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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더작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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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석 / 73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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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관광
3.1. 베르겐벨젠 수용소
4. 인구5. 경제6. 정치7. 언어
7.1. 관련 문서
8. 종교9. 주가10. 행정구역11.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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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Land Niedersachsen, 니더작센 주 [1]

독일 서북부에 위치한 주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잉글랜드의 주요 민족인 앵글로색슨족브리튼 섬으로 이동하기 전에 살았던 땅이다.[2]브라운슈바이크 공국하노버 왕국의 역사를 계승하는 지역이라 할 수 있으며, 주 내부에 브레멘위요지의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주도는 하노버이다.

1946년 올덴부르크 일대, 하노버 일대, 샤움부르크-리페 일대를 합병하여 탄생한 주이다. 동프리슬란트도 니더작센 주의 서북부에 위치해 있다. 전체적인 기후는 북해의 영향으로 위도에 비해 매우 온화한 편.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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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독일 왕국 · 이탈리아 왕국 · 부르군트 왕국 · 보헤미아 왕국
선제후국 <colcolor=#000,#e5e5e5><colbgcolor=#fff8b4,#514f36> 초기 부족 공국 프랑켄 공국 · 슈바벤 공국 · 바이에른 공국 · 로렌 공국 · 초기 작센 공국
1356년~1623년 마인츠 선제후국 · 쾰른 선제후국 · 트리어 선제후국 · 작센 선제후국 · 팔츠 선제후국 ·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 · 보헤미아 왕국
16세기 추가 바이에른 선제후국 · 하노버 선제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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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오해와 반박 }}}}}}}}}

작센(Sachsen)이라는 명칭은 작센족에서 비롯되었다. 이곳은 홀슈타인과 더불어 원래 작센족이 살던 지역으로 프랑크 왕국카롤루스 대제가 정복하기 전까지 작센 왕국이 있던 곳이다. 810년대 최종적으로 작센 왕국이 프랑크 왕국의 영토가 되면서 작센 공국으로 격하되었고 이 지역은 크게 서쪽의 베스트팔렌(뮌스터, 파더보른, 올덴부르크), 동쪽의 오스트팔렌(브라운슈바이크, 뤼네부르크 등),[3] 중부의 엥게른(민덴, 함부르크, 하노버),[4] 북부의 노르트알빙엔(현 홀슈타인)으로 구분되었다. 작센 공국은 이후 빌룽 가문에게 넘어가며, 동프랑크 왕국을 거쳐 신성 로마 제국의 제후국이 되었다.[5] 작센의 상징은 빨간 배경에 하얀 말. 현대 니더작센의 문장으로 쓰이며,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문장에도 베스트팔렌을 상징하는 표식으로 남아 있다. 이는 작센족의 부족장이었던 비두킨트(Widukind)가 전설 속에서 탔다는 오딘의 말 슬레이프니르에서 기인한 것으로, 후일 작센 공작이 되는 벨프 가문이 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완전히 자리잡았다. 나중에 하노버가 말(동물과 표준 독일어 둘 다)로 유명해지면서... 선견지명이 되었다.

중세부터 작센 공국은 동부의 슬라브족을 토벌하며 영토를 넓혀갔다. 이에 따라 작센을 부르는 지역이 나날이 커져 갔고 특히 초기 동프랑크 왕국이 지금의 작센안할트 지역에크베들린부르크, 마그데부르크 등을 건설하고 투자하면서, 작센의 중심지도 점차적으로 엘베강역으로 동진했다. 이는 10세기 벨프 가문의 작센 공작이었던 하인리히 사자공 때 절정에 달해 동부로 무한 영토 확장에 나섰고, 잘 나간다며 위아래 없이 막장을 부리던 하인리히 사자공은 상관인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의 심기를 건드려 토사구팽 당했다. 일단 작센 공국의 영토가 너무 컸기 때문에 분할하기로 결정, 1235년 제국 의회에서 전통적인 작센 지역인 베스트팔렌과 오스트팔렌, 엥게른은 크게 쾰른 대주교에게 넘어간 베스트팔렌 공국과 벨프 가문의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국으로 분리되었고, 작센 공작 칭호는 안할트 일대를 통치하던 아스카니아 가문에게 넘어갔다. 이후 아스카니아 가문은 상속 문제로 작센-비텐베르크와 작센-라우엔부르크로 나뉘었고 1356년 금인칙서에 따라 비텐베르크계가 작센 선제후가 되었다.

