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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23:21:12

오세암(애니메이션)

파일:오세암.jpg

1. 개요2. 등장인물3. 흥행4. 기타

1. 개요

정채봉 작가의 동명의 동화를 원작으로 한 극장용 한국 애니메이션. 하얀마음 백구의 마고21작. 감독은 성백엽. 하얀마음 백구의 작은 성공을 발판으로 만들어진 한국 감성 애니메이션으로, 2003년 5월 1일 개봉했다.

불교 석상에서 따온 그림체와 따뜻한 색감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동화나 원본 설화와는 달리 만화의 배경은 1950~60년대의 한국으로 추정된다.

28회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대상 수상 작품.[1][2] OST는 윤도현, 이소은'마음을 다해 부르면'.

2. 등장인물

본작의 주인공으로 감이의 남동생. 누나와 단 둘이 떠돌아다니는 거지 소년으로, 강가에서 스님들과 만나 절에 기식하게 된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성격으로 엄마가 먼 곳에 여행 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천방지축인 성격 때문에 절에서 잦은 사고를 일으켜 설정 스님과 관음암으로 수행을 떠나게 된다. 그러다 추운 겨울날 설정 스님이 식량과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마을로 내려가면서 관음암에 혼자 남게 된다. 설정 스님은 금방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지만, 암자로 돌아가던 중 폭설로 인해 사고를 당하여 제때 길손이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길손이는[3] 하염없이 스님을 기다리다가 식량까지 바닥이 나자, 스님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한[4] 암자 골방에 머물게 되는데 이때 골방에 있는 관세음보살 그림을 보게 된다. 길손이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보살 그림과 매일같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관세음보살을 보고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라고 묻는 장면은 영화의 가장 가슴 아픈 장면 중 하나기도 하다. 이후 추위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세상을 뜬다. 그러나 이때 길손이의 순수한 마음을 높게 본 관세음보살은 길손이를 더 이상 괴로움이 없는 곳으로 데려간다.
길손이의 누나로 어렸을 적 일어난 화재로 엄마를 잃었으며, 이때 가 눈에 들어가는 바람에 눈을 다쳐 실명한다. 스님들의 밥을 해주면서 절에 기식할 수 있게 되어 길손이와 다른 운명을 맞는다.[5] 마지막에 보살님을 만난 후 시력을 되찾았다.
남매의 어머니로 몇 년 전 화재로 인해 집에 불이 났을 때 남매를 위해 희생 하였다. 감이가 소중히 여기는 빨간색 댕기는 어머니의 유품이다. 딸의 생일날 선물로 준 거라고 한다.
부모가 없는 길손이와 감이 남매를 거두어줘 절에서 돌봐준다.
길손이의 말썽의 피해자이다. 추운날 옷을 벗고 물에 들어갔을 때 길손이가 몰래 옷을 훔쳐 달아나는 바람에 추위에 벌벌 떨은 적이 있다.
삶은 감자를 먹으라고 챙겨주는 등 남매를 자상하게 대해주는 인물.
길손이가 주워온 어린 강아지.
마을에서 동네에서 제일가는 말썽쟁이 형제[6]로 길손이를 괴롭히고[7] 심지어 절에서 감이를 괴롭히다[8] 길손이에게 제대로 얻어맞는다. 형제들 엄마의 행동이 가관인데 코피가 터진 첫째 종철이[9]만 보고 남매더러 고아라면서 질책하는 적반하장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 작품에서 꽤나 비난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나마 형제 중 동생이 울면서 용서를 비는 감이를 보고 엄마를 말리는 모습을 보이기는 한다.[10]

3. 흥행

상영 당시 전국 관객 145,000명으로 그닥 흥행을 못했고, 각 도시의 문화회관에 순회 상영했다. 이후 아이비젼엔터테인먼트가 VHS, 씨넥서스가 DVD를 각각 냈다가 2007년 엔터원에서 다시 냈고, 명절이나 공휴일 등지에 케이블 영화/애니 채널 등지에서 반복 편성됐다.

왜 성공하지 못했냐고 한다면 당시 국산 만화영화에 대한 무관심 및 냉대가 가장 큰 원인이고 만화영화 또한 주 대상으로 삼을 연령대가 불분명했다는 것도 한 요인일 것이다. 그럼에도 네이버 영화 기준으로 한국 애니메이션 중에서 1위를 차지했다.

