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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21:46:19

안방 챔피언

1. 개요2. 목록
2.1. 축구
2.1.1. 클럽팀2.1.2. 국가대표팀2.1.3. 개인
2.2. e스포츠
2.2.1. 팀2.2.2. 개인
2.3. 다른 종목
3. 탈출 사례
3.1. 팀3.2. 개인
4. 정치5. 창작물의 안방 챔피언

1. 개요

홈에서 혹은 자국 대회[1]에서만 강력한 팀 또는 선수를 의미한다. 원정에 비해 홈에서의 스탯이 유독 높게 나오면 이렇게 부르며, 비슷한 표현으로 안방 호랑이라는 말도 흔히 쓰인다. 영어권에선 "홈그라운드의 이점(home-turf advantage)"이라는 표현[2]을 사용한다. 방구석 여포 원정에선 그냥저냥, 심하면 승점자판기 수준의 허접함만 보여주는데 홈에서는 자이언트 킬링을 뻥뻥 터뜨리는 게 안방 챔피언의 특징이다. 나쁘게 말하면 자신에게 특수한 환경 이점이 있어야만 이기지 실체는 부실하다는 뜻이지만 좋게 말하면 특수한 환경 이점등을 잘 활용해 홈에서는 확실히 이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주로 경기장이 다른 곳과는 다른 특수한 환경을 가지고 있는 팀이 이런 칭호를 받는다. UD 라스팔마스처럼 리그 내의 다른 팀들과 유독 멀리 떨어져 있어 원정 가기가 더럽게 힘들다던가... 가장 흔한 케이스는 고산지대에 홈 경기장이 위치한 경우로, 고산지대는 산소가 희박하기 때문에 숨 쉬기가 힘들어지며, 공기의 밀도가 낮으니 자연히 공기 저항이 약해져서 공의 움직임이 일반적인 지역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3] 월드컵 남미 예선의 고산 국가 삼형제(에콰도르·콜롬비아·볼리비아)가 대표적이며, 이들 국가로 원정 가는 원정 팀들의 입장에선 죽음의 원정 수준의 고생길이 열리게 된다.

물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고산 지대에서 조금이라도 오래 활동한 선수들은 산소 부족으로 인한 고통을 덜 겪고 지대의 변화로 인한 공의 움직임의 변화를 현명하게 활용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지만, 원정 팀 선수들은 1년에 한두 번 올까 말까 하기에 심하면 이러한 고지대에서 제대로 뛰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러한 적응의 어려움은 반대로 고산 지대의 선수들이 저지대로 내려와서 경기할 때도 비슷하게 적용되므로, 이러한 홈 경기장의 환경으로 인한 안방 챔피언들은 정작 원정에서 죽을 쑤기 일쑤인지라 결과적으로는 밸런스가 맞춰지는 경우가 많다. 볼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은 홈에서는 그리 극강임에도 정작 원정 경기를 죄다 말아먹는 통에 월드컵에 나가본 지 20년이 넘었으며, 콜로라도 로키스 타자들의 홈-원정 스탯 불균형 문제는 쿠어스 필드 항목에 잘 설명되어 있다.

국내 리그에선 잘하는데 해외 무대 가면 못하는 팀이나 선수를 일컫기도 하는데[4], 이쪽은 국내 리그와 해외 리그의 간극도 고려해볼 여지가 있다.

2. 목록

2.1. 축구

홈에서의 성적이 매우 좋으나 원래도 잘하는 팀(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맨체스터 시티처럼)인 경우는 제외.

2.1.1. 클럽팀

2.1.2. 국가대표팀

2.1.3. 개인

2.2. e스포츠

e스포츠는 종목 특성상 '안방'의 개념이 특정 구단의 홈 구장이 아닌, 해당 팀이 소속된 지역 리그를 의미한다.

2.2.1.

2.2.2. 개인

2.3. 다른 종목

3. 탈출 사례

3.1.

3.2. 개인

4. 정치

다선 국회의원 중에서도 자신의 연고지, 특히 텃밭 지역에서 연달아 당선된 경우를 안방 챔피언에 비유하기도 한다. 영남에서 연승한 보수정당, 호남에서 연승한 민주당계 정당 정치인 대부분이 해당한다. 세습 지역구 의원 김세연, 남경필[34][35]이 대표적이고, 지역구에 강력한 정치적 기반이 있는 박근혜[36], 이상득[37], 정동영[38][39], 김무성[40], 김관용[41], 유승민[42], 정병국[43], 주호영[44], 박지원[45], 박주선, 김동철, 최경환[46], 장제원[47], 김기현[48], 조경태 등이 있다.

