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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6 01:24:35

이현세

이현세
李顯世, Lee Hyunseh
파일:이현세 작가 최신 프로필.jpg
출생 1954년 9월 19일 ([age(1954-09-19)]세)
대한민국 강원도 울진군
(現 경상북도 울진군)[1]
본관 전의 이씨[2]
학력 월성국민학교
경주중학교
경주고등학교
데뷔 1979년 '저 강은 알고있다'

1. 개요2. 상세3. 생애4. 주요 이슈
4.1. 만화방 체제의 개편4.2. 아마게돈 애니메이션화4.3. 천국의 신화의 수위4.4. 스토리 작가 소송
5. 현재
5.1. 만화 이외의 활동5.2. 정치 활동
6. 여담7. 작품
7.1. 대표작7.2. 야설록 내 작품7.3. 기타
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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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만화 작가이자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 문화컨텐츠교육센터 대표교수, 한국만화가협회 부회장(1992~1996), 경찰홍보 자문위원, 한국만화영상진흥원 3대 이사장(2009~2012) 등의 직함을 갖고 있고 2006년에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도 맡았다. 2019년부터 현재까지 대구 웹툰캠퍼스 이사장을 맡고 있다.

2. 상세

대한민국의 만화가 중 인지도 면에서 1, 2위를 다투는 인물. 지금은 구세대 작가로 명성이 좀 떨어진 것 같지만 전성기였던 7, 80년대에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한국만화계의 지존 중의 지존이었다.[3] 특히 최고 히트작인 공포의 외인구단은 국민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이를 통해 TV 광고에 섭외될 정도의 지명도를 확보하였다.

좋게 말하자면 선이 굵고 강렬한 작품을, 나쁘게 말하면 철저하게 시대의 수요에 맞게 마초스러운 작품을 주로 그렸고, 이런 작풍은 1980년대 당시의 한국정서에 맞았기에 대중의 공감을 얻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4]

상당수의 작품에서 만화같지 않은 스토리와 작품성에 대해 모든 이들이 예찬한다.

자주 쓰는 캐릭터로는 까치(오혜성), 엄지, 마동탁 등이 있다.[5] 자세한 사항은 이현세의 레귤러 멤버 참조.

캐릭터는 동일하더라도 일단 한번 작품을 내면 그 속편격인 작품은 절대로 내지 않는다는 신조를 지켜왔다고 한다. 그만큼 다양한 소재에 도전하고자 하는 도전정신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한편, 이현세의 일대기를 다룬 KBS 1TV <인간극장> '고등어와 크레파스'가 95년 방영됐는데 영화배우 박세준이 주인공 이현세 역을 맡았다.

3. 생애

1954년 9월 19일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출생.[6] 경주고등학교 졸업.

원래 장래희망은 화가였고, 미술적 능력도 매우 뛰어나다. 소묘 그림을 보면 입이 떡 벌어져 말이 안 나올 정도다. 정통 실력파이자 극화체로 봐서는 현존 만화가 중에 1, 2위를 다툴 정도의 실력파. 한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젊은 시절에 일본 만화를 국내 실정에 맞게 베끼는 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그때 수많은 종류의 그림들을 모사하다 보니 자신의 독특한 그림체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파란 만장한 개인사 이야기는 사실 어깨동무 등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데 그게 각각 달랐는데, 당시 매카시즘으로 인한 연좌제가 서슬퍼렇던 시절이라서 함부로 말하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어깨동무나 인간극장 재연드라마에 의하면 큰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병으로(어깨동무) 혹은 군대에서(인간극장)[7] 사망했고, 생부는 군 미필을 위한 도주로 장기적으로 가출 상태였다고 한다.

