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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1 20:24:35

전의 이씨

{{{#!wiki style="margin: -15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160><tablebordercolor=#000000> 全義 李氏
전의 이씨
}}}
관향 <colbgcolor=#fff,#191919>세종특별자치시
시조 이도(李棹)
중시조 이천(李仟)
집성촌 인천광역시
광주광역시
경기도 성남시·연천군
경상남도 의령군
경상북도 고령군
충청북도 청주시·충주시
전라남도 나주시·영광군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완주군
평안남도 용강군
황해남도 벽성군
인구 164,189명(2015년)
웹사이트 전의예안이씨화수회

1. 개요2. 상세3. 분파4. 시조 묘소5. 항렬6. 인물
6.1. 고려6.2. 조선6.3. 일제 강점기6.4. 현대
7. 집성촌

[clearfix]

1. 개요

세종특별자치시(옛 전의군) 지역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2. 상세

대한민국 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해 있는 옛 전의군 지역(소정면, 전의면, 전동면)을 본관으로 하는 대한민국한국의 성씨. 시조는 고려 초 개국 공신인 이도(李棹)인데, 초명은 치(齒)이며, 시호는 성절(聖節).

본래 공주[1]에 세거했는데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을 정벌하고자 남하하여 금강에 도착했을 때, 강물이 범람하자 태조를 도와 무사히 강을 건너게 했다.[2]

그래서 태조로부터 도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고려통합삼한개국 익찬2등공신(高麗統合三韓開國翊贊二等功臣)에 책록되었으며, 벼슬이 삼한삼중대광태사(三韓三重大匡太師)에 이르고 전산후(全山侯), 성절공에 봉해졌다.

그 후 전의(全義) 이성산(李城山) 아래로 이거(移居)하여 정착 세거하니 후손들은 본관을 전의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시조 이도(李棹)의 묘소는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유천리에 있으며, 묘소는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을 자랑할 정도로 명당이다. 철도를 끼고 건너편에는 사당이 자리하고 있고, 향사일은 음력 3월 3일과 10월 2일이다.

인구는 2015년 통계 기준으로 164,189명으로, 이(李) 성을 가진 가문 중에서 전주 이씨, 경주 이씨, 성주 이씨와 광주 이씨 다음으로 많은 6번째의 인구순위를 보이고 있다.

이 가문에서 고려시대 정승(첨의정승- 문하시중)1명, 종2품이상 고관17명 배출은 물론, 조선시대에는 상신(정승 -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5명, 청백리9명, 문과장원10번(9명), 무과장원4명, 대제학1명, 판서25명 이상, 대사헌6명 이상, 삼도수군통제사13명 등 당상관(정3품이상 고관)95명 이상을 배출했고, 문과급제자(전의이씨 178명, 예안이씨 12명)는 도합 190명, 무과급제자44명, 생원진사급제자는 600명이나 배출해냈으며 현대 사회에 들어서도 대법원장,국회의원, 국회부의장,[3]광역자치단체장, [4]장관 등을 배출한 명문 가문이다.

2015년 통계를 기준으로 일반적인 인구비례와 비교해보면 당연히 넘사벽인 수도권을 제외하면 충청[5]에 많이 거주하며 전라북도[6]에도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경상도[7]에 사는 인구는 숫자 자체는 수도권 다음으로 많지만 일반적인 전국 인구비례와 비교하자면 상대적으로 비율이 적은 편이다.

분당 미니신도시가 개발되면서 기관별 토지보상비 지급금액 상위 랭크 9위에 올랐다. (경기도 분당구 대장동 소재지)

참조 (약317억원)

3. 분파

전의 이씨는 고려 고종 당시 해전으로 몽고를 격파한 이천 장군의 자손들부터 분파가 갈리게 되는데, 세 아들 중 맏이인 이자원의 자손들을 중심으로 한 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와 둘째 혼이 예안백(禮安伯)에 봉해지면서 생긴 문장공파(文莊公派) 또는 예안 이씨, 셋째 이자화의 자손들을 중심으로 한 전서공파(典書公派)로 갈린다. 이중 둘째 문장공파(예안 이씨) 후손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적다.

가훈은 가전충효(家傳忠孝) 세수인경(世守仁敬)으로, 평소에 효심이 지극했던 이정간 공이 80세에 102세의 노모 앞에서 색동 옷을 입고 재롱을 부렸고, 이를 안 세종이 이정간 공이 사망하기 직전에 집으로 행차하여 직접 붓으로 어필 후에 하사하면서, 현재, 전의 이씨 가정집에 가면 대표적인 가훈으로 보존되어 있다. 분파된 파 중에 가장 규모가 큰 파가 셋째 이자화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전서공파이다.[8]

전의, 예안이씨 족보에 따르면, 2021년 현재, 37세손까지 내려왔다.

