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벵트 잉바르 에곤 옌손 (Bengt Ingvar Egon Jönsson) |
생년월일 | 1921년 10월 8일 |
사망년월일 | 2000년 3월 19일 (향년 78세) |
국적 | 스웨덴 |
출신지 | 말뫼 |
포지션 | 아웃사이드 레프트 포워드 |
신체조건 | 178cm | 77kg |
소속팀 | 말뫼 FF (1943-1954) |
국가대표 | 22경기 9골 (1946-1952) |
[clearfix]
1. 개요
스웨덴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원래 옌손의 집안은 9명의 가족이 방 1개짜리 아파트에서 살았을 정도로 가난했다. 하지만 그들은 축구로 인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옌손은 말뫼 FF에서 모든 커리어를 보낸 원 클럽 플레이어이고 말뫼의 40년대 전성기때 주축 선수 중 한 명이었다.
2.1.2. 국가대표
옌손은 블로굴트가 1950년 월드컵 3위, 1948년 올림픽 금메달의 성과를 낼 때 멤버였다.그는 올림픽 경기에 출전한 적은 없었고 1950년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옌손은 스웨덴의 결선 리그 두 번째 경기의 상대였던 우루과이전에서 부상을 당해 피치 밖으로 나가야 했다. 당시는 선수 교체가 없던 시절이라 옌손의 아웃 이후 스웨덴은 전세가 역전되어 우루과이에 2골을 더 허용해 2:3으로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 결과는 스웨덴보다 이 대회에서 FIFA 월드컵 첫 우승을 노리던 브라질에게 더 큰 비극으로 돌아오고 말았는데 만약 스웨덴이 우루과이를 잡았더라면 마라카나수는 생길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2.2. 이후
옌손은 친정팀 말뫼 FF에서 코치로 일했다.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옌손은 강력한 킥 능력을 가진 윙어 또는 센터 포워드였다. 옌손은 청소년 시절에 레슬링 훈련을 받아서 신체적으로 매우 강하고 프리킥 스페셜 리스트였다. 그는 기술적으로 견고하고 공중 플레이에서 위험하며 득점력은 뛰어났지만 플레이에 다재다능하지는 않았다.옌손은 또한 결정적인 상황에 득점하는 경우가 많아 비밀(hemliga)의 옌손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4. 수상
4.1. 클럽[2]
- 알스벤스칸 우승 5회: 1943-44, 1948-49, 1949-50, 1951-52, 1952-53
- 스벤스카 쿠펜 우승 5회: 1944, 1946, 1947, 1951, 1953
- 알스벤스칸 준우승 3회: 1945-46, 1947-48, 1951-52
- 스벤스카 쿠펜 준우승 1회: 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