문제는 2011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혔단 건데, 일제강점기 때 돈 벌려고 만주로 간 둘째 큰아버지가 6.25 전쟁조선인민군 장교로 돌아왔고, 수복 후에 그게 문제가 돼서 큰아버지가 헌병대에 끌려간 후 행방불명이 된 것이다. 말 그대로 부역자로 몰려서 처형되고 시체가 암매장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집안사 탓에 이현세는 태어나자마자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청상과부가 되어버린 큰어머니에게 양자로 입적되었는데, 친부는 작은아버지로[8][9], 친모는 작은어머니로 알고 자랐고, 이 사실을 스무살 무렵에야 알게 되어 오랫동안 방황했다. 헌신적인 두 어머니는 그런 이현세를 무조건 사랑으로 감싸주었고, 그 덕분에 이현세는 방황하는 중에도 만화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998년 4월 15일 이현세의 집을 침입한 10대 강도 2명이 돈 60만원을 훔치고, 이현세와 아내를 위협하고 난 후 이현세의 큰어머니를 살해한 비극적인 사건을 겪기도 하였다.기사 이후 범인들은 같은 해 5월 19일 검거된 후 9월 26일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현세 노모 살인사건 문서 참조.

대학을 못 간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원인이 언급되고 있는데, 일단 이현세 자신은 색약으로 인해 미대 진학을 못 했다고 이야기한 바가 있다.[10] 그리고 토크쇼 '땡큐'에서는 생활고도 생활고였지만 연좌제로 인한 불이익이 너무 커서 대학을 갈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대학을 못 갔지만 지금은 대학교 교수가 되어 교정을 누비고 있으니, 어찌 보면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

4. 주요 이슈

4.1. 만화방 체제의 개편

1982년 공포의 외인구단의 성공은 당시 가장 규모가 컸던 만화시장인 만화방의 시장구조를 근본적으로 뒤바꾸었다. 공포의 외인구단 이전에는 대부분의 작품이 단편 위주였는데, 이는 빨리 완결을 보고 싶어하는 독자의 요구, 책을 갖추기 쉽다는 업주의 요구, 현금 회전이 빠르다는 출판사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공포의 외인구단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독자의 요구가 "장편은 좋지만 완결은 빨리 보고 싶다"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이로 인해 출판사에서는 장편을 빨리 완결지을 수 있는 작가들을 선호했고, 작가들은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스토리, 작화, 배경 등 분업 체제를 도입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분업 체계 자체가 "만화방 시스템"이라는 용어로 굳어졌다. 분업이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문제는 빠른 완결을 위해 작품 질이 저하되었다는 점[11]과 이름만 달 뿐 작품에 손도 대지 않는 일부 작가에 의한 착취 구조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유명 작가의 경우도 직접 작품을 관리하는 A팀과 그렇지 않은 B팀으로 나누는 경우가 많았다.

공포의 외인구단 성공 신화는 이러한 장편 만화방 만화를 모두 이현세의 아류로 만드는 부작용도 일으켰다. 이현세는 모작들에 민감하게 반응했고[12], 1984년 까치, 엄지, 마동탁을 의장 특허 등록하였다.# 1980년대 후반에는 이현세 프로덕션을 설립, 문하생들에게 독립의 기회를 주는 한편 이현세 아류들과의 전쟁을 선포했으나 독립한 문하생들이 경쟁에서 이기지 못해 결국 1990년대 초 이현세 프로덕션을 해체했다.

당시 유일하게 성공적으로 독립한 문하생이 박원빈으로[13], 이후 박원빈은 야설록이 스토리를 맡은 제2의 킬러 시리즈로 대본소 만화를 모조리 느와르물로 바꿔놓는 대박을 터뜨렸고[14], 이현세는 오히려 이에 영향을 받아 회색도시를 통해 느와르물 대열에 합류하였다. 이로 인해 작가들의 작품들이 개성 없이 획일화된 데다 1990년대 초반 일본만화 개방 전 해적판들의 범람과 도서대여점 출현 및 만화방 폐점, 1990년대 후반 청소년보호법 발효로 인해 경쟁력을 잃었고, 이현세도 1990년대 중반 만화방 시스템 탈피를 선언하고 잡지 및 신문 연재에 집중했다. 그 밖에 문정후김성모가 이현세 문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4.2. 아마게돈 애니메이션화

아이큐 점프 연재작이었던 아마게돈은 90년대 초 애니메이션 산업개발 열풍이 불어닥칠 당시 애니화되어 극장에 걸렸지만 쫄딱 망했으며, 이후 출시된 플라이트 슈팅 게임이나 그보다 더 뒤에 제작된 RTS 게임 역시 쫄딱 망했다.