4. 시조 묘소

시조 이도(李棹)의 묘소는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유천리 599-1에 있으며, 묘소는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을 자랑할 정도로 명당이다. 일제 강점기 때 철도 부설 등으로 인해 묘소가 파헤쳐질 위기에 처해지자 후손들이 진정서를 내어 철도 경로가 변경되었으며, 묘소는 원래 자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5. 항렬

대수대사성공파中
대사성공파

해관공파
문장공파전서공파대사성공파 中
판사공중 계파
첨정공장 계파
대사성공파 中
판사공중 계파
첨정공장 중파
26세潤윤○裕유○○敏민 儒유○,揆규○○鑑감
27世○植식秉병○根근○○萬만奭석○
28世熙희○○烈렬○魯노鳳봉○○林림
29世敎교○用용○,在재○○世세炳병○謙겸○
30世○鎬호○善선,○會회鍾종○○衡형○遠원
31世漢한○準준○,承승○○浩호錫석○鎔용○
32世相상○,○相상○植식相상○,○相상○承승○永영
33世○燮섭憲헌○ 熙희○○燮섭東동○柱주○
34世基기○○敎교基기○○烈렬○勳훈
35世○鎭진○鎭진○鎭진重중○在재○
36世源원○源원○源원○源원○○鉉현
37世○秀수○秀수○秀수○秀수海해○
38世容용○39世○均균40世錫석○
41世○永영42世東동○43世○煥환
44世重중○45世○鉉현46世泰태○
47世○柱주48世忠충○49世○孝효
50世鎔용○51世○淳순52世榮영○
53世○德덕54世壽수○55世○鐸탁
56世泳영○57世○杓표58世光광○
59世○老로60世鏞용○61世○雨우
62世樂락○63世○然연

6. 인물

본 항목은 전의 이씨에 관련된 자료(전의예안이씨 화수회 사이트에 있는 인터넷족보 등)들을 토대로 신중하게 작성하며, 확실한 근거 및 자료가 아닌 이상은 기재하지 말 것.

6.1. 고려

6.2. 조선

6.3. 일제 강점기

6.4. 현대


[27세]

[28세]

[29세]

[30세]

[31세]

[32세]

[33세]
[34세]

[미확인]

7. 집성촌

특이하게도 본래 세거 지역인 전의면에는 종파가 아닌 이상은 찾기 힘들다.

[1] 때문에 본래 공주 이씨에서 분파되었을 가능성 역시 있다.[2]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이도가 왕건을 도운 것을 운주성 전투때로 각색했으나 애초에 운주(홍성)는 금강보다 훨씬 북쪽에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실제로 그랬을지는...[3] 이철승 7선 의원.[4] 이시종 도지사.[5] 충북+충남+대전을 합쳐 23000명 정도[6] 전라도 전치인 전북+전남+광주는 16000명 정도. 이 중 1만여명이 전북에 거주.[7] 경남+경북+대구+울산+부산은 27,000명 정도로 인구 자체는 충청이나 전라보다 더 많이 살지만 경상도가 원래 수도권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동네라 비율상으론 떨어진다.[8] 대사성공파는 문관으로 대대로 내려왔으며, 전서공파는 무관으로 대대로 내려왔다.[9] 호가 석탄이라 불리는 그 장군 맞다. 그의 후손들이 훗날 경기도 고양시 이케아 고양점 땅도 소유하면서 엄청난 개발보상금을 받았다.후손들이 잘 되니 하늘에서 흐뭇하게 바라보시는 석탄 이신의 장군[10] 80세의 나이에 102세의 노모 앞에서 색동옷을 입고 재롱잔치를 하면서 지극히 효도했던 청백리로 유명하다. 이를 본 세종"가전충효 세수인경(家傳忠孝 世守仁敬)"이라는 가훈을 어필하여 오늘날 전의 이씨의 대표 가훈으로 자리잡았다.[11] 도절제사공파이며, 아버지 이경호는 30세손 '鎬' 항렬이다.[12] 정작 본인은 항렬자를 사용하지 않는다.[13] 형제가 무려 6남 4녀인데, 그 중 여섯째 아들이다. 그래서 형들 모두 이름 끝에 "형(衡)"자를 사용한 것이다.[14] 예안 이씨로 분적했던 파가 바로 문장공파이다.[15] 정치인 이기세의 아들이다.[16] 2020한국사 개념완성 12강에서 밝혔다.[17] 이병정의 후손이다.[18] 예안 이씨[19] 그래서 석탄공파가 존재하는 것이다.[20] 검단리가 집성촌이나, 일부는 중앙탑면에 선산이 있는 후손들이 핏줄인 경우도 있다.[21] 2021년 현재, 32~33세손이 신니면 집성촌 내에서 주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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