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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고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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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운
2021. 11. 30.[[모든 날을 너와 함께 할게| Part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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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현
2021. 12. 05.[[옷소매 붉은 끝동(드라마)/OST#s-2.5| Part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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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Lucia)
2021. 12. 12.[[옷소매 붉은 끝동(드라마)/OST#s-2.6| Part 6
내가 한 걸음 뒤로 갈게]]
전상근
2021. 12. 18.[[옷소매 붉은 끝동(드라마)/OST#s-2.7| Part 7
네가 불어오는 이곳에서 난 여전히]]
XIA(준수)
2021. 12. 20.[[옷소매 붉은 끝동(드라마)/OST#s-2.8| Part 8
그대 손 놓아요]]
이선희
2022. 01. 01.[[옷소매 붉은 끝동(드라마)/OST#s-2.9| Part 9
밝혀줄게 별처럼]]
리아
(ITZY)
2022. 01. 03.[[옷소매 붉은 끝동(드라마)/OST#s-2.10| Full Track
옷소매 붉은 끝동 OST]]
Various Artists
2022. 01. 18.그 외 오리지널 스코어는 OST 문서 참고.
1. 개요
MBC 금토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명대사를 정리한 문서이다.2. 회차별 명대사
2.1. 1화
- 할머니가 할바마마께 아바마마를 죽이라 했습니까? 사실입니까? - 예, 저하. - 자가는 아바바마의 어머니잖아요! 세상에 자기 자식을 죽이는 어머니가 어디 있다고! 당신 때문에 아바마마가 죽었어. 당신 따위가 어떻게 어머니야! (어린 산이 성화를 부리다가 넘어지고, 영빈이 놀라 산에게 다가간다.) - 괜찮으십니까, 저하? (화가 풀리지 않은 산이 영빈의 손길을 뿌리친다.) - 걱정하는 척하지 마세요. 그 입으로 늘 아바마마도 걱정했으면서... 내가 아바마마처럼 된다면, 나도 버릴 겁니까? (산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영빈.) - 이 할미가 저하의 아버지를 죽여놓고 사죄 한 마디 드리지 않았습니다. 모든 게 이 할미의 죄입니다. 가엾은 우리 저하, 이 할미를 용서하지 마세요. 영빈, 어린 이산 |
바보야, 죽었으니까 알지. 죽은 사람은 다 알아. 네가 말하지 않고 숨겨놓은 마음까지. 어린 덕임 |
젊었을 적엔 아주 고운 사람이었다. 너처럼 궁녀였고. 옷소매 끝동은 몹시 붉고, 과인은 그걸 보며... 마음이 아팠더랬지. 왜 아팠냐고? 궁녀들이, 옷소매 끝을 붉게 물들여 입는 것은... 그녀들이 왕의 여인이라는 징표야. |
이 얼음이 차다 한들, 내 마음보다 찰까. 내, 정녕 그녀를 잃었구나. 이제... 두 번 다시 오지 않겠지. |
너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정일품 후궁이 마지막으로 떠나는 모습을. 궁녀는, 궁에서 죽을 수 없어. 궁에서 죽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왕족뿐이지. 늙고 병든 궁녀는 반드시 출궁해야 해. 살아생전 어떤 권세를 누렸든, 궁녀의 마지막은 그처럼... 덧없고 초라하지. 다만 오직 한 가지. 궁에서 죽을 수 있는 방도가 존재한다. ...승은을 입으면 돼. 승은을 입고 후궁이 된다면, 이 궁에서 죽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 보아라. 저것이 승은을 입은 여인만이 누릴 수 있는 영예, 모든 궁녀가 꿈꾸는 마지막이야. 너 역시 저리 되고 싶겠지? |
제대로 보렴. 꿈을 품는 거야. 틀림없이 너도 저리 될 수 있다고. |
저하를 주인으로 모시게 된 건, 소인의 천운이옵니다. 저하께선 언젠가 보위에 올라, 새로운 세상을 만드시겠지요. 소인 홍덕로, 그 새로운 세상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늘, 저하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어린 덕로 |
넌, 동궁의 궁녀야. 세손 저하는 너의 주인이시고. 저하를 모시고 지켜드리는 일, 그 자체에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 해. 그 일이 덧없고 가치 없어지면, 네 인생도 덧없고 가치 없어지는 거야. 그리되게 두지 말어. |
난 동궁의 궁녀야. 세손 저하는, 나의 주인이야![1] 어린 덕임 |
아니요, 필요 없습니다. 어머니 말씀이 옳습니다. 제가 그 생각시를 다시 만나 좋을 게 뭐가 있습니까. 저는 세손이고, 그 아인 그저 하찮은 생각시에 불과한데. 서로 동무도 될 수 없고, 한 자리에 앉아 얼굴을 마주할 수조차 없는 사람들인데. 그 아이가 궁을 떠났다 말씀하셨으니, 그리 믿겠습니다. 더는 찾지 않을 것입니다. 어린 산 |
널 다시 만나면, 그냥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어. 내가 가장 아팠던 날, 나랑 함께 있어줘서 고맙다고. 하지만, 넌 내 옆에 없는 편이 나아.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은, 위험해져. 어린 산 |
2.2. 2화
여기선, 내가 나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설령 사소한 거라도 좋아. 선택이란 걸 하며 살고 싶어.[2] |
천명을 받은 자 어찌 불평을 하겠소. 나는 왕세손으로 태어나, 훌륭한 글을 마음껏 읽을 수 있고, 박식한 인재를 두루 부릴 수도 있소. 나의 재주를, 온전히 이 나라 조선을 위해 쓸 수 있다는 보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소. 굶주림에 지친 백성들이 있는데, 어찌 불평을 하겠소. 비단 옷을 입고, 귀한 음식을 먹는 주제에 불평을 늘어놓는다면... 몰염치한 소인배나 다름 없을 것이오. |
하늘의 명이 내게 내려와, 장차 나 한 사람이, 한 나라의 운명을 짊어지게 될 것이오. 그 천명(天命) 앞에, 결코 숨지도, 도망가지도 않겠소. |
오늘 읽어드릴 소설은 한 제후국 왕실에서 있었던 두 형제의 비극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같은 어미 배에서 태어난 형제이건만, 어찌하여 부왕께서는 나만을 미워하실까. 어린 네가 자랄수록 나의 괴로움은 커져간다. 네가 있기에 나는 더 이상 필요가 없구나. 너를 총애하실수록 나를 미워하신다. 자애가 깊어질수록 증오가 무르익는다. 어린 아우야, 너는 나를 죽이기 위해 태어났구나. 너로 인해 아비의 총애를 잃고 나는 끝없이 절망한다. 너와 나는 형제이기에 서로가 닮았거늘, 어찌하여 우리의 처지는 이리도 달라졌는가. 너는 나를 죽이기 위해 태어났구나.’[3] 오늘은 여기까지 읽어드리겠습니다. |
난 싫다. 소설 따위 마음만 어지럽히지. 헛된 호기심을 자극하여, 그저 뒤를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 아니더냐. 넌 그저, 네 재주를 이용해 돈벌이만 하면 그만이겠지. 듣는 사람이 어떤 심정이 되든, 알게 무엇이랴. |
읽지 마라. 넌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면 아니 될 사람이다. |
2.3. 3화
나, 책을 읽을 거야. |
산아. 이 어미는, 결코 너만은 잃지 않을 게야. |
세상 일엔, 다 때가 있는 법이다. 과인은, 그 때를 찾는 중이고. |
소손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나이다. 그럴 겨를도 없었나이다. 소손이 직접, 익위사들을 이끌고 범을 잡은 것은, 그때 제 손에 활이 있었고, 제 옆에 믿을 수 있는 수하들이 있었기 때문이옵니다. 호랑이가 눈앞에 있었고, 살려야 할 백성들이 있었사옵니다. 그뿐이옵니다! |
2.4. 4화
그래 봤자, 어차피 종인데. 예쁜 옷 입고 계례식 치르고, 종9품 품계를 받고. 그래봤자, 결국 높으신 웃전을 모시는 종일 뿐이잖아. 웃전한테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항의 한 마디 할 수 없고, 잘못이라도 저지르면 하루아침에 궐 밖으로 내쳐지겠지. 늘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하는 종. 종이면 종답게 생각을 하면 안 될 텐데, 왜 난 자꾸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걸까. |
예, 배우십시오. 세상 모두가 저하의 아랫사람이며, 그들 모두가 저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아랫사람에게 사과하는 법을, 백성에게 사과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진정한 군주는, 늘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며 백성에게 머리를 숙인다 하였습니다. 그리하실 줄 모르는 저하의 모습에 소인은 지금 크게 실망하였나이다. |
지금까지의 일은 잊어주마. 나와 너 사이에선, 그 어떤 일도 없었던 것이다. 앞으로는 절대 내 눈앞에 띄지 마라. |
오늘은 처음이라 시선이 갔을 뿐이다. 늘 옆에 있다면, 결국 보아도 보이지 않게 되겠지. 어차피 넌 수많은 궁인들 중 하나일 뿐이고, 조금도 대수롭지 않아. |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달에 사는 선녀라 칭송해 주며, 항아(姮娥)님이라 불러주지. 전설 속 항아가 사는 달의 궁궐, 광한궁(廣寒宮). 그곳이 얼마나 쓸쓸한 장소인지 그 누가 알까.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고, 서로를 지켜줘야 해. 우리가 믿을 사람은 오직 우리뿐이야. |