반면 이정현, 이재오, 김문수, 정두언, 신상진, 심재철, 박순자, 김성태, 김용태, 김명연, 홍철호, 오신환, 홍사덕, 문희상, 전재수, 박재호, 최인호[49], 민홍철[50], 김정호[51], 이상헌[52] 등 자기 정당의 지지기반이 약하거나 아예 타 정당의 지지기반인 곳에서 연달아 재선을 하게 되면 오히려 안방 챔피언이 아니라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비춰진다. 고향 사람이 타 정당에서 도전한 상황이라면 지연으로 인해 조금 낫겠지만 힘든 건 매한가지다.

혹은 텃밭 지역에서 다선을 하다가 수도권의 격전지로 가서 당선된 정세균이나 이낙연 같은 사례가 있기도 하다. 정세균은 전라북도에서, 이낙연은 전라남도에서 각각 4선씩을 한 후 한국의 정치 1번지라고 불리는 최대 격전지 서울 종로로 옮겨 또 당선되었다. 그 전까지 텃밭(수도권 텃밭 포함)에만 출마해 다선을 지낸 후 수도권 험지 혹은 격전지 아니면 지방 지역 험지 내지 격전지로 옮겨 출마했으나 낙선한 조순형[53], 정동영[54], 정진석[55], 김효석[56], 정균환[57], 김성곤[58], 이종구[59], 정우택[60], 이혜훈[61] 등이 있다.

반대로 첫 선거 때는 수도권 험지 혹은 격전지에 출마하다가 차기 선거 때부터는 텃밭에 출마한 사람도 있었는데 박지원[62], 강봉균[63], 김경재[64], 허태열[65], 노관규,[66] 박수영[67], 이수희[68] 등이 있다. 그 외에 김문수이언주 같이 수도권의 격전지에서 다선을 하다 텃밭 지역으로 옮겼다가 낙선한 사례도 있다. 김문수와 이언주는 둘 다 경기도에서 정치를 시작했으나 이후 김문수는 보수 정당의 텃밭 중 텃밭인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으로 내려갔다가 더불어민주당김부겸한테 깨졌고, 이언주 역시 보수 정당 강세를 보이는 부산광역시 남구 을로 내려갔다가 더불어민주당박재호한테 깨졌다.[69]

영남에서 보수정당이, 호남에서 민주당계 정당이 콘크리트 정당이라는 인식과는 달리 주로 보수 정당이나 민주당계 정당이 분열 시 선거에서 패배하는 경우도 있다. 15대 총선에서는 자유민주연합이 대구에서 신한국당을 이기고 13석 중 8석을 차지한 적이 있다. 호남이 민주당만 90% 뽑는다는 인식과는 달리 새천년민주당17대 총선 때 호남에서 5석만 가져가고 열린우리당에 참패했으며 더불어민주당20대 총선 때 호남에서 3석만 가져가고 국민의당에 참패하였다.[70]새누리당20대 총선부산광역시에서만 5석[71]이나 더불어민주당에 헌납한 적도 있다.[72] 마찬가지로 텃밭 지역이라고 해당 정당 후보가 안방 챔피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갑과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더불어민주당에 헌납했다.[73]