하인리히 사자공이 추방된 후 작센 공국이 3개로 분할될 때 실제로는 가문 간 알력, 분할상속, 강력한 권력의 부재로 더 많은 소국들이 파생되었다. 우선 주교령들은 모두 독립적이었기 때문에 각각 주교, 대주교령이었던 파더보른, 뮌스터, 힐데스하임, 브레멘, 함부르크는 별개였으며, 각각 1091년과 1111년 작센 공국의 제후국으로 설립된 올덴부르크 백국, 흘슈타인 백국과 샤움부르크리페 또한 분리되었다. 올덴부르크는 아예 처음부터 작센 공국과 분리되었고, 홀슈타인 백국은 작센-라우엔부르크의 제후국이 되었다가 공국으로 신분상승(?)하며 샤움부르크-리페는 후일 현대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로 통합되었다. 브레멘과 함부르크는 훗날 제국자유도시로 승격되고 한자 동맹으로 독립적인 행보를 나아간다.

1448년 올덴부르크 백작 크리스티안 7세가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1세로 선출되어 덴마크를 물려받아 올덴부르크 왕조를 개창하였고, 올덴부르크 백국은 동생 게르하르트에게 물려주었다. 크리스티안 1세는 1460년 홀슈타인 백국도 상속받으면서 슐레스비히홀슈타인과 덴마크의 오랜 유대관계가 시작되었다.

니더작센이란 명칭은 16세기에 신성 로마 제국의 제국 관구(Reichskreise) 명칭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당시엔 브레멘과 함부르크,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국, 메클렌부르크 공국, 홀슈타인 공국, 작센-라우엔부르크 공국이 이 지역에 포함되었다. 작센 선제후국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 안할트, 포메른 등이 오버작센으로 분류되었다. 현재의 니더작센 주와 비교해보면, 지금은 홀슈타인으로 분류되는 작센-라우엔부르크나 따로 분리되는 메클렌부르크가 포함되어 있고, 올덴부르크와 오스나브뤼크는 빠져 있다. 즉 중세 시기의 니더작센 개념과 오늘날의 니더작센 주의 개념은 차이가 존재했다는 것.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국은 1269년 브라운슈바이크 영주령과 뤼네부르크 영주령을 신설하여 자녀들에게 분할상속하였다. 이 때 공작 작위는 브라운슈바이크 영주령으로 내려갔다. 1291년에 브라운슈바이크 영주령은 또 다시 3개로 분할되며 브라운슈타인-볼펜뷔텔 영주령, 괴팅겐 영주령, 그루벤하겐 영주령이 되었고, 1432년 칼렌베르크 영주령이 브라운슈타인-볼펜뷔텔에서 떨어져 나왔다. 1495년엔 드디어 분열을 멈추고 다시 합쳐지기 시작했는데 먼저 칼렌베르크와 괴팅겐이 합체한 후, 1617년엔 그루벤하겐과 뤼네베르크가 합쳐졌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의 결과 북반부는 스웨덴이 차지하였다. 1692년 칼렌베르크의 영주이자 뤼네베르크-브라운슈바이크의 공작이었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선제후가 되면서 칼렌베르크를 중심으로 브라운슈바이크 영주령만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통합됐다. 이 때 하노버 공중 고문이었던 고트프리트 폰 라이프니츠가 벨프 가문의 족보를 조사하여 선제후 상속 권한이 있다는 증거물을 마련했다는 건 유명한 일례. 팔츠 선제후국이 가톨릭 선제후가 되면서[6] 신교도 선제후로는 브란덴부르크[7] 딱 하나밖에 남지 않아 제국 내에서 세력이 위축될 것을 우려한 신교도 제후들과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레오폴트 1세는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를 9번째 선제후로 임명했다.[8] 칼렌베르크의 중심은 하노버였기 때문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자신의 작위를 하노버 선제후로 개칭하였다.