궐의 법도라.... 내 한때는 열심히 지켰던 것들이지. 궁중 사람들은 모두가 서로를 염탐하지. 그 안에선 세작보다, 세작이 아닌 이를 찾는 게 더 어려워. 한데 나는, 쓸데없는 법도에 얽매여서 그저 내훈이나 읽으며 내전에 틀어박혀 있었다. 염치가 무엇이지? 체면이, 무엇인데? 내 지아비 옆에, 내 눈과 귀를 심어놓았더라면. 세자 저하를 늘 감시하고, 지켜보았더라면. 이미 돌아가신 분의 일을 말해 무엇하겠느냐. 살아있는, 자식을 지켜야지. |
옛날엔 나도 두렵지 않았어. 별로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거든. 가진 게 하나도 없으니까.[4] 근데, 생각해보니까 나도 가진 게 있어. 잃어버리는 건 무서워. |
2.5. 5화
왜냐면, 그 서고에서 너와 함께 보낸 시간이, 특별했으니까. 그 서고에서 너와 함께 있는 동안, 네가 나에게 휘둘리고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어. 정말 그러했느냐? 네가 나에게 휘둘렸느냐, 아니면 내가 너에게 휘둘렸느냐?[5] |
그까짓 게 뭐가 중하다고. 궁녀의 마음 따윈,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아. |
끌어당기면 가야 하고, 밀면 멀어져야 해. 생각도, 의지도 필요 없어. 그게 궁녀야. |
세손은, 절대 왕이 되어선 안 돼요. 죄인의 아들은, 왕이 될 수 없습니다. |
쉴 새 없는 하루였는데, 가끔씩, 네가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넌 무얼 하고 있을까. 내가 준 책은 읽었을까. 그 책을 읽으며, 혹, 나를 생각했을까. |
아니요. 소자는 궁녀를, 미천한 신분의 여인을 곁에 둘 생각이 없습니다. 명문 사대부가의 여식만이 소자의 곁에 있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런 여인만이 정통성 있는 후계자를 낳을 수 있고, 그런 후계자를 두는 것이 소자의 의무입니다. 왕세손으로 태어나, 호의호식하며 살았습니다. 귀한 음식을 먹고 값비싼 비단 옷을 걸치는 매 순간, 쌓여가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온전히 이 나라 조선을 위해 바칠 것이며, 결코 사사로운 마음을 앞세우지 않겠습니다. |
오늘은 내 계례식이야. 일생에 단 한 번뿐인 나의 날이라고! 나의 귀한 날을 망칠 수 있는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어, 아무에게도! |
- 차라리 잘된 것이지요. 저하의 진심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 넌 나의 진심을 몰라. 나 역시, 너의 진심을 모르고. |
- 북풍은 차갑게 불고, 눈은 펄펄 쏟아지네. 사랑하여, 나를... 나를... 좋아하는.... - 사랑하여,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손 붙잡고, 함께 떠나리. 어찌 우물쭈물 망설이는가. 이미 다급하고, 다급하거늘. - 북풍은 차갑게 휘몰아치고, 눈비는 훨훨 휘날리네. - 사랑하여,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손 붙잡고, 함께 돌아가리. - 붉지 않다고 여우가 아니며, 검지 않다고 까마귀 아니런가. - 사랑하여,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손 붙잡고, 수레에 오르리. |
그저 곁에 있어라. 그거면 된다. |
이루고 싶은 것이 있어 참는 것이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견디는 것이다. 난 고통이 무엇인지 알아.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는지도 안다. 난 이 나라의 왕세손이야. 나에겐 언젠가 힘이 생겨. 그 힘으로, 수많은 많은 이들을, 도울 수 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이루고자 하는지, 네가 아느냐? 넌 그저, 곁에 있어다오. 그걸로 충분해. |
저하께서 보위에 오르시는 그날까지, 제가 저하를 지켜드리겠습니다. 하오니 안심하십시오. 저하께서는 반드시 뜻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
한낱 궁녀 주제에, 나를 지키겠다고? |
한낱 궁녀이지만 저하의 사람입니다. 일평생 곁을 떠나지 않고, 오직 저하만을 위할 저하의 사람입니다. 제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저하를 지켜드리겠나이다. |
2.6. 6화
넌 나의 사람이니까. |
거울이옵니다. 거울은, 모든 것을 똑같이 비추지요. 마치 그 거울처럼, 마마께서 동궁을 중히 여기시는 만큼, 동궁 역시 마마를 중히 여기옵니다. 마마께서 동궁에게 베풀어 주시는 자애만큼, 동궁 또한 효성으로 마마를 받들 것이옵니다. |
동쪽의 해는 과연 떠오를까. |
산아, 이 할아비는, 세상을 살면서 많은 잘못을 했어. 그 잘못을 모르는 게 아니야. 그래도, 매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 조선의 임금으로, 오직 조선을 위해. 넌 언젠가, 저 자리에 앉아.. 날 온전히 이해하게 될 게야. 분명, 언젠간 그리되겠지. 그렇지? |
이러다 내가, 저하의 측근 자리를 항아님께 빼앗겨버리겠소. |
내가 신경쓰는 것은 오직!... 오직, 나의 사람뿐이다. |
2.7. 7화
그럼, 평생 숨어살며, 아무 꿈도 꾸지 않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그냥 죽을래? |
그들은 우리 궁녀에게도 마음이 있고, 의지가 있고, 목숨을 걸고서라도 해낼, 목표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해. |
뭔가가 생기려 하거든, 생기기 전에 떠나보내. 움트기 전에 잘라내버려. 너의 보잘것없는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전에. |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순간이 왔다. 자꾸만 뒤로 미루고 싶었던 순간이. 눈앞에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 일국의 지존이 되실, 이분이. |
귀한 것입니다. 소인에겐 과분한 것이지요. 하여 사양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원치 않는 것이옵니다. 한낱 궁녀에게는 처음부터 사양할 자유조차 없는 것이옵니까? 부디, 소인이 사양할 수 있도록, 허락하소서. |
우리가 지금, 감귤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느냐? |
방도란, 구하는 이에게 생기기 마련 아니겠소? |
임금도 사람이야. 한 사람 정도는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버티질 못해. 나중에 네가 보위에 오르거든, 좋은 여자를 찾아. 이 할아비가 영빈을 만났던 것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 |
제왕의 애정이란 무엇인가. 가장 아끼던 여인의 자식을 죽여 없애고, 그 여인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산송장으로 만드는 것인가. 할아버지, 저는 당신과 다릅니다. 저는 반드시 소중한 이를 지켜낼 겁니다. 절대 당신과 같은 그런 사랑은, 하지 않습니다. |
너의 마음에, 아직은 내가 없다 해도 상관없어. 너는 궁녀이고, 어차피 늘 같은 곳에 있을 테니. |
- 널 생각하고 있다. 널 안다고 생각했다. 허나,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더구나. 어쩌면 난, 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지 모른다고. 말해라. 넌 내 사람이냐. - 물론입니다. 일평생 저하를 지키겠노라, 맹세하였습니다. - 그럼 너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냐. 너의 생각, 너의 의지, 너의 마음까지 모두가 나의 것이냐. 대답해! - 아니옵니다. 궁녀에게도 스스로의 의지가 있고, 마음이 있습니다. 궁녀 아닌 자들은 알려 하지 않겠지만. 소인은 저하의 사람이지만 제 모든 것이 저하의 것은 아니라, 감히 아뢰옵니다. - 우습지도 않군. |
2.8. 8화
너는 오로지 나의 결정에 달려 있어. 너의 모든 것은, 나의 것이다. 오직 나의 뜻으로만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다는 걸, 절대... 잊지 마라. |
그러니 두고 보십시오. 저하께서 저를 용서하시는지, 아닌지. |
전하, 단근형을 받고 출궁 당한다면, 저 궁녀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사옵니다. 하오니, 이 일에는 한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사옵니다. 전하께서는 늘, 소손에게 가르침을 내리셨사옵니다. 조선의 임금은, 조선의 땅 모든 백성들의 생살여탈권을 손에 쥔다. 백성은 하늘이 내린 것이니, 그 하나하나의 목숨을 귀히 여기지 않는다면, 군주 될 자격이 없다. 하오니 간청 드리옵니다. 잠시만 더, 저 백성에게, 군주의 시간을 내어 주시옵소서. |
이 지루한 밤이, 언제쯤 끝날까 궁금해서. 이 오라비 마음속엔, 불길처럼 타오르는 해가 있어. 그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기를, 바라고 또 바란단다. 세상 사람들은 그때, 내 이름 석 자를 알게 되겠지. |
- 네 자식이 벌써 왕이라도 되었어? - 어머니! - 어차피 넌 네 아들이 왕이 되어도 영원히 대비가 못 돼. 넌 평생! 일개 빈일 뿐이야. 으스대지 말라고. - 네 양어머니를 그만 모셔가는 것이 좋겠구나. - 그만 나가시죠, 어머니. - 너는 지금 누구 말을 듣는 것이냐? 네 어미는 나야! 혜빈. 아바마마께서 건재하신데 세손의 대리청정이라니요? 이게 말이나 됩니까? 어서 가서 세손을 타이르세요. 낳아준 어미 말은 들을 것 아닙니까? - 옹주 말대로 내가 대비는 되지 못합니다. 영원히 일개 빈에 불과하죠. 세손은 그래도 배아파 낳아준 어미이니 대접을 해주려 애쓰더군요. 훗날 이 어미에게 궁호를 내려준다 합니다. 궁호와 존칭까지 다 정해놓았더군요. 혜경궁 저하. 해서, 나는 말입니다. 훗날 혜경궁 저하라 불릴 것입니다. 옹주는 훗날 어찌 불릴 지 압니까? 세손이 보위에 오르면 옹주의 자리는 박탈될 것입니다. 더 이상 옹주가 아닌 한낱 서인으로 몰락하겠지요. 옹주의 죽은 지아비가 정씨이니 정씨의 처, 정처 정도로 불리면 되겠군요. - 네년이 감히! - 어머니! - 이거 놓아라, 이거 놔! - 어서 나가십시오, 자가! - 이거 놓거라, 놔! 혜빈! - 하! 여기가 내 처소인데, 나더러 나가라? |
오직, 조선을 백성을 위해 사라져야 할 사람은 사라지고, 물러나야 할 사람은 물러나야지. 그것이 설사, 과인일지라도. |