유독 운이 나쁜 케이스로 이인선 의원이 있다. 보수 텃밭인 대구광역시 수성구 을에서 보수 정당으로 출마하여 2연속 낙선하였다. 2016년 제20대 총선에는 이 지역구 공천에 탈락한 3선 의원이자 현역 의원인 주호영이 반발해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2020년 제21대 총선에는 이 지역구 현역 의원인 주호영이 위에서 언급되었듯 김부겸을 잡으려고 자객공천을 받아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으로 옮기면서 이번에는 조금 수월한 상황에서 치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필 서울에서 4선 의원, 한나라당 대표, 재선 경상남도지사, 자유한국당 대표를 거쳐 19대 대선 후보까지 지냈던 초거물 홍준표가 대구광역시 수성구 을 빈 자리로 들어와버렸다. 홍준표는 처음에는 경상남도 양산시 을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홍준표를 데리고 있는 것이 껄끄러웠던 친박, 친황의 수장 황교안 대표가 경상남도 양산시 을에는 나동연 전 양산시장을 보내고 홍준표를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특별시 구로구 을[74]로 공천하여 정치 생명을 박살내려 했었다.[75] 마침 주호영이 지역구를 바로 옆인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으로 옮기면서 무주공산이 된 수성구 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이 되었다. 그것도 출구조사에서는 미래통합당 이인선 후보가 앞서는 것으로 나왔지만 홍준표가 출구조사를 뒤집고 당선되었다.[76] 두 선거 다 당내 중진들의 공천 불복으로 인한 무소속 출마 러시에 휘말려서 진 것인데, 하필 그 중진들이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하나같이 초거물급들이었다. 그는 당협위원장까지 빼앗겼다가 홍준표가 대구시장에 출마하여 보궐사유가 되어서야 재보궐선거에서 임기 2년의 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되서야 총선에서의 당선을 누려볼 수 있었다.

거물에 치이며 고생한 비슷한 케이스로 노원구 병이동섭동작구 을허동준[77]이 있는데, 이동섭은 그나마 안철수계가 되며 비례라도 따냈지만...