이 때 벨프 가문으로선 또 다른 복권에 당첨되었으니..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의 부인, 팔츠의 조피잉글랜드 왕국 국왕 제임스 1세의 외손녀였는데, 앤 여왕을 마지막으로 제임스 1세의 직계 스튜어트 왕조가 끊기게 된 것. 앤 여왕에게는 이복동생이 있었으나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영국 왕위를 이어받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영국 왕위 승계권이 조피를 통해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의 아들 게오르크 루트비히에게 가게 되었다! 게오르크 루트비히는 아버지에 이어 1698년에 하노버 선제후가 되었고, 1714년 앤 여왕이 죽어 영국 왕위도 얻음으로서 영국 국왕 조지 1세가 되었다.

하노버 선제후는 조지 1세 때부터 하노버 가문의 영국 왕실이 가지게 되었고, 조지 1세의 고손자 조지 4세조지 3세의 섭정 시절 빈 회의에 참석해 하노버 선제후의 공작위를 왕국으로 급을 높이는데 유럽 열강들의 합의를 이끌어 내어, 1814년에 하노버 왕국이 수립되어 동군연합이 되었다. 이 때 베스트팔렌의 오스나브뤼크도 하노버 왕국으로 편입됐다. 동시에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국의 일부였던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이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으로 독립되었다.

이후 하노버 왕국도 영국 왕실의 의도에 따라 자유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인 사상이 유입되어 공민권이 수립되고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가 성립된다. 조지 4세는 1734년 지금도 독일에서 탑을 달리는 괴팅겐 대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렇게 하노버도 스코틀랜드 왕국처럼 영국이 꿀꺽 삼키나 했는데... 조지 4세가 자녀 없이 죽으면서 동생인 윌리엄 4세가 영국과 하노버의 왕위를 이어 받았으나 윌리엄 4세에게는 적통인 자녀가 없었다. 따라서 조카인 빅토리아에게 승계해야 했는데 여성에게도 왕위가 상속되는 영국법과 달리 하노버는 남자에게만 왕위가 상속될 수 있는 살리카법을 따랐으므로 빅토리아는 하노버 왕위를 계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윌리엄 4세가 죽고 영국 왕위는 빅토리아에게, 하노버 왕위는 윌리엄 4세의 동생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물려받게 되며 동군연합은 해체되었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어릴 적부터 독일에서 생활했으며 군인으로 자라났다. 아무래도 근대적 군인식 사고방식이 머리에 박히면서 기존 자유주의적이었던 하노버 왕국을 억압적이고 절대 왕정식으로 개조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괴팅겐 대학교의 (그림 형제를 비롯한) 일곱 교수가 항의서를 보냈으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그들을 해임시켜 버렸다.

1851년 게오르크 5세가 그의 아버지를 이어 새 하노버의 왕이 되었다. 게오르크 5세는 젊을 적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가 중년이 돼서 다른 쪽 눈의 시력도 놀이를 하다 잃게 되면서 장님이었다. 이 당시에는 독일 지역의 패권을 두고 프로이센 왕국오스트리아 제국이 신경전을 벌이던 시기였고 결국 둘 사이에 전쟁이 터졌는데, 게오르크 5세는 오스트리아의 편을 들었다. 결과는 오스트리아의 패. 결국 1866년 프로이센 왕국군이 하노버를 침공했으며, 하노버 왕가는 영국으로 피신하고 하노버 왕국은 프로이센에 강제 합병당했다. 하노버 왕가는 하노버 왕국을 모두 잃고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영국 왕실의 일원으로서 받았던 컴벌랜드 공작으로 살아간다. 게오르크 5세의 손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빌헬름이 1884년 자녀 없이 죽음에 따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되어 다시 독일로 귀환한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는 독일 제국 황제 빌헬름 2세의 딸 빅토리아와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함으로서 성공적으로 독일 왕정에 복귀하게 된다. 하지만 곧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고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는 독일의 편에 들게 됨으로서 영국 의회는 1917년 귀족법을 개정하여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의 컴벌랜드 공작위를 회수해 버린다. 그리고 독일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해 공화국이 되었고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위도 잃었다.