절대, 임금을 믿어서는 안 돼. 우리가 믿을 사람은, 오직 우리 자신뿐이야. 우리 궁녀들에겐, 오직 서로밖에 없어. |
2.9. 9화
그날, 영빈의 빈소에서 너와 헤어진 후 오랫동안 널 그리워했다. 수도 없이 생각했어. 할머니를 잃고, 고통스러웠던 그날, 그 밤에... 유일하게 나를 위로해 주었던 그 아이는 지금 어디 있을까. 무사히 살아있을까. 나로 인해 고초를 겪지는 않았을까. 수많은 생각을 했지만, 널 찾아 나설 수는 없었다. 난 그저, 제 목숨 하나 건지기에 급급했던 어린아이였으니까. 하지만 더 이상, 힘없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그리고 난 너를 찾았다. 답해보아라. 내가 널 어찌할까. |
그날 저하를 만났던 일은, 그저 우연에 불과했고. 소인은 저하가 누구신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어린아이 둘이 우연히 만났을 뿐인데, 그 만남에 의미를 두실 필요가 있습니까. |
그래서 내가 겸사서 나으리를 사모하는 거야. 나으리를 사모하는 여인은 구름처럼 많고, 난 그 중 하나일 뿐이지만... 절대 외롭거나 비참해지지 않으니까. 어차피, 마음으로만 섬겨야 하는 걸. |
궁녀여도... 좋아해 줄 사람이 있지 않을까? |
그냥... 누군가를 진심으로 연모한다는 건, 어떤 감정일까 싶어서. |
아니 그냥... 나한텐 너희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어서. |
도대체 몇 번의 기회를 더 주고, 얼마나 더 기다려야... 자네는 내 사람이 되겠는가. |
너는 내가 두렵지도 않으냐. 무슨 짓을 당할 줄 알고. ...겁도 없이. |
차마... 그들을 배신할 수가 없었어. 아무것도 모르는 척,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며 오랜 세월... 침묵했다. |
이미 늦었을지 몰라. 이미, 잃었을지 몰라. |
그것 보십시오. 제가 지켜드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하께서는 이 나라 조선을 지키시느라 바쁘고, 저는 그런 저하를 지키느라 바쁘고. 그럼 대체 누가 더 바쁠까요? |
그 신호연을 보았을 때, 너일 줄 알았다. 너 일 수밖에... 죽을지도 모른다, 생각했을 때 떠올랐던 얼굴은... 제발 한 번만 더 보게 해달라, 애원했던 얼굴은... 너였다. 덕임아... |
2.10. 10화
소인 역시 저하를 구했습니다. 수어청에 도착할 때까지 일각도 쉬지 않고 말을 내달렸습니다. 숨이 터질 것 같았지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직 저하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수많은 이들이 저하를 위해 목숨을 걸었고 저하를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오니 돌아오소서. 당신께서 마땅히 계셔야 할 자리로. 저하께서는 이 나라 조선 땅 모든 이들을 지키셔야 할 분입니다. 설마 여인 하나 지키는 것으로 족하다, 그리 말씀하실 작정이십니까? |
더는 아닌 척할 수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만일, 너의 마음이 나와 같다면...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너를.. |
소원을 생각해 보라 하셨지요. 저하께서 무사히 보위에 오르시는 겁니다. 그날까지, 다른 생각은 마옵소서. 좋은 임금이 되셔야지요. 다른 일을 생각하실 겨를이 있습니까. |
그냥 취하십시오. 한 번 취하고 나면, 부질없이 사라질 열정입니다. 누구나 겪는, 흔한 일이지요. |
오늘이 보름이군요. 보름엔 궁녀들이, 스스로 목을 매어 죽는 일이 허다하지요. 저 달이 문제랍니다. 보다 보면 깨닫게 되지요. 궁녀로 사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 |
역모가 일어나,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당연히 믿어주셔야 할 전하께서, 소손을 의심의 눈으로 보고 계십니다. 이래도, 이래도 웃어야 하옵니까? 소자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웃어본 적 없습니다. 그래도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입니다. |
너를 만난 후, 나는 늘 웃었다. 너는 늘, 나를 웃게 했어. 그렇지? 덕임아. |
2.11. 11화
내 널 오랫동안 아껴왔지. 늘 생각했다. 내게 네가 필요하다고. 헌데 말이야, 이제 나는 네가 필요가 없구나. |
바보. 네가 뭐 할 수 있는 거나 있어?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쓸데없는 마음 품지 않기로 했잖아. |
소신은, 전하의 명을 받들고 있었나이다. 늘, 언제나... 소신의 의견을 밝히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저 곁에서 시중들 뿐, 보아도 보지 말고, 들어도 듣지 말라 하셨사옵니다. 하오니 소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 등불을 들어 전하의 앞길을 비추어 드리는 일뿐이옵니다. |
그리고 제 인생에서, 어미를 지워버리면 되옵니까? 아비를 지웠듯이. |
지금 네가 곁에 있다면, 조금은... 덜 아프려나. |
제가 있어봤자,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다는 걸 알아요. 그래도 오늘만큼은, 곁에 있어드리고 싶었습니다. |
나한테까지 뭘 속여. 다 알아. 이렇게나 저하를 연모하면서, 후궁 되기는 왜 싫은건데? 제조상궁 마마님의 힘이 아니더라도, 넌 후궁이 될 수 있어. 그저, 저하께서 내미시는 손을 잡기만 하면. |
왜요? 왜 연모하면 후궁이 돼야 해요? 전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후궁이 돼서 무슨 좋은 꼴을 본다고. 새로운 여인들이 날마다 줄줄이 굴비처럼 들어올걸요. 모두가 내로라하는 사대부가의 여식일 거고, 젊고, 어여쁠 거고. 그 꼴을 보면서도 입도 뻥긋 못하고 참고 살아야 하는데. 그게 후궁 팔자인데... 왜 그렇게 살아야 해요? |
저하가 소중해요. 하지만 전 제 자신이 제일 소중해요. 그러니까 절대로, 제 자신을 고통 속에 몰아넣지 않을 거예요. 제대로 가질 수 없는 거면, 차라리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게 나으니까. |
나는, 내 손으로 키우며 어린아이를 지키지 못했어. 평생 옛일을 곱씹으며 살았지. 아무리 후회해 본들, 내겐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일 뿐이야. 허나, 너에겐 바로 지금이지. |
소인은 생각하지 않사옵니다. 그저, 저하의 명을 받들 뿐. 하오니, 저하의 생각이 곧 소인의 생각이옵니다. |
자네가 나를 위해 할 일을 알려주지. 아무 일도, 하지 말게. |
어째서 이것이 역심이옵니까. 소인이 품은 것은 충심이옵니다. 오직 저하를 위한 충심이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이 두려우십니까? 저하의 행동이 어찌 비칠지. 모두가 이 나라 조선을 위해섭니다. 백성들은 그들을 지켜줄 강하고 현명한 왕을 원합니다. 늙고, 병들고, 제정신조차 아닌 왕이 아니라 저하를! ...저하를 원한단 말입니다. 제발 두려워 마옵소서. 역모에 몰려 죽으면 또 어떻습니까. 소인은 저하를 위해서라면 기쁘게 죽을 것이옵니다. 손 놓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저하를 잃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
자네는... 어째서 모르는가. 내가 왜 자네의 말을 따를 수 없는지. 자네가 말하는... 늙고, 병들고, 제정신조차 아닌 왕이! 내 할아버지네.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내 할아버지. 세상 모두가... 그분을 해치려 한다 해도, 내가 그분을 지킬 걸세. |
오라비랑 같이, 멀리 떠날까?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마음 편히... 그리 살아가지 않으련? 위험한 일에 말려들 필요 없어. 나에겐 네가 제일 소중해. |
나도 마음 편히 살고 싶어. 가늘고 길게... 오래오래. |
너에겐 자꾸 쓸데없는 말을 하게 돼. 곤란하단 말이지. |
전하께서, 어둠 속에 홀로 계시도록... 그저 내버려 두었나이다. 위중한 병환이 생기시어, 이제는 예전과 다르시옵니다. 더는 온전치 않으시옵니다. 모두가 그저, 전하의 비위나 맞추며 문제를 얼버무리기만 했습니다. 전하 홀로, 고통스럽게 싸우셨습니다. 당연히 소손이 보살펴 드리고, 지켜드려야만 했습니다. 하오나 그리하지 않았나이다. 어찌하여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을까, 돌이켜 보니... 그 이유를 알겠나이다. 제가 전하를 원망하고 있었기 때문이옵니다. 뿌리 깊은 원망이 있어, 그 어떤 것도 해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허나 이제야 알겠습니다. 원망조차, 어리광이었다는 사실을. 살아있기에 부릴 수 있는, 사치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전하께오선, 평생 소손을 지켜주신... 큰 나무였습니다. 이제, 그 나무를 잃고 제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아쉽고 그리워져... 전하께 매달리옵니다. 저를 믿어주십시오. 저를 지켜주십시오. 늘 그래왔듯, 제발 그리해주시옵소서, 전하. |
총명한 것은 아끼지만, 방자한 것은 용서 못 해. |
동궁... 내가, 왜 너에게 그토록 큰 기대를 했는 줄 알아? 내가 겪었던 일들을, 네게는 겪게 하고 싶지 않아서야! 내 부왕께선, 내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어. 세상 그 누구도, 내게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어. 살아있으면서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어. 동궁... 네가, 그 비참한... 그 비참한 마음을 아느냐? 그래서 내가, 네겐 기대를 해 줬잖아! 난 가져보지도 못한, 자애를 줬잖아. 내가, 내가 널 얼마나 아꼈는데... 널 얼마나 사랑했는데... |
2.12. 12화
아비가 아니옵니다! 산이옵니다. 산이옵니다, 할바마마! 소손을 보시옵소서.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아비가 아닌 저를 보시옵소서! 산이옵니다. 산이옵니다, 할바마마! |