아마겟돈 만화의 중간에 주인공이 눈알에서 광선을 쏴서 공격해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은 심령소녀 마이(Mai, the Psychic Girl)라는 이케가미 료이치(크라잉 프리맨, 생츄어리의 작가)의 초능력자 배틀 소재의 만화에서 주인공의 눈알에서 쏘아지는 공격을 이현세가 아마겟돈에서 그대로 베꼈다. 애시당초 이케가미 료이치의 그림체가 이현세의 여러 만화에서 나온다. 이현세의 표절은 나무위키에서 자주 거론되지만 계속 삭제되고 있다.

이현세 본인의 말로는 너무 진행이 이상하고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게 최대 패인. 결과적으로 아마게돈의 애니메이션화는 이현세의 경력과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일대 자폭테러가 되어버렸다. 이현세 본인도 자신이 만화가로서는 몰라도 애니메이터로서의 능력은 너무나 없다는걸 절감했다고 하지만, 이후 애니메이션과 교수도 겸직하며 애니메이션 작업에 여러가지로 관여하며 인연을 이어갔다.

사실, 아마겟돈의 실패와 이현세가 애니메이션과의 교수가 된 기이한 일은 출판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같은 "만화"로 치부해 버리는 국내 높으신 분들의 인식부족과 90년대 당시 애니메이션 쿼터제의 미시행, 만화 산업에 대한 멸시등이 그 원인이라고 보는 쪽이 타당하다. 당장 교수가 된 것만 해도 김영삼 정권 때 쥬라기 공원 쇼크로 인한 컨텐츠 산업 진흥법이 통과된 후 전국의 4년제 혹은 2년제 대에서 우후죽순격으로 애니메이션과나 만화과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인지도 있는 인물을 섭외해서 홍보는 해야겠고 진짜 애니메이터 중에서는 그렇게 인지도 있는 인물이 없고 하다 보니 만화가인 이현세가 애니메이션 학과 교수가 된 것이다.

이현세는 이후 심형래 같은 경우와 달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렇게 만들면 안 된다는 아마게돈 백서를 만들어서 상세한 제작내역 및 제작비, 수익 및 제작 일화를 공개했다. 다만, 이후 방송 인터뷰에서 "재수가 없어서 실패했다"는 식으로 발언하여 약간의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자세한 건 아마게돈(애니메이션) 참고.

4.3. 천국의 신화의 수위

흔히 천국의 신화수간강간, 근친 등의 요소로 인해 예술과 외설의 경계로 인한 논란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정확한 내용이 아니다. 정확하게는 표현의 자유와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논란이다.

문제시된 내용은 원시시대에 대지의 여신형 캐릭터가 동물들과 정사를 한 뒤 동물들을 낳는 것 등이나, 이에 대한 묘사는 농담 하나 안 보태고 성교육 비디오보다도 볼 게 없다. 대지의 여신은 원시인들이 자기 동물들을 죽여버리고 잡아먹는데 크게 상심하여 반 자살 기믹으로 사라지며 두 번 다시 등장하지 않는데, 이는 일종의 야만과 전설시대의 종언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시나리오 전개상으로도 크게 부자연스럽거나 문제될 부분이 없다.

실제로 검사 측은 상황이 예술과 외설의 판가름으로 흘러가자 성인용 천국의 신화에 무혐의 처리를 내리고, 미성년자보호법 2조를 근거로 청소년판 천국의 신화를 약식기소하게 된다. 문제시된 내용을 수정하여 발매된 청소년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연상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결국 이현세는 1998년에 벌금형을 선고받고 이에 항소했으나 2000년에 1심에서 패소, 2002년에 2심에서 승소, 2003년에야 최종심에서 미성년자보호법 2조가 위헌판결을 받게 되며 승소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의 스트레스 때문에 애초 100권 기획이었다고 하는 천국의 신화는 훨씬 짧게 끝났다. 자세한 사항은 천국의 신화 문서 참조.

