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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4 16:11:13

에두아르드 산탄젤로의 바스타야 현장 관찰일지

1. 개요2. 바스타야3. 바스타야란4. 바스타야에 관한 추가 고찰(보수적인 독자에게는 다소 거북할 수 있는 내용 포함)5. 결론: 다음 편을 바라는 독자들의 요구가 빗발칠 것이기에, 다음 일지에 소개할 내용과 더불어 간단하게 마무리하고자 함

1. 개요

리그 오브 레전드바스타야라는 새로운 설정이 추가되면서 공개된 단편소설이다. 원문 링크

2. 바스타야

(신사, 탐험가, 연대기 작가로 존경받는 에두아르드 산탄젤로가 기록한, 아이오니아 북부에 서식하는 기기묘묘한 생명체에 대한 관찰, 이론, 고찰의 일지)

내가 처음 “바스타야”라는 이름의 기묘한 생명체를 접한 것은 아이오니아의 비옥한 해안가에 상륙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나는 원래 필트오버 사람만이 겪는 고질병, 즉 무기력증을 치료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필트오버인이라면, 그리고 내가 작가로서 약간의 명성을 얻고 있는 곳이자 저 아름답게 빛나는 ‘진보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걸리는 그 병, 매사가 시시하고 지루해지는 그 가벼운 권태증 말이다.

아이오니아 대륙의 깊숙한 오지는 더없이 온난하고, 신비한 마법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광활한 대륙 출신이 아닌 지도 제작자가 이 오지에 발을 들여놓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에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곳이다. 나는 이곳에서 내 전문 지식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싶었다. 경이롭고, 마법이 넘치며, 아름다우면서도 무시무시한 무언가를.

바스타야 종족을 보는 순간, 나는 드디어 그 무언가를 찾았음을 깨달았다. 내 침울증은 싹 날아가 버렸다.

처음으로 바스타야 종족을 목격한 때는 한밤중이었다. 녀석은 배가 고팠던지 내 야영지에 들어와 먹을 것을 찾고 있었다. 내가 잠에서 깨자마자 녀석은 겁에 질려 황급히 도망쳤지만, 곧 돌아와 한동안 야영지에 머물렀다. 내가 갖고 있던 달콤빵 맛을 못 잊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어머니께 배운 내 낭랑한 노래 실력에 끌려서이기도 했으리라. (내 목소리는 독특하게도 소프라노 음역대라서 상대를 진정시키는 노래를 부르기에 제격이다.)

녀석은 사람처럼 두 발로 걸었지만 몸 전체는 내가 책에서만 보았거나 숱한 여행에서 목격했던 여러 짐승의 형체가 이리저리 뒤섞인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뾰족한 코와 길다란 수염은 고양이를 닮았지만 몸 형태는 원숭이 같았고 온몸은 뱀 같은 비늘이 뒤덮었다. 또한 힘은 빌지워터 소금괴물 못지않았다. 힘이 센 것은 어떻게 알았냐 하면, 녀석은 달콤빵을 다 먹어치우자마자 마치 종잇장을 들어 올리듯 아무렇지도 않게 내 몸을 번쩍 쳐들었다. 그러고는 내 침낭을 샅샅이 뒤져 단 것이 더는 없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그대로 들고 있었다.
조금 있다 녀석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나는 그때야 내가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그 바스타야라는 종족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얻어야 한다는 것. (나중에 알았지만 바스타야라는 이름은 이 지역 사람들이 붙인 것이다.)

다음은 내가 이 수수께끼의 대륙 아이오니아를 여행하며 마주했던 갖가지 다양한 바스타야 종족에 대해 기록한 글이다.

3. 바스타야란

자연과학을 공부한 교양 있는 신사로서, 이 신비로운 종족의 기원을 밝히는 가설을 내놓는 것이 나의 의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이론을 말하자면, 바스타야는 동물 분류학상 하나의 종(種)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넓은 분류인 목(目), 아니 어쩌면 문(門)으로 보아야 할 듯하다.

물론 서로 비슷하게 생긴 바스타야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앞에서 언급한 고양이-뱀-원숭이가 섞인 바스타야 소년을 따라가 보았더니 녀석과 똑같이 생긴 개체들이 부락을 이루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고는 다른 부락의 사악한 첩자 아니면 난폭한 포식자로 생각했는지 무례하게도 나를 쫓아냈고, 그 후 내 야영지까지 따라와서는 먹을 것을 몽땅 훔쳐가 버렸다. 하지만 그 후에 만난 바스타야 부락이나 가족들은 모습도 그렇고 하는 행동도 이들과 달랐다.

