수들에 가깝다는 것도 특징이다. 대부분의 알제리인은 아랍인과 베르베르인(함계 원주민. 흔히 백인이라 부르는 코카서스의 일종)의 혼혈이다. 물론 이건 모로코, 튀니지 등 주변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아프리카라고 다 같은 흑인국가로 여겨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 특유의 멘탈 문제를 들먹이며 불화설로 망할거다라고 지레짐작하는 팬들이 많았지만, 오히려 제대로 똘똘 뭉치면서 다 헛소리라는 것이 드러났다. 북아프리카 국가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차이는 유럽과 중동의 차이보다 심하다. 나이지리아, 가나, 카메룬 같은 국가들보다 오히려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튀르키예와 비슷한 유형의 팀이다. 알제리 팀의 대부분 멤버가 유럽 리그에서 뛰고 있으며, 유럽에서 태어나서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다가 프랑스나 스페인같은 유럽 강국의 국대에 승선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알제리 팀으로 출전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21] 동아시아에 비유하자면, 일본 청소년 대표팀에서 뛰었던 재일 한국인 후손들 중 일본 성인 국가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한 선수들을 한국에서 귀화시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발탁, 출전시킨 경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 리그앙에 선수를 가장 많이 공급하는 국가가 바로 알제리다.[22]
사실 대회 전까지만 해도 조 최약체로 여겨져 16강은 힘들어보였고 조 꼴찌로 떨어질거란 예상이 많았지만 첫 경기 벨기에전에서 선제골을 넣고 적절한 방어와 공격을 선보이며 가능성을 보여줬고, 대한민국을 상대로는 4:2라는 아프리카 월드컵 최다 득점 신기록을 세웠다.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 인터뷰에 따르면 2014년 조편성이 결정되고부터 계속 대비를 했다고 하며, K리그까지 직접 찾아볼 정도로 한국팀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했다고 한다. 아마 벨기에, 러시아와는 최저실점 패배 혹은 무승부로 선방하고 그나마 전력이 약한 대한민국을 이기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 것으로 보이며, 이 작전이 제대로 적중하며 16강 14위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그렇다고는 해도 객관적인 전력에서 대한민국이 우세하다고 여겨지는 판이었으며, 국제대회 경험이나 성적에서도 넘사벽이었기에 이렇게 한국이 무기력할 것이라는 건 알제리 본인들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무너질 줄 몰랐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전반전에만 3:0으로 대량 득점을 하며 한국의 슈팅은 0일 정도였으니... 이 승리가 1982년 대회 이후 32년 만의 첫 승이기도 했다. 아무튼 기분 좋게 상승세를 타고 마지막 러시아전마저 무승부로 선방하며 조별 리그를 통과하였고, 이후 독일전마저 끈기 있게 연장전까지 이끌며 1:2로 아쉽게 16강 14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대회가 끝나고 귀국한 선수들은 2002년 우리나라와 맞먹는 영웅 대접을 받았다 카더라. 할릴호지치 감독도 알제리 언론과 축구협회와의 마찰이 심했지만 대회의 선전으로 순식간에 대통령까지 나서서 제발 남아달라고 싹싹 빌었으나 결국 본인이 재계약을 거절하고 트라브존스포르로 떠났다.
