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에드몽 드 카유 Edmond de Caillou | |
출생 | 미상 | |
가스코뉴 보르도 | ||
사망 | 1316년 2월 14일 (향년 불명) | |
스코틀랜드 왕국 콜드스트림 인근 스케이스뮤어 | ||
직위 | 베릭 성 수비대 내 가스코뉴 부대 지휘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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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제1차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에 참여했다.2. 생애
보르도 출신으로, 에드워드 2세의 총신 피어스 개버스턴의 조카 베르트랑 드 카유와 형제였을 가능성이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 일부 출처에서는 베릭 성주로 기술되었지만, 당시 총독은 제2대 버클리 남작 모리스 드 버클리였다. 학자들은 그가 베릭 성 수비대 내 가스코뉴 부대 사령관일 거라고 추정한다. 1315년 스코틀랜드 남부와 잉글랜드 북부에서 기근이 도래하면서 식량 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그 해 겨울이 찾아오면서 수비대는 말을 잡아먹어야 할 정도로 굶주림에 시달렸다. 카유는 성의 물자를 보충하기 위해 스코틀랜드를 습격하자고 제안했지만, 버클리는 베릭의 마을과 성을 지키는 게 중요하지 스코틀랜드군이 도사리는 적지로 쳐들어갈 수는 없다며 거부했다.그러나 그는 성내에서 굶어죽는 것보다 싸우다 죽는 것이 낫다고 여기고, 1316년 2월 14일 부하들을 이끌고 멜로즈 수도원에서 2리그(9.65km) 떨어진 지점까지 약탈을 자행헀으며 이후, 부하들을 중대로 나누어 농민들로부터 가축과 그들을 몰고 갈 충분한 남자들을 탈취했다. 이후 충분한 전리품을 모은 뒤 가축을 몰고 베릭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로버트 1세의 심복이자 변경 보안관 제임스 더글러스와 리즈데일 영주 윌리엄 2세 드 술리스, 브랜스홀름 성주 헨리 드 발리올이 고든 영주 아담 드 고든으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듣자 그들을 추격했다.
콜드스트림 인근 스케이트뮤어에 이르렀을 때 적이 추격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카유는 포로와 가축을 베릭으로 먼저 보내고, 자신은 전투 대열을 형성해 적군과 맞서 싸웠다. 그 후 벌어진 전투에서 카유는 제임스 더글러스와 직접 대결했지만 그의 손에 살해되었고, 지휘관을 잃은 그의 부하들은 낙담하여 도주했다. 제임스 더글러스는 훗날 스케이트뮤어 전투가 자신의 긴 경력에서 가장 어려웠던 전투였다고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