전하. 제발 다시 일어나시옵소서. 조선의 왕으로서, 마지막 결단을 내려주시옵소서. 설사 소손을 죽이시더라도, 차라리 따르겠나이다. 이대로라면... 조정이 둘로 나뉘고, 백성이 둘로 나뉘고, 이 나라 조선이 극심한 혼란에 빠지옵니다! 제발 다시 일어나시어, 제왕으로서... 마지막 책무를 다하소서. |
모든 것을 잃어도 좋아. 허나, 우리 광한궁의 마음만은 잃지 마라. 우리는 절대 임금을, 이 나라의 위정자를 믿지 않아. 우리에겐 서로 밖에 없고,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건 우리 자신뿐이야. 새 임금이 제아무리 기세등등하게 날뛴다 한들, 우리 모두를 죽이지 못해. 우리 궁녀들은, 왕실을 지탱하는 기둥이야. 제아무리 왕이라 해도, 우리 없이는 살 수 없어. |
오늘 하루... 수 백 명의 사람들을 만나, 수천 가지 질문을 들었지. 누구도 내 상처에 대해선 묻지 않았어. 오직 너뿐이다. 내가 널 생각하듯, 너도 날 생각한다면... 이곳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
상관없다. 네가 뭘 할 줄 알든, 할 줄 모르든... 상관없다. 덕임아, 난 이미 마음을 정했어. 지금 당장은 아니야. 너에겐 물어볼 것도, 들어야 할 것도 많지만... 지금은 겨를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나의 마음도 나중에 말할 것이고, 너의 마음도... 나중에 들으마. |
전하는 늘 제게 수단이었는데, 저의 수단이 저의 목적을 망쳐버렸으니... 남은 것은 오직 복수 아니겠습니까. |
헌데 자네, 그거 아는가? 내 지난날에 수많은 기억들이 다 날아가고, 남은 기억이 몇 개 안 남았어. 헌데, 이건 기억한다네. 자네가 내게 주었던 진정. 그 정을 이용만 하고 버려버렸던 부끄러움. 왕이라 그랬어. 왕은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지. 내... 수십 년간을 보위에 앉아, 수많은 판결을 내렸지만, 단 한 번도 부끄러운 판단을 내려본 적이 없어. 자네가 처음일세. |
수없이 많은 밤들을, 전하를 기다리며 지새웠지요. 혹시나 옛 약조를 기억하며 찾아오실까 봐. 언제나 아침은 밝아오고, 늘 깨닫곤 했답니다. 궁녀가, 임금을 사모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전하는 늘 제게서 받아 가시기만 하셨지요. 한 번쯤은, 저를 위해 내어주시겠습니까? |
글쎄요. 무엇일까요? 진심 어린 눈물? 사실 궁에서 죽을 수 있는 방도는 참으로 많습니다. 보십시오. 소인도 하나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임금의 약조를 믿기에는 제가 너무 약아졌지요. 전하의 진심을 믿기에는, 제가 너무 지쳤습니다. |
저하께서는 뜻을 이루지 못하셨지만, 소인은 감히, 제 뜻을 이루고자 하옵니다. |
소자는...소자는 어머니의 아들이 되었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어머니께서 옹주여서가 아닙니다. 전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잃었습니다. 한 번도...한 번도 누군가를 어머니라 불러본 적 없던 제가 처음으로 어머니를 어머니라 불렀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아십니까. |
제 어머니가 되어주신 은혜, 내세에서도 잊지 않고 보답하겠나이다. |
하나는, 왕으로서 남기는 말이야. 앞으로... 수백, 수천의 사람들을 죽이게 될 게다.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군가의 목숨을 거두어야 해. 해야 할 일을 하거라. 그것이, 네가 견뎌야 할 운명이니까. 또 하나는, 할애비로서 남기는 말이야. 이 할애비를, 용서하거라. 잘못은 했지만, 늘... 최선을 다했어. 그러니 이젠, 용서해다오. 산아. 이제, 네가 조선의 왕이야. |
봤지? 나는 약조를 지켰어, 이놈아. |
전하, 전하... 할바마마, 할바마마... 이리 훌훌 떠나버리시면 그만입니까. 제게 그토록, 큰 고통을 줬으면서. 아비를 빼앗고, 할미를 빼앗고. 그 모든 게 전하 때문이었습니다. 그 모든 게, 전하의 탓이었단 말입니다. 절대 용서하지 못합니다. 절대 용서하지 못합니다! 할바마마... 제발 돌아오소서. 소손, 무섭고 두려워 숨조차 쉬기 어렵습니다. 제발 다시 돌아오소서. 다시 돌아오소서... 할바마마. |
제조상궁 마마님도, 영빈자가도... 모두 다 같이 궁녀였던 사람들인데. 마지막은 참 다르구나. |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면 되지 않을까? 남들이야 어찌 생각하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면 그게 행복 아닐까. 그냥 지금처럼, 너희들이랑 함께... 기쁠 때 함께 기뻐해 주고, 슬플 때 함께 슬퍼해주면서... 평온하게 살고 싶어. 난 변하는 게 싫어. 모든 게 지금 이대로 였으면 좋겠어. |
모든 게 똑같을 순 없을 거야. 아니, 이미 변하기 시작했어. 우린 평생 왕을 모셔야 하는 궁녀인데, 그 왕이 바뀌었잖아. 이제부턴 모든 게 변할 거야. |
모든 책임은 제왕의 것. 이제까지는, 일이 잘못되었을 때, 이 자리에 엎드려 전하를 원망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세상 모든 일들이, 그처럼... 간단하고 쉬웠습니다. 이제, 저의 하늘이 무너져 사라지고, 제가 새로운 하늘이 되었습니다.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무섭고, 두렵습니다. 결코... 숨지도, 도망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모든 것이, 저의 책임입니다. |
널 내 곁에 두고 싶어. 궁녀가 아니라, 여인으로서. 그러니까 난 지금, 너에게... 내 후궁이 되어달라, 말하는 것이다. |
덕임아. 난 너와, 가족이 되고 싶어. |
2.13. 13화
넌, 아무렇지 않은 계집인데... 이상하게 싫지가 않아. 그런 사람이 있어.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사람. 궁 밖에서야... 그게 득이 되겠지만, 궁 안에서는... 글쎄. 그게 득이 될까? 널 원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너에게는... 독이 될 거야. |
네가 그들과 있는 것을 간혹 보았다. 너는 늘 웃고 있었고, 나는 늘... 내 것을 빼앗기는 기분을 느꼈지. 너에겐 네 동무들이, 나보다 더 소중한 것이냐? |
전하 곁에서는, 말 한 마디도 함부로 할 수가 없어. 가끔 숨이 막힐 것 같아. |
왜, 자네는 내 꼴... 안 날 것 같은가? 자네의 세상은... 천년만년 계속될 것 같은가? |
멀리서 봐야 보이는 것도 있는 법이지. |
자식이 살려준 목숨이니... 함부로 버리지 않겠습니다. |
네가 할 소리는 아니지. 날 제일 힘들게 하는 사람인 주제에. |
넌 요즘,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굴어. 다른 사람들처럼 날 무서워하지. 친아우마저 죽이는 임금이라 무서우냐. 혈육마저 마구 죽이는 사람 곁에 있는 것은, 꺼려져? |
전하께서 너무 고통스러워 보이셔서... 보위에 오르신 이후, 늘 고통스러워하십니다. 하루도 편해보시질 않습니다. 뭐라도 해드리고 싶은데, 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지요. 저 역시 하루하루, 무력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
- 내가, 너에게 원하는 것이 그런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 텐데. 오늘은 네가 운이 나쁘구나. 너와 나, 둘뿐이다. - 많이 취하셨습니다. 어차피 오늘 무슨 말씀을 하셔도, 내일이 되면 기억 못 하실 겁니다. - 네 말대로, 내일이 되면 하나도 기억 못 할 것 같다. 어차피 기억에서 지워질 밤이라면, 내 마음대로 해도 되지 않을까. - 전하께서 잊으셔도, 소인이 기억하옵니다. 하오니... - 그래. 너는 기억하겠지. 그게 너에게 주는 벌이다. - 벌이라니... 대체 죄가 무엇이건데... - 감히, 날 밀어내려 한 죄. |
이 조선 땅에, 주상이 손에 넣지 못할 여인이 있습니까. 감히 주상의 마음을 거절하는, 무엄한 여인이 있을 리 없고. |
어째서 이런 일을, 내 어머니에게서 들어야 하지? 승낙이든 거절이든, 내게 와 이야기했어야지. 왜 무서워하느냐. 아무리 화가 난다 한들, 내가 널 어찌하기라도 할까 봐? |
- 제 것이 전부 사라지옵니다. 전하의 후궁이 된다면... 제 전부를 전하께 내어드려야 하고, 제 것이 하나도 남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전부를 내어준다면, 그 사람의 전부를 받고 싶을 것이옵니다. 하지만 전하께서는... 그리하실 수 없는 분이시지요. 전하께는, 전하의 일상 속에 하찮은 여인 하나를 덧붙이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저는 제 보잘것없는 일생 전부가 흔들리고, 두 번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잃을까 봐, 두렵습니다. - 내 마음을 잃을까 봐, 두렵다는 뜻이냐. - 아니옵니다. 저 스스로를 잃을까 봐 두려운 것입니다. |
이 일은 잠시 뒤로 미루어두마. 미루어두겠다 하였지, 잊겠다고 하지 않았다. |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은 잘못이 아닙니다. 이제는 임금이시니, 욕심을 좀 부리셔도 됩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내어놓아라, 밀어붙이면 그만이지요. |
그럼 좀 더 애쓰셔야겠습니다. 아직은 이뤄놓은 것이 보이질 않아요. 주상께서 그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셨다는 건, 잘 알겠습니다. 이루신 것은... 글쎄요. 뭐하나 제대로 보이질 않는지라. |
이곳에 앉아, 밤새 전하를 기다리는 일은... 그저, 여관인 내게 주어진 임무일 뿐이야. 그러니까, 다른 생각은 할 필요 없어. 기다리는 데 익숙해져야만 해. 나는 그저, 지존을 모시는 궁녀일 뿐이다. |
2.14. 14화
꿈입니까? 꼬집어 보면 알 수 있을 텐데... 전하께서는, 꿈에서조차 꼬집을 수 없는 분이고. |
임금이 되어 좋은 게 하나 있다면... 이제 누구도, 내 앞을 가로막을 수 없다는 거지. 내가 어디로 가든, 누구에게 가든... 감히 막을 수 없어. |
