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의 고대국가 발전단계 분류에 대한 다양한 학설 | ||||
나(那) 성읍국가, 군장사회 부족국가 | → | 나부(那部)체제 연맹왕국 부족연맹왕국 | → | 중앙집권국가 |
聯 연이을 련 | 盟 맹세 맹 | 王 임금 왕 | 國 나라 국 | |
중국어 | [ruby(联, ruby=lián)][ruby(盟, ruby=méng)][ruby(王, ruby=wáng)][ruby(国, ruby=guó)] [롄멍왕궈] | |||
일본어 | [ruby(連, ruby=れん)][ruby(盟, ruby=めい)][ruby(王, ruby=おう)][ruby(国, ruby=こく)] [렌메이오코쿠] | |||
영어 | confederated kingdom allied kingdom allience kingd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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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연맹왕국(聯盟王國)은 여러 부족국가[1]들이 맹주국을 중심으로 연맹체를 이루고, 하나의 국가가 된 것이다. 한국사의 고대국가 발전단계 중 두 번째 과정이다.2. 상세
여러 부족들이 모여 하나의 국가를 이룬 후에 하나의 국가라는 틀 안에서 연맹국가를 이룬 각각의 부족들이 각자 맡은 지역을 다스리는 것으로 서유럽의 봉건제와도 비슷했다. 아니, 비슷하다 정도가 아니라 사실 신성 로마 제국은 10세기 초까지 이름만 봉건제고 실제로 부족연맹국가가 맞았다. 그런데 이 시기는 오히려 관료제가 형식상이나마 있던 프랑스보다도 독일의 왕권이 더 강했던지라고조선이 언제부터 연맹왕국 단계로 진입했는지 기록이 남아있지 않지만 고고학적인 자료를 보았을 때 기원전 6~5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요서지역에서 요동지역으로 영토를 확대하면서 군장국가 단계에서 벗어나 연맹왕국으로 발돋움한 것으로 보이며. 준왕이 위만을 박사로 임명하고 서쪽 변방 100리의 영토를 하사했다는 기록을 보았을 때 봉건제에 가깝게 운용된 측면도 보인다. 이후 여러 국가들이 연맹왕국 단계에 진입했으며 여기서 연맹체를 이루지 못한 성읍국가는 주변국에 흡수 당하여 피지배민족으로 살아가게 된다. 또한, 연맹왕국은 봉건국가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단합이 쉽지 않아 패권 확장이 어렵고, 따라서 중앙집권국가로 발전하지 못한 연맹왕국은 결국 도태되어 사라진다.
율령을 반포하고 모든 백성들에게 일률적인 법을 적용함으로써 중앙정부의 권한과 영향력이 커지면 왕권이 강화되고 중앙집권국가가 되는 것이다.
원래 역사학계에서는 성읍국가를 가리켜 부족국가(部族國家)라고 하였고, 이 부족국가가 몇 개 모여 연맹체를 이룬 것을 부족연맹체(部族聯盟體)라고 하였으나, 부족국가라는 용어를 성읍국가(城邑國家) 혹은 군장국가(君長國家)로 대체하면서 부족연맹체라는 용어는 연맹왕국으로 대체되었다.
3. 목록
- 고조선의 경우에는 기록이 자세하지 못하나 준왕이 직접 신하들에게 수십 리의 토지를 내려주어 통치권을 주었다는 점이나 역계경이 우거왕의 정책에 반발해 사람들을 이끌고 이탈했다는 대목이 나오는 것을 보면 정가와자 문화 단계로 진입한 기원전 6세기에서부터 멸망시기까지 연맹왕국 체제를 갖추웠음을 알수있고, 중앙집권제도가 확고하게 정착되지 못했다는 점도 알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연맹왕국 체계가 고조선이 위급한 상태에 다다랐을 때에는 오히려 독이 되기도 했다. 준왕이 고조선을 중흥시켰음에도 결국 위만에게 찬탈당했다거나 한무제의 침공 당시에 고조선이 전투에서 선전했지만 결국 내부분열로 멸망을 면치 못한 대목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것을 보면 고조선이 오래 존속한 것이 신기할 정도. 다만 평시에는 주변으로 영토확장에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에 마냥 단점만 있는 체제는 아니기는 했다.
- 부여는 사출도라고 하여 마가, 우가, 저가, 구가의 4개의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권한이 막강하여 국가에 재난이 닥치면 왕의 책임이라고 하여 왕을 죽이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앙집권국가로 발전하지 못하고 결국 고구려에 흡수된다.
- 고구려는 계루부, 절노부, 순노부, 소노부, 관노부의 5개의 부족이 다스렸고, 오부라 하여 처음에는 수도와 지방을 각각 5개 지역으로 나누어 다스렸으나 소수림왕 대에 율령을 반포하고 중앙정부에서 지방관을 보내어 직할통치를 하게 되면서 중앙집권국가가 된다.
- 마한은 수십여개의 성읍국가가 목지국을 맹주국으로 하여 연맹체를 이루었다. 후에 백제국이 점점 패권을 확장하면서 마한의 맹주가 되었다가 종국에는 마한을 통째로 삼키고 중앙정부에서 지방관을 보내어 다스리면서 중앙집권국가가 되었다.
- 진한은 그 실체가 불분명하다. 어느 나라가 맹주국이었는지조차 알 수 없으며, 경주의 사로국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맹주국이 되었다고 추측만 할 뿐이다. 사로국이 성장한 신라에 합병되었고, 최종적으로는 중앙집권화에 성공하여 삼한을 통일한다.
- 신라 역시 처음에는 사로 6촌이 함께 박혁거세를 임금으로 옹립하여 연맹왕국을 세웠고, 많은 지역들을 복속하면서 5세기까지도 연맹왕국의 모습을 보이다가, 중국식 왕호를 받아들이고 왕권 강화를 꾀하면서 중앙집권국가가 되었다.
- 변한은 가야가 되었는데, 연맹체였을 뿐 실제로 중앙집권화는 하지 못했고 결국 신라에 흡수합병되었다. 다만 주보돈 등 몇 학자는 대가야는 6세기쯤 되면 중앙집권화의 초보적 단계까진 진입했다고 보기도 한다. 결국 먼저 중앙집권화한 신라라는 트럭에 치여서 사라지긴 했지만. 아무튼 가야가 연맹왕국 단계에서 멸망했기 때문에 이 시대를 사국시대라 부르지 않고 중앙집권화에 성공한 고구려, 백제, 신라만을 지칭하여 삼국시대라고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