알제리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이 없는 편인데, 사실 1982년도에 지금보다 더 큰 이변을 만들어냈으니, 월드컵 첫 진출에 첫 경기에서 우승후보 서독을 2:1로 깨뜨리며 전세계 축구팬을 충격에 빠트린 적이 있다. 당시 서독 감독조차 알제리에게 지면 바로 짐싸겠다!고 큰소리치던 판이었는데 진짜 짐싸게 생겼었다. 한때 미국, 북한, 카메룬, 세네갈과 함께 월드컵 5대 이변에 들었던 적이 있으며 지금도 월드컵 11대 이변으로 꼽힐 만큼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전에서 0:2로 패하며 1승 1패가 되었고 마지막 경기에서 남미의 강호 칠레를 3:2로 이기며 2승을 챙겼는데, 오스트리아:서독전보다 하루 먼저 열린 경기였다. 덕분에 이미 2승을 챙긴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1승 1패인 서독이 2점차 이하로 이기면 두 팀이 골득실에 앞서 나란히 12강 조별리그에 진출하는 상황. 전반 시작 10분 만에 서독이 골을 넣고 80분 내내 두 팀이 볼을 돌리며 지루하게 경기를 이끌어갔고, 경기장에 간 모든 사람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유럽의 게르만 두 팀 모두 차마 아프리카 듣보잡 나라한테 12강을 뺏기기는 싫고,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서로 연결고리가 많은 나라인 것도 있고 하여 '약속된 승부조작'을 한 것이다.
이 경기를 보고 충격받은 한 서독 팬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으며, 프랑스 감독조차 '노벨평화상 감'이라고 비난을 하고, BBC는 물론이고 심지어 자국 언론조차 승부조작에 관하여 맹비난을 퍼부었다. 결국 알제리는 2승 1패를 하고도 조 3위로 미끄러져 월드컵 13위로 12강 2라운드 진출 실패했다. 이 때문에 알제리 축구협회에서 FIFA에 승부조작 관련 제소를 했지만 FIFA는 단호히 거부했다. 대신 다음 대회부터 월드컵 24강 본선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는 동시간대에 열리기로 합의를 봤고, 이후로도 이어져 오고 있다. 한마디로 메이저 축구대회 마지막 경기가 동시간대에 열리는 것은 알제리 덕분이다. 알제리에게 무릎꿇고 감사해야 할 듯하다. 또 조 2위까지 12강 2라운드 진출하던 관행을 바꾸고 16강 2라운드전을 만들어 조 3위 6개국 중 4개국이 16강 2라운드에 올라갈 수 있게 바뀌기도 하는 등 월드컵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그리고 98월드컵부터 진출국이 32개국으로 확대되면서 조 3위 진출은 결국 폐지되었다.
아무튼 억울하게 떨어졌지만 서독, 오스트리아, 칠레를 상대로 2승 1패 월드컵 13위의 성적을 거둔 알제리는 영웅 대접을 받았다. 아프리카 역사상 압도적으로 뛰어난 성적이었고 강팀을 상대로 두 번이나 잡아낸 대표팀은 구국의 영웅이었다. 이 팀을 그대로 이끌고 다음 대회에도 출전, 아프리카 최초 2연속 월드컵 진출을 이뤄냈지만 이번에는 이변에 실패하고 1무 2패 월드컵 22위로 초라하게 짐을 쌌다. 이후 24년 동안 월드컵과 인연이 없다가 2010년 간만에 이집트와 둘이서 월드컵 진출티켓을 놓고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다퉈, 승점과 골득실, 다득점, 상대전적까지 모두 같아져 수단에서 플레이오프를 치른 끝에 겨우겨우 올라왔다.
당시 알제리는 86년, 이집트는 90년 이후로 월드컵에 못 올라온 상황이었기에 거의 전쟁을 방불케 했을 정도로 수단에서의 경기를 앞두고 이집트 축구팬들이 알제리 선수단에 돌을 던져 부상을 입히는 등 티켓 한 장으로 외교문제까지 번질 정도로 치열했다. 결과는 알제리가 1:0으로 이겨 24년 만에 본선에 올랐으나 조편성이 잉글랜드, 미국, 슬로베니아로 구성된 어려운 조였으며 잉글랜드를 상대로 0:0 무승부 승점을 획득, 나머지 미국과 슬로베니아에게 아쉽게 각각 0:1 1점차로 패하였고 24년 만에 월드컵에서 단 2실점으로 버텼으나 득점포가 터지지 않으며 아쉽게 월드컵을 마무리했다. 변방이었던 알제리에게 있어서 귀중한 경험이 되었고 이를 토대로 2014 브라질 월드컵 16강 14위를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괄목상대.
