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11:48:38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폰 하노버

<colbgcolor=#87cefa><colcolor=#000000> 하노버 가문의 수장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폰 하노버
Ernst August von Hannover
파일:Ernst August V.jpg
이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알베르트 파울 오토 루프레히트 오스카 베르톨트 프리드리히 페르디난트 크리스티안 루트비히 폰 하노버
(Ernst August Albert Paul Otto Rupprecht Oskar Berthold Friedrich Ferdinand Christian Ludwig von Hannover)
출생 1954년 2월 26일 ([age(1954-02-26)]세)
서독 니더작센하노버
배우자 샹탈 호출리 (1981년 결혼 / 1997년 이혼)
모나코의 카롤린 공녀 (1999년 결혼)
자녀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크리스티안, 알렉산드라
아버지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
어머니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의 오르트루트 공녀
형제 크리스티안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이복형제), 마리, 루트비히 루돌프, 올가, 알렉산드라, 하인리히
1. 개요2. 가족관계3. 여담

[clearfix]

1. 개요

하노버 가문의 현 수장.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의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콘스탄티노스 2세소피아 왕대비의 외사촌동생이다. 아버지랑은 거의 40살 차이가 난다.

2. 가족관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하노버 왕조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샹탈 호출리[1]와 결혼해서 슬하에 2남을 두었다. 아버지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가 결혼을 승인해줘서 자녀들도 왕족 칭호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샹탈 호출리의 친구인 모나코 공녀 카롤린 그리말디와 불륜을 저질러서 이혼했다. 태국으로 불륜 여행을 떠난 것이 파파라치에게 들키면서 혼전임신까지 드러났는데, 정확히는 카롤린이 친구의 남편을 빼앗은 것. 아버지와 막내 남동생 하인리히도 사고쳐서 사생아를 낳았는데 가족력이 있는 듯하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카롤린과 결혼했고 그 해 태어난 막내딸인 알렉산드라는 사생아가 아닌 적녀로 프린세스 칭호를 받았다.

모나코 공 레니에 3세는 비록 딸이 공개적 불륜에 두번째 혼전임신해서 결혼했지만 오히려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그 이유는 본래 모나코 공가는 프랑스 남부의 작은 영지를 다스리는 지방 귀족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난데없이 미국 배우에 불과한 그레이스 켈리와의 결혼으로 유명세와 관광 수익은 늘었지만 급은 더 바닥을 쳤던 것. 이런 배경 탓에 타국 왕족들은 모나코 공가를 고위 귀족 가문으로 여길뿐 자신들과 동급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간 격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다른 왕가와의 혼인이 성사되지 못했다. 비록 시작은 불순했지만 (명목상) 왕가와 혼맥이 닿게 되었으니 모나코 공가도 드디어 왕족 대접을 받게되었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혼한 뒤 몇년 지나지 않아 카롤린과 사이가 소원해지면서 2009년부터 별거했다. 그래도 혼인 관계는 유지하는 듯 2022년 9월 19일에 거행된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식에 같이 참석했다.

파일:Ernst_August_Prinz_von_Hannover_(1983).jpg

장남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6세(1983 ~ )는 러시아 디자이너의 딸인 에카테리나 말리셰바(1986 ~ )와 결혼해서 슬하 1남 3녀[2]를 두었다.

파일:크리스티안 오브 하노버.jpg

차남 크리스티안 폰 하노버(1985 ~ )는 페루의 변호사인 알렉산드라 드 오스마(1988 ~ )와 결혼해서 슬하 1남 2녀[3]를 두었다.

파일:Princess Alexandra of Hanover.jpg

장녀 알렉산드라 폰 하노버(1999 ~ )는 카롤린 그리말디 사이에서 얻은 딸이다. 모나코에서 거주 중이고 과거에 피겨 스케이팅을 했었다.

3. 여담



[1] 선대와 달리 왕족이나 귀족이 아니다. 스위스 초콜릿 사업체 재벌의 상속녀였다고. 현대에 들어 이런 식으로 종종 유럽의 구왕족들이 가문의 재정적 안정 등의 이유로 재벌의 자제와 혼인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비슷한 다른 사례로는 카를 폰 합스부르크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의 당조카인 파블로스 왕세자 등의 예가 있다.[2] 엘리자베트, 벨프 아우구스트, 엘레오노라, 마르가리타[3] 니콜라스, 소피아, 알렉시아[4] 독일은 이미 소련과의 관계를 생각해 2+4조약을 지키기로 했기 때문에 구 동독지역의 재산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모두 기각했다. 토지개혁 항목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