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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34:05

문하시중

첨의정승에서 넘어옴
고려 문무반 최고위 실무직
문반 무반
종1품 중서문하성 문하시중 정3품 응양군 상장군

1. 개요2. 연혁3. 상세4. 목록
4.1. 주요 역임자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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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재추의 하나로 고려수상급 관직.

고구려대대로, 백제상좌평, 신라상대등, 발해대내상, 태봉의 광치나(匡治奈),[1] 조선영의정[2]과 비슷한 최고위 재상직이다.

2. 연혁

고려 건국 초기에는 내의성(內議省)의 내의령(內議令), 광평성시중, 그 외에 좌·우 집정(執政)과 같은 재상직이 있었는데 파편화된 기록 때문에 이들 사이의 관계나 실무적인 역할을 분명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982년(성종 1) 관제를 개편하면서 2성 6부제를 도입하여 내사문하성(內史門下省)의 문하시중이 실무직 중 최고위직이 되었다. 문종 때는 내사문하성을 중서문하성으로 개칭하고 품계 종1품, 정원 1인으로 정했다.[3]

1275년(충렬왕 1) 원나라의 간섭으로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이 첨의부(僉議府)로 격하되면서 첨의중찬(僉議中贊)으로 고쳤고, 첨의우중찬, 첨의좌중찬으로 나누었다.

1293년(충렬왕 19) 원에서 첨의부를 도첨의사사(都僉議使司)로 고쳤다. 따라서 첨의우중찬, 첨의좌중찬은 도첨의우중찬, 도첨의좌중찬이 되었다.

1298년(충선왕 즉위년) 충선왕은 동년 5월 관제를 개편하면서 도첨의시중(都僉議侍中)으로 고쳤고, 조금 뒤에 다시 도첨의중찬으로 고쳤다.

1308년(충렬왕 34) 정승(政丞)으로 고치면서 정원을 1인으로 줄였다.

1330년(충숙왕 17) 충혜왕이 다시 중찬으로 고쳤고, 이후 다시 우정승, 좌정승으로 고쳤다.

1354년(공민왕 3) 다시 시중으로 고쳤고, 조금 뒤에 다시 우정승, 좌정승으로 고쳤다.

1356년(공민왕 5) 원나라의 간섭이 약화되자 첨의부를 중서문하성으로 관제복구하면서 문하시중(門下侍中), 문하수시중(門下守侍中)으로 고쳤다.

1362년(공민왕 11) 중서문하성을 도첨의부로 고치고 문하시중과 문하수시중 또한 첨의좌정승, 첨의우정승으로 고쳤다.

1363년(공민왕 12) 첨의좌시중, 첨의우시중으로 고쳤다.

1369년(공민왕 18) 도첨의부를 문하부로 개편하며 문하좌시중, 문하우시중으로 고쳤다.

창왕 때에 다시 문하시중, 문하수시중으로 고쳤다.

원 간섭기에 관제가 격하됐을 때는 원나라처럼 상우(尙右)[4] 원칙을 좇았는데, 1303년 일시적으로 상좌(尙左)[5] 원칙으로 환원했다가[6] 충선왕이 복위한 1308년 다시 상우(尙右) 원칙으로 돌아왔다. 이후 공민왕이 자주정책을 표방하며 관제를 복구하면서 다시 상좌(尙左) 원칙으로 환원됐다.

문하시중과 문하수시중은 이후 조선 초기에 정종의정부가 설치되어 태종문하부가 사라지기 전까지 정1품 문하좌정승, 문하우정승으로 존속하다가 좌의정, 우의정으로 이어졌다.

고려에서 명목상 최고위직이었던 중서령여말선초에 영문하부사로 바뀌었다가 영의정으로 바뀌고 이후 실질적인 최고위직으로 변모하게 된다.

3. 상세

고려의 최고 관직은 중서령과 상서령이나, 이는 명예직에 가까웠고 문하시중이 실제 수상의 역할을 하였다.

