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알레움 드 부르농빌 Aleaume de Bournonville | |
생몰년도 | 1360년경 ~ 1415년 10월 25일 | |
출생지 | 프랑스 왕국 파드칼레 주 불로네 | |
사망지 | 프랑스 왕국 아쟁쿠르 | |
아버지 | 로베르 드 부르농빌 | |
어머니 | 잔 드 크라마이유 | |
형제 | 앙게랑 드 부르농빌 | |
아내 | 마리 드 하베르스커크 | |
직위 | 부르농빌, 콩트빌레불로뉴, 리엔의 영주, 부르고뉴군 지휘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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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르고뉴 공국의 군인. 백년전쟁 시기 부르고뉴파의 일원으로서 아르마냑파에 대적했으나 아쟁쿠르 전투에서 전사했다.2. 생애
1360년경 프랑스 왕국 파드칼레 주 불로네 출신인 부르농빌 가문의 일원으로 출생했다. 아버지는 로베르 드 부르농빌이며, 어머니는 크레마이유의 영주 장의 딸 잔이다. 동생으로 앙게랑 드 부르농빌이 있었고, 사촌으로 리옹넬 드 부르농빌이 있었다. 이 세 사람은 할머니 마호트 드 파인즈를 통해 프랑스 무관장 로베르 드 파인즈의 조카였다. 1369년경 아버지가 사망한 뒤 부르농빌, 콩트빌레불로뉴, 리엔의 영주가 되었고, 1403년에 리엔의 영주권을 동생 앙게랑에게 넘겼다. 1377 ~ 1379년 어머니 잔 드 크라마이유의 유산 일부, 특히 누비옹르콩트의 영주권을 회복하고자 소송을 벌였으나 실패했다. 1382년 할머니인 클레망스 드 숄느의 상속에 관한 또다른 소송전을 벌였는데, 그 결과는 알려지지 않았다.1380년부터 종자 신분으로 삼촌인 기사 장 드 부르농빌과 함께 수아송 백작 앙게랑 7세 드 쿠시의 플란데런 원정에 참여했으며, 1383년 또는 1384년에 기사 작위를 받았다. 이후 생폴 백작 발레랑 3세 드 뤽상부르리니의 가신이 되어 발레랑 3세의 여러 원정에 참여했다. 이후 부르고뉴 공작 호담공 필리프 휘하에 들어갔고, 1410년 파리에서 용맹공 장의 군대를 강화한 생폴 백작 파견대의 일부인 9명의 종자와 8명의 궁수로 구성된 중대의 수장이 되었다. 1410년 퐁티외 출신 삼부회 의원 로베르 폴라트를 폭행해, 로베르가 부상이 악화되어 사망하게 만든 일로 고발당했다. 의회는 1414년에 그에게 공개적으로 자기비판하고, 예배당을 설립하고, 로베르 폴라트의 미망인에게 보상금을 지불하고, 추방과 재산 몰수를 명령했다. 그러나 의회의 이 판결은 무시된 것으로 보인다.
사촌 리옹넬 드 부르농빌을 포함한 부르농빌 가문 구성원들과 함께 부르고뉴파에 서서 아르마냑파와 대적하다가 1415년 잉글랜드의 침략에 맞서 두 정파가 동맹을 맺기로 한 뒤 프랑스군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나 1415년 10월 25일 아쟁쿠르 전투에서 전사했다. 그는 생전에 와떵의 영주 장 드 하베르스커크의 딸인 마리와 결혼했지만 자녀를 낳지 못했다. 사후 그의 영지는 형제 앙게랑의 아들인 앙투안 드 부르농빌에게 상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