그래, 불쾌하다. 너 때문에... 넌 기막히게도 내 마음을 흩뜨려트려. 가끔은 정무에 몰두하던 중에도, 네 생각이 불쑥 난다. 오늘은 하루 종일 너 때문에 뒤숭숭했지. 하필 네가 번을 서는 날이구나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했어. 헌데 괜한 걱정이었구나. 넌 여기서 침이나 흘리며 잠이나 쿨쿨 자는데. 넌 약아빠졌거나 모자라거나 둘 중 하나야. 거슬려. 괘씸하다고. 지금도 봐라. 눈이나 동그랗게 뜨고. 넌, 내가 얼마나... |
물론 전하께선 내게 화가 나셨을 것이오. 하지만 전하께서는 언제나 날 용서하셨고, 이번에도 그리하실 것이오. 난 전하의 마음을 쥐고 있다는, 확신이 있소. |
한 번이라도 좋아. 오라버니께 도움이 되고 싶어. 하지만 난, 너무 쓸모가 없어. |
내가 왜, 너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느냐. 가서 다정하게 대해주라고? 아직 어린 소녀일 뿐이라고? 웃기지 마라.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그녀는 엄연히 나의 후궁이다! 왜 나를, 다른 여인에게 보내려 하는 것이냐. 너에겐 이젠 내 마음 따위는 상관도 없느냐. 이제 더는 내가, 사내로 보이지도 않아? 한낱 궁녀 주제에, 날 지키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고 달려와 날 구했으면서... 그런 여인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지? 늘 생각했다. 사실은 너도 날 마음에 품고 있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너도 날, 은애하고 있다고. 아니라면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내게 말해보아라. 정말로, 너의 마음에 나는 없는 것이냐? |
저는... 저는... 전하의 여인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단 한 번도, 그리되기를 바란 적 없습니다. |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네. 내게 소중한. 당연히 내 것일 줄 알았으나, 내 것이 아니더군. 늘 같은 자리에 서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날 기다린 게 아니었어. 그저 그 자리가, 자신의 자리이기에 서 있었을 뿐이지. 내가 오라면 올 줄 알았는데, 전부 바보 같은 착각이었어. 상궁은 어찌 생각하는가? 억지로라도, 손에 넣을까? 인고의 세월을 견디고, 왕좌를 손에 얻었으니... 나 자신에게 보답이나 하나 할까. 누군가는 그러더군. 뭔가를 원하는 마음은 잘못이 아니라고. 이제는 임금이니, 바라는 게 있으면 그저 내어놓아라, 밀어붙이면 그만이라고. 상궁도 그리 생각하는가? |
소인이 어찌 감히 함부로 말을 올리겠나이까. 뜻을 정하시면, 따를 뿐입니다. 다만, 소인 원손 아기씨 시절부터 전하를 뵈었나이다. 감히 아뢰옵건대, 전하께서는... 그런 사내가 아니시옵니다. 그런 임금도 아니시옵니다. |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떠난 사람은 마음에 묻고... 잊어야 하는 법입니다. |
그야 원빈 자가 일은 나도 안됐다고 생각해. 하지만 난 그분을 잘 알지도 못하는걸? 세상 모든 사람의 죽음을 다 자기 일처럼 슬퍼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
말이 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널 좀 더, 내 가까이에 두고 싶구나. 기억하렴.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너를 아낀단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야기하렴. 힘이 되어줄 테니. |
마음 따위 다치든 말든 상관없어! 그저 사람만 무사하면 돼. 과인의 명을 잊지 마라. |
조선은 나의 집이고, 그 집에 사는 모든 사람이... 내 가족이니까. 나 자신은 호의호식하면서, 내 가족이 짐승처럼 사는 것은 견딜 수가 없어. |
전하, 부디 현실을 생각하시옵소서. 노비에겐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쓸모 없는 이들에게 정성을 쏟으시다, 정작 중요한 이들의 마음을 놓치시면 어찌 되겠습니다. 전하께서 신경 쓰셔야 할 자들은 노비가 아니라 노비의 주인들입니다. 그들이야말로 힘을 가진, 전하께 쓸모 있는 자들이지요. 현실을 말씀드리겠다, 하지 않았습니까. |
주상. 왕실의 여인들은, 스스로 원해서 왕실로 시집 온 것이 아니예요. 머리 위의 첩지는 돌처럼 무겁고, 어깨에 놓인 책임은, 그보다 더 무겁지요. 허나 주상은, 우리를 그저 경계해야 할 외척으로만 봅니다. 무언가 결단을 앞두고, 이리 집안 단속을 나서시는 걸 보니... |
전하는 믿을 수 없어. 얘들아, 전하께선 임금이셔. 늘 계산을 하시지. 만일 그분께서 계산을 끝내셨을 때, 한낱 궁녀의 목숨보다 도승지의 목숨을 선택하신다면 어찌 될까. 난 그분과 달라. 목숨을 두고 저울질 같은 걸 할 순 없어. 내겐 경희가 제일 소중해. 경희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거야. |
우리 넷은, 늘 함께여야 돼. 기다려. 내가 가서, 우리가 잃어버린 한 명을 찾아올게. |
실수? 자네는 실수를 한 것이 아니야. 잘못인 줄 뻔히 알면서도, 태연히 일을 저질렀지.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을 것이라 확신한 채. 내 그동안, 수도 없이 자네의 잘못을 용서했네. 어째서 그리하였는지 아는가? 미안했기 때문이야. 오래 전부터, 이런 날이 올 것이라 예상했네. 자네는 틀림없이, 나의 조정을, 나의 나라를 위협하게 될 거라고. 그러니 때가 되면! 반드시 없애야 한다고. 이미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지. 알면서도 계속해서 결정을 미루었고, 결국 오늘에 이르렀네. 감히 국모를 모략하고, 과인의 백성들을 잡아 가두었어. 과인이 사사로운 감정으로 주저하고 망설이는 사이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났지. 자네를, 내 손으로 죽이고 싶지 않다. 자네는 이제, 과인이 가장 경계하는 외척이고, 뼛속까지 증오하는 척신이네. 말해보게. 이제, 내가 자네를 살려둘 것 같은가? |
자네는 결코,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지 않아.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알지 못해. 자네는 결코, 나의 사람이 되지 않아. 내가, 아무리 기다려도! 단 한 번도, 자네는 아니었네. |
신이, 전하의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단 한 번도, 전하의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
그렇다면, 죽이시옵소서. 누이를 잃었을 때, 살아갈 희망을 잃었다 생각하였나이다. 허나 아니었습니다. 전하야말로... 신의 목적이요, 살아갈 희망이었는데... 죽여주시옵소서. 신은 이제 모든 것을 잃었나이다. |
생각하지 않사옵니다. 그저 받들 뿐이옵니다. 하오나, 감히 아뢰옵니다. 전하께선, 누군가 도승지를 살리려... 나서주기를 원하시는 것 같사옵니다. 그리하여, 신이 나서는 것입니다. 아니옵니까? 정말, 정말 아니옵니까! |
- 해명할 것이냐. - 아니옵니다. - 잘못했다 빌어볼 것이냐. - 감히 그리할 수 없나이다. - 넌 잘못했다 생각하지 않는구나. - 전하께선 처음부터 모든 일을 알고 계셨지요. - 그래. 모든 일을 통제하고 있었고, 결말을 예상하고 있었다. 네가 방자하게 끼어들어 감히 대비마마를 끌어들이려 하기 전까진. 덕로는 신하다. 제아무리 기고만장하게 날뛴다 한들, 내 뜻대로 처리할 수 있어. 허나 대비마마는 달라. 이 조선 땅에서, 임금과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지. 만약 대비마마께서 이 모든 진상을 아셨다면... - 도승지가 죽어야만 했겠지요. 전하께서 아무리 감싸려 하신다 해도, 방도가 없었겠지요. 친아우를 죽이셔야 했던 그때처럼, 죽이셔야만 했겠지요. - 난 애들 장난을 하는 것이 아니야! 조정의 일이다. 이 나라의 일이야! 사소한 일 하나라도 내 뜻을 벗어나선 안돼. 헌데 넌, 감히 내 일을 망치려 했어. - 소인 역시 애들 장난을 한 것이 아니옵니다. 전하의 노여움을 살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제 동무를 구하기 위해 나선 것이옵니다. 감히 대비전까지 끌어들이려 한 것이옵니다. 제게는 그토록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제 목숨보다도 더. 전하께서는 모든 정황을 아신 채 계획을 세우셨고, 계산을 하셨고, 정치를 하셨습니다. 전하께서 그리하시는 동안 제 동무는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찮은 궁녀 따위야 죽어도 되옵니까? 왕실을 위해서 평생을 바치는 궁녀는 죽어도 되옵니까? - 때가 되면, 당연히 모두를 구할 생각이었다. - 전하께서 일방적으로 정하신 그 때가 되기 전에, 누군가 죽는다면 어찌 되옵니까? 그저 어찌할 수 없는 희생이옵니까? 아십니까. 소인은 제 동무를 영영 잃게 될까 두려워, 매일 밤 우물가를 뒤지며 돌아다녔습니다. 향낭 하나에 눈이 뒤집혀 연못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매일, 매 순간이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 과인은 분명히 약조하였다. 너의 동무를 구해주겠노라고. - 그 약조 하나에 기뻐서 남몰래 울었습니다. 하오나 실상은, 전하께서는 모든 것을 뻔히 아신 채 소인을 속이셨지요. 한낱 궁녀 따위야 얼마든지 속이실 수 있는 분이니까요. 하지만 소인은 더 이상 기만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 궁녀 주제에! 참으로 오만하고, 방자해. - 예, 소인도 아옵니다. 하오니 벌을 내리소서. 소인이야 어차피 한낱 소모품인 궁녀가 아닙니까. 맘에 들지 않으시면 죽이시면 그만 아닙니까. |
너를 내 마음에 두었어. 너에게 내 가족이 되어달라 말했고. 지금껏, 그리 말한 사람은... 오직 너뿐이야. 세상에 태어나, 유일하게 연모한 여인이... 바로 너다. |
소인은 전하를 연모한 적이 없사옵니다. 한 번도 사내로서 바라본 적이 없사옵니다. 앞으로도 결단코, 그럴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
2.15. 15화
명대사 중에서도 명대사인 대사들이 많은게 15화이다.