8.2.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역대 순위 : 6위대회 | 결과 | 순위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
※ 프랑스의 식민지 | ||||||||||
1957년 수단 | 독립 이전(프랑스령 알제리) | |||||||||
1959년 아랍연합공화국 | ||||||||||
1962년 에티오피아 | ||||||||||
※ 알제리 인민 민주 공화국 | ||||||||||
1963년 가나 | 불참 | |||||||||
1965년 튀니지 | ||||||||||
1968년 에티오피아 | 조별 라운드 | 6위 | 3 | 1 | 0 | 2 | 5 | 6 | 3 | |
1970년 수단 | 예선 탈락 | |||||||||
1972년 카메룬 | ||||||||||
1974년 이집트 | ||||||||||
1976년 에티오피아 | ||||||||||
1978년 가나 | ||||||||||
1980년 나이지리아 | 준우승 | 2위 | 5 | 2 | 2 | 1 | 6 | 7 | 8 | |
1982년 리비아 | 4강 | 4위 | 5 | 2 | 1 | 2 | 5 | 6 | 7 | |
1984년 코트디부아르 | 4강 | 3위 | 5 | 3 | 2 | 0 | 8 | 1 | 11 | |
1986년 이집트 | 조별 라운드 | 6위 | 3 | 0 | 2 | 1 | 2 | 3 | 2 | |
1988년 모로코 | 4강 | 3위 | 5 | 1 | 3 | 1 | 4 | 4 | 6 | |
1990년 알제리 | 우승 | 1위 | 5 | 5 | 0 | 0 | 13 | 2 | 15 | |
1992년 세네갈 | 조별 라운드 | 10위 | 2 | 0 | 1 | 1 | 1 | 4 | 1 | |
1994년 튀니지 | 예선 통과 후 실격 | |||||||||
1996년 남아공 | 8강 | 5위 | 4 | 2 | 1 | 1 | 5 | 3 | 7 | |
1998년 부르키나파소 | 조별 라운드 | 15위 | 3 | 0 | 0 | 3 | 2 | 5 | 0 | |
2000년 나이지리아 | 8강 | 6위 | 4 | 1 | 2 | 1 | 5 | 4 | 5 | |
2002년 말리 | 조별 라운드 | 15위 | 3 | 0 | 1 | 2 | 2 | 5 | 1 | |
2004년 튀니지 | 8강 | 8위 | 4 | 1 | 1 | 2 | 5 | 7 | 4 | |
2006년 이집트 | 예선 탈락 | |||||||||
2008년 가나 | ||||||||||
2010년 앙골라 | 4강 | 4위 | 6 | 2 | 1 | 3 | 4 | 10 | 7 | |
2012년 적도 기니 | 예선 탈락 | |||||||||
2013년 남아공 | 조별 라운드 | 13위 | 3 | 0 | 1 | 2 | 2 | 5 | 1 | |
2015년 적도 기니 | 8강 | 6위 | 4 | 2 | 0 | 2 | 6 | 5 | 6 | |
2017년 가봉 | 조별 라운드 | 10위 | 3 | 0 | 2 | 1 | 5 | 6 | 2 | |
2019년 이집트 | 우승 | 1위 | 7 | 6 | 1 | 0 | 13 | 2 | 19 | |
2021 카메룬 | 조별 라운드 | 20위[23] | 3 | 0 | 1 | 2 | 1 | 4 | 1 | |
2023년 코트디부아르 | 조별 라운드 | 18위 | 3 | 0 | 2 | 1 | 3 | 4 | 2 | |
2025년 모로코 | ? | ? | ? | ? | ? | ? | ? | ? | ? | |
2027년 케냐/탄자니아/우간다 | ? | ? | ? | ? | ? | ? | ? | ? | ? | |
합계 | 본선진출 20회 / 우승 2회 | 80 | 28 | 24 | 28 | 97 | 93 | 108 |
8.3. FIFA 아랍컵
대회 | 결과 | 순위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레바논 1963 | 불참 | ||||||||
쿠웨이트 1964 | |||||||||
이라크 1966 | |||||||||
사우디아라비아 1985 | |||||||||
요르단 1988 | 조별리그 | 5위 | 4 | 1 | 2 | 1 | 3 | 3 | 5 |
시리아 1992 | 불참 | ||||||||