올덴부르크 백국은 앞서 말한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1세의 동생 게르하르트의 가계가 물려받았다가 1667년 게르하르트의 가계가 단절되며 프레데리크 3세가 올덴부르크 백국을 물려받았다. 홀슈타인은 크리스티안 3세의 분할로 인해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국이 덴마크 왕실 영지와 덴마크 올덴부르크 왕조의 분가인 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으로 이등분된 상황에서 1761년 러시아 제국의 제위를 이어 받은 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 카를 페터 울리히가 1762년 부인 예카테리나에 의해 폐위당하고 죽임을 당한다. 홀슈타인-고토르프 공국이 러시아 제국으로 들어가는 상황을 막기 위해 덴마크는 올덴부르크 백국과 홀슈타인-고토르프 공국을 교환했다. 15세기 신성 로마 제국과 체결했던 리베 조약에 의해 홀슈타인 공작과 슐레스비히 공작은 동일 인물이 동시에 가져야 했기 때문. 이에 홀슈타인 공국으로 다시 하나로 합쳐져 덴마크의 영토가 되었고, 올덴부르크 백국은 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의 분가[9]에게 상속되었다. 1777년에는 공국으로 승급했다. 1815년에는 대공국이 되고 1871년에 독일 제국에 합류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들어선 바이마르 공화국은 구 하노버 왕국과 브라운슈바이크 공국, 올덴부르크 대공국 및 자잘한 주교령 영토를 모두 프로이센 자유주로 분류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고 나치 독일이 패망함으로써 미국과 영국, 프랑스의 분할 통치에 들어가는데, 아무래도 영국과 깊은 관계가 있던 지역이었기 때문인지 이곳은 영국이 통치했다. 1946년 8월 영국 정부는 구 하노버 왕국 지역을 프로이센 지방에서 분리해 하노버를 주도로 하는 하노버 주를 신설하였다. 하노버 주의 초대 주총리였던 하인리히 빌헬름 코프는 브라운슈바이크 공국, 올덴부르크 공국 지역과 주변 다른 지역들도 합병해 니더작센 주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코프의 주장은 사실 이미 1920년대부터 나오던 행정구역 개혁안을 토대로 한 것이었고 실제 생활권이나 경제권에 부합했다. 브레멘도 니더작센에 합병하려는 방안이 검토되었으나, 당시 브레멘 시장이 미국을 찾아가 브레멘의 역사적 상황을 설명하고 전통적으로 하노버와는 독립적인 지역이었음을 강변해 브레멘은 별도의 주가 되었다.[10] 결국 영국 군정은 1946년 11월 브라운슈바이크와 올덴부르크 지역을 하노버 주와 합병한 뒤 니더작센 주를 출범시켰다.

3. 관광

니더작센은 규모가 큰 주이며 북쪽으로는 북해가 남쪽으로는 하르츠 산맥이 위치해 있어 다양한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다.

