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도 캄파텔리의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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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 ||||
25대, 32대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역대 주장 | ||||
아틸리오 데마리아 (1940~1943) | → | 알도 캄파텔리 (1943~1950) | → | 아틸리오 조반니니 (1950~1954) |
이탈리아의 前 축구인 | |
이름 | 알도 캄파텔리 Aldo Campatelli |
출생 | 1919년 4월 7일 이탈리아 왕국 밀라노 |
사망 | 1984년 6월 3일 (향년 65세) |
국적 | [[이탈리아|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키 176cm | 체중 73kg |
포지션 | 인사이드 포워드, 하프백 |
소속팀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36~1950) 볼로냐 FC 1909 (1950~1952) |
국가대표 | 7경기 (이탈리아 / 1939~1950) |
감독 | LR 비첸차 (1953~1955)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55) 볼로냐 FC 1909 (1956~1957) 모데나 FC (1957~1958)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59~1960) 라팔로 루엔테스 1914 (1962~1965) LR 비첸차 (1965~1966) 라팔로 루엔테스 1914 (1967) 제노아 CFC (1967~1968) 제노아 CFC (1968~19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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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이탈리아의 전 축구 감독.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캄파텔리는 인테르 유스 출신으로, 선수 경력의 대부분을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 바쳤다. 그는 1943-44 시즌부터 1949-50 시즌까지 7시즌 동안 인테르의 주장이었다.캄파텔리는 데뷔 초에는 아웃사이드 포워드로 활동하였으나 이후 인사이드 포워드와 하프백을 오갔고, 은퇴 전에는 수비수로 포지션을 다시 변경하였다.
2.1.2. 국가대표
캄파텔리는 국가대표로서도 7경기를 뛰었는데 그 중 한 경기가 1950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첫 경기였던 스웨덴전이었다. 캄파텔리는 이 경기에서 인사이드 레프트 포워드로 출전해서 10번을 달고 뛰었지만 이탈리아는 스웨덴에 2:3으로 역전패했다. 이 경기가 그의 마지막 대표팀 경기였다.2.2. 감독
캄파텔리는 은퇴 후 감독으로도 나름 활동하였다. 친정팀 인테르의 감독도 몇 번 맡았지만, 그가 맡았던 팀에서 전부 감독직을 오래 유지하지는 못했다. LR 비첸차에서 거둔 1954-55 시즌의 세리에 B 우승을 제외하면 캄파텔리의 감독 경력은 크게 내세울 것이 없는 편이다.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캄파텔리는 공격에 나설 만큼 스피드와 기술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그는 능숙한 태클러도 아니었고 경기에서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대신 에너지를 아끼는 것을 선호했다. 그렇기 때문에 비토리오 포초가 그를 그 자리에 기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프백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캄파텔리는 자신에게 전달되거나 상대 공격수로부터 가로챈 공을 다루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덜 전진된 위치에서 플레이할 때 강력하고 정확한 중거리 슈팅을 구사했는데 이는 충분히 상대의 골문을 위협할 만한 무기가 되었다.4. 기록
4.1. 대회 기록
4.1.1. 선수
4.1.2. 감독
- LR 비첸차
- 세리에 B: 1954-55
- 라팔로 루엔테스 1914
- 세리에 D: 1964-65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