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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6 13:31:06

청해진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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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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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해운
파일:청해진해운 로고.jpg
기업명 정식: 주식회사 청해진해운
영어: Chonghaejin Marine Co., Ltd.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업종 해운 회사
설립일 1999년 3월 10일
해산일 2016년 5월 9일[1]
대표 김한식
주소 인천광역시 중구 항동7가 88[2]
사업자 번호 121-85-12571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웹 아카이브)[3]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4]

1. 개요2. 재판3. 논란 및 사건 사고

[clearfix]

1. 개요

세월호 참사의 선박인 세월호의 선사이다. 당시 대표이사는 김한식. 회사의 실소유자는 유병언으로 보도되었으나 판결, 정정보도를 통해 실소유주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유병언은 세월호 관계사들 실소유주 아니었다. 다만, 실소유주까지는 아니어도 간접적인 방식으로 청해진해운 경영에 개입했을 가능성은 부정되지 않는다.

1999년 3월 10일에 설립되었고 세월호 참사 이후 몰락의 길을 걷다가 2014년 5월 12일에 무기한 정지되었으며 2016년 5월 9일 폐업했다.

유병언 회장은 전두환 정권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과의 친분을 배경으로 한강 유람선 사업권을 따내면서 본격적으로 해운업에 뛰어들었고, 이후 그가 회장으로 있던 세모그룹은 5공 정권의 비호 아래 준재벌급으로 성장하게 됐다는 의혹이 있었다. 이와 반대로 인천지검이 2014년에 유병언 전 회장에게 5공의 비호가 없었다는 공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

1990년 당시 원광 유람선이 홍수로 떠내려와 세모의 유람선을 들이받으면서 충돌, 침몰하여 15명이 실종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해심원통보내용

직원에 대한 연간 안전교육비는 최저시급보다도 낮은 1인당 4천원. 유병언에게는 한달에 급여 천만원, 자문료 1500만 원을 줬으며 유병언 형과 장남 유혁기에게도 돈을 지급한 내역들, 게다가 청해진해운 사원 수를 감안하면 1년에 42만 원 가량을 안전교육에 쓴 셈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필수 법정교육이 전부 무료였기 때문에 예산에 잡히지 않은 것으로, 안전교육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다만, 말 그대로 전혀 하지 않은 게 아닐 뿐 안전교육 자체를 매우 부실하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인천-제주, 인천-백령도, 여수-거문도 등의 정기 연안여객선 사업을 주 목적으로 하고 있었으며 인천-제주 간 노선은 독점 운항해 왔었다. 여기에 투입된 배가 바로 마루에이 페리 출신의 오하마나호와 세월호. 2010년 2월에는 2대 주주로 있던 한강 수상택시 운영을 주목적으로 하는 수상 여객 운송기업 주식회사 즐거운서울을 흡수 합병하여 서울특별시 한강 수상택시 사업에 진출하였다. 등기상 본사는 제주시 제주항 제1여객터미널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본사가 아닌 제주지역본부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실제 본사 및 선적지(船籍地)의 기능을 수행하는 영업본부는 인천광역시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 내에 두고 있다. 그 외에도 부산-거제 여객선을 운항하고 있었는데 부산-옥포 구간을 운항하던 페레스트로이카호가 대표적이었으나 페레스트로이카호는 거가대교 개통 후 여수-거문도 항로로 이동하였다.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물어 같은 해 5월 12일 자로 해양수산부로부터 인천-제주 항로의 연안여객선 운송 면허를 취소당했으며 2016년에 폐업했다. 인터넷 홈페이지도 폐쇄되었다. 이 사고의 여파로 회장인 유병언은 도주 중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그의 장남인 유대균용인시에서 검거되었다. 대표이사 김한식, 그리고 세월호의 대리 선장이자 선장 이준석과 15명의 선원들은 구속 수감되었다.

항로 반납에 관해서 소송을 걸기도 했다. 결국 폐업되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청해진해운이 영업을 중단하며 인천-제주도간 노선은 그대로 운행 중지 상태였다가 2019년 하이덱스 스토리지가 현대미포조선에 710억원을 지불하고 주문한 최신형 카페리로 2021년 12월 10일부터 운항이 재개되었다. 새로 투입될 배 '비욘드 트러스트'[5][6] 호는 앞서 청해진해운이 운행하던 두 선박과 다르게 새로 건조한 최신형 카페리로, 제조사인 현대미포조선에서도 안전에 특히 신경써서 건조했다고 한다. 재개 계획 당시 기사 운항 재개 당시 기사

2. 재판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 의혹 사건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민사]세월호 침몰사고에서, 해양경찰의 구조업무에 과실이 인정되어 국가에 선주사와 함께 유족들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서울중앙지방법원 2015가합560627), 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7. 19. 선고 2015가합560627, 2016가합540934(병합), 2016가합554339(병합), 2016가합574418(병합), 2017가합522414(병합) 판결문 전문 2023년 1월 12일, 서울고법 민사4부(재판장 이광만 부장판사, 김선아·천지성 고법판사)는 세월호 참사 유족 228명(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원 신용락·이유정·김도형·정석윤 변호사)이 국가와 청해진해운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국가는 희생자 부모에게는 1인당 500만 원을, 다른 가족에게는 100만~3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서울고등법원 2018나2047920) [판결] 세월호 참사 유족들, 국가 상대 손해배상 항소심도 '국가 책임 인정'

3. 논란 및 사건 사고

3.1.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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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비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청해진해운/비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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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4년 4월 16일 잠정 영업중지되었다가 청산절차를 걸쳐 폐업한 것이 2016년이다.[2] 상법상 본점 주소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임항로 111(제주항 제1여객터미널)이었다.[3] 사고 직후인 2014년 4월 18일의 홈페이지[4] 사고 직후인 2014년 4월 18일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업데이트되지 않고 있다.[5] 파나마 선적, 국제해사기구 등록번호 IMO 9901386[6] 비욘드 트러스트의 뜻은 '진실된 믿음'이다. 즉, '세월호의 길을 걷지 않고 진실된 믿음으로 안전하게 운행하겠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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