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안후덕(安厚德) |
본관 | 죽산 안씨(신) |
호 | 석정(石汀) |
생몰 | 1905년 11월 11일 ~ 1949년 11월 25일 |
출생지 |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면 예덕리 예동마을[1] |
사망지 |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안후덕은 1905년 11월 11일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면 예덕리 예동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4년 2월 사재를 정리하고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제공했으며, 1928년 2월 중국 한인청년동맹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군자금 모집 임무를 부여받고 국내에 잠입해 자기 소유의 토지를 팔아 45,000원을 가지고 상하이로 갔다. 그는 이 금액 중 22,000원을 임시정부에게 헌납하고, 나머지 20,000원은 정태희의 권유에 따라 한인청년동맹의 운영자금으로 헌납했다.1928년 6월 28일, 안후덕은 한인청년동맹 상해지부 총회에서 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그리고 7월 29일에는 항일 격문을 상하이 시내에 살포했다. 이후 1929년 초에 군자금을 다시 모집하고 3.1 운동 10주년 기념문을 국내에 배포하기 위해 입국하던 중 신의주에서 체포되었고, 그해 6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엔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에 은거했고, 1949년 11월 2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안후덕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