카타르 1998 | 조별리그 | 10위 | 2 | 0 | 1 | 1 | 0 | 3 | 1 |
쿠웨이트 2002 | 불참 | ||||||||
사우디아라비아 2012 | |||||||||
카타르 2021 | 우승 | 1위 | 6 | 4 | 2 | 0 | 13 | 4 | 14 |
합계 | 본선진출 3회 / 우승 1회 | 12 | 5 | 5 | 2 | 16 | 10 | 20 |
[1] 아랍어.[2] 프랑스어.[3] 2014월드컵 14위(16강)
단, 월드컵 전체 최고 성적은 1982월드컵 13위이며, 1982월드컵은 24강 조별리그 - 12강 조별리그 - 4강 토너먼트로 진행되었다.(16강전이 없었다.)[4] 1980, 2016[5] 가장 먼저 오는 나라를 그대로 가져오면 되는 가나다순(가나, Ghana), 오십음도순(아이슬란드, Iceland)에 비해 로마자순으로는 월드컵은 커녕 아시안컵도 못 가본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이 가장 먼저 오고 아르헨티나(Argentina)도 국가 선택창 최상단에 자주 오는 편이라서 헷갈리기 쉽다.[6] 당시 2라운드는 12강 조별리그로 16강 토너먼트가 아니었다.[7] 나이지리아에 패배했다.[8] 다만, 최종전에서 1승을 거두긴 거뒀다. 문제는 그 1승조차도 자력 1승이 아니라 나이지리아의 부정 선수 출전 사실이 들통나서 얼떨결에 거둔 1승이란 것이 함정이라는 거지만...[9] 게다가 시간 끌기 등 비매너 행위까지 보여서 비난받기도 했다.[10] 이는 비슷한 전력을 가진 튀니지도 마찬가지다.[11] 알제리의 월드컵 전체 최고순위 13위이며, 그 다음 최고순위는 2014브라질월드컵은 14위(16강)이다.[12] 결국 다음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모로코가 처음으로 2라운드에 진출하였다.[16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14] 24강 조별리그에서 같은 조의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승부조작으로 아쉽게 2승 1패 월드컵 13위로 12강 조별리그 진출에 실패으며, 이 당시는 2라운드가 16강 토너먼트가 아니라 12강 조별리그였고 그 다음 4강 토너먼트로 진행되었다.[24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32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32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18] 2014 월드컵 14위(16강 토너먼트)
월드컵 전체 최고 순위까지 포함하면
1982 월드컵 13위(24강 조별리그)까지
월드컵 16위 이내 총 2회[19] 그러나 이 승리는 결국 비극적인 결말로 돌아오게 되었다. 히혼의 수치 문서 참조.[20] 라이스 음볼리 골키퍼(콩고계 아버지와 알제리계 어머니를 둔 흑인-아랍인 혼혈) 정도가 예외라고 볼 수 있지만, 음볼리도 흑백혼혈 아랍인이다.[21] 야신 브라히미, 소피앙 페굴리, 라이스 음볼리는 알제리 팀에서 뛰기 전에 프랑스 청소년 대표팀에서 뛰었던 선수들이다.[22] 알제리는 프랑스 리그앙 외에도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와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 등에도 선수를 공급하고 있다. 알제리전에서 대한민국에 4골을 넣은 알제리 선수 4명 중에 압델무멘 자부(클럽 아프리칸 투니스 소속) 빼고 이슬람 슬리마니는 스포르팅 리스본, 라피크 할리시는 아카데미카 드 코임브라, 야신 브라히미는 그라나다 CF 소속이었다. 그리고 소피앙 페굴리는 발렌시아 CF 소속이었다. 그리고 알제리에서 프랑스까지 거리가 알제-마르세유 간 거리 기준으로 부산-오사카 거리와 거의 비슷하고, 스페인, 포르투갈과도 매우 가까운 편이라 지리적 거리만으로 따지면 한국 선수가 J리그나 중국 슈퍼 리그에서 뛰고 있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23] 수단과 공동 20위.
