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1] | 엑토르 카세나베 (Héctor Cazenave) |
생년월일 | 1914년 4월 13일 |
사망년월일 | 1958년 9월 27일 (향년 44세) |
국적 | 우루과이 | 프랑스 |
출신지 |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
포지션 | 라이트 풀백 |
신체조건 | 172cm | 69kg |
소속팀 | 데펜소르 스포르팅 (1934-1936) FC 소쇼몽벨리아르 (1936-1939) 데펜소르 스포르팅 (1940-1943) |
국가대표 | 8경기 0골 (프랑스 / 1937-1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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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루과이, 프랑스의 전 축구 선수.2. 생애[2]
2.1. 선수 생활
2.1.1. 클럽
카세나베는 1934년 데펜소르 스포르팅에서 본격적인 축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그는 데펜소르에서 뛰다 1936년, FC 소쇼몽벨리아르의 영입 제안을 받고 프랑스에 건너갔다. 당시 소쇼는 전성기를 맞아 디비지옹 1 우승권의 성적을 거두던 강팀이었고 소쇼는 1936-37 시즌에 디비지옹 1 준우승, 쿠프 드 프랑스 우승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카세나베는 아직 팀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던 터라 쿠프 드 프랑스 결승전 선발 라인업에 그의 이름은 없었다.
1937-38 시즌부터 카세나베는 소쇼에서 중용받기 시작했고 골키퍼 로랑 디로르토, 소쇼와 대표팀 주장 에티엔 마틀레르와 함께 단단한 수비진을 구성했다. 이들은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도 그대로 출전했고 디비지옹 1에서는 팀 역사상 두번째로 디비지옹 1 정상에 올랐다. 그들이 버틴 소쇼의 수비진은 30경기에서 26골을 실점했고 카세나베는 29경기에 출전했다.
1938-39 시즌의 소쇼는 주전 선수들의 이탈로 한때 강등권까지 떨어졌다가 6위로 지난해보다 덜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그러다 1939년 가을,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카세나베는 고국 우루과이로 돌아가 친정팀 데펜소르에서 다시 뛰게 되었다.
그는 이후 3시즌동안 68경기를 데펜소르에서 더 뛰었다.
2.1.2. 국가대표
카세나베가 소쇼에서 중용받기 시작하자 1937년 10월 10일, 스위스를 상대로 그는 프랑스 대표팀에 데뷔할 기회를 얻었다.이후 카세나베는 1938년 월드컵 전까지 친선 경기에 5차례 더 출전했고 이 5경기에서 프랑스는 잉글랜드에 2대4로 패한 것을 제외하면 3승 1무로 꽤 선전했다.
카세나베는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도 소속팀의 동료들인 로랑 디로르토, 에티엔 마틀레르와 호흡을 맞췄고 이 수비진은 8강 이탈리아전에 패배, 탈락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프랑스는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에 1대3으로 패했고 이것이 카세나베의 마지막 대표팀 경기가 되었다.
3. 수상
3.1. 클럽
- 디비지옹 1 우승 1회: 1937-38(FC 소쇼몽벨리아르)
- 쿠프 드 프랑스 우승 1회: 1936-37(FC 소쇼몽벨리아르)
- 디비지옹 1 준우승 1회: 1936-37(FC 소쇼몽벨리아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