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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에두아르도 구티에레스 발디비아 (Eduardo Gutiérrez Valdivia) |
생년월일 | 1925년 1월 17일 |
사망년월일 | 미상 |
국적 | 볼리비아 |
출신지 | 볼리비아 코차밤바 |
포지션 | 골키퍼 |
신체조건 | 176cm |
소속팀 | CD 잉가비 (1947-1948) 올웨이스 레디 라파즈 (1949) CD 잉가비 (1950-1953) |
국가대표 | 20경기 (1947-19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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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볼리비아의 전 축구 선수.현재는 생사불명이며 사망했으면 언제 사망했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생존해있다면 현재 [age(1925-01-17)]세 이다.
2. 생애[1]
2.1. 선수 생활
구티에레스는 1949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브라질에 출전했고 국가대표로서는1947년부터 1953년까지 20경기에 출전했다.1949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브라질에서 볼리비아는 안방 챔피언의 위용을 보여줬으나 원정에서는 별 볼일 없었다. 하지만 이긴 건 많아서 4위를 기록했다. 홈에서는 당시 기준으로 단 둘뿐이 없는 월드컵 우승팀 중 하나인 우루과이를 3-2로 이겼지만 브라질에 원정 가서는 1-10으로 대패를 당했다.
1950년 월드컵에 구티에레스의 볼리비아도 출전했는데 조가 엄청 이상하게 편성되었다. 다른 조는 3~4팀씩 편성이 되었는데 구티에레스의 볼리비아는 꼴랑 우루과이와 편성되어 그 조는 단 2팀만 편성되었다. 그러니까 이기면 바로 파이널 진출, 지면 바로 조별리그 탈락이었다. 그렇게 구티에레스는 유일한 조별리그 경기에 선발 출전해서는 단 1경기만 뛰었으며 당대의 강호인 우루과이와 볼리비아의 간극 상[2] 구티에레스가 제아무리 레프 야신이 빙의한다 하더라도 별 수 없었다. 결국 경기 양상은 마치 8년 후 대회에서 대한민국 대 헝가리전처럼 흘러갔으며 구티에레스는 우루과이 선수들에게 8골이나 실점했다. 이렇게 구티에레스의 볼리비아는 단 1경기만 치른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클럽에서는 CD 잉가비와 올웨이스 레디 라파즈에서 뛰었다.
골키퍼이기 때문에 골을 넣은 적은 없다. 이 당시에는 아직 포지션에 대한 개념이 자리잡지 못하던 시절이었던지라 당시 사람들은 골키퍼는 그냥 진득하니 골대만 막으면 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이 당시에는 스위퍼 키퍼 스타일의 골키퍼는 없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4. 수상
4.1. 클럽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2] 아직 월드컵을 몇 번 치른 적이 없는 탓에 이 당시에 월드컵에서 우승한 적이 있는 팀이라고는 우루과이와 이탈리아가 전부였다. 볼리비아의 입장에서는 단 둘 뿐인 월드컵 우승팀 중 하나가 걸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