5. 창작물의 안방 챔피언



[1] 국제전이 있는 리그에는 이쪽의 의미가 더 강하다.[2] 좀 더 한국 유행어스럽게 표현하면 '홈빨'.[3] 공기 저항이 약해지면 공이 더 빨라지는 정도가 아닌가 싶겠지만, 공에 작용하던 공기역학적 움직임 또한 약해지기 때문에 실제 변화의 폭은 더 크다.[4] 이런 선수를 '내수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5] 이 정도면 대한민국필리핀과의 거리와 맞먹는 수준이다.[6] 시티 홈에선 1:1로 비기는 저력을 보여줬다.[7] 티벳 라싸의 해발고도가 3,650m, 후지산의 해발고도가 3,776m이다. 대략 감이 잡힐 것이다.[8] 젊은 사람들이 에 걸릴 확률은 낮지만 한 번 걸리면 금방 악화되는 이유도 그만큼 기초대사량이 높고 빨라서 세포의 증식이 빨라지기 때문이다.[9] "우리는 높은 곳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나 태어나 자라난 곳에서 축구를 할 자유가 있다"고 언급했다.[10] 이 축구 경기서 모랄레스 대통령은 아예 직접 뛰었고, 경기가 끝나자마자 "정의가 승리했다!!"라는 명언을 남긴다.[11] 당시 본선 진출국들을 상대로 콜롬비아에게 2-2 무승부, 파라과이에게 0-0 무승부, 칠레에게 1-1 무승부, 아르헨티나에게 2-1 승리로 홈에서 무패를 거뒀다. 또한 같은 고산 국가인 에콰도르를 제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9개국 중 8위를 차지했는데 볼리비아의 승점이 17점이고 꼴찌 베네수엘라는 3점인 것을 보면 정상적인 팀 가운데서는 꼴찌나 다름없다.[12] 홈에서 브라질을 3-1로 잡으며 8년만에 또 다시 브라질전 승리를 거머쥐었다. 반면 남미의 또 하나의 안방 챔피언 에콰도르에게는 홈에서 1-5 대패를 당했다. 이 전적을 제외하면 모두 승리 아니면 무승부였다.[13] 당시 브라질은 1999 코파 아메리카 본선에서 브라질의 우승에 상당 부분 기여한 호나우두가 장기 부상으로 이 대회 지역 예선 내내 참여하지 못했고, 더군다나 히바우두 역시 심각한 컨디션 난조를 보인 탓에 지역 예선 내내 부진하면서 조 3위로 겨우 본선에 진출했다. 이로 인해 월드컵 본선 조추첨 당시만 하더라도 잘해야 최대 8강이 한계라는 혹평을 들었다. 그러나 호나우두가 장기 부상 악재를 극복하고 대표팀에 복귀함에 따라 본선 당시에는 우승급 전력으로 환골탈태했으며, 더군다나 당시 개최국이었던 히딩크 감독이 이끌었던 한국의 대진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난한 대진이어서 체력 안배 면에서 유리한 점도 있었기 때문에 본선 우승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14] 그나마 홈에서 가장 많은 패배를 당했던 예선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홈에서 우루과이와 브라질과 비겼다.[15] 아르헨티나전 6-1 승리.[16] 우루과이전 4-1 승리, 아르헨티나전 1-1 무승부, 파라과이전 3-1 승리 등이 주요 성과다. 그나마 홈 보정이 가장 덜 했던 예선이다.[17] 예선 전체 승점을 오로지 홈에서만 따냈다. 거기에 A매치 출전자격 미달 선수 출전건으로 패배 처리된 페루와의 경기도 원래는 2-0 승리로 끝난 경기였다. 해당 경기를 그대로 승리로 가져갔다면 플레이오프 경쟁에 뛰어들 만한 퍼포먼스였으나, 이 실격패로 분위기가 확 가라앉고 만 예선이다.[18] 사상 처음으로 볼리비아가 예선 득점왕을 배출한 대회로 마르셀로 모레노가 10골을 넣어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예선 중반 페루, 파라과이, 우루과이를 홈에서 연파하면서 일약 플레이오프 진출 순위까지 올라갔으나 뒷심 부족으로 인해 결국 하위권으로 쳐진 시즌이다.[19] 홈 구장이 있는 키토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2,840m) 수도이다(1위는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20] 그리고 에드먼턴에서 치른 경기는 아니지만 또 하나의 지역 강호인 미국 상대로도 온타리오주 해밀턴에서 치른 홈 경기에서 이겼으며, 이 경기도 체감 온도가 영하 11도인 상태에서 진행되었다.[21] 다만 1970년 월드컵은 16개국이 참가했던 대회였다(제일 확실한 멕시코의 8강 기록은 1986년 대회). 더불어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은 4위에 그쳤다가 2012년 런던에서 처음으로 축구 금메달을 받았다.[22] 당장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만 해도 아자디 스타디움 원정에서 이란을 상대로 넣은 선제골은 딱 2번이며, 이란과의 A매치에서는 단 한 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23]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북서쪽에 붙어있다.[24] 당장 동유럽권이 아닌 이상 러시아, 튀르키예, 조지아 원정조차도 멀게 느껴지는 국가가 대부분인데, 카자흐스탄은 이들보다 훨씬 멀다.[25] 대진운이 역대급으로 안 좋았다. 게다가 8강 상대는 한 세트라도 따는 것만으로도 선방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승후보 중 하나였던 징동이었다.[26] 그 이전 삼성 시절에는 정반대로 안방에선 두들겨 맞지만 월즈에선 강력한 모습을 보여준 팀으로 T1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월즈 2회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는 팀이다.[27] 리그 오브 레전드 리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있어 의아해 할 수 있으니 추가 설명을 하자면 한국 리그 즉, LCK는 최고 권위 대회인 월드 챔피언십만 8회 우승한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의 리그이다. 