4.4. 스토리 작가 소송

한편 히트작 중에 실제로는 스토리 작가가 따로 있는 만화가 대부분으로, 김민기야설록 같은 스토리 작가들이 주로 이현세표 히트작들의 스토리를 써냈다. 이현세가 직접 이름을 명확히 밝힌 야설록의 경우와 달리 초창기 멤버였던 김민기는 나중에 공포의 외인구단 저작권 문제로 소송을 걸었다.

김민기와의 불화는 공포의 외인구단이 만화 이외의 다른 매체로 옮겨지던 시절부터였다. 김민기는 "스토리가 만화로 만들어졌을 때는 만화가의 재능이 앞서는 일이겠지만 영화로 만들어졌을 경우에는 원작자의 몫"이라고 주장했고, 이현세는 "극본을 갖고 와서 써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흥행에 성공했다고 더 많은 고료를 요구하는 것은 당치도 않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은 지옥의 링을 마지막으로 결별했고, 김민기는 이후 고행석과 콤비를 이루어 활동하였다.관련링크

이 문제에 있어서는 스토리 작가에게 선금을 지급하는 거래 방식이 관건이다.[15] 당시 대본소 시스템은 총판의 책 판매부터 출판사의 고료 지급까지 대부분의 거래가 현금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책이 얼마나 팔릴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한 시장 상황에서 업계 종사자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따라서 출판사 및 작가는 선금 지급을 통해 스토리 작가에게의 의무를 다했고 이후의 만화 판매의 리스크는 출판사 및 작가가 짊어진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만화를 벗어난 영화화 및 애니메이션화에 대해서는 스토리 작가의 지분에 대한 재협의가 필요하다는 스토리 작가측의 주장도 타당하다.



5. 현재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스테레오 타입 캐릭터 등에 독자들이 식상함을 느끼자, 물론 다른 많은 80년대 만화가들보다는 낫지만, 작품 활동이 많이 줄고 학습만화를 많이 그리고 있다. 그로 인해 다양한 방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통해 경험을 쌓은 허영만과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16]

2007년~2010년까지 스포츠서울에서 버디라는 골프만화를 연재했는데, 이 역시 그저그런 만화라는 평이 많았다. 다만 나름대로 재미 있다는 평도 많았던 편이고, 2007년 대한민국 만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버디' 이후 '비정시공'이라는 작품을 연재하다가 완결했고, 2010년에는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레드파탈'이라는 작품을 새롭게 연재하다가 신문 만화로 70회도 못 채우고 완결해 버렸다. 그 뒤 2011년 신작 소식이 없던 와중에 2012년 위암 초기 판정을 받고 수술에 들어가면서 한동안 작품을 쉬어야 했다. 그래서인지 많이 수척해지고 흰머리가 엄청 늘어났다. 2013년 '만화 삼국지' 10권을 냈으며, 2014년 8월 6일부터 일간스포츠 지에 '남벌' 이후 20년만에 승마를 소재로 한 신작을 연재하게 되었다. 하지만 수목에만 연재하고 소리소문없이 2015년 7월초에 끝났다.

그러다가 2016년에 난데없이 천국의 신화 후속을 네이버 웹툰에 연재중이다.

그리고 네이버 화요웹툰의 한국만화거장전에서 '아버지의 추억'이라는 단편집을 발표했다. 작중 시점은 30년 만에 왔다는 언급과 9살 당시 일어난 일을 회상했다는 점 등을 보아 회상 당시 39살인 1993년, 회상했던 과거는 당시 9살이었던 1963년으로 추정된다.

2022년에는 네이버 웹툰에서 매주 화요일에 늑대처럼 홀로를 연재하고 있다.

5.1. 만화 이외의 활동

고우영, 강철수, 허영만과 마찬가지로 외도를 많이 한 작가다. 퀴즈프로 게스트나 취재 여행을 겸한 리포터 활동으로 만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얼굴은 익히 알 정도다.[17]

인천 연수경찰서 마스코트인 '연폴', 서울 수서경찰서 마스코트 '미스터-미스 수폴', 경찰청 캐릭터인 포돌이, '아동안전지킴이집' 안내 그림이 이현세 화백의 작품이다. 또한 부산에 손수 벽화를 제작하기도 했고 맥주와 프린터 같은 TV 광고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는데, 사투리가 심해서 목소리는 대체로 더빙에 의존했다.[18] 2011년에는 한국투자증권의 광고에 딸과 함께 출연하여 데셍솜씨를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2014년에는 한국공항공사의 새 캐릭터인 포티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게임 제작에도 참여한 적이 있다. 초이락 게임즈와 손을 잡고 베르카닉스라는 온라인 게임의 제작도 참여하고 게임을 바탕으로 그린 만화도 기획 및 제작[19]했지만 이 베르카닉스라는 게임이 한국 온라인 게임사에 한 획을 긋는 대형 흑역사가 되어버렸다.