나는 첫 바스타야 부족을 만난 후 근처의 ‘속삭이는 강’을 따라 여정을 계속했다. (이 이름은 내가 붙였다. 사실 그 강은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흘렀지만, 지성인들이 다 그렇듯 나도 반어법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다른 바스타야 부락이 있다면 그들 역시 물 근처에 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서였고, 내 예상은 맞았다. 이번에 마주친 바스타야 종족은 얼굴은 수달처럼 생긴데다 털이 복슬복슬했지만 허리 아래는 물개와 비슷했다.
그들 중 다수는 꾸러미를 갖고 있었고, 그 안에는 자질구레한 장신구와 반짝거리는 잡동사니가 그득했다. 아마 그런 것들을 팔아서 생계를 꾸리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평화를 원한다는 뜻으로 내 안경을 선물로 내밀었지만 의사소통에 실패했다. 마지막 수단으로 나는 “당신들에게 해를 끼칠 의도가 없으니 평화롭게 지냅시다”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즉석에서 춤을 추었다. (경쾌하게 회전하는 변화무쌍한 춤이었기에 무릎 관절의 움직임이 중요한데, 그 점에서 내 무릎은 아주 쓸 만했다.) 수달-물개 바스타야 부락민들은 내 춤에서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나를 받아들여 주었고, 따뜻한 저녁을 대접했다. 그 음식은 약간 덜 익힌 생선 같았지만 확실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내가 춤을 추고 저녁을 먹는 동안에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그들이 준 잔 속에 든 소금과 불 냄새가 나는 노르스름한 가루를 먹지 않고 사양하자마자, 갑자기 우리말을 유창하게 하기 시작했다. 방언이 심했고 낯선 구어체 표현이 많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는 조금 전까지 느꼈던 음식에 대한 갈망 못지않게 이 부족에 대한 역사 지식을 얻고 싶은 갈망에서 서둘러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알고 보니 바스타야 종족의 기원은 아주 오래전, 아이오니아의 어느 오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대공허전쟁(이 주제에 대해서 나는 여러 권의 책을 썼고, 그 책들은 모두 필트오버 전역의 고급 서점에서 합리적인 수준을 약간 넘어서는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으니 참조 바란다)의 아득한 공포를 피해 어느 인간 무리가 그 오지까지 숨어들어왔고, 거기에서 지성을 갖추고 몸의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으며 아이오니아 자연에 존재하는 마법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부족과 조우했다. 이 두 무리가 짝을 이룬 결과가 바로 내가 마주하게 된 바스타야라는 종족인 것이었다. 그 후 바스타야 종족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 살게 되었고 살고 있는 지역에 맞추어 몸의 형체도 바뀌었다. 오늘날 날개 달린 사람처럼 생긴 아이오니아의 바스타야에서부터 팔다리가 제멋대로 나 있는 슈리마의 모래 발끌이, 그리고 항상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프렐요드의 비늘 달린 바다사자에 이르기까지, 같은 바스타야 종족이라도 공통점을 찾기 힘든 다양한 외양을 지닌 것은 이 때문이라 하겠다.

나는 이 수달-물개 바스타야 부락에 좀더 머물며 더 많은 것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내가 물었던 질문 중에 무언가 이들을 몹시 화나게 만든 게 있었던 듯했다. 이들은 갑자기 안면을 몰수하더니 예의고 뭐고 없이 나를 부락에서 쫓아내 버렸다. 나중에라도 이 부락을 만날 누군가가 나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막기 위해 여기 적자면, 그들의 분노를 자극했던 내 질문은 그 옛날 인간과 그 신비의 부족이 짝을 이룰 때의 과정이 순수하게 마법을 통해서였는지 아니면 육체의 본능에 가까웠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4. 바스타야에 관한 추가 고찰(보수적인 독자에게는 다소 거북할 수 있는 내용 포함)

비록 소지품과 평온함은 잃어버렸지만 모험을 향한 열망은 잃지 않았기에, 나는 다른 방향으로 길을 잡아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나를 보호해 줄 만한 것이라고는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여 대처하는 내 능력과 유려한 말솜씨밖에 없었다. 몇 달을 그렇게 여행하는 동안 아이오니아의 각종 과일과 야채로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 땅에 떨어진 것을 줍기도 했지만 나무에서 따는 것도 마치 경계 구역 시장 가판대에서 물건을 집어 드는 것만큼이나 쉬웠다.
시간은 오로지 해가 뜨고 지는 것만으로 가늠할 수 있었다. 나는 차츰 필트오버의 문명인으로 지켜야 했던 그 모든 번거로운 일상을 던져버리고 홀가분해졌다. 하지만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보내고 나니 몸에서 심한 악취가 나는 게 문제였다.