하노버는 대규모 박람회를 거의 1년 내내 개최하기 때문에 사업차, 관광차 많은 사람들이 찾는 도시이다. 이 곳에서 숙박할 때 주의할 점이라면, 박람회 기간과 자신의 숙박 기간이 맞아 떨어지는 경우 숙박 요금이 많이 올라갈 수 있다는 것. 하멜른이나 첼레, 힐데스하임, 괴팅겐, 볼프스부르크, 브라운슈바이크, 고슬라어 등의 도시는 모두 하노버를 거점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

또한 지리적 이점으로 고속철도 ICE를 타고 베를린이나 함부르크, 브레멘, 쾰른, 뒤셀도르프, 프랑크푸르트, 라이프치히로 가기에도 매우 편한 곳. 독일의 웬만한 도시는 모두 4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다만 드레스덴이나 에어푸르트 쪽으로 가는 노선이 살짝 아쉬운 상황. 이 경우 베를린, 라이프치히, 할레, 풀다 등에서 갈아타야 한다. 하노버 공항은 중소규모이지만 유럽의 다수 공항과 노선이 연결되어 있다. 런던까지는 약 1시간. 한국 직항은 없다.

3.1. 베르겐벨젠 수용소

니더작센 중부에 베르겐이라는 곳에는 네덜란드 지역에서 잡힌 유태인들이 주로 수감되었던 나치의 강제 수용소인 베르겐벨젠(Bergen-Belsen) 수용소가 있으며, 현재는 추모시설 겸 박물관이다. 안네 프랑크가 숨을 거둔 곳으로 유명하다. 이 곳은 다하우, 작센하우젠 등 다른 수용소와 다르게 가스실이 없었다. 대신 전반적인 시설 환경을 의도적으로 열악하게 운용하고, 겨우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의 식사만 제공해서 영양결핍과 전염병으로 죽도록 만들었다.

4. 인구

약 81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데, 독일 내 16개 연방주 중 4번째로 많은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다. 외국인도 89만 명으로 상당수가 거주하는데 다른 주들과 마찬가지로 폴란드인, 시리아인튀르키예인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 주에서 가장 큰 도시는 인구 약 54만 명의 하노버이며, 주변의 브라운슈바이크, 볼프스부르크, 힐데스하임, 괴팅겐 등을 묶어 인구 390만 명의 하노버 광역권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이 광역권이라는 게 수도권처럼 도시-도시로 연결되어 있지도 않고 워낙에 넓다 보니 이런 명칭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가령 하노버랑 괴팅겐은 100km 떨어져 있다. 그 외의 중소도시로는 오스나브뤼크올덴부르크, 뤼네부르크 정도. 함부르크나 브레멘의 광역권들도 니더작센의 영토이다. 이러다 보니 거주지는 니더작센이면서 함부르크나 브레멘에서 일하는 함부르크 및 브레멘 유동인구도 많다.

5. 경제

전통적으로 농업광업의 비중이 큰 주이다. 북부 지역은 토질이 거친 관계로 작황이 힘들어 초원을 이용한 목축업이 발달했으며 남부 지역은 황토 토질을 이용한 감자, 귀리, 사탕무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하노버와 그 근교는 승마, 마장마술 등을 위한 로도 유명한데, 경종마 중 하노버리안이란 종이 따로 있을 정도.(맨 위의 문장이기도 하다) 이 지역 영주가 대대로 투자해온 사업이기도 하거니와 영국에 하노버 왕조가 들어서고 나서는 영국 상류 사회에도 적극적으로 소개되어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하노버가 박람회로 유명해진 계기 또한 말과 관련된 산업 덕분.

광업의 경우에는 특히 남부의 하르츠(Harz) 지방을 중심으로 12세기에 이미 은광이 풍부한 것으로 유명했고 오늘날에는 철광석갈탄을 활발히 채굴하고 있다. 여담으로 가끔식 해외토픽으로 소개되고는 하는 소금 광산도 이 곳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심지어 원유도 나온다. 디젤 관련 기술이 맨 처음 개발될 당시 원유 채굴과 처리 기술들은 모두 이 부근에서 실험되고 실전되면서 발전되었다. 현대에는 다만 채산성이 낮아서 더이상 거의 뽑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첼레(Celle)지역에 가면 석유가 그냥 땅위로 새어 나오는 곳들도 여럿 있다. 첼레 근교의 비체(Witze)에 독일 석유 박물관이 있고 박물관 뒷뜰엔 과거 원유를 채굴하고 정유하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시추탑과 철도선도 그대로 있다.