5.2. 정치 활동

정치 성향은 보수 성향으로, 2002년 대선 당시 이우정, 황미나, 신동헌 등 선후배 작가들과 함께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며 <만화로 보는 이회창>, <이회창의 아름다운 인생>을 그린 바 있었다. 그 외에도 1992년 대선 당시 정주영 후보를 지지하는 만화인 <감자꽃 트랙터>를 그리는 등 정치 자체에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권영진 대구광역시장 후보를 지지했다. #1, #2

6. 여담

7. 작품

7.1. 대표작

7.2. 야설록 내 작품

7.3. 기타

8. 관련 문서


[1] 울진군은 1962년에 경상북도로 편입되었다.[2] 양간공(襄簡公) 이서장(李恕長)의 후손이다.[3] 70년대 이상무고우영에게 밀려 늘 2등하던 허영만이 1등을~! 외치면서 노력했더니 80년대에는 후배 이현세 때문에 또 2등했다는 말이 있다. 물론 이현세도 70년대에도 인지도가 있긴 했다. 결국 대놓고 편집장에게 "허선생은 2등전문이구먼"이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4] 1990년대 토크쇼 김한길과 사람들에 출연해서 고백한 바에 의하면 1980년대에도 이런 질문을 꽤 받았고 대학가 축제때 게스트로 초대돼서 운동권 학생들에게 비슷한 질문과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절치부심해서 낸 작품이 '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라는 작품.[5] 참고로 마동탁 타입의 캐릭터는 어디서나 안경을 쓰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신라 하대(통일신라)를 배경으로 한 만화에 등장해도 안경을 쓰고 있다.[6] 출생 당시는 강원도 울진군으로, 1962년경북으로로 편입되었다. 유년기에서 고교(경주고 출신) 시절까지는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성장하여 경주시고향으로 여기고 있다.[7] 90년대 만화가 소개 서적에는 국민방위군 사건의 희생자라고 했다.[8] 이현세가 9살 되던 때, 경주역에서 일하다가 발 밑에 있던 전선을 보지 못하고 밟으셔서 감전사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은 그때 삼촌인 줄로만 알아서 별로 슬프지도 않았다고, 심지어 장례식장에 얼굴도 안 비췄다고 한다. 이에 대한 일화는 이현세의 자서전 '고등어와 크레파스'에 나와 있으며,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자서전이다.[9] 이때 있었던 일도 안타깝기 그지 없는데 어린 이현세가 크레파스 산다는 핑계로 작은 아버지(친부)에게 용돈을 받았지만 노는데 써버린 후 다시 작은 아버지에게 용돈 준다고 하셨는데 안주셨다고 거짓말해서 다시 돈을 받아 크레파스를 샀다. 그리고 그날이 작은 아버지가 사망해 이현세가 산 크레파스를 결국 보지 못하고 말았다. 친부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 거짓말이었으니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이현세의 가슴에 얼마나 사무쳤을지 짐작도 하기 힘들다.[10] 2014년 6월 28일 안동 특강에서 스스로 이렇게 밝혔다. 생활고로 대학을 가지 못했다고도 한다.[11] 다만 그 이전에도 대본소 만화의 질이 좋았냐면 그건 아니었던것이 사실 1970년대 당시에는 독점출판사가 횡포를 부리며 만화가를 착취하던 시기였고 표절도 강요했을 정도로 막장이었던 시기였기는 하다. 이현세는 그 막장시기에서 벗어나면서 빛을 본 경우라 할수있고.