참고로 2위인 중국은 3회이다.[28] 심지어 해외에서 뛰던 4년 중 3년은 극도로 부진해서 아예 무명 선수였으며, 본인의 주가를 한껏 올리고 특급 대우까지 받으며 재진출 했을 때도 역대급 먹튀 행각을 벌여 1년만에 퇴출되었다.[29] 칸이 뛰었던 킹존, SKT, 담원은 모두 리그를 제패하고 우승 후보로 손 꼽히는 팀이었다.[30] 첫 세계대회 우승인 후지쯔배의 결승 상대는 중국 기사 치우쥔이었으나, 해당 대회는 결승전까지 모두 단판으로 치러졌다는 점 때문에 번기 승부와는 별개로 취급받는다.[31]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럼 챔피언이 일부러 적지에 가서 싸우는 건 합당한가?'라는 의문이 들게 된다.[32] 준우승팀인 담원 기아(14승 5패 73.7%)보다 훨씬 낮고, 4강 탈락 팀인 T1, 젠지보다도 낮다.[33] EDG 13승 8패 61.9%로 뒤에서 1등, DRX 14승 7패 66.7%로 뒤에서 2등. 1승 차이다.[34] 물론 여기도 김세연처럼 부자 세습으로 유명하지만 부친의 작고로 인하여 출마한 1998년 재보궐선거부터 수원시 팔달구에서만 5선 의원을 지냈다. 이후에 6회 지선에서 경기도지사 후보로 당선되어 도지사 자리에 올라왔지만 재선에 도전한 7회 지선에서는 문풍이 불었던 시기라 본인은 처음으로 낙선하였다.[35] 여담으로 본인이 재선에 실패한 7회 지선에서 그 상대는 바로 더불어민주당 20대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이었다. 하지만 이재명 역시 대선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게 밀려 낙선한 뒤 2022년 6월 보궐선거에서 공석이었던 송영길의 지역구인 계양구 을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첫 국회로 입성한 동시에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로 올라섰다.[36] 지역구 선거는 모두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만 출마하여 4선 의원을 지냈다. 이후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을 지내면서 경선에서 이기고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에 올라왔다.[37] 6선 의원 출신이지만 전부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울릉군에서만 출마해 당선되었다.[38] 18, 19대 총선과 2015년 재보선에서 서울에 출마한 적이 있지만 연달아 낙선하였고, 이에 앞서 2007년 17대 대선에서 대통령 직선제 부활 이후 최초로 서울에서 패배한 민주당계 정당 후보이다. 정동영이 당선된 지역은 본인의 핵심 지지기반인 전라북도 전주시밖에 없다. 다만 19대 총선의 경우 서울 내 상대적 보수정당 강세 지역인 강남 지역에 출마했다는 점에서 참작의 여지가 있었지만, 당시 경쟁자였던 김종훈을 잡겠다고 후보자 토론에서 한-미 FTA에 몰입하느라 지역구 국회의원, 그것도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강남구 출마자가 맞나 싶은 의구심을 갖게 했다. 정치를 마케팅의 관점에서 보면 마케팅 포인트 설정에서 돌이킬 수 없는 미스를 낸 셈.[39] 다음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전현희 후보가 서울특별시 강남구 을에서 당선된 건 지역구 재편성의 덕을 본 것도 있지만, 지역구로 집을 옮기고 지역 밀착형 공약을 내세운 게 주효했다. 거대담론에 집착해서 선거에서 패배한 정동영 대신 19대 총선에 나갔다면 지더라도 보다 더 나은 성과를 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특히 19대 총선에서 김용민 막말파문이 터지면서 정동영의 과거 발언이 재조명된 것도 정동영에게 메가톤급 악재로 작용했다.[40] 부산광역시 남구에서 4선, 영도구에서 재선을 했다. 다만 20대 총선에서 영도구중구·영도구로 바뀌었다.[41] 구미시장 3선과 경상북도지사 3선을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되었다.[42] 비례대표를 제외하면 모두 대구광역시 대구 동구 을에서 당선되었고, 심지어 무소속으로도 살아남았다. 물론 새누리당 대표 직인 날인 거부 사태로 인한 무소속 단독 출마이긴 하지만, 76% 득표로 압승할 정도였다.[43] 경기도 여주시·양평군에서만 5선을 역임했다. 물론 선거구는 양평군·가평군, 여주시·양평군·가평군, 여주시·양평군 순으로 변경 및 조정되기는 했지만 양평군만을 기준으로 둔다면 5선을 양평군에서만 했다.[44] 대구광역시 수성구 을에서만 4선을 했다. 20대 총선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새누리당 소속 이인선을 압도적인 득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이인선은 차기 총선에서도 보수정당 당적으로 무소속 홍준표에게 밀려 낙선했다. 지역구 내에서도 지역구 관리를 잘한 덕에 인지도가 높다. 21대 총선에서는 김부겸을 잡기 위한 자객공천으로 옆 수성구 갑으로 지역구를 옮겼다. 거기서도 살아남을 정도로 수성구 내 기반이 강한 인물이다.[45] 21대 총선을 제외하면 동교동계 핵심인사, 호남권의 지도자, 정치 9단이라는 타이틀을 가질 정도로 지역구 내 기반이 탄탄한 편이다.[46] 비리 혐의로 구속되기 전까지는 친박 실세라는 위상을 갖고 있었다. 경산시·청도군 현역 의원일 시절 지역구 내 위상이 강한 편이라 대구 도시철도 1호선 하양역 연장, 대구 도시철도 2호선 영남대역 연장 등 지역구 내 사업을 성공한 적도 있다. 다만 22대 총선에선 국민의힘 조지연 후보에게 패배하여 첫 낙선을 하였다.