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前 축구선수 | ||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오스카르 로르 Oskar Rohr | |
본명 | 오스카르 쿠르트 "오시" 로르 Oskar Kurt "Ossi" Rohr | |
출생 | 1912년 3월 27일 | |
독일 제국 만하임 | ||
사망 | 1988년 11월 8일 (향년 76세) | |
서독 만하임 | ||
국적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 |
직업 | 축구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 |
소속 | 유스 | 푀닉스 만하임 (?-?) VfR 만하임 (?~1930) |
선수 | FC 바이에른 뮌헨 (1930-1933)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 (1933~1934) RC 스트라스부르 알자스 (1934~1940) FC 세테 (1940~1941) VfR 만하임 (1945) TSV 슈바벤 아우크스부르크 (1946) FK 피르마젠스 (1947~1948) SV 발트호프 만하임 (1948~1949) | |
국가대표 | 4경기 (나치 독일 / 1932~19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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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前 축구선수. 주포지션은 스트라이커로, RC 스트라스부르 알자스에서 138경기 출장, 118골을 기록한 뛰어난 스트라이커였다.최초로 해외 진출을 한 독일 선수로도 유명하다.
2. 클럽 경력
2.1. FC 바이에른 뮌헨
푀닉스 만하임과 VfR 만하임 유스를 거쳐 성장하던 로르는 1930년 FC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했다. 주전으로 활약하며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총 리그 84경기 90골을 넣으며 경기 당 1골 이상씩 꾸준히 넣어줬던 선수이다.하지만 이후 급여 문제를 겪으며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으로 이적했다.
2.2.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
이적은 했지만 경기에서 뛰는 건 쉽지 않았는데, 취업 비자 없이 정착을 시도했기에 추방을 당하게 됐다. 1934년 3월이 되어서야 취업 비자 문제가 해결이 되어 뛸 수 있었지만, 결국 1934년 8월 다시 추방되며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에서의 커리어는 어이없게 끝나게 됐다.2.3. RC 스트라스부르 알자스
추방된 이후 RC 스트라스부르 알자스와 계약을 맺으며 다시 커리어를 이어갔다. 데뷔전에서만 1골 4어시를 기록하며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다. 이후 약 6년 간 뛰며 136경기 출장 118골을 기록했다.2.4. 이후
그의 활약에 힘입어 그의 활약상은 계속 이어질 것 같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하여 로르의 모든 커리어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1945년에 2차 대전의 종전으로 다시 축구계에 복귀할 수 있었지만, 이미 전성기가 끝난 나이임과 동시에 훈련을 진행할 수 없었기에 그의 기량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이후 여러 팀을 전전하다 1949년 은퇴를 선언했다.3. 국가대표 경력
1932년부터 1933년까지 4경기에 출장하여 5골을 넣었다.4. 플레이 스타일
비가 와 물이 고인 경기장에서 득점을 하는 로르
매우 정확하고 정교한 킥을 구사하는 선수였다.
5. 수상
5.1. 대회
- FC 바이에른 뮌헨
-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1931-1932
-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
- 스위스컵 우승:1933-1934
5.2. 개인
- 디비지옹 1 득점왕:1936-1937
6. 관련 언사
로르는 경기장에 있는 8000명의 관중에게 영감을 주는 선수이다.
Völkischer Observer
Völkischer Observer
7. 여담
- 1942년 반프랑스 활동 및 공산주의 활동을 하였다는 혐의로 독일 경찰에게 체포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