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만화가. 본명은 오선일.
1949년생으로 1968년 '방랑의 기사'로 데뷔했다.
주로 공장제 만화를 그리지만, 아이큐 점프에 '춤추는 센터포드','최강의 스트라이커','못말리는 골게터'를 연재한 적이 있다. 80년대 대본소 공장만화의 지존중 한명이었으며 이현세, 박봉성, 고행석, 하승남, 황재 등등과 대본소 시장을 나눠먹은 원로급 만화가.
처음에는 그림체가 70년대 일본 소년만화의 그림체였지만 80년대 중반 이현세 만화의 유행 이후 이현세 만화체를 많이 흡수해 화풍의 변화가 생겼으며 특히 대부분 작품의 주인공을 맡는 유비는 더벅머리에 뾰쪽한 코의 생김새가 황재 만화의 주인공 용태풍과 거의 비슷하다.
오일룡을 정의하는 키워드는 바로 축구.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축구만화. 작가 스스로 축구 매니아임을 인증하며 주구장창 축구만화만을 그린다. 가끔 조폭만화나 무협지에도 도전한 적이 있고 첩보액션물로서 월간 점프에도 연재한 피닉스 시리즈 등이 있지만, 대본소의 공장제 체계에서 수많은 축구만화들을 그려낸 작가는 오일룡 뿐이다. 물론 축구의 큰 틀안에서는 다양한 파생이 있어서 고등학교와 프로축구, 세계리그 외에 SF와 판타지 등의 퓨전축구물도 많이 볼 수 있다.
공장제 만화의 특성상 관리안하고 그린 작품의 수준은 보장할 수 없지만, 잡지 등에서 제대로 그린 만화는 고증이나 연출이 상당히 뛰어난 편이다. 예를 들어 '춤추는 센터포드'의 캐릭터인 브라질 청소년 대표팀의 에이스 펠레 2세의 얼굴은 실제 펠레의 젊은 시절과 대단히 흡사했다.
또 레귤러 등장인물은 삼국지에서 이름을 따와서 유비, 관우, 장비, 조조 등을 사용한다. 주로 유비가 주인공이고 장비는 백두산급 포지션으로 유비의 죽마고우인 마당쇠 역할(?)을 맡으며, 조조는 유비에 맞서는 귀공자급 타입 라이벌로서 열폭하거나 찌질대는 경우가 종종 있고 또 여포를 가끔 똘만이 겸 옵션으로 데리고 나온다. 관우나 조자룡은 별로 안 좋아하는지 아예 안 나오거나 비중이 낮은 경우가 많다.[1]
거기다 90년대 초 캡틴 츠바사의 주인공들을 얼굴만 바꿔서 글 그림 오일룡으로 해적판이 나온 흑역사가 있는데, 작가 본인이 직접 관여한건지 아니면 출판사가 이름을 무단도용한 것인지는 아직 불명. 초등학생인 츠바사가 얼굴만 오일룡 그림체의 유비로 바꿔 달고 나와 상당히 4차원스러운 만화였다. 이것 뿐만이 아니라, 베르단디나 아이즈에 나온 요시즈키 이오리 얼굴을 그대로 베끼지 않나, 여러 일본만화 인물들을 트레이싱하는 일도 많이 벌였다. 사실 1980년대까지도 한국 문화계나 산업계 전반의 저작권 의식이 희미했었고 1990년대에도 그 영향이 남아있었다는것을 생각하면[2] 그리 이상하지도 않은일이기는 했다. 당대 만화잡지라 해도 상황이 크게 다를것이 없었던것이 Y세대 제갈공두나 악바리의 연재가 대놓고 승인날 정도의 상황이었기도 했다.
2000년대에는 만화가를 그만두고 여러 인생을 해보고 싶다고 하여 24인승 학원 버스를 운전했다. 버스기사로 6달 정도 일하다가 체력적으로 힘들어 쉰 그는 스크린 골프장 사업을 했다가 크게 망한 바 있다. 그나마 아내가 하던 레스토랑 양식업을 이어받아 한식을 바꿔 제대로 파주에서 낙지 식당을 하면서 어느 정도 성공해 식당 사업을 하고 있는 중. 지금도 종종 만화를 그리긴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연재하지 못했다고 한다. 사실 오일룡이 전성기를 누리던 것이 대본소 만화였던 터라 만화방과 대여점의 수가 나날이 줄어드는 판이라 전국 다 뒤져봐도 이젠 400곳 남짓 남고 해마다 문닫고 이젠 추억 속으로 사라질 존재가 되어버릴 상황인데다가 만화잡지는 이미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있는 상황이고, 그러다보니 웹툰계에 진출하려고 하고있지만 여러가지로 애로사항이 많다는 모양이다. 그나마 만화 카페로 부활하긴 해도 이것도 예전처럼 대본소용 만화는 무시당하는 웹툰같은 걸 출판하거나 대본소랑 다른 출판만화 위주로 운영되기에 여기 판매 만화책도 힘든 상황이다.
[1] 그런데 여담이지만 반대로 아이큐점프 연재작들에선 오히려 조조가 '최강의 스트라이커'에서 라이벌 자리를 지켰던 걸 빼면 '못말리는 골게터'에서는 그냥 팀 동료, '춤추는 센터포드'에서는 아예 안 나올 정도로 비중이 없다.[2] 아닌게 아니라 방송계에서 미국이나 일본 TV프로그램 포맷을 베낀다거나 하는일이 90년대까지도 빈번하게 벌어졌고, 2000년대에도 그 영향이 부분적으로 남아있었다. 헌데 2018년에 김성모는 트레이싱을 하며 네이버에 웹툰 연재하다가 걸려 연재 중단과 같이 트레이싱한 슬램덩크 등 일본만화로 인하여 일본 방송에 얼굴과 같이 보도되는 개망신을 당할 정도이니...아직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