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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7-30 20:24:09

얀 반 에이크


<colbgcolor=#000,#666><colcolor=#fff> 얀 반 에이크[1]
Jan van Eyck
파일:얀반에이크.jpg
남자의 초상/자화상[2] (Portrait of a Man/Self Portrait)
영국 국립미술관
출생 1380년~1390년대
파일:신성 로마 제국 국기(후광 포함).svg 신성 로마 제국
파일:drapeau de liege.png 리에주 주교 공국 림뷔르흐
사망 1441년 7월 9일 (51~61세)
파일:부르고뉴 십자가(가로 나뭇가지형).svg 부르고뉴령 네덜란드
파일:플란데런 백국 국기.svg 플란데런 백국 브뤼헤
직업 화가
사조 플랑드르파, 르네상스
가족[3] 마르가레타 반 에이크 (누나)추정
후베르트 반 에이크 (형)추정
람베르트 반 에이크 (남동생)추정
배우자 마르가레타 반 에이크[4]
후원자 요한 3세 바바리아 공작 → 선량공 필리프

1. 개요2. 업적3. 대표작4. 대중문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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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덜란드/벨기에의 화가. 플랑드르 화파의 대표적인 선구자로서, 이후 전반적인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 사조에 영향을 끼쳤다. 뿐만 아니라 유화라는 기법을 최초로 만들어 현재까지도 미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거장이기도 하다.

2. 업적

유화 기법으로 그림을 그린 최초의 인물로 평가받는다. 반 에이크 이전에는 화가들은 주로 색깔이 담긴 추출물에 물과 날달걀을 섞어 그림을 그리는 '템페라' 기법을 주로 사용했는데, 물과 날달걀의 비율을 정확히 못 맞추면 색을 칠할 때 매우 버거우며 방수 능력이 없어 물에 젖으면 그림도 함께 흘러내려 사라진다는 위험 요소와 캔버스에 그리면 그림이 금방 쩍쩍 갈라진다는 큰 단점이 있었다. 이로 인해 반 에이크가 이러한 단점들을 보완하는 유화를 도입한 기점으로 이후 유화가 미술계에서 지금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어 반 에이크를 유화의 발명자로 보기도 한다.

3. 대표작

파일:겐트제단화.jpg
겐트 제단화[5] (Ghent Altarpiece)
겐트 성 바보 대성당[6]
파일:아르놀피니부부의초상.jpg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The Arnolfini Portrait)
영국 국립미술관
파일:대법관롤랭과성모마리아.jpg
대법관 롤랭과 성모 마리아 (Madonna of Chancellor Rolin)
루브르 박물관

"예수의 십자가형과 최후의 심판 도판첩(Crucifixion and Last Judgement diptych)"도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왼쪽 도판에는 예수와 두 도적이 십자가형에 처형되고 군중들이 이를 보고있는 그림이고 오른쪽 도판에는 예수가 지상에 심판자로 재림해서 신자들을 구원해 자기 주변으로 모이게 하고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은 지옥에서 끔찍한 형벌을 받는 것을 묘사한 60 cm * 20 cm 가량의 그림 2장을 병풍처럼 틀에 붙인 그림이다. 비탄에 빠지거나 무심한 군중들의 생생한 표정이나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이 벌을 받는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광경을 매우 세밀하게 묘사해 후대의 기독교 종교화에도 많은 영향을 주어서 미술사적 가치가 높다. ##

4. 대중문화에서


[1] 네덜란드어로 정확한 발음은 '얀 판 에이크'다. 에이크 Eyck는 마세이크 Maaseyck 지역을 가리킨다.[2] 초상화의 인물이 누구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얀 반 에이크 자신의 자화상으로 추정하고 있다.[3] 반 에이크를 포함한 남매 모두 출생년도를 모르기 때문에 이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시기와 사망년도 등을 고려해 관계를 추정한 정도다.[4] 반 에이크의 누나/여동생인 마르가레타 반 에이크와는 동명이인이다. 반 에이크의 아내 마르가레타의 혼전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5] 형인 후베르트가 제단 디자인과 대략적인 초안을 제작했고 이후 얀 반 에이크가 본격적인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해 끝마쳤다고 한다.[6]바보가 아니라 성자 이름인 '바보(Bavo)'다. 현지식으로 '신트 바프 대성당'이라고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