태봉에서는 광평성 등 신라에서는 없었던 기구 또한 나타난다. 관등제 또한 약간 달랐다. 고려는 초기에 신라 13부17관등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했던 태봉의 체제를 계승했다. 이후 성종당나라3성 6부제를 수입해 대체했다. 그래서 명목상으로는 신라가 아닌 당의 시중이 고려 문하시중의 유래에 해당하지만, 그 실질적인 기능은 태봉이 차용했던 신라의 시중과 유사했다. 그런데 고려는 고대 국가로 출발했던 삼국과는 달리 이미 형성된 인프라를 이용해 호족합좌제의 중세 국가로 출발했기에 삼국의 제도와는 또 다른 고유성이 아주 강했다는 걸 유념해야 한다. 직책으로도 대광, 원윤, 호장 등의 특이한 향직이 존재했으며 중앙관제로도 문산계, 무산계의 구분이 생긴다. 신라는 당대 가장 선진적이었던 당의 관료제를 일부 도입했는데 명칭상 같은 직책이라고 해도 신라에 원래 있던 직책을 당풍으로 개명했거나 신라가 처한 환경에 맞춰서 도입한 경우가 많아 기원부터가 아예 다르거나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게 된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차이의 대표적 사례가 병부(兵部)이다. 3성과 6부의 관계와 달리 신라의 13부는 위계의 차등은 있으나 각각 별개의 기구였으며 병부 역시 3성 6부제에서의 상서병부와 달리 한 기구에 종속되지 않은 독립된 기구였다. 게다가 신라의 병부는 상서병부보다 설치 시기부터가 더 이르다. 당의 문하시중과 신라의 집사시중의 관계도 이와 유사하다. 당의 3성 6부제에서는 시중이 꼭 수상(首相)이 아닐 때도 있고 애초에 재상의 명칭이 자주 바뀌었다. 이는 귀족합좌제적 성격이 강했던 삼국과 전제군주적 성격이 강했던 중국의 환경 차이에서 기인했던 것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고려의 중서문하성에서는 수상의 명칭으로 일관되게 문하시중을 사용하며 문하시중에 임명된 사람이 없을 경우 서열상으로는 밀리지만 동급(종1품)인 중서령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문하시중의 바로 밑인 정2품 문하시랑평장사가 수상이 되었다.

이러한 환경 차이는 중국보다 귀족합좌제적 성격이 강했던 한국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는데 고구려에서는 대대로, 백제에서는 상좌평, 발해에서는 대내상이라는 신라의 상대등/시중과 유사한 수상직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삼국은 수없이 반복된 경쟁과 협력을 통해 종국에는 서로 비슷한 문화와 제도로 수렴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보면 고려는 이런 삼국의 문화를 종합하여 완성시켰다고도 볼 수 있다.

문하시중의 종1품에 대응하는 품계는 종1품의 최고위 품계 개부의동삼사이다. 즉 개부의동삼사 품계를 지니고 문하시중을 받아야 제대로 된 종1품 관료인 것이다. 하지만 늘 관료의 품계와 관등을 똑같이 맞출 수는 없었고, 이에 행수법이란 제도를 통해 자신의 품계보다 높은 관등의 직위를 받는 경우, 직위 앞에 수(守) 자를 붙여 관직의 품계가 자신의 품계보다 높다는 것을 명시했다. 그래서 고려 초중기 문하시중과 수문하시중은 같은 관직이며 단지 받은 관료의 품계가 종1품 개부의동삼사인가 아닌가의 차이가 날 뿐이다.

그런데 고려 후기 공민왕 대에 문하시중이란 관직을 두 개로 찢으면서 문하시중 - 수문하시중의 두 직위로 정한다. 즉 공민왕대에는 문하시중 > 수문하시중으로 수문하시중이 한 단계 낮다.

4.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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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문하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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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주요 역임자[7]

5. 관련 문서



[1] 왕건이 바로 즉위 전 궁예에 의해 파진찬 겸 시중에 올랐는데, 여기서 시중이 광치나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국가 최고의결기관인 광평성(廣評省)의 수장이었다.[2] 다만 조선 초기 영의정은 고려시대 중서령 또는 상서령에서 비롯된 명예직에 가깝고, 좌의정이 문하시중, 우의정이 수문하시중의 역할을 이어 받았다는게 중론이다.[3] 고려에서는 현직 관료로서 실무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최고 품계는 종1품이었다. 정1품은 불교대사가 임명되는 국사삼사삼공 같은 지위에 가까운 명예직이 받는 품계였다.[4] 우를 좌보다 높임.[5] 좌를 우보다 높임.[6] 그래서 이 시기에 일시적으로 도첨의좌중찬이 도첨의우중찬보다 높아졌다.[7] 광평시중, 문하시중, (도)첨의중찬, (도)첨의정승, (도)첨의시중 등을 포함함.[8] 柳德英. 본관은 정주(貞州). 태조의 6비 정덕왕후(貞德王后)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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