내일 동이 트기 전에, 궁을 떠나라. 썩 꺼지란 말이다. 두 번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 |
제가 감히 전하를 속였는걸요. 전하께서 궁녀를 속이시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궁녀가 그리하는 건 있을 수 없으니까. |
그러고 싶지 않아요. 전 여전히 전하가 원망스러워요.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몰라요. 전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전하를 대할 수 없으니까. |
그저 내 눈으로, 확인하고자 했을 뿐이야. 이제 궁 안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확실히 해야 하니까. |
너, 정말 떠났구나. 빌지도, 매달리지도 않고. 그래, 그게 너지. 내 평생 너처럼, 괘씸한 건 본 적이 없어. |
정말 대비전을 끌어들이는 방법밖에 없었을까? 항아님은 말이오,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게 아니야. 한 번 머리를 굴려봤겠지. 대비전을 끌어들이면 어찌 될까. 전하께서 날 죽이실까? 설마 그리는 못 하시겠지... 재빠르게 계산을 끝낸 다음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나선 거요. 어떻소? 내 말이 틀리오? |
항아님은 늘 전하께 특별한 존재였지.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항아님 자신이 더 잘 알고. 허나, 그 특별함도 이제는 끝이구려. 시간이 흘렀잖소. 전하께선 내 누이도, 항아님도... 전부 다 잊으셨다오. |
오라버니께서 궁녀에게 실망하셨단 사실이 놀랍구나. 기대가 있어야, 실망도 있는 법인데. |
전, 몰랐어요. 절 청연군주 댁으로 보낸 분이 전하셨다는 걸. 궁에서 쫓겨나던 날, 전 일부러 모진 말을 골라서... 전하께 내뱉었어요. 어떻게든 전하의 마음에 생채기라도 내보려고요. 곤장을 맞고 노비가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전, 출궁은 당했지만, 이렇게 잘 지내고 있어요. 그게 다 전하의 배려였다고 생각하니, 왠지 더 비참한 기분이 들어요. |
- 청연군주는 전하의 누이이니, 전하께서도 가끔은 이곳에 오시겠지요. 혹 소인을 보신다면, 보지 못한 척, 스쳐 지나가 주실 수는 없는지요. 그저 모르는 이를 보듯 지나쳐 주신다면... - 감히 누구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냐. 넌 뉘우치고 반성하기는커녕, 더 오만하고, 방자해졌구나. - 하오시면 오만하고 방자한 소인에게 다시 벌을 내리시옵소서. 봐주시지 말고,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벌을 내리시면 되질 않사옵니까. - 그렇다면, 네 옷고름이라도 풀어야겠구나. 한 번 승은을 입으면, 더 이상 일개 궁녀일 수는 없게 되지. 승은을 입고도, 후궁의 품계를 받지 못한다면... 뒷방에 갇혀 허송세월이나 보내게 될 것이다. 다른 궁녀들의 멸시나 받는, 밥버러지로 썩게 되겠지. 그게 너에게는 죽기보다 더 무서운 일 아니냐. 이제야 좀 두려워? |
나으리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말했지요. 원빈 자가께서 후궁만 되시지 않았어도, 살아계셨을 거라고. 그 말을 한 것을, 늘 후회했습니다. 자가께서는 원자를 낳고 행복하게 사셨을 수도 있어요. 그저, 운이 지독하게 나빴지요. 사람의 수명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고, 사람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가의 죽음은 절대 나으리의 탓이 아닙니다. |
난 모든 것을 잃었어. 죽을 때까지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지. 항아님은 그저, 딱 내가 죽지 않을 정도... 간신히 숨 쉴 수 있을 정도, 그 정도 위안을 줄 뿐이야. 전하께서도 가지시지 못한 것을, 내가 가졌다는 알량한 위안 정도야 받을 수 있겠지. 그러니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걸랑, 기억하시오. 나를 죽인 것은, 항아님이라오. |
그래.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는 하지 않는다. 널 지우고, 새로운 여인을 곁에 둘 것이다. 그녀에게 최선을 다할 것이고. 그 누구도, 너와 같을 수는 없겠지만. |
- 돌아왔더구나. 그런 모습이나 보이려고, 일부러 돌아왔느냐? 너는 참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더구나. 돌아오니 좋으냐? 아니면, 오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돌아온 것이냐. - 사실은 그러하옵니다. - 출궁이 벌이 되지 않았군. 그렇다면 쭉 여기 있어라. 임금만을 바라봐야 하는 궁녀로서, 사모하지도 않는 나만 보며 평생 궁에서 썩으란 말이다. 그건 충분히 벌이 되겠지. - 물러가게 해주시옵소서, 전하. 소인은 더 이상 대전의 궁녀가 아니옵니다. 이제 소인의 주인은, 화빈이옵니다. - 네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고? 언젠 내 것이었던 적이나 있었느냐. |
전하. 이 글은 신이 전하께 올리는 마지막 진심이 될 것이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돌이키고, 또 돌이켜보았고, 마침내 깨달았나이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전하께서 어린 세손이시고, 신이 어린 배동이었던 시절을 기억하시옵니까? 신은 처음부터 전하를 속였나이다. 금서를 찢어, 전하를 위기에서 구한 사람은... 신이 아니었습니다. 전하를 구한 이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작고, 하찮은 어린 생각시였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신은 그 생각시의 존재를 잊고 살았나이다. 전하를 구해드린 사람은 바로 저라고. 그러니 전하의 믿음과 신뢰를 받아 마땅하다고, 그리 믿고 살았나이다. 그러나 하늘은 모든 거짓을 지켜보는 법이지요. 그 생각시는 분명, 지금도 그 금서에서 찢어낸 책장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신은 왠지, 그 어린 생각시가 누구였는지 알 것만 같사옵니다. 신은 이제 신의 누이를 지켜주러 떠나옵니다. 불충한 신이 마지막으로 고하오니, 부디 전하께서도... 자신의 진심을 속이지 마옵소서. |
그는, 홍씨였으며... 이름은 국영, 자는 덕로이다. 과인의 신하였고, 가족이었으며, 유일한 벗이었다. 고독하고 외로웠던 동궁에서, 그는 늘 내 곁을 지켰다. 나는 과연, 그에게 최선을 다했던가. 그를 죽인 것은, 결국 내가 아닌가. |
주상께서, 왜 그 아이에게 화가 나셨는지 아십니까? 그 아이가 주상 마음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가 나신 게지요. 그래서 출궁시켜, 눈앞에서 치워버리신 게지요. 지금 당장 화가 난다고, 이대로 그 아이를 포기하시겠습니까? 그 아이는 주상이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인데.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가족을 이루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 세상 그 누구도 주상에게...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라, 말하지 않아요. 주상이 임금이기만 하면, 모두가 만족할 겁니다. 허나 이 어미만은 말해주고 싶어요. 주상, 부디 행복해지세요. 산아, 행복해지렴. |
그래서, 소자더러 어찌하라는 겁니까. 그녀가 저를 원하지 않는데. 평생 무슨 일이든, 치열하게 맞서 싸웠다. 어떤 난관이든 헤쳐나갔어. 하지만... 너는 너무나 어려워. |
차라리 나 때문에 울어라. 내가 보는 앞에서만 울어. 내가 보지 못할 때, 알지 못할 때, 홀로 울지 마라. 이것은 명이다. |
홍덕로가 죽었다 들었습니다. 생각하다 보니... 그냥 눈물이 났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도 빨리 변해갑니다. 한 번 변해버린 것은, 돌이킬 수 없지요. 모르겠습니다. 그냥 눈물이 나서... |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것이냐. 죽은 이는 돌아오지 않아. 허나 살아만 있다면, 다시 기회가 생길 수도 있겠지. 내 눈앞에, 살아만 있다면. |
소인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떻습니까. 세월이 흘렀고,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전 더 이상 동궁의 궁녀가 아닙니다. 전하께서도 목숨이 경각에 달린 세손 저하가 아니시지요. 이제 와 옛일을 끄집어낸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
역시 너였구나. 언제나 너였어. 덕임아, 난 너에게 미안해할 수가 없다. 임금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으니, 후회는 하지 않아. 또다시 너를 속이게 되더라도, 널 아프게 하더라도... 해야 한다면 그리할 거다. 그렇다 해서, 내가 아무렇지도 않았던 게 아니야. 그리는 생각하지 마라. 네가 울면, 내 가슴이 아파.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너에게, 미안하단 말은 할 수 없지만, 다른 말은 할 수 있겠지. ...고맙다. 몇 번이고 날 구해주어서. 내가 알지 못했을 때조차, 날 지켜주어서. 고맙다, 덕임아. |
역시, 너무 늦은 것이냐. 한 번 변해버린 것들은, 정녕 돌이킬 수 없는 것이냐. ...널 그리워했다, 덕임아. |
2.16. 16화
- 내가 오라 하면 올 것이냐? - 명이시라면, 그리해야지요. - 스스로 오고 싶은 마음은 있느냐? - 어쩌면요. 어쩌면 그리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오나 그 이상으로, 그저 제 자리에 있고 싶습니다. - 그리 말할 줄 알았다. |
세상에는 돌이키기 어려운 일이 있어요. 사람의 마음은, 한 번 상하면 돌이키기 어려워요. |
홍덕로를 믿었습니다.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너무나 믿고 싶었기에 그를 믿었습니다.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는 하지 않으려 하옵니다. |
너는 왜 내 사람이 아닐까. 왜 아닐까? 감히 주상의 것을 뺏을 수는 없었지. 하지만 화빈 정도라면... 내 것이 되렴, 덕임아. 주상에게 바쳤던 충의를, 내게 바쳐. 화빈보다는, 좋은 주인이 되어주마. 예전에 난 너를 이용할 생각이었어. 주상께서 널 특별하게 생각하시는 걸 알았지. 그래서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 했다. 너 역시 그 사실을 알았겠지. 허나 지금은 아니야. 너는 너 자신으로 충분해. 난 그저, 길고 외로운 궁 생활을 견디기 위해... 곁에 둘 벗이 필요하구나. |