20세기 이후로는 제조업도 크게 발전하였는데, 그중 자동차 산업이 가장 주목할 만하다. 볼프스부르크에는 지금도 폭스바겐이 자리잡고 있다. 하노버에도 수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설립되었었는데 자동차 산업이 막 시작될 때였던지라 경쟁에 치여 도산하는 회사들이 많았고 다른 회사에 흡수합병되기도 하였다. 자동차 부품 회사인 콘티넨탈은 여전히 하노버에 위치해 있다. 잘츠기터는 철강산업 중심도시로, 북독일에선 가장 규모가 크다.

21세기부터는 대개 그렇듯이 서비스업 또한 강세를 보이고 있으며, 독일 최대 여행사인 TUI도 본사가 하노버와 베를린에 있다. 하노버는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박람회 도시로, 폐지되기 전까지 CeBIT도 매년 하노버에서 열렸다. 아무래도 지리적 장점이 크게 작용하는데, 남부 독일을 빼면 정중앙에 위치해있는 데다가, 쾰른/뒤셀도르프와 베를린을 잇는 동서선과 함부르크와 프랑크푸르트를 잇는 남북선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고속도로와 철도, 공항도 그렇게 건설되어 있기 때문에 매력적인 장소. 게다가 독일 표준어 지역이니, 작센이나 바이에른 같이 같은 독일인도 알아듣기 힘든 곳에 비해 언어장벽도 낮다.

니더작센 주가 북해에 닿아있기 때문에 해안관광이 존재하지만, 발트해와는 달리 북해는 한국의 서해처럼 갯벌이기 때문에 섬으로 배타고 가지않는 이상 모래사장은 찾기 힘들다. 대신 내륙 지방에 다채로운 관광지들이 존재한다. 뤼네부르크의 하이데 지방도 매년 꽃구경 외에도 등산객들로 붐비는 곳이며, 작센-안할트 주와 튀링겐 주와 삼분하고 있는 하르츠 산악지대도 주요 관광지역. 다른 두 주보다 더 산세가 높은 쪽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겨울엔 스키도 탈 수 있다. 하멜른과 힐데스하임도 외국인이 많이 찾는 역사적 관광지역이다.

6.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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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더작센 주의회의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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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립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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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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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90/녹색당
24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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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을 위한 대안
18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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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적
146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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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 직후~1960년대 초반까지는 군국주의의 잔재가 상당한 지역이었고, 2차대전 이후 서독 최초의 네오나치 정당이 반짝 하기도 했다. 그러나 1968년 이후 정치적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며 사민당의 텃밭으로 변모했다. 특히 하노버 일대와 그 남부인 괴팅겐 지역, 오스나브뤼크 지역, 북서부 끝자락의 프리슬란트는 60년대 이후로 오랫동안 사민당의 아성이었다. 반면 니더작센의 서부 농촌 지방은 기민당 우세지역, 동북부 농촌 지방은 기민당, 사민당 경합지역. 2차대전 이후 2016년까지 12명의 주총리 중 8명이 사민당 출신이니 말 다했다. 참고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도 니더작센 출신이며 니더작센에서 주 총리를 하다가 독일 연방 총리가 된 사람이다. 즉 정치적 기반이 니더작센. 2016년 현재 주총리는 사민당의 슈테판 바일 전 하노버 시장이다.

다만 2000년대 중반부터 근 10년간 기민당이 반짝 강세를 보였다. 독일 연방 대통령이 되었다가 불명예 퇴임했던 기민당의 크리스티안 불프가 당시 주총리를 맡았었다. 1980년대 주정부가 원자력 폐기물 매립지를 유치하려고 함에 따라 이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를 등에 업어서 동맹 90/녹색당이 대안정당으로 급부상하기도 한 지역이다. 사민당과 함께 적녹 연정을 이루고 있는 상황.