나는 어느 호수를 지나가다가 결심을 하고 옷을 벗었다. (물론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였다. 신사라면 모름지기 알몸을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되는 법이니까.) 그리고 산딸기와 풀 냄새가 나는 호숫물에 몸을 담갔다.

그때였다. 내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리고 앞으로 천 번을 더 산다 하더라도 다시 보지 못할 경이로운 존재를 목격한 것은.

내 반대편 호숫가에서 목욕을 하고 있던 그 생명체는 분명 바스타야 종족이었지만 내가 지금껏 본 그 어떤 바스타야보다도 인간에 가까웠다. 귀와 꼬리만 여우였을 뿐 나머지 벗은 몸은 사람의 형체였으니까. 이 글을 읽을 미성년 독자들과 이런 문제에 민감한 독자들을 위해 더 이상의 자세한 묘사는 생략하겠지만, 그 몸의 형체가 인간 여성과 비슷했다는 것만은 말해두고자 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나는 호숫물에 몸을 집어넣는 순간 곁눈으로 그녀를 목격했고, 입을 떡 벌리고 물속에서 나왔다. 수척해진 몸에서 물을 줄줄 흘리며 대체 어떤 말로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야 완벽할지 머릿속으로 열심히 궁리했다. 다른 지역에서 꽤나 명성을 떨치고 있는 작가로 나를 소개해야 할까? 그러면서 내가 쓴 책에서 몇 줄을 인용해 볼까? 아니면 이런 비슷한 상황에 대비하여 그동안 틈틈이 작곡하여 외워놓았던 낭만적인 노래를 불러볼까?

하지만 갑자기 내 뒤쪽 덤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나는 깜짝 놀랐다.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더니 전혀 해를 끼칠 것 같지 않은 어떤 남자가 서 있었다. 나는 다시 호숫가로 시선을 돌렸지만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우 여인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내게 남은 것은 숱한 의문과,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도는 “오 나의 사랑, 나의 꿈, 나의 동반자여”로 시작하는 노래 가사와, 당혹스러운 얼굴 표정뿐이었다.

내 평생을 바쳐 사랑해도 좋을 여인을 그렇게 사라지게 만든 부스럭 소리의 주인공, 두들겨 패서 기절시켜도 시원치 않을 그 남자는 멀리 떨어진 부락 출신의 인간 상인이었다. 그는 자기가 생강과라는 것을 팔러 다닌다면서 먹어 보라고 하나 내밀었지만, 나는 거절했다. 그 과일을 받아서 히죽거리는 그자의 얼굴에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샤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이 연못에서 목욕을 하면 안 된다고 나를 나무랐다. 물도 건강에 해롭거니와 이따금 호수에 나타나 목욕을 하는 그 여우 여인도 위험한 존재라고 하면서. 나는 벌거벗은 채 넋이 나간 남자에게 몰래 다가오는 것이 당신에게 훨씬 해로울 것이라고 말해주었지만, 샤이는 킥킥 웃기만 했다.

내가 옷을 다 입은 후, 샤이는 나를 인간 문명이 존재하는 곳으로 데려다주고 몇 가지 질문에도 대답해 주기로 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고 쟝호 남성복 가게에서 산 내 모자를 받는다는 조건이었다. 고급 제품을 알아보는 안목은 있는 듯했다.

샤이는 자기 가문의 몇 대 선조부터 그 신비스러운 여우 여인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바스타야 종족이 흔히 그렇듯 그 여인도 우리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사는 존재였다. 바스타야 종족의 수명은 수천 년인 경우도 많고, 여러 전설이나 소문에 따르면 불멸의 삶을 누리는 바스타야도 있다고 했다. 그들을 아이오니아에서는 바스타야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 것도 샤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일지에 그들을 ‘환상체’라는 이름으로 적고 있었지만, 샤이는 내가 붙인 이름을 듣더니 코웃음을 쳤다. 나는 이 일지의 처음으로 돌아가 ‘환상체’를 모두 ‘바스타야’로 바꾸었다. 내 작명 능력이나 어휘력이 모자랐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이곳의 문화를 존중하고 받아들일 정도로 내가 겸허한 교양을 갖춘 신사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여러 날을 함께 걸었다. 샤이는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 마치 굶주린 사냥개처럼 허공에 대고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왜 그러느냐고 묻자, 샤이는 미소를 짓더니 보물을 찾고 있다고만 말했다. 처음에는 그 영문 모를 행동이 짜증스럽고 화가 치밀기까지 했지만, 그렇게 개처럼 냄새를 맡는 모습을 여러 번 보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바스타야라는 종족이 먼 옛날 마음대로 몸의 형체를 바꾸는 고대의 어떤 종족과 인간이 결합한 혼혈이고, 세대와 세대를 거듭하며 인간의 혈통은 진해지고 바스타야다운 혈통은 아주 조금만 남게 된 경우가 있다면? 즉, 겉보기에는 사람과 똑같고 짐승을 닮은 부분은 한 군데도 없으며 몸 형체를 바꾸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바스타야의 피가 조금은 남아 있어 바스타야의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면? 그런 혼종이 존재할 수 있을까?