[12] 이후 대본소 시스템의 대부로 떠오른 박봉성의 경우도 이현세 캐릭터 모방으로 시작하였으나, 출판사 사장과 장태산의 주선을 통해 이현세로부터 캐릭터 사용에 대해 묵인받았다.[13] 공포의 보디체크, 스트라이커의 전설 등이 "글:이현세"를 달고 출간되었다.[14] 그러나 박원빈도 일본 만화 표절을 많이 저질렀다. 보스의 두얼굴을 그대로 베낀 꿇어! 보스의 두얼굴이라든지 여러 느와르가 일본만화를 베끼면서 욕먹었고 대본소 만화가 시들해진 2000년대 와서 묻혀졌다.[15] 신세계(감독, 각본), 악마를 보았다(각본), 혈투(감독, 각본), 부당거래(각본)을 쓴 박훈정도 만화 스토리 쓰면서 미리 선금을 받아서 놀란 적이 있었다고 한다.[16] 하지만 허영만 역시 '날아라 수퍼보드' 초반이나 '따따뚜뚜'나 '망치' 등을 보면 안 좋은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17] 여담이지만 이렇게 외도를 많이 한 작가임에도 허영만 사칭 사기범이 2011년에도 버젓히 돌아다니다가 적발됐다. 자세한 건 허영만 항목 참고.[18] 텔레비전 광고로 나온 맥주 광고와 프린터 광고는 성우 한상덕 씨가 연기했다.[19] 본인이 직접 그린 건 아니다.[20] 대중에겐 역사 과장이라고 공격 받고 환빠에게는 역사를 줄였다고 공격 받았다고 한다.[21] 여자 만화가에는 황미나처럼 훨씬 엄청난 주당들이 있다. 특히 황미나는 이현세 본인도 인정할 지경이다.[22] 이현세 만화가를 '삼류 만화가' 라고 말하며 배운건 없고 뒷처리만 하다가 나왔다고 말했다.[23] 황미나 화백이 각본을 잠깐 썼다.[24] 이 당시는 정부주도의 PC보급이 한 차례 끝나고(교육용 PC 사업), 경제가 호황기를 맞으며 가정에 PC가 급속도로 보급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입문서가 쏟아졌다. 특히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이었고 PC통신은 널리 퍼지진 않았기 때문에 컴퓨터를 배우려면 "책"이 있어야 하는 게 상식이던 시대였다. KBS [시사토론 진행자이던 박원홍이 노트북을 방송에 들고 나와 유명세를 탔고 그 여파로 컴퓨터 입문서까지 냈으며, 전유성도 "컴퓨터 1시간만 배우면 전유성만큼 한다" 같은 책을 내기도 했다. 이현세의 컴퓨터를 배우다 시리즈도 비슷한 시대적 배경을 타고 기획된 작품이다.[25] 이름처럼 오로지 남자만 살고 인구도 딱 10명이다. 엄지가 놀라서 두 아이들은 대체 뭐죠? 라고 하자 촌장이 말하길 멀리 떨어진 곳 작은 마을이 있는데 거기서 아기를 훔쳐온다는 것. 오로지 10명에 맞춰 인구를 유지하기 위하여 마을에서 누가 죽으면 그 죽은 수만큼 아기를 훔쳐와 마을에서 키운다는 것. 놀란 엄지가 아기를 도둑질하다니? 라고 하자 촌장은 "대신 이 마을에서 살면 180살은 거뜬히 살지, 게다가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 그런만큼, 우린 오로지 이 마을에서만 살아야해! 밖으로 나가면 무서운 일이 벌어지지." 물론 엄지가 시계 속에 감춰든 전기장치로 감전시켜 촌장을 기절시키고 두 아이를 데리고 마을 밖으로 나가는데 이 두 아이가 차량. 그것도 대형 트럭을 맨 손으로 같이 들어올려 내던질 정도였기에 촌장이 하던 말은 사실이었다.[26] 촌장도 엄지를 보고 내가 경고했지! 우린 마을 밖으로 나가면 안된다고 했잖아! 라면서 막으려던 야구단 관계자들을 내던진다. 그도 힘이 장사였던 것.엄지는 아무 말도 못하고 아퍼하면서 잘못했어요! 촌장님 이러던 두 녀석을 끌고가면서 그냥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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