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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8 20:44:19

요르요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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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뤽스부르크 왕조
오톤 요르요스 1세 콘스탄티노스 1세 알렉산드로스
글뤽스부르크 왕조
콘스탄티노스 1세 요르요스 2세 파블로스 콘스탄티노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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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d5eaf><colcolor=#fff>
그리스 글뤽스부르크 왕조 제5대 국왕
요르요스 2세
Γεώργιος Β΄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Georgeiiofgreece.jpg
출생 1890년 7월 19일
그리스 왕국 아테네 타토이 궁전
사망 1947년 4월 1일 (향년 56세)
그리스 왕국 아테네
묘소 타토이 왕실 묘지
재위기간 그리스 국왕
1922년 9월 27일 ~ 1924년 3월 25일
그리스 국왕 (복위)
1935년 11월 25일 ~ 1947년 4월 1일
서명
파일:요르요스 2세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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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d5eaf><colcolor=#fff> 가문 글뤽스부르크 가문
아버지 콘스탄티노스 1세
어머니 프로이센의 조피 공주
형제자매 알렉산드로스, 엘레니, 파블로스, 이리니, 에카테리니
배우자 루마니아의 엘리사베타 (1921년 결혼 / 1935년 이혼)
자녀 없음
종교 정교회 (그리스 교회) }}}}}}}}}

1. 개요2. 생애3. 조상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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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그리스 왕국국왕. 그리스 국왕 요르요스 1세의 장손[1]이다.

2. 생애

콘스탄티노스 1세(당시 디아도코스[2])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독일 제국에서 군사훈련을 받는 동안 부왕이 퇴위하였고, 그리스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협상국에 가담하면서 왕위는 동생인 알렉산드로스가 이었다.

애초에 협상국에 참전을 주장했던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총리의 압력으로 양위한 건데, 요르요스 2세가 독일 제국에서 군사훈련을 받는 중이었기 때문에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도 분위기상 주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가 키우던 원숭이에게 물려 패혈증으로 갑자기 죽는 바람에 부왕이 복위하면서 다시 디아도코스가 되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Georges_II_et_Elisabeth.jpg

디아도코스 시절이던 1921년 루마니아의 엘리사베타와 결혼했으나 자녀가 없었고 1935년 이혼하면서 그리스 역대 군주 중 유일한 이혼남이 되었다.[3]

1922년 부왕이 튀르키예 독립 전쟁 패배의 책임을 지고 양위하여 즉위하였으나, 재위 중 1924년 공화정이 생기면서 퇴위했다. 그러나 그리스 제2공화국은 엄청난 혼란의 연속이었고, 결국 1935년 복벽으로 두 번째로 재위하게 되었다.

그러나 요안니스 메탁사스 장군 독재에 눌려 지냈고, 1941년 나치 독일그리스를 침공하면서 다시 망명 신세가 되었다. 처음에는 일단 크레타로 파천했으나, 독일 공수부대가 크레타도 점령하면서 이집트 왕국, 이후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종전 후인 1946년 3월 총선거에서 근왕파가 승리하고, 9월 국민투표에서 68%의 지지를 얻어 세 번째로 복위하였다. 하지만 반 년 만인 1947년 서거했는데 하필 그날이 만우절이라 처음에는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고 한다. 자녀가 없어 왕위는 동생 파블로스가 이었다.

3.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요르요스 2세
(George II)
<colbgcolor=#fff3e4,#331c00> 콘스탄티노스 1세
(Constantine I)
<colbgcolor=#ffffe4,#323300> 요르요스 1세
(George I)
크리스티안 9세
(Christian IX)
헤센카셀의 루이제 공녀
(Princess Louise of Hesse-Kassel)
러시아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여대공
(Grand Duchess Olga Constantinovna of Russia)
러시아의 콘스탄틴 니콜라예비치 대공
(Grand Duke Konstantin Nikolayevich of Russia)[4]
작센알텐부르크의 알렉산드라 공녀
(Princess Alexandra of Saxe-Altenburg)
프로이센의 조피 공주
(Princess Sophia of Prussia)
프리드리히 3세
(Frederick III)
빌헬름 1세
(William I)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아우구스타 공녀
(Princess Augusta of Saxe-Weimar-Eisenach)[5]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
(Victoria, Princess Royal)
작센코부르크고타의 공자 앨버트
(Prince Albert of Saxe-Coburg and Gotha)
빅토리아 여왕
(Victoria)

4. 여담

1896 아테네 올림픽에서 역도 경기가 개최될 때 당시 왕세자 신분이던 요르요스 2세가 이를 참관한 적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어 위키백과1896년 하계 올림픽 문서의 '역도' 항목에서는 다음의 일화를 소개하는데, 경기 진행을 위해 역기에서 바벨을 빼내던 진행요원들이 그 무게때문에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자, 보다못한 그가 이를 도운 일이 있었다. 이 일화의 요점은 요원들이 무거워하며 쩔쩔매던 바벨을, 당시 6살에 불과하던 요르요스 2세가 별 힘도 들이지않고 거뜬히 빼내었다는 것이다. 이에 관객들이 그의 강한 완력에 놀라서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자, 요르요스 2세가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그 바벨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올려서 내던지는 쇼맨십을 보였다고 한다[6].


[1] 아버지 콘스탄티노스 1세요르요스 1세장남이다.[2] 그리스 왕국에서 왕의 후계자에게 붙이던 칭호. 디아도코이처럼 그냥 후계자를 의미한다.[3] 이후 둘 다 공식적으로 재혼은 하지 않았다.[4] 니콜라이 1세의 차남이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외손자이다.[5] 파벨 1세의 외손녀이다.[6] Coubertin–Philemon–Politis–Anninos (1897), 70–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