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7-09 15:49:51

역마

1. 개요2. 줄거리3. 등장인물4. 기타

1. 개요

1948년에 발표된 김동리의 단편소설. 1948년 1월 "백민"에 실렸다가 1950년에 정음사(正音社)에서 같은 이름으로 간행한 단편집 "역마"에 수록되었다.[1]

전라도와 경상도의 물줄기가 만나는 화개장터의 주막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학창시절에 국어 좀 파봤다면 어렴풋이 내용을 기억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역마살이 붙은 주인공 이름이 성기임을 알고 킬킬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거장이라 추앙받는 김동리답게 한국 고유의 운명에 대한 정서를 그리 길지 않은 내용에 잘 풀어내고 있다. 인륜과 운명을 거스르지는 못하지만, 그것 또한 이치임을 알고 편히 순응하는 그리 슬피지도 않은 우리네 정서가 짙게 묻어나 있다. 다만 운명론적 관점보다는 개인이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게 당연시되는 현대 사회(와 현대에 제작된 여러 작품들)에 익숙해진 현 시점의 학생들이 보면 약간 갸우뚱할 수도 있다.

길지 않으니 전문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사건전개 방법에 입체적 구성이 있는 등 여러가지 소설 요소들 덕에 수능, 모의고사에 자주 출제되는 지문이다. 2016년 4월에는 고3 학평에서 이것을 각색한 버전의 지문이 나왔으며, 2016년 6월 고1 모의고사에도 나왔다.

2024학년도 EBS 수능특강에도 수록되었다.

2. 줄거리

화개장터에서 주막을 하는 주모 옥화[2]는 외아들 성기와 단둘이 살아가고 있다. 주막의 전 주인이자 지금은 세상을 떠난 옥화의 어머니는 36년 전 화개장터에 온 남사당패 사내와의 사이에서 옥화를 낳아 혼자 딸을 길렀고, 옥화 역시 떠돌이 중과의 사이에서 성기를 낳았다.

옥화 모녀는 성기에게도 3대째 내려오는 역마살이 있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하고, 역마살을 고치기 위해 성기를 절에 보내 아주 승려로 만들려고 하거나 여자랑 어떻게든 붙여주려고 갖은 애를 쓰나 성기는 도통 관심을 보이지 않고 어디론가 떠나고만 싶어한다. 옥화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성기의 역마살은 심해지고... 그러던 중 체장수와 젊은 처녀 계연을 손님으로 들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체장수는 노는걸 좋아해 젊을적 남사당패를 꾸려 이곳 화개장터에서도 하룻밤 놀고 간 시절도 있으나 현재는 10대 중반 정도 되는 딸아이와 함께 행상을 돌며 먹고살고 있다. 옥화는 계연과 성기를 이어주려고 은근히 바람을 넣고 성기 또한 계연에게 관심을 가져 곧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성기와 계연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한편 옥화는 계연의 머리를 빗어주다가 계연의 귀 뒤에 있는 작은 사마귀를 보고 무언가를 직감한다. 그리고 며칠 후 체장수와 계연은 주막을 영영 떠나버리고 그 충격에 성기는 몸져눕는다.

옥화는 앓아누운 성기에게 체장수가 바로 36년 전 화개장터에 놀러와 하룻밤 놀고 떠난 옥화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즉 계연은 성기의 이복이모였던 것. 옥화는 체장수의 과거 얘기를 듣고 계연의 귀 뒤에 있는 사마귀가 자신에게도 있다는 점을 미루어 진실을 알아채었고 아들에게 자신을 원망하지 말라며 눈물짓는다.[3]

이듬해서야 성기는 기운을 차리고 대뜸 어머니에게 엿판을 맞춰달라고 한다. 보름 뒤 성기는 엿판에 이야기책과 방물, 엿 몇 판을 얹고 어머니와 하직한 후 육자배기를 흥얼거리며 발 가는 대로 하동으로 떠난다. 이 결말부의 풍경 및 상황 묘사가 그야말로 백미다.
성기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산나물이 화갯골에서 연달아 자꾸 내려오는 이른 여름의 어느 장날 아침이었다. 두릅회에 막걸리 한 사발을 쭉 들이키고 난 성기는 옥화더러, "어머니, 나 엿판 하나만 맞춰 주." 하였다. "…………." 옥화는 갑자기 무엇으로 머리를 얻어 맞은 듯이 성기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지도 다시 한 보름이나 지나, 뻐꾸기는 또다시 산울림처럼 건드러지게 울고, 늘어진 버들가지엔 햇빛이 젖어 흐르는 아침이었다. 새벽녘에 잠깐 가는 비가 지나가고, 날은 다시 유달리 맑게 개인 화개 장터 삼거리 길 위에서, 성기는 그 어머니와 하직을 하고 있었다.

갈아입은 옥양목의 고의 적삼에, 명주 수건까지 머리에 잘끈 동여매고 난 성기는 새하얀 나무 엿판을 걸빵해서 느직하게 엉덩이 즈음에다 걸었다. 윗목판에는 새하얀 가락엿이 반 넘어 들어 있었고, 아랫목판에는 팔다 남은 이야기 책 몇 권과 간단한 방물이 좀 들어 있었다.

그의 발 앞에는, 물도 함께 갈리어 길도 세 갈래로 나있었으나 화갯골 쪽엔 처음부터 등을 지고 있었고, 동남으로 난 길은 하동, 서남으로 난 길이 구례, 작년 이맘때도 지나 그녀가 울음 섞인 하직을 남기고 체장수 영감과 함께 넘어간 산모퉁이 고갯길은 퍼붓는 햇빛 속에 지금도 환히 장터 위를 굽이 돌아 구례 쪽을 향했으나, 성기는 한참 뒤 몸을 돌렸다. 그리하여 그의 발은 구례 쪽을 등지고 하동 쪽을 향해 천천히 옮겨졌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겨 놓을수록 그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져서, 멀리 버드나무 사이에서 그의 뒷모양을 바라보고 서 있을 그의 어머니의 주막이 그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갈 무렵이 되어서는 육자배기 가락으로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가고 있는 것이다.

3. 등장인물

4. 기타

참고로 사마귀는 유전질환이 아니기 때문에 사마귀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 만으로 혈연관계라고 하기는 힘들다. 비슷한 경우로,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는 허생원과 동이가 부자지간임을 암시하는 장치로 두 사람이 모두 왼손잡이라는 설정이 나오는데, 마찬가지로 왼손잡이 역시 유전과의 상관관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4] 그냥 문학적 장치 정도로 이해하자. 20세기 초는 아직 유전학이 지금만큼 발달하지 못했고, 유전 형질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 현대보다 미미했음을 감안해야 한다.


[1] 어디까지나 우연이지만 처음으로 발표한 해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남북이 사실상 분단되었고 단편집에 실렸을 때 6.25 전쟁이 벌어졌다. 운명을 받아들이고 방랑길을 떠나는 결말과 연결해 생각해보면 굉장히 묘한 부분이다.[2] 임신된 시점으로 역산하면 36살이 된다.[3] 참고로 체장수 역시 역마살 체질이였는데, 메밀꽃 필 무렵에서 두 사람이 똑같은 왼손잡이라는 것을 묘사해 부자관계를 암시했던 연출처럼 성기와 체장수의 역마살 체질 역시 혈연관계를 암시한다.[4] 그래도 사마귀는 바이러스성 질환이라 아예 유전적인 요인이 없는 반면, 왼손잡이는 통계적으로 부모 중 왼손잡이인 사람이 있으면 자식도 왼손잡이일 확률이 적게나마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