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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1 00:44:43

옷소매 붉은 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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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소매 붉은 끝동
The Red-Stained Sleeve Cuff
파일:옷소매 붉은 끝동 1권 이미지.jpg
<colbgcolor=#de3b3b,#010101><colcolor=#d5d3d3,#dddddd> 장르 사극 로맨스
저자 강미강
출판사 도서출판 청어람
출간일 2017. 03. 30.
단행본 권수 2권 (2017. 09. 07. 完)[1]
쪽수 928쪽
ISBN 9791104911507

1. 개요2. 줄거리
2.1. 정조와의 만남2.2. 경수궁의 지밀나인이 되다2.3. 후궁이 되다2.4. 세자의 죽음2.5. 죽음2.6. 사후
3. 특징4. 등장인물
4.1. 주인공4.2. 왕실 인물
4.2.1. 세자4.2.2. 군주4.2.3. 선왕4.2.4. 내명부 윗전4.2.5. 후궁4.2.6. 부마
4.3. 궁녀들
4.3.1. 덕임의 친구들4.3.2. 대전4.3.3. 경수궁
4.4. 덕임의 가족4.5. 은언군 주변4.6. 기타 인물
5.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6. 탐구
6.1. 깨알 같은 역사적 디테일6.2. 역사와 다른 부분6.3. 기타 탐구
7. 미디어 믹스
7.1. 드라마7.2. 웹툰7.3. 오디오북
8. 기타

[clearfix]

1. 개요

의빈 성씨 덕임의 인생과 정조와의 사랑을 그린 사극 로맨스 소설.[2] 작가는 강미강이다.[3]

리디, 네이버 시리즈, 알라딘 등에서 e북으로 읽을 수 있다.

2. 줄거리

도깨비보다 무섭다는 왕이 있었다.
가늘고 길게 살고픈 궁녀도 있었다.
이상스레 서로가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다가섰다. 그래도 다가서지 않았다.
어렵고 애매한 한 발자국씩을 나누며 습관처럼 제자리를 지켰다.

알쏭달쏭한 시절은 기쁨과 배신으로 어지러이 물들어 이지러지고,
이별과 재회는 어색한 질투와 상실감을 동반하였다.
잊은 척은 할 수 있어도 잊을 수는 없었다.
이윽고 무너진 감정의 둑은 운명을 뒤흔들 홍수가 되었다.

“내 천성을 거스르면서까지 너를 마음에 두었다. 그래서 너여야만 한다.”

하지만 선뜻 붙잡지 못할 붉은 옷소매가 달콤할 수만은 없고,
오히려 그 끝동은 오래도록 별러온 양 새침하게 밀고 당길 따름이었다.

2.1. 정조와의 만남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동궁전 생각시 덕임은 자신이 맡고 있는 별간에 어떤 남자가 찾아오는데, 덕임은 꼬치꼬치 캐묻는 이 남자를 쫓아내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남자가 자신의 상전인 세손임을 알게 된다. 그 이후 지밀 나인이 되면서 세손과 엮이게 된다. 세손이 왕이 된 후 세손 시절부터 왕을 보좌한 덕로가 권세를 휘두르고 중궁이 자식을 낳지 못한다는 핑계로 자신의 여동생을 후궁으로 보내고, 덕로의 여동생은 숙창궁 원빈이 된다. 한편 덕임은 왕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되지만, 멀지도 가깝지도 않는 거리를 유지하기로 한다. 한편 어린 나이에 후궁이 된 숙창궁은 외로운 궁중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입궁 한지 1년 만에 죽고만다. 덕로는 숙창궁의 죽음이 중궁과 관련 있다고 여기고, 어느 날 부턴가 중궁전 나인들이 실종 되고 덕임의 친구 경희도 비밀 암호 만을 남긴 채 사라진다. 덕임은 중궁전 나인들이 덕로에게 잡혀 문초를 당하고 있음을 알게 되어 대비에게 서신으로 구명을 요청하고 덕로를 찾아간다. 그러나 대비 대신 왕이 덕로를 실각시키는데 왕은 덕임에게 서신을 보여주며 자신은 세손 시절부터 덕로를 이용하고 버릴 생각이었음을 알려주고 덕임이 자신을 배반하고 대비와 내통했다며 분노한다. 한편 덕임 역시 경희를 포함해 애꿎은 궁녀들을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이용한 왕에게 실망해서 "전하를 사랑할 일 없을 것이다" 라고 일부러 상처준다. 왕은 그런 덕임에게 강제로 입맞춤하고 날이 밝는대로 떠나라고 말한다.

