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00:53:55

압둘 하크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35deg, #009900 70%, #009900 80%, #fff 80%, #fff 90%, #000 90%, #000);")";"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D1D1D,#e2e2e2
<colcolor=#c8a000><colbgcolor=#fff> 역사 <colcolor=#000,#fff>무자헤딘 · 북부동맹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
정치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역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국 대통령)
인물 아흐마드 샤 마수드 · 이스마일 칸 · 압둘 하크
}}}}}}}}}}}} ||
파일:abdul haq.jpg
<colbgcolor=#ce0000><colcolor=#fff>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 사령관
본명 압둘 하크 (Abdul Haq)[1]
출생 1958년 4월 23일
아프가니스탄 왕국 낭가르하르
사망 2001년 10월 26일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 (향년 43세)
국적
[[아프가니스탄|]][[틀:국기|]][[틀:국기|]]
부족 파슈툰족
직업 무자헤딘
소속 북부동맹
종교 이슬람

1. 개요2. 생애3. 외부 링크

[clearfix]

1. 개요

아프가니스탄무자헤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활약한 파슈툰족 계열 명장이다.

2. 생애

그는 카불 일대에서 활동하였으며 당시 카불을 점거 중이었던 소련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벌였다. 소련군은 압둘 하크를 잡으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고 스페츠나츠까지 동원하여 카불을 샅샅히 뒤지고 애먼 민간인들까지 압둘 하크 휘하 무자헤딘으로 몰아 처형하기를 반복했으나 결국 압둘 하크를 잡지 못하였다. 압둘 하크는 밤마다 소련군의 기지와 군수창고를 파괴하고 잠을 자는 소련군들을 몰래 찔러죽이는 형식으로 저항운동을 벌였으며 낮에는 땅굴이나 동굴에 숨어 나오질 않았다. 덕분에 소련군은 압둘 하크를 아흐마드 샤 마수드 다음으로 두려워하였고 그의 목에 막대한 현상금을 걸었다. 이로 인해 '판지시르에는 아흐마드 샤 마수드, 헤라트에는 이스마일 칸, 카불에는 압둘 하크'라는 말까지 당시 아프간 주둔 소련군과 소련의 지원을 받는 카르말/나지불라 정부군 장병들 사이에서 나돌 정도였다. 마수드도 압둘 하크는 진정한 이슬람 용사라고 극찬을 할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 타지크족에 마수드와 칸이 있었다면 파슈툰족에는 압둘 하크가 있었다.

그는 아프간 이슬람당 당원이자 당 대표이기도 했으며 외교력도 뛰어나 1989년, 소련군 철수 시에 그에 관해 제네바 협약 시에 미 국무부에 조언하기도 했다. 1992년,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 멸망 이후 무자헤딘 통치기 아프가니스탄의 내무장관으로 임명되었으나 4일 만에 사임하였다.

마수드와 마찬가지로 극단적 이슬람주의를 내세우는 탈레반과의 협력을 강렬하게 거부했고 그 때문에 마수드가 탈레반의 폭탄 테러로 암살당한 것처럼 압둘 하크도 2001년 탈레반에게 체포되어 사형당했으며 아우와 함께 1980년대 대소항쟁을 주도하던 하크의 형님인 하지 압둘 카디르 역시 이듬해인 2002년에 알카에다의 테러로 숨졌다. 아프간의 별이 또 그렇게 탈레반의 손에 죽은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인들 사이에서는 마수드 다음으로 존경받는 영웅이며 준국부 취급을 받는다.

2021년 압둘 하크의 조카이자 형님 카디르의 아들인 압둘 자히르 카디르가 반탈레반 저항군인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에 합류했다.

3. 외부 링크



[1] 정의로우신 분(al-haq)의 종(abd)이라는 뜻의 이름이다. 압둘라, 압둘카림, 압둘레자, 압둘하미드 같이 압드 돌림의 이름이라 압둘이나 하크 단독으로 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