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24 04:15:32

어니스트 R. 코우마

어니스트 리처드 코우마
Ernest Richard Kouma
파일:1000125951.jpg
출생 1919년 11월 23일
미국 네브래스카주 드와이트
사망 1993년 12월 19일 (향년 74세)
미국 켄터키주 맥대니얼스
복무 미합중국 육군
최종 계급 미국 육군 상사
복무 기간 1940~1971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미국의 군인.

2. 생애

네브래스카주 드와이트 출생으로 가족들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일을 하다가 1940년 육군에 입대해 전차병이 되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제9기갑사단 소속이였으며 노르망디 상륙 작전으로 서부전선으로 넘어왔고 프랑스 해방후 룩셈부르크를 넘어 독일 국경으로 전진했다.

벌지 전투당시 조지 S. 패튼이 이끄는 제3군 소속으로 바스토뉴에서 독일군과 분투하고 있는 제101공수사단을 구원하는데 공을 세웠다. 1945년 1월 라마겐에 있는 루덴도르프 교를 점령하는데 성공했고 라인강을 넘어 프랑크푸르트를 점령했다. 이후 체코슬로바키아로 이동 후 종전을 맞이했다.

전후엔 제2보병사단 예하 전차부대에 속해있다가 6.25 전쟁 당시 M26 퍼싱의 전차장으로 한국으로 오게된다.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경남 창녕군 남지읍 용산리 아곡# 인근 나루터에서 북한군과 교전했다. 당시 전차 두 대중 하나는 고장으로 이탈했고 전투 중인 보병들도 철수해 코우마의 전차 하나로만 강을 도하하는 북한군 500명을 막아서야만 했다.

승무원들과 함께 고폭탄, 동축 기관총, 권총, 수류탄, 포탑[1]으로 9시간동안 전투를 벌이며 공세를 막아냈고 이후 13km를 후퇴해 재보급 후 다시 진격해 북한군 기관총 진지 세 개를 격파했다. 전투 과정에서 도합 250명을 사살한다.

전투 후 수훈십자장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6.25 전쟁당시 전차병 최초로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고 전투중 입은 부상으로 입원했다. 퇴원후 원대복귀했으며 상사로 진급했다. 얼마 안가 본토로 돌아와 신병 모집관으로 일했으며 포트 녹스의 기갑학교 교관으로 복무하다가 1971년 예편했다.

1993년 사망했으며 켄터키 포트 녹스안에 있는 묘지에 안장되었다.


[1] 총탄, 포탄이 떨어지자 포탑의 포신을 돌려 북한군을 제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