단, 월드컵 전체 최고 성적은 1982월드컵 13위이며, 1982월드컵은 24강 조별리그 - 12강 조별리그 - 4강 토너먼트로 진행되었다.(16강전이 없었다.)[4] 1980, 2016[5] 가장 먼저 오는 나라를 그대로 가져오면 되는 가나다순(가나, Ghana), 오십음도순(아이슬란드, Iceland)에 비해 로마자순으로는 월드컵은 커녕 아시안컵도 못 가본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이 가장 먼저 오고 아르헨티나(Argentina)도 국가 선택창 최상단에 자주 오는 편이라서 헷갈리기 쉽다.[6] 당시 2라운드는 12강 조별리그로 16강 토너먼트가 아니었다.[7] 나이지리아에 패배했다.[8] 다만, 최종전에서 1승을 거두긴 거뒀다. 문제는 그 1승조차도 자력 1승이 아니라 나이지리아의 부정 선수 출전 사실이 들통나서 얼떨결에 거둔 1승이란 것이 함정이라는 거지만...[9] 게다가 시간 끌기 등 비매너 행위까지 보여서 비난받기도 했다.[10] 이는 비슷한 전력을 가진 튀니지도 마찬가지다.[11] 알제리의 월드컵 전체 최고순위 13위이며, 그 다음 최고순위는 2014브라질월드컵은 14위(16강)이다.[12] 결국 다음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모로코가 처음으로 2라운드에 진출하였다.[16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14] 24강 조별리그에서 같은 조의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승부조작으로 아쉽게 2승 1패 월드컵 13위로 12강 조별리그 진출에 실패으며, 이 당시는 2라운드가 16강 토너먼트가 아니라 12강 조별리그였고 그 다음 4강 토너먼트로 진행되었다.[24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32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32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18] 2014 월드컵 14위(16강 토너먼트)
월드컵 전체 최고 순위까지 포함하면
1982 월드컵 13위(24강 조별리그)까지
월드컵 16위 이내 총 2회[19] 그러나 이 승리는 결국 비극적인 결말로 돌아오게 되었다. 히혼의 수치 문서 참조.[20] 라이스 음볼리 골키퍼(콩고계 아버지와 알제리계 어머니를 둔 흑인-아랍인 혼혈) 정도가 예외라고 볼 수 있지만, 음볼리도 흑백혼혈 아랍인이다.[21] 야신 브라히미, 소피앙 페굴리, 라이스 음볼리는 알제리 팀에서 뛰기 전에 프랑스 청소년 대표팀에서 뛰었던 선수들이다.[22] 알제리는 프랑스 리그앙 외에도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와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 등에도 선수를 공급하고 있다. 알제리전에서 대한민국에 4골을 넣은 알제리 선수 4명 중에 압델무멘 자부(클럽 아프리칸 투니스 소속) 빼고 이슬람 슬리마니는 스포르팅 리스본, 라피크 할리시는 아카데미카 드 코임브라, 야신 브라히미는 그라나다 CF 소속이었다. 그리고 소피앙 페굴리는 발렌시아 CF 소속이었다. 그리고 알제리에서 프랑스까지 거리가 알제-마르세유 간 거리 기준으로 부산-오사카 거리와 거의 비슷하고, 스페인, 포르투갈과도 매우 가까운 편이라 지리적 거리만으로 따지면 한국 선수가 J리그나 중국 슈퍼 리그에서 뛰고 있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23] 수단과 공동 20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