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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양(기업)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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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양
O-DAE YANG[1] | 五大洋
파일:오대양 로고.svg
<colbgcolor=#000> 법인명 정식: 주식회사 오대양
영문: Odaeyang Trading Co., Ltd.
한문: 株式會社 五大洋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대표 박순자(창업주, 교주)
설립일 1984년 5월 31일
해산일 1990년 10월 1일
규모 중견기업
업종명 기타 민속공예품 제조업
본사 충청남도 대전시 중구 가수원동
(現 대전광역시 서구 가수원동)
경기도 용인군 남사면
(現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
분류 기업[A]
사이비 종교[B]
교세 약 80명 / 관련 피해 270여명

1. 개요2. 상세3. 관련 기사

[clearfix]

1. 개요

파일:오대양 로고.jpg
이것은 축복받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이것은 평화 깃든 땅
바로 오 대 양
실제 오대양 방송 홍보자료 중 ('학사원'으로 불리는 고아원에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한 아이가 부른 노래)[4]

대한민국의 과거에 존재했던 민속공예품 제조업체이자 사이비 종교.

2. 상세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987년에 발생한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의 오대양이 바로 이곳으로 이때 교주 박순자를 포함해서 다수가 시체로 발견된 후 회사 자체가 영원히 사라졌다. 그야말로 한국판 인민사원 집단자살 사건이다.

교주인 박순자는 1984년경기도 용인군 남사면[5]에 민속공예품제조업체인 주식회사 오대양[6]을 세웠지만 그 실체는 단순한 회사를 넘어서 종말론을 내세운 사이비 종교였다.

박순자는 과거에 여호와의 증인에 다녔고 그 뒤 기독교복음침례회, 일명 구원파에도 몸담았다가 이탈하여 독자적으로 기업을 가장한 종교 '오대양'을 만들었는데 일부는 '이탈은 위장일 뿐 실제로는 구원파가 외부의 돈을 끌어모으고자 만든 산하 계열사였고, 박순자는 구원파 대전지역 자금조달 책임자였다.'고 주장한다.

2014년 4월 16일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가 터지고 유병언 회장이 운영하던 청해진해운이 오대양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오대양 및 구원파,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이 다시 조명받았으며 언론에서 청해진해운의 모태가 되는 (주)세모의 막대한 자금이 오대양과 연관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즉, 시대가 흘러가면서 오대양 → 세모청해진해운으로 자금이 흘러갔고 이 모든 것의 뒤에는 구원파와 유병언 회장 일가가 존재한다고 언급되었다.

하지만 오대양의 자금 내역에 대해서는 박순자가 오대양 설립 이전에 물품 대금을 구원파 교인에게 사업관계로 송금한 사실이 있으나 오대양 설립 이전이며 그 후 한 차례 오대양에서 인형을 구입한 점 정도의 정상적인 거래가 확대해석되어 그러한 오해를 만든 것으로 밝혀졌고 유병언 회장 역시 오대양 관련해서 전부 무혐의였으며 오대양 사건은 1987년과 1988년, 그리고 1991년 세 번의 수사 및 조사 결과에서 외부 세력과 무관한 집단자살로 결론이 났다.

구원파에서는 당시 오대양과의 연결 누명이 억울했는지 시간이 꽤나 지난 2014년에도 당시 금수원으로 진입하려는 검찰에게 오대양 사건과의 무관함을 다시 한 번 밝혀 달라고 주장하기도 했고 실제로 검찰은 2014년 5월 21일 인천지방검찰청이 공문을 통해 오대양 사건이 "당시 수사기록 검토 결과 집단자살이 구원파 측이나 유병언 회장과 관계 있다거나 5공 정권의 비호가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된 바 없다."고 다시 한번 확인해 준 바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관련 기사


이후 기존의 기사들이 삭제되거나 정정, 반론 내용들이 기사 하단에 실렸다.


[1] 단순 대외상으로만 사용한 표기로, 정식 영문법인명을 비롯한 기업 명칭은 하이픈(-)을 뺀 'Odaeyang'이었다.[A] 민속공예품 제조업체로서의 주식회사 오대양.[B] 사이비 종교단체로서의 오대양.[4] 곡조 자체는 성탄절에 불리는 개신교 찬송가 중 "영광 나라 천사들아"를 개사한 것으로 보인다.[5]용인시 처인구 남사읍[6] 당시 오대양 본사는 충청남도 대전시 중구(現 대전광역시 서구) 가수원동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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