- 주상. 예전에 내가 말했지요.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은 잘못이 아니라고. 이제는 임금이시니, 욕심을 좀 부리셔도 된다고. 이 할미에게 부탁을 하세요. 원하는 것을 얻으세요. 이토록 간절히 원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 거절하옵니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법도를 어기면서까지 저 아이를 구하고자 한다면... 그들을 볼 낯이 사라집니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정절을 지키며, 왕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궁녀들. 소손은 그들에게 있어, 부끄러운 임금일 수 없습니다. - 훌륭하십니다, 주상. 참으로 성군이세요. 허나 이건 아십니까? 여인들은, 무정한 이를 좋아하지 않아요. 저 아이를 꽤나 아끼시는 줄 알았는데, 죽든 말든 내버려 두시겠다? - 소손은, 저 아이가 사통을 저질렀다 믿지 않습니다.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 순진하십니다, 주상. 궁궐의 칠백 궁녀들이... 일편단심 주상 한 분만을 사모할 거다, 정말 그리 믿으십니까? - 마음을, 마음을 주었을 수는 있습니다. 제아무리 임금이라고 해도, 사람의 마음까지는 어찌하지 못하니까. - 그러니까 마음이 오간 것까지는 모르는 척, 그냥 눈감아주시겠다. 이 사람은 주상과 다르답니다. 내 사람은 온전히 나만을 생각해야지요. 제아무리 마음에 드는 것이라 해도, 내 것이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부숴버리겠어요. 기분 나쁘니까. 주상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한 나라의 임금이, 궁녀 하나를 구해내지 못하는군요. 그럼 앉아서 구경이나 하세요. 저 아이가 죽는 것을. |
마음에 드는 것이, 내 것이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부숴버리겠다 하셨습니까? 그리하실 수 없을 겁니다. 제가 그리하실 수 없도록 만들겠습니다. |
오늘밤 성가 덕임을 내 침전으로 들여라. |
덕임아. 임금께서, 뜻을 정하셨다. 궁녀는... 따를 수밖에 없어. |
너는, 궁녀야. 전하께서 바라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 |
그토록 네 오라비가 소중했느냐? 조금이라도 해를 끼치게 될까, 두려웠어? 너에겐, 네 오라비가 나보다 더 소중하겠지. 네 동무들이... 나보다 소중한 것처럼. 덕임아. 나는 널, 참 여러 번 빼앗겼어. 그때마다 속이 타들어갔지만... 아무 말 못 했지. 더는 그리하지 않는다. 이제 두 번 다시, 너를 빼앗기지 않아. 날 연모하지 않는다 해도, 너는 내 것이다. 더 이상... 내가 없는 곳에서 홀로 울지 마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지도 마. |
날이 밝으면 후회하실 것이옵니다. 괜한 일을 벌였다, 잠시 자책하신 후 잊으시겠지요. 전하께서는 잊으시면 그만이옵니다. 하오나 소인은,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 전 예전에, 전하께 약조를 드렸습니다. 전하께서 보위에 오르시는 날까지, 전하를 지켜드리겠다고. 전 약조를 지켰고, 저의 최선을 다했습니다. 더 이상 내어드릴 것이 없습니다. 저를 놓아주십시오. 보내주십시오. |
넌 평생, 나를 보지 않고 살 수 있느냐? 오늘 밤, 네가 정말로 날 거부한다면... 나는 너를 보내줄 것이다. 대신 두 번 다시 보지 않아. 오늘이 너와 나의 마지막이 되겠지. 내가 너를 연모한다. 너는 나를 연모하지 않아도 좋아. 나를 향한 마음이, 어떤 마음이라 할지라도 상관없어. 충의이든, 연민이든. 그저 내 곁에만 있어준다면... 대답해다오. 내가 정말... 이 손을 놓아야 하는지. 말해다오, 덕임아. |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무슨 상관이야. 이미 일어난 일인데.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다고. |
성덕임. 너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승은을 입었다고 다가 아니야.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절대, 전하께 마음을 줘선 안돼. 사내는 제멋대로야. 임금님이면 더 그럴 거고. 괜히 정을 붙였다가, 너만 상처받아. 딱 할 만큼만 해. 전하의 눈밖에 나지 않을 정도로만. 연모하는 척을 해야 한다면, 해. 진짜로 연모하지는 말고. |
어때 보여? 내가, 전하를 연모하는 것 같아? 이것만은 확실해. 내가 전하를 연모한다면, 그 사실을 전하만은 절대 모르시게 할 거야. 그냥. 쓸데없는 허세 같은 거야. 그래도 지금 내가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일이고. 그런 허세라도 없으면... 좀 괴로울 것 같아. |
덕임아.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생겨. 나도 처음엔 궁녀가 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궁녀가 되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은 굶어 죽었겠지.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냥 받아들여봐. 최선을 다해봐. 그러다 보면, 작은 행복이라도 생길지 몰라. |
주상께서는 그 아이를 위험에 빠트리셨어요. |
지키기 위해, 제 곁에 둔 것입니다. |
그런가요? 그 아이는 후궁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던데. 그 아이가 두려워한 건 오히려 주상이 아닐까요? 오로지 주상에게서 달아나고 싶었는데 실패한 건지도 모르죠. |
좋은 임금이 좋은 부군은 아니질 않습니까. |
- 이제부터 늘 내 곁에 있어라. 넌 내 것이니까. - 예. 전 전하의 것이지요. 전하께서는 결코, 제 것이 되실 수 없고. -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꼭, 달아날 궁리를 하는 사람 같아. 소용없다. 놓아주지 않을 거니까. |
별 다른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곳에 앉아, 하루 종일 전하를 기다리는 일. 그게 제 일입니다. |
영원히, 이리 있을 수 있으면 좋겠어. |
덕임아. 난 절대, 할바마마처럼 사랑하지 않는다. 난 끝까지 지켜낼 거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
전하께선 임금으로서 마땅히 하셔야 할 도리를 하러 가신 거다. |
예. 알아요, 마마님. 전하께서는 제 지아비가 아니라, 중전마마의 지아비시라는 걸. 저는 전하께, 아무것도 바랄 수 없고... 아무것도 기대해선 안 된다는 걸... 처음부터 이미 알고 있었어요. |
- 아들이기를 바라십니까? 너무 당연한 것을 여쭈었습니까? - 너를 닮은 딸이면, 천지분간도 못하는 말괄량이일 텐데... 내 어찌 감당하겠느냐. 그래도... 사랑스럽겠지. 너처럼. 의젓한 아들이든, 천방지축 딸이든. 정말 기쁠 거다. 아이와 함께, 너와 내가 정말 가족이 되는 거니까. - 전하께서는 혹, 임금이 아니라 평범한 사내이기를 바라신 적 있으십니까? - 음, 글쎄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데. - 신첩은, 가끔 생각합니다. 제가 궁녀가 아니고, 전하께서도 임금이 아니시라면 어떨까. 그저 평범한 사내와 여인으로 만났다면 어떨까... 하고요. - 모르겠구나. 잘 상상이 되질 않아. 넌 궁녀인게 어울리는데... - 예. 전하께서도, 임금이신게 어울리십니다. |
알잖아. 난 이제 두 번 다시 궐 밖으로 나갈 수 없어. 평생 구중궁궐에 갇혀 살아야 하는 게 내 팔자지. 괜찮아, 너희가 있잖아. 나 대신 너희가 보면 되지. 돌아와서, 전부 이야기해주기다? |
홀로 있는 시간이 늘어날 때마다, 자꾸만 마음속으로 셈을 해보게 된다. 이곳에서,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무엇을... 잃었을까. |
- 마땅할 의(宜)... 왜 하필 이 글자입니까? - 아니 왜, 싫으냐? - 너무 좋은 글자를 주시는 게, 이상해서요. 전하답지 않으시옵니다. - 그럼, 나답게 줄 글자는 뭔데? - 멍청할 멍자를 써서... 멍빈이라든지... 괘씸할 괘자를 써서... 괘빈이라든지... - 오냐, 세상에 그런 글자가 있다면 너에게 딱이겠구나. - 가르쳐주십시오. 정말, 왜 이 글자이옵니까? - 의가의실(宣家宣室)이라는 말을 아느냐? - 부부가 되어, 화목하게 지낸다는 뜻이옵니다. - 의가지락(宜家之樂)이라는 말도, 아느냐? - 부부사이의 화목한 즐거움을 이르지요. - 그게 바로, 내가 너에게 준... 의(宜) 자다. 말했지 않느냐. 난 너와 가족이 되고 싶다고. - 의(宜) 자에는, 좋아한다는 뜻도 있지 않습니까? 있지요? - ...알면서 뭘 묻지? |
너는, 예전에 내게 말했지. 절대로, 날 연모하지 않을 거라고. 지금도 그러하냐. ...상관없다. 어차피 넌 내 것이니까. |
오늘은 행복하다, 어떤 날은 슬퍼지고... 결국, 살아간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마냥 기쁠 수도, 마냥 슬플 수도 없는 것. |
2.17. 17화(최종화)
아비로서, 자식을 앞세웠소. 애통함은 차마 이루 말할 수 없으나, 과인의 자식은... 세자 하나가 아니오. 조선의 백성 모두가 과인의 자식이지. 이번 역병으로, 도성에서만 백 명이 넘는 아이들이 죽었소. 경들에게 명하니, 더 이상 슬픔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마시오. 지금 당장, 백성들을 하나라도 더 살릴 방도를 찾으시오. |
- 아이를 잃은 건 너만이 아니다. 도성에서만 벌서 백 명이 넘는 아이들이 죽었어. 나라 전체에서는, 얼마나 죽었는지 수조차 세지 못했고. - ...신첩도 알고 있습니다. - 이것이 아는 사람의 행동이냐! 네가 입는 것, 먹는 것, 머무는 것. 그 모두가 백성들이 바치는 조세에서 나온다. 그들이 흘린 피땀으로 우리가 먹고 사는 것이야. - ...무슨 말씀이신지, 아옵니다. - 넌 세자의 친모이고, 용종을 잉태한 정1품 빈이다. 어떤 슬픔을 겪든 백성들 앞에서는 의연한 모습을 보여라. 그것이 네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니까! - 신첩은... 원한 적 없사옵니다. 정1품 빈이 되기를... 원한 적 없사옵니다. 원치도 않은 것을 얻었다 하여, 무조건 참고 인내해야 하옵니까? 제 배로 낳은 아이가 죽었는데... 마음대로 슬퍼할 수조차 없습니까? - 세자만이... 우리아이가 아니다. 우리에겐 아직 아이가 있어. 뱃속의 아이는, 너만을 의지하고 있다. 친아비인 나조차 돌볼 수 없어. 그 아이에겐 오직 너뿐이야. 과인이, 어린 세자를 지키지 못했지. 난 얼마든지 미워해도 좋아. 그래도 어미로서, 해야할 일을 해다오. |
우리가 정말, 가족이 되었구나. |
무슨 일이 있어도, 너와 원자만은 반드시 지켜주마. 임금이 한 약조이니 믿어도 좋아. |
- 미안해. 미안해, 영희야. - 자가께서 뭐가 미안하세요? - 난, 줄곧 나만 생각했어. 나와 내 아이만을 생각하느라, 널 잊고 있었어. 미안해. 미안해... 누가 널 이렇게 만들었어. 대체 누구야. - 자가, 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생각시가 아니에요.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어요. 전부 제 스스로 선택한 거예요. - 어째서. - 은애하는 분의, 여인이 되고 싶어서요. - 이렇게 될 걸 알면서도? - 송구하옵니다, 자가. 경희에게도, 복연이에게도 미안해요. 하지만, 모두가 슬플 걸 알면서도... 전 그저 제가 원하는 대로 살아보고 싶었어요. 궁녀로서, 감히 꿈꿀 수 없는 행복을 맛보았어요. 그 대가가 죽음일지라도, 전 상관없어요. - 영희야, 안 돼. 이렇게 널 잃을 순 없어. 안 돼... 안 돼... - 어서 가세요. 돌아가, 덕임아. |
