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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21 18:52:55

앙투안 드 툴롱옹

파일:앙투안 드 툴롱옹.jpg
성명 앙투안 드 툴롱옹
Antoine de Toulongeon
생몰년도 1385년경 ~ 1432년 9월 29일
출생지 부르고뉴 공국
사망지 부르고뉴 공국 프랑슈콩테 샤시 성
아버지 트리스탄 드 툴롱옹
어머니 코트브룬의 잔
형제 장 2세, 앙드레, 잔
아내 베아트리스 드 생셰롱, 카트린 드 부르봉크레시
자녀 장, 잔, 클로드
직위 벅시, 라바스티, 몽트리샤르, 트레베 영주, 부르고뉴와 샤롤레 총독, 부르고뉴 원수, 황금 양털 기사단의 기사
1. 개요2. 생애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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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르고뉴 공국의 원수. 백년전쟁 시기에 부르고뉴 공국의 편에 서서 군대를 이끌었다.

2. 생애

1385년경 세네시 남작이자 삼부회 고문을 맡았던 트리스탄 드 툴롱옹과 코트브룬의 잔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형제로 장 2세, 앙드레[1], 잔[2]이 있었다.

1414년부터 부르고뉴 공작 용맹공 장이 지휘하는 부르고뉴군의 중대를 지휘했으며, 1417년 형제 장 2세 및 앙드레와 함께 퐁투아즈와 멜룬에서 용맹공 장과 동행했다. 1418년 1월 9일 형제 장 2센를 대신해 트루아, 샹파뉴, 브리의 대장이자 보안관을 역임했으며, 1418 ~ 1419년 루앙 공방전의 상황을 살펴보고 용맹공 장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맡았다. 1419년 7월 22일, 용맹공 장의 지시에 따라 헨리 5세와 협상하는 임무를 맡았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419년 9월 10일 용맹공 장이 도팽 샤를과 몽뜨흐 다리에서 회담을 갖던 중 피살당한 뒤, 새로운 부르고뉴 공작 선량공 필리프의 지시에 따라 잉글랜드 대사로 발탁되어 잉글랜드와 부르고뉴의 동맹을 이끌었다. 이후 부르고뉴 공국의 총독에 선임되었다.

1423년 형 장 2세 드 툴롱옹이 지휘하는 부르고뉴군에 가담해 크라방 전투에 참여했다. 1427년 형이 사망한 뒤 부르고뉴 원수 직위를 계승했다. 1427년 8월 6일 부르고뉴와 샤롤레의 총독으로 선임되었다. 1430년 샤티용쉬르손과 몽바르에서 4,000명의 병력을 모아서 아르마냑파에게 포위된 샹파뉴의 샬롱 인근 크루아제트를 구하러 출진했다. 그러나 아르노 기욤 드 바르바잔라 이르가 이끄는 아르마냑파 군대의 기습 공격을 받고 샤티용쉬르손으로 패주했다.

1431년 1월 25일 로렌 공작 샤를 2세가 사망한 뒤 앙주 공작 앙주의 르네와 보데몽 백작 앙투안 드 보데몽이 로렌의 상속을 놓고 전쟁을 벌였다. 선량공 필리프는 그에게 보데몽 백작을 돕게 했고, 샤를 7세는 아르노 기욤 드 바르바잔에게 앙주의 르네를 돕게 했다. 1431년 7월 2일 볼뉴빌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아르노 기욤 드 바르바잔을 전사시켰으며, 앙주의 르네를 생포한 뒤 프랑스콩테의 돌(Dole) 성채에 감금했다. 그러나 그는 전투 중 얼굴에 부상을 입었고, 요양 생활을 하다가 1432년 9월 29일 프랑스콩테의 샤시 성에서 사망했다. 사후 게르마냐크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3. 가족



[1] 1390 ~ 1432, 모르네의 영주, 선량공 필리프의 고문, 황금 양털 기사단의 기사. 선량공 필리프의 사생아인 코르네유와 결혼함. 1432년 예루살렘에 순례하던 중 사망.[2] 1382 ~ 1419, 브라반트와 부르고뉴 공국의 기병대 사령관 트리스탄 드 몽톨롱와 초혼, 1415년 트리스탄 드 몽톨롱이 아쟁쿠르 전투에서 전사한 뒤 상프디에르의 영주이자 왕의 기마 종자이며, 프랑스 국왕 샤를 6세의 정부인 오데트 드 샹디베르의 형제인 앙리 다 샹디베르와 재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