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얀 르지하 Jan Říha |
출생 | 1915년 11월 11일 |
사망 | 1995년 12월 15일 (향년 80세) |
국적 | 체코 |
출신지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프라하 |
포지션 | 아웃사이드 라이트 포워드 |
신체조건 | 177cm | 74kg |
소속팀 | AC 피세크 (1932~1937) AC 스파르타 프라하 (1937~1949) |
국가대표 | 25경기 8골 (체코슬로바키아 / 1937~19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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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체코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SK 피세크(SK Písek)의 유소년 팀 출신인 르지하는 1932년 피세크에서 데뷔했고 5년간 활약했다. 이 기간에 SK 슬라비아 프라하에서 이적 제의가 있었지만 실제로 이적에 이르진 못했고 1937년, AC 스파르타 프라하의 제의로 팀을 옮겼다.그는 1949년까지 스파르타에서 뛰면서 리그에서 5회 우승했고 총 111골을 넣었다.
2.1.2. 국가대표
1937년 9월 19일, 르지하는 헝가리전으로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르지하는 데뷔전에서 득점을 기록했지만 체코슬로바키아는 헝가리에 3대8로 대패했다.이후로 대표팀에서 꾸준히 출전 기회를 얻은 르지하는 1937년 11월, 불가리아와의 1938년 월드컵 지역 예선전 1차전 소피아 원정 경기에서 전반 44분에 선제골을 넣었다. 하지만 체코슬로바키아는 1차전에서는 불가리아와 1대1로 비겼고 2차전에서 6대0으로 이겨 본선 진출권을 따냈다.
월드컵 본선 무대에도 참가한 르지하는 1라운드 네덜란드전과 8강 브라질전에 출전했다. 하지만 이 8강 브라질전은 보르도의 전투로 아직도 인구에 회자될 정도의 난투극이었고 르지하 역시 이 난투극의 한 부분을 장식하게 되었다. 후반 44분에 브라질의 마샤두와 주먹다짐을 벌이다 동반 퇴장을 당한 것. 이 여파로 르지하는 8강 재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르지하 외에도 프란티셰크 플라니치카, 올드르지흐 네예들리 등이 부상으로 빠졌다. 결국 체코슬로바키아는 브라질에 패해 4강 진출에 실패했다.
르지하는 1948년까지 보헤미아모라비아 시기를 포함한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 25경기에 출전해 8골을 넣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르지하는 현역 시절에 당대 최고급의 기술을 보유한 윙어로 평가받았다. 그는 특히 선수들의 라인을 따라 수비부터 공격까지 지그재그로 순환하는 것에 능했고 그의 신체를 이용해 수비수들을 속인 후 정확한 패스나 크로스를 뿌리는 플레이를 즐겼다.4. 수상
4.1. 선수
4.1.1. 클럽
- 체코슬로바키아 1부 리그 우승 4회: 1937-38, 1938-39, 1945-46, 1947-48(AC 스파르타 프라하)
- 보헤미아모라비아 리그 우승 1회: 1943-44(AC 스파르타 프라하)
- 보헤미아모라비아 리그 준우승 2회: 1938-39, 1942-43(AC 스파르타 프라하)
- 체코슬로바키아 1부 리그 준우승 1회: 1946-47(AC 스파르타 프라하)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