[47] 아들의 연이은 사건사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지역구 내 기반이 호남에서의 민주당 이상으로 튼튼해 21대 총선에서도 당선되어 현재는 3선이다. 게다가 지금 윤석열 정부에선 대표적인 윤핵관으로 꼽힌다. 그러다가 2023년 12월 12일에 22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48] 울산 남구 을에서 3선을 지낸 뒤, 울산광역시장을 했다. 한편, 2018년 7회 지선 당시 재선에 실패했지만 2020년 21대 총선에서 남구 을에 출마해 무난히 당선되어 4선에 성공하였다.[49] 전재수는 경남 의령, 최인호는 경남 창녕, 박재호는 부산 출신이지만 세 사람 모두 부산에서 성장했고 부산에서 정치를 시작해 재선 국회의원을 지냈다.[50] 고향이 경상남도 김해다. 즉 고향에서 도전한 셈.[51] 제주도 출신이지만 경남 김해에 출마해서 재선을 했다.[52] 고향이 울산광역시다. 민홍철과 마찬가지로 고향에서 도전했다.[53] 그전에는 서울에서 민주당계 정당 텃밭인 서울 성북구, 도봉구, 강북구 일대에서 5선을 달성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주역으로 뽑혔고 당시 현 지역었던 서울 강북구 을 지역에서 당선이 힘들어지자, 느닷없이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다고 민주당 사지인 대구 수성구 갑 지역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이한구열린우리당 후보에게 뒤진 3위로 낙선하였다. 2006년 재보궐선거 선거 때 다시 원 기반이었던 서울 성북구 을 지역에 출마해 당선되었다.[54] 2008년 18대 총선에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을에 출마했으나 한나라당정몽준에게 패배했고, 2012년 19대 총선에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을, 2015년 재보궐선거때는 서울특별시 관악구 을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다만 서울특별시 관악구 을에 출마했을 때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표분산으로 인해 새누리당오신환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이 돼서, 이것은 사실상 정동영이 고춧가루를 제대로 뿌렸다. 참고로 본인은 2위도 아닌 3위로 낙선하였다.[55] 2012년 19대 총선에 서울특별시 중구에 출마했으나 민주통합당정호준에게 패배하였다.[56] 2012년 19대 총선에서 서울특별시 강서구 을에 출마했으나, 새누리당김성태에게 패배하였다. 출구조사에서는 민주통합당 김효석 후보가 앞섰지만, 개표 결과 새누리당 김성태 후보가 출구조사를 뒤집고 당선되었다. 이로 인해 김효석은 4번의 선거 중 첫 낙선 기록을 남겼다.[57] 2012년 19대 총선에서 서울특별시 송파구 병에 출마했으나 새누리당김을동에게 패배하였다.[58] 전라남도 여수시 갑에서 4선을 한 후 2016년 20대 총선, 2020년 21대 총선 때엔 서울특별시 강남구 갑에 출마했으나 2번 모두 낙선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새누리당 이종구 후보에 밀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미래통합당 태영호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59] 역시 텃밭인 서울 강남구 갑 지역에서 3선을 했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격전지인 경기 광주시 을 지역에 출마했지만, 현역 의원인 더불어민주당 임종성 후보에게 패배하였다.[60] 선친 정운갑의 고향인 진천군에서 재선 국회의원을 지내고 초선 충북지사를 지냈으며, 충북지사 연임에 실패한 후 청주시의 유일한 보수 강세 지역인 청주시 상당구 지역에 출마해 재선을 추가했으나,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청주시의 더불어민주당 강세 지역이자 보수정당 험지인 청주시 흥덕구 지역에 출마했다가 현역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다만 2년 후 2022년 3월 재보궐선거에서 원래 지역구인 상당구에 재출마하여 5선에 당선되었다.[61] 이종구와 마찬가지로 텃밭인 서울 서초구 갑 지역에서 3선을 하다가 격전지인 서울 동대문구 을 지역에 출마했다. 처음에는 이 지역 현역 의원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민병두 의원이 공천탈락해 무소속으로 출마 강행해 어부지리 당선을 노릴 수 있었지만, 선거를 5일 앞두고 장경태 후보와 단일화 하면서 상황이 바뀌어버렸고, 결국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22대 총선에서도 역시 격전지인 서울 중구·성동구 을 지역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62]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수도권 격전지인 경기 부천시 소사구 지역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김문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그 이후로는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텃밭인 전남 목포시 선거에서 내리 3선을 추가하였다. 다만 박지원은 첫 선거는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는데 지역구 선거로 한정하면은 1996년 15대 총선이 실질적인 첫 선거다.