하노버와 브라운슈바이크 사이의 지역감정이 유명하다. 둘 사이에 파이네(Peine)라는 조그만한 철강산업 도시가 있는데 서로 동파이네(Ost-Peine)니 서파이네(West-Peine)니 깎아 내려 부른다. 가령 브라운슈바이크 입장에선 하노버는 파이네의 서쪽 지역이라는 뜻으로 서파이네라고 부르는 것. 과거 권력 이동과 관계가 있는데, 본래는 브라운슈바이크가 이 지역의 중심이었으나 하노버 공국과 왕국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하노버로 중심지가 이동했기 때문이다. 브라운슈바이크 사람들 입장에선 박탈감이 있는 것이고 하노버 입장에선 말도 안되는 과거 감정을 가지고 몇 백년 지난 지금도 떼쓴다고 생각한다.

오스트프리슬란트는 낙후된 이미지가 하도 강하다 보니 같은 니더작센의 타 지방민들로부터도 만만하게 취급당하곤 했다. 이렇게 주류 독일인들에게 멸시받은 역사가 길다보니 시골임에도 자신들을 평등하게 대해준 사민당을 밀어주었다.

6.1. 2022년 니더작센 주의회 선거

*
2022년 10월 치러진 주의회 선거에서 사회민주당이 33.4%, 기민련이 28.1%를 득표했다.[11] 녹색당은 14.5%[12], AfD는 10.8%를 차지해 5년 전보다 득표율이 4.7% 치솟았다.[13] 자유민주당(FDP)은 4.7%, 좌파당은 2.7%로 주의회 진입에 실패했다.

사회민주당 소속인 슈테판 바일 주총리는 11월 녹색당과의 적녹연정으로 정부를 구성하여 연임에 성공했다.

7. 언어

독일의 표준어는 하노버 지방 방언을 기준으로 한다. 독일은 신성 로마 제국 시절 수많은 공국, 백국, 주교령, 자유도시영방국가로 분리되어 있어 표준어 개념 정립이 매우 늦었는데, 마르틴 루터종교 개혁 이후 여러 문학가들에 의해 독일어 연구가 진행되면서 처음에는 작센마이센 지역의 언어가 표준으로 취급되다가 작센 방언이 다른 지역에서 알아듣기도 힘들 정도로 하도 특이한 관계로 점점 하노버 쪽으로 기울었다. 특히 표준 독일어의 가장 큰 분별점은 r의 발음법.

반면 그 외의 북부 대다수 지역은 저지 독일어(Niederdeutsch 또는 Plattdeutsch)라는 사투리를 쓴다. 독일인들에게는 그럭저럭 익숙한 사투리라고 할 수 있겠지만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어휘들을 사용하기도 한다. 특히 동프리슬란트 방언는 일반적인 독일인들도 알아듣기 힘들다. 저지독일어의 영향으로 북독일에서 Hallo 대신 Moin(모인)이란 인사법이 더 많이 사용된다.

7.1. 관련 문서

8. 종교

니더작센의 최대 종교 종파는 개신교이다. 약 48.5%의 인구가 개신교. 그 중에서도 루터교회가 절대 다수다. 가톨릭은 약 17.3%. 그 외 34%가 무종교.

하노버를 관할지역으로 두는 루터파 하노버 지역 개신교회는 독일 전체 루터파 개신교회 중에서도 지주 역할을 할 정도로 규모면에서 가장 크다. 중심 교회는 하노버 구시가지에 있는 마르크트교회이다. 원래 가톨릭 성당이었으나 종교개혁 이후 루터교 소유가 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한번 파괴되었다 복원된 역사를 갖고 있다.