바로 그때였다. 공기 냄새를 맡던 샤이가 갑자기 킁킁거리기를 멈추더니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는 나를 보며 씩 웃더니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말했다. “그중에서도 몸의 형체를 바꿀 수 있는 경우도 있을 거예요.” 다음 순간 샤이는 돼지로 변했고, 코로 땅을 헤집더니 후각이 예민한 돼지만이 발견할 수 있는 희귀한 비단송로버섯을 캐냈다.
나는 형체를 마음대로 바꾸는 ‘형상변환자’를 눈앞에서 보고는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몇 달도 안 되는 사이에 세 가지 다른 바스타야 종족을 목격하기까지 했으니, 탐구심이 넘치는 학자로서 이만한 행운도 드물 것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관능적인 여우 여인’ 다음에 ‘돼지로 변하는 남자’라니, 너무 하향된 것이 아닌가.

이런 식이라면 다음에 마주할 바스타야는 ‘두 발로 걷는 바퀴벌레’ 정도가 되지 않을까.

5. 결론: 다음 편을 바라는 독자들의 요구가 빗발칠 것이기에, 다음 일지에 소개할 내용과 더불어 간단하게 마무리하고자 함

나는 지난 몇 달 동안 아이오니아를 누비며 다양한 바스타야 종족에 대한 정보를 되도록 많이 모으려고 노력했다. 룬테라와 룬테라의 동물 군상을 종합적으로 살필 수 있는 분류학 안내서를 만들고자 하는 열정에서였다.

바스타야 종족에 대한 정보를 상당량 수집하기는 했지만 아직 탐구해야 할 것이 많이 남았다. 내 연구는 아이오니아 대륙에만 한정되어 있으므로, 바스타야 종족은 내가 알아낸 정보보다 훨씬 다양할 것이다. 나는 그 일부만 밝혀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나는 바스타야라는 세계로 통하는 문을 처음 연 셈이고, 그 문을 통과하여 들어가는 일은 또 다른 학자가 해야 할 것이다. 현재 나는 룬테라에서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다른 생명체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닌 데다 자의식을 갖춘 무기로 알려진 다르킨, 공허에서 태어난 타락한 생명체들, 전설 속 요정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요들 등이다. 이들에 얽힌 이야기는 반드시 밝혀내야 하며, 내가 그 이야기를 찾아내는 탐험가가 될 것이다. 사실 그럴 능력을 갖춘 탐험가는 나밖에 없기도 하지만.

편집자 주:
산탄젤로 씨는 이 원고를 본 출판사에 보내고 불과 2주일 후에 자비를 들여 다시 아이오니아로 떠났다. “그 여우 여인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는 순수한 관찰 및 연구를 통해 오로지 다음 편 원고를 작성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말을 남기고.

그리고 몇 주 후, 본 출판사에 산탄젤로 씨의 편지가 배달되었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나는 현재 납치라는 커다란 불운에 직면했습니다. 나를 납치한 무례하기 짝이 없는 자들은 스스로를 나보리 형제단이라 칭하며, 나를 필트오버의 첩자라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지성, 체력, 낭만이라는 면에서 갖가지 다양한 기술을 갖추고 있는 세계에서 살아온 사람으로서, 나는… [지면 관계상 중략] … 이들이 씌운 혐의에 모욕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들을 설득하여 나를 당장 처형하기보다는 몸값을 받고 풀어주는 편이 이득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귀사에서 내가 저번에 제출한 원고를 검토하신 후 작가로서의 내 역량에 걸맞은 귀중한 광물이나 식품, 또는 무기를 보내주신다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물론 내 몸값을 얼마나 보내야 할지 판단하는 것은 귀사의 선택이겠지만, 작가로서 내가 지닌 가치를 환산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귀사와 귀사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이 파산에 이를 지경이 되리라는 것은 확실하리라 봅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음은 보장합니다.”

본 출판사는 이 편지를 받은 직후 바스타야 종족에 대한 산탄젤로 씨의 원고가 책으로 완성되어 나올 경우에 예상되는 이득만큼인, 동전 한 움큼과 오래되어 상한 달콤빵 하나를 보냈다.

현재까지 본 출판사는 산탄젤로 씨가 귀환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