- 제 동무의 죽음을, 제게 숨기려 하셨습니까? 영원히 숨기실 수는 없질 않습니까. -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네가 동무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너의 동무는, 별감과 사통하고 아이까지 유산했다. 모든 궁인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어. 나라에는, 마땅히 지켜야 할 법이 있다. 그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해. 너의 동무라 하더라도, 눈감아줄 수 없어. 그게, 임금이 해야 할 일이야. - 알고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결코 예외를 두지 않으시겠지요. 하여 살려 달라 간청 드리지 않았습니다. 애원하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그저... 혼자 있고 싶습니다. |
영희가 먼저 떠나고, 이제 우리 셋이 남았어요. 이제 더 이상, 새치기는 없어요. 아무도 먼저 가기 없기예요. |
- 전하. 신첩이 잘못하였습니다. - 무엇을... - 자식을 잃은 사람은, 저만이 아니지요. 실은, 전하께서도 아파하시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제가 잘 알았지요. 그런데도 전하께 모질게 굴었습니다. 임금이시니, 괜찮을 거라 여겼지요. 임금이라도, 괜찮지 않으셨겠지요. 임금이시기에, 더 괜찮지 않으셨겠지요. - 난... 괜찮다. 견딜 수 있어. 견디어야만 하고. 너는 정말 괜찮은 것이냐? 어린 세자를 잃자마자, 가장 친했던 동무마저 잃었지. 나를 원망하지는 않느냐. 네 동무를 구할 힘이 있으면서도, 구해주지 않았어. 그런 날 미워하지 않아? - 처음부터, 전하께서 그런 분이신 걸... 알고 있었습니다.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이, 그런 분이시라는 걸. 전하. 봄이 되면, 다시 꽃이 피겠지요? - 별당의 꽃나무를 말하는 것이냐? 그 나무는... - 다시 필 것이옵니다. 언젠가... 반드시. 그 때가 되면, 모든 게 다시 괜찮아지겠지요. 전하와 함께, 꽃을 구경하고 싶습니다. 전하께서, 아직 동궁이시고... 제가 궁녀였던 시절처럼. 모든 게, 다 괜찮았던... 그 여름날처럼. |
친누이인 나조차, 오라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 오라비가 죽었는데, 상복을 입지 못합니다. 조문조차 가질 못해요. 이 구중궁궐에 갇혀...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누가 우리를 이곳에 가두었을까요. 아홉 개의 담장을 둘러 가두고,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막았을까요. 궁궐은, 참으로 화려한... 감옥이지요. |
넌 가지 말라 하면 간다 하고, 가라고 하면 가지 않는구나. |
- 북풍은 차갑게 불고, 눈은 펄펄 쏟아지네. 사랑하여,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손 붙잡고, 함께 떠나리. 어찌 우물쭈물 망설이는가. 이미 다급하고, 다급하거늘. 북풍은 차갑게 휘몰아치고, 눈비는 훨훨 휘날리네.[11] - 사랑하여,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손 붙잡고, 함께 돌아가리.[12] - 붉지 않다고 여우가 아니며, 검지 않다고 까마귀 아니런가. - 사랑하여,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손 붙잡고, 수레에 오르리. |
소중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우리 곁을 떠나가. ...그래도 우리에겐 서로가 있으니 견딜 수 있어. 그렇지? |
괜찮습니다, 전하. 전하께서는 강인하신 분이지요. 그러니... 괜찮으실 것이옵니다. |
그냥요. 예전처럼, 한 번 불러보고 싶었어요. 마마님은, 마음이 굳건하신 분이에요. 전 예전부터, 그게 참 좋았어요. 절 낳아주신 어머니는, 다정하고 상냥하셨지만... 마음이 약하셨어요. 마마님처럼 강한 분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니까, 마마님은 괜찮으실 거예요. |
- 나는, 나는 보고 싶지 않았느냐. - 전하께서는... 괜찮으실 것이옵니다. 지키셔야 할 게, 아주 많으니까요. 전하께서 지키셔야 할 것들이, 오히려 전하를 지켜드리겠지요. 제 동무들에겐, 저 밖에 없는데... 두고 가는 게, 그저 미안할 뿐입니다. - 이러지 마라. 내가 잘못했다. 네가, 여전히 궁녀였다면... 후궁이 돼라 강요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 전하. 정녕 신첩을 아끼셨사옵니까? - 그래... 그래... - 그럼 부디, 다음 생에서는... 신첩을 보시더라도... 모르는 척, 옷깃만 스치고 지나가주시옵소서. 전하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미워하는 것도 아니옵니다. 그저 다음 생에는... 신첩이 원하는 대로, 살고 싶은 것이옵니다. - 너는 나를... 조금도, 연모하지 않았느냐? 아주 작은 마음이라도... 내게는 주지 않았어? - 아직도 모르시옵니까? 정녕 내키지 않았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멀리 달아났을 것이옵니다. 결국 전하의 곁에, 남기로 한 것이... 제 선택이었음을... 모르시옵니까. - ...덕임아. 덕임아. 덕임아? 덕임아... 덕임아. 눈 좀 떠보거라... 덕임아...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 덕임아... 제발... 제발 가지 마라... 나를 두고 가지 마라... 덕임아... |
- 전하께서, 의빈자가를 참 아끼셨지 않습니까. 유일하게, 본인의 의지로 스스로 선택하신 분이... 의빈자가셨지요. 참 우습게도, 세상 모두가 알아버린 겁니다. 전하께서, 누구를 가장 사랑하셨는지. 모두들, 어딘지 모르게... 의빈자가를 닮았더군요. 어떤 이는, 그 총명한 눈빛이... 어떤 이는, 그 밝은 미소가... 혹은, 그 소탈한 성품이. 모두가 조금씩, 떠난 이를 닮았더랬습니다. - 그래서, 전하께선 그분 중에 한 분을 고르셨습니까. 의빈자가와 가장 닮은 이로? - 아니요. 그렇게 화를 내시는, 주상 전하의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결국, 새로이 재간택을 실시해야 했지요. 마침내, 새로운 후궁이 한 명 뽑혔습니다. 새로 들어오신 수빈자가는, 의빈자가와는 조금도 닮지 않으셨더군요. 전, 왠지 모르게... 기뻤습니다. - 괜찮으십니까, 서상궁님. 제가 뭐 해드릴 게 없겠습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 영감. 부디 전하를 지켜주십시오. 너무, 쓸쓸하지 않도록... 외롭지 않도록... 영감께서, 잘 지켜드리십시오. |
덕임아. 나는, 더는 너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잊은 척에 불과하더라도, 상관없다. 너를 잊을 것이다. 임금이다.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의무를 다할 것이다. 평생 그리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리 살아갈 것이다. 나는... 너를, 잊을 것이다. |
- 너도 혼자 남았느냐. - 소인은, 혼자가 아니옵니다. 예전에 동무들과 약조를 했지요. 반드시, 다시 만나자고. 하오니 제 동무들은, 소인을 기다려줄 것이옵니다. 의빈 역시, 그러하겠지요. - 의빈이 왜 너를 기다린다는 것이냐. 내 빈이다. 내 사람이야!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내 것이고, 절대 다른 누구에게도 내어주지 않아. - 의빈을 잊으셨다, 생각하였습니다. 하오나 아니셨군요. |
- 마지막에, 그 사람은 너희를 찾았어. 너희가 아니라 내가 와서 실망했지. 나에게... 다음 생엔, 아는 척도 하지 말라 그랬어. 그저 옷깃만 스치고... 지나가라고. - 전하. 의빈은 단지 작은 허세를 부렸을 뿐이옵니다. 그 작은 허세라도 부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그리 말하였나이다. 알고 계시옵니까, 전하. 분명 의빈 역시, 진심으로 전하를... - 다물어라. 내가 왜 너의 입에서, 그 사람의 진심을 들어야 하지? 다른 이의 입에서는 들을 필요 없어. 방자하게 굴지 마라. |
너무 작다... 이리도 작은 사람이었던가... 그런 너를, 내가 연모하였다. 덕임아... |
- 왜 하필 신첩이옵니까? - 그게 무슨 소리지? - 세상에 여인은 많습니다. 가문과 학식, 인품. 모든 것을 갖춘 여인도 많은데, 왜 하필 저였습니까? - 다른 그 어떤 여인도, 네가 될 순 없으니까. 덕임아, 나는 내 천성을 거스르면서까지, 너를 마음에 두었다. 그러니 다른 이는 필요 없어. 오직 너여야만 해. |
- 갑자기 꽃구경을 하시옵니까? - 꽃이 다시 피었구나. 두 번 다시, 못 볼 줄 알았는데. - 꽃구경일랑, 나중에 하십시오. 빨리 가셔야 하옵니다. 모두가, 전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덕임아. 오랜 세월이 흘렀고, 가끔씩... 나도 잘 모르겠다 생각했어. 네가 정말 그리운 건지, 아니면... 지난 세월이, 애틋하게 미화된 건지. 이제는 안다. 나는 널, 그리워했고... 너와 함께했던 시절을 그리워했어. 두 번 다시 이 손은 절대 놓지 않는다. - 그리하지 마옵소서. 아직은,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전하께서 마땅히 돌아가셔야 할 곳으로, 돌아가십시오. 좋은 임금이 되셔야지요. 평생을 그리하셨듯. - 있어야 할 곳은 여기다. 알고 보니, 시간이 많지 않더구나. 기다릴 여유도 없었고. 그러니, 날 사랑해라. 제발... 날 사랑해라. |
이것이, 과거라 해도 좋다. 꿈이라 해도 좋아. 죽음이어도 상관없어. 오직, 너와 함께하는 이 순간을 택할 것이다. 그리고 바랄 것이다. 이 순간이, 변하지 않기를.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
그리하여, 순간은 곧 영원이 되었다.[13] |
[1] 이 대사는 2화에서 성인이 된 덕임에 의해 한번 더 레프라이즈된다. 근데 그걸 듣고 있는 사람이 세손 저하 본인이다[2] 이세영이 뽑은 명대사. 덕임이 가진 소박한 꿈과 주체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대사이다.#[3] 드라마에서는 사도세자가 어린 산을 두고 비슷한 말("나를 죽이기 위해 태어난 아이란 말일세.")을 외치는 회상장면을 교차하여 편집했다.[4] 미공개 영상[5] 이준호가 뽑은 명대사. 산 또한 확실히 몰랐던 본인의 마음을 덕임에게 되물어보면서 자신의 마음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6] 시경 중 북풍의 구절이다.[7] 미공개씬으로, 7화에는 나오지 못했지만 13화에 덕임의 회상 장면으로 다시 등장한다.[8] 미공개 영상[9] 원래 7화에 나오는 미공개씬이나, 13화에서 덕임의 회상 장면으로 다시 등장한다.[10] 미공개 영상[11] 5화에서의 덕임의 대사로 레프라이즈 됐다.[12] 5화에서의 산의 대사로 레프라이즈 됐다.[13] 원작소설에서도 마지막 문장이었고 옷소매 붉은 끝동의 주제를 관통하는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