한국인들이 흔히 개신교라고 하면 떠올릴 개혁교회들은 오스트프리슬란트, 그중에서도 엠덴을 중심으로 한 네덜란드 국경지대에 몰려 있다. 북서독일-바이에른 개혁교회 총회(Synode evangelisch-reformierter Kirchen in Bayern und Nordwestdeutschland)라는 교단으로 이름처럼 니더작센뿐 아니라 바이에른과 구동독에 있는 극소수 개혁교회 노회들도 이쪽에 소속되어 있으며 레어(Leer)라는 조그마한 마을에 총회 본부가 있다. 신학적으로는 신정통주의를 받아들였고 동성애에 관대하지만 예배 양식이나 건축 등에서는 전통적인 양식을 상당수 유지하고 있다. 네덜란드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교회건물 보존이 잘 되어있는 편이다. 인접한 네덜란드 흐로닝언, 드렌터 주의 교회들은 절반 이상이 주택이나 레스토랑 등 다른 건물로 개조되었다.

주 전체적으로 개신교가 강세인 곳이지만, 힐데스하임과 오스나브뤼크는 가톨릭이 어느 정도 살아있다. 두 지역 중에서는 가톨릭 세가 강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에 인접한 오스나브뤼크 쪽이 가톨릭 인구가 더 많다. 종교 개혁 시기에 대대적으로 개신교를 받아들인 북독일 지역에서는 이 두 교구만이 폐지를 면하고 살아남아 이후 북독일 지방 가톨릭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

9. 주가

니더작센의 노래

10.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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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행정 구역 }}}}}}}}}

11. 관련 문서



[1] 영어로는 'Lower Saxony'. 직역하면 낮은 곳에 위치한 색슨족의 땅이다.[2] 오히려 구 동독 영역이었던 오늘날의 작센주 보다도 작센이란 이름의 정통성이 더 크다. 니더작센에 있던 작센 공국이 해체된 이후 작센 공작을 칭한 아스카니아 가문을 거쳐 마이센베틴 가문이 작센 선제후가 되면서 과거의 마이센 변경백국이 작센 선제후국이 되었기 때문이다.[3] 팔렌(Falen)은 평지를 뜻하는 말이다. 서쪽 평지, 동쪽 평지.[4] Engern. 영국의 지역명인 잉글랜드와 동일 기원을 가진다. 영국인을 주로 이루는 앵글로색슨족을 말할 때의 앵글로는 앵글인을 말하며 이들은 유틀란트 반도 중부에서 기원했다. 그리고 이들이 이 엥게른의 명칭의 기원이 되었다. 색슨은 작센족의 영어명이다.[5] 독일 왕국의 건국 때부터 있던 5대 부족 공국 중 하나다. 나머지 4개는 프랑켄, 슈바벤, 바이에른, 로트링겐. 튀링겐도 건국 당시 독립적인 제후령 영토였지만 공작 지위는 아니었다.[6] 팔츠 선제후는 칼뱅파였던 지메른계의 대가 끊기면서 가톨릭 신자였던 노이부르크계의 필리프 빌헬름이 물려받았다.[7]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을 도운 대가로 1701년 프로이센 왕국이 된다.[8] 다만 바로 인정받지는 못했고,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도중인 1706년 바이에른 선제후국쾰른 선제후국제국추방령을 당하고 나서야 다른 선제후들의 인정을 받았다.[9] 스웨덴 국왕 아돌프 프레드리크의 동생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가 물려받았다. 여담으로 아돌프 프레드리크 국왕은 러시아 제국 표트르 3세의 6촌 아저씨로, 표트르 3세와 결혼한 예카테리나 2세의 외숙부이기도 했다.[10] 당시 미군의 군정 통치지역은 독일 남부지역이었으나 미군의 병참선(해운) 유지의 필요성으로 브레멘시는 미국에 넘겨졌다. 이는 미국이 영국 식민지이던 시절부터 브레멘이 미국과 독일을 이어주는 항로를 개척하고 유지한 역할을 하였던 이력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레멘하펜엔 브레멘을 통해 미국으로 이민간 사람들의 역사와 자료를 보관 전시하는 이민 박물관이 있다.[11] 5년 전보다 득표율이 각각 3.5%P(사민당), 5.5%P(기민련) 하락한 수치이다.[12] 5년 전보다 득표율이 5.8% 상승했다.[13] 전국/지방 선거를 통틀어 AfD가 득표를 늘린 것은 2년 반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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