당시 여러모로 침체기였던 한국 애니메이션계에 원더풀 데이즈란 작품 때문에 새로운 관심이 쏠린 상황이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초점이 원더풀 데이즈에 몰리는 바람에 오히려 이 작품은 묻혀버렸고, 운이 나쁘게 일본 애니메이션이 극장에서 상영되던 참이었다. 허나 이후 원더풀 데이즈도 한국의 애니 산업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문제가 많은 작품이 되어 버린 것도 있지만, 오세암을 보러 올 정도로 한국 만화영화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그다지 없었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고르는 사람들도 기왕 고르자면 이미 망해버린 국산 애니메이션 대신 일본 애니메이션을 고르는 상황이었다.

오세암을 극장에서 본 사람들은 시나리오도 괜찮았고 작화도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호평을 했지만, 입소문이 그다지 퍼지지 못했고, 상영시간도 제멋대로 바뀌다가 막을 내리게 됐다.[11]

이에 당시 오세암의 열혈팬들은 2003년 5월 19일부터 6월 1일까지 서울 스카라극장에서 재상영을 성사시켰다. 이 작품은 개봉 첫날부터 하루 1~2회씩만 상영되는 등 편법 상영 끝에 곧 간판을 내리는 불운을 겪었다. 국내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결성한 한국애니메이션서포터즈는 영화 개봉 후 생겨난 '오세암' 동호인 모임들과 연계해 조기종영 반대와 재개봉 요청을 내걸고 2500여명의 서명을 받았다. 이들은 서명운동 외에도 방송의 경우 애니메이션이 소홀히 다뤄지는 점을 감안해 방송국에 탄원서를 보내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관련 기사

해외에서는 큰 호평을 받아 2004년 세계 최고의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프랑스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2002년 국내 명작 애니메이션 마리이야기에 이어 두번째 그랑프리 (대상)의 영예를 거머쥐었지만, 그 때는 이미 국내에서 흥행 실패의 딱지가 붙은 뒤였다. #
2005년 토론토 어린이 국제영화제에서 애니메이션 부문 관객상을 수상하였다.
한국적인 소재와 외국인들의 시각으로 봤을 때도 훌륭한 작품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모로 비운의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품을 끝으로 마고21은 2009년에 폐업했고, 회사 도메인도 외국사이트가 차지했고 성백엽 감독도 2006년 중국과 프랑스 업체들의 지원을 받아 후속작으로 바리데기 신화에 바탕한 '바리공주'#를 기획하고 캐릭터까지 완성해 프리 프로덕션 단계를 마쳤지만, 끝내 개봉하지 못했다. 그는 2009년 일본에서 TV 드라마로 크게 성공한 겨울연가 애니메이션판### 감독을 맡았다는 기사가 났으나, 그 이후로는 여타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아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러다가 2023년에야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에 참여하여 굉장히 오랜만에 근황을 전했다.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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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장편 부문을 수상했던 대표작은 <붉은 돼지>(1993년 미야자키 하야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1995년 타카하타 이사오), <나는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다>(1997년 빌 플림톤), <뮤턴트 에일리언>(2001년 빌 플림톤), <마리이야기>(2002년 이성강 감독) 등 유명한 작품들이 수상했다.[2]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는 세계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중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3] 자신이 너무 말썽을 피워서 스님이 자기를 미워하기 때문에 돌아오시지 않는 게 아닌가 후회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4] 예전에 문둥병에 걸린 스님이 그곳에서 죽었기 때문이다.[5] 원작의 마지막 장면으로 볼 때에 부처에 대한 믿음 자체가 사라져버려, 아마 절을 떠나 어떻게든 자기 길을 찾았을 듯 싶다.[6] 첫째의 이름은 종철인데 둘째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7] 길손이가 받은 삶은 감자를 가로채고 던지기까지 했다.[8] 머리를 잡아당기고 치마를 들추기까지 한다.[9] 종철이는 그 이전에 길손이의 감자를 뺏어먹기까지 한다.[10] 말리면서 하는 말이 "저 누나 장님이래 앞이 안보인데" 였다. 그러니까 그걸 알면서도 괴롭힌 거다.[11] 대부분의 관객들이 오세암 애니메이션 게시판에 호평을 남겼지만, 상영관이 찾기 힘들거나 적다라는 글도 올렸다.[12] 봄여름가을겨울로 활동한 베이시스트 최원혁, 로켓트리로 활동했던 기타리스트 남세훈[13] 과거 영아 사망률이 높던 시절엔 이름을 천하게 지으면 귀신이 안 데려 간다, 즉 무사히 성장한다는 속설이 있어서 일부러 천한 아명을 부르곤 했는데,(어느 정도 성장하거나 성인이 된 후 제대로 된 이름으로 개명시켰다.) 이와 연관 지어보면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다.[14] 1~3학년용은 <우당탕탕 재동이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