[63]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보수 텃밭 지역인 경기 성남시 분당구 갑 지역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고흥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그 이후에는 본인 고향이자 민주당 텃밭인 전북 군산시에서 내리 3선을 달성하였다.[64]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각각 험지이자 격전지인 서울 강남구 갑, 종로구 지역에 출마했으나, 황병태, 이종찬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로는 본인 고향이자 텃밭인 전남 순천시 지역에 출마해 재선의원이 되었다.[65]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본인이 관선 부천시장을 지낸 경기 부천시 원미구 갑 지역에 출마하였으나, 부천시 터줏대감이자 당시 현역 재선중진인 새정치국민회의 안동선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에는 본인 고향인 경남 고성과 인접한 부산 북구·강서구 을 지역에 출마해 내리 3선하였다. 참고로 2000년 총선당시 경쟁했던 사람이 훗날 2년뒤에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노무현이다. 그리고 부천 지역에서 경쟁했던 안동선과 2012년 이후로 같은 당 소속이다.[66]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에게 조금 불리한 서울 강동구 갑 지역에 출마하였으나 당시 현역 재선의원인 한나라당 이부영 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2004년 이후로는 본인 고향이자 텃밭인 순천에 출마했는데, 재미있는 점은 순천에서 출마한 국회의원 선거는 모두 낙선하였고 순천시장 선거는 모두 당선된 희귀한 기록이 있다. 또 2000년 총선에 경쟁했던 이부영과 2008년 이후로 같은 당이 되었다.[67]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본인이 당시 직전에 경기도 행정부지사 경력을 살려서 험지인 경기 수원시 정 지역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의원인 더불어민주당 박광온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차기총선인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본인 고향이자 텃밭인 부산 남구 갑 지역에 출마해 당선되었다.[68]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지역에서 보수 정당 사지인 서울 강북구 을 지역에 출마하였으나 당시 현역 의원인 통합민주당 최규식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2020년 이후로는 아랫지역이자 보수 정당한테는 나름 수월한 서울 강동구로 기반을 옮겼고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서울 강동구 갑 지역에 출마하였으나 당시 보수 정당이 침체기여서 그 여파로 현역 의원인 더불어민주당 진선미에게 밀려 낙선했고,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 강동구청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69] 아이러니하게도 미래통합당이언주는 과거 당적이 더불어민주당이었으며, 더불어민주당의 박재호는 과거 당적이 한나라당이었다. 이후 이언주가 미래통합당 후신인 국민의힘 탈당 및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하면서 7년만에 다시 같은당이 되었다.[70] 그 외에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호남에서 2을 가져갔다.[71] 남구 을, 북구·강서구 갑, 사하구 갑, 연제구, 부산진구 갑.[72] 2년 후 2018년 재보궐선거해운대구 을을 추가로 헌납해 총 6석을 내줬다.[73] 그나마 서울특별시 강남구 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갑,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후신 미래통합당이 탈환했다.[74] 한나라당이 과반 확보로 압승했고(거기다가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총선 공천 결과에 불복해 한나라당을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후 한나라당 복당자까지 합하면 개헌선도 확보했다.), 통합민주당은 개헌 저지선도 확보하지 못해 참패했던 18대 총선에서도 통합민주당이 가져갔다. 구로구 을에서 보수 정당 후보가 당선된 것은 2001년 재보궐선거가 마지막이고, 정식 총선에서는 1996년 15대 총선이 마지막이다.[75]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구로구 을에는 서울특별시 양천구 을에서 제18-20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용태미래통합당 후보로 공천되었는데, 선거 결과 미래통합당 김용태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손영택도 더불어민주당 이용선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76] 이후 홍준표미래통합당의 후신인 국민의힘에 복당했다.[77] 다만 이 사람은 음주운전 전과가 2번(물론 1번은 2016년 총선 끝난 2018년에 적발) 있어서 선거 과정 내내 발목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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