2.2. 경수궁의 지밀나인이 되다

덕임은 현록대부 댁으로 쫓겨난 후, 시간이 지나 새 후궁인 경수궁이 간택되면서 덕임은 궁으로 돌아와서 경수궁의 지밀나인으로 배치된다. 그러나 경수궁이 친정에서 데려온 본방나인들만 곁에 두고 자신을 비롯한 지밀궁녀들의 말을 듣지않고 멀리 하면서 갈등이 생긴다. 경수궁은 첫 합방을 치르고 금방 회임하지만, 10달이 넘어도 아이가 나오지 않으면서 초조하게 시간만 흐르던 중, 경수궁은 왕이 덕임에게 마음이 있음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덕임을 일부러 힘든 일을 시키며 골탕먹인다. 경수궁이 산더미같은 빨래를 시키자 덕임은 한밤중까지 빨랫감을 두드리다가 우연히 정조의 눈에 띄면서 경수궁은 정조에게 크게 질책당하면서 경수궁은 덕임을 못 본척하면서 조용히 넘어가나 했지만, 경수궁과 그녀의 본방나인들이 외간사내와 사통한다며 덕임을 모함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러나 덕임은 그 외간사내가 자신의 친오라비임을 밝히고 경수궁의 본방나인들이 사가의 무속인과 접촉한다며 경수궁의 본방나인들을 역으로 쳐낸다.

2.3. 후궁이 되다

그날 밤, 왕은 덕임에게 승은을 내린다. 덕임은 정조의 승은을 입은 후 내명부 정5품 상의를 얻었으며[4] 1782년 정조 6년 아들을 출산하면서 내명부 정3품 소용에 봉해진다. 그리고 덕임이 낳은 아들에 원자 정호가 내려지면서 생모인 덕임은 정1품 의빈에 책봉된다. 덕임은 또 회임하지만 절친한 벗 중 한명인 영희가 유산하고 사통한 혐의로 인해 의금부에 끌려간 후 사망한다. 그 소식에 덕임은 혼절하고, 진작에 말렸어야했다며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친구들끼리 “영희는 죽은 게 아니라 먼저 가서 기다리는거다“라며 마음을 추스리고 정조에게서 ”나를 탓해도 좋으니 또 쓰러지지마라“고 위로를 받는다.

시간이 흘러 덕임은 이번에는 옹주를 생산한다. 옹주라는 이유로 주목은 덜 받았지만 덕임은 온전한 자기 자식이 생겼다는 생각에 기뻐했다.[5] 그러나 옹주는 고작 2달 만에 병사하고, 슬퍼하는 덕임에게 효강혜빈은 "원래 아기는 약해서 잃기 쉽다. 또 가지면 된다. 그러니 자식을 잃은 전하를 위로해 드리라."는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덕임은 남아 있는 원자 덕분에 겨우 마음을 추스른다.

2.4. 세자의 죽음

시간이 흘러 원자가 세자로 봉해진다. 이제 글공부를 시작한 세자의 명목상 어머니는 중전이기에 덕임은 세자와 만날 때마다 "저를 어머니라 부르면 안된다"고 거듭 신신당부해야 했다.[6] 그래도 왕과 세자, 덕임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덕임은 행복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세자가 유모에게 옮은 홍역을 앓게 된다. 당시 덕임은 셋째를 회임 중이었던 데다가, 어렸을 적에 홍역을 앓은 적도 없었기에 왕은 행여 덕임에게도 홍역이 전염될까봐 애끓어하는 덕임이 세자를 만나는 걸 철저히 막았다. 때문에 덕임은 아들의 회복을 기원하는 기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어의는 물론 왕까지 처방에 나선 덕분에 세자의 증세는 잠시 호전되는 듯 했으나 갑자기 악화되기 시작했다. 세자의 임종을 앞두고 대비, 효강혜빈, 중전이 찾아오고 마지막으로 왕이 세자를 만나는데 이때 세자는 "어머니만 없다"는 얘기를 하고 결국 숨을 거둔다.

2.5. 죽음

또다시 자식을 잃은 충격에 덕임은 물 한잔조차 마시지 못하고 토한다. 그런데도 덕임은 후궁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슬픔을 감추고 왕, 중전 등 윗전들의 슬픔을 달래야 했던 덕임은 그럼에도 셋째를 위해 억지로 살려고 한다.[7]
그러나 세자의 죽음에 의문을 가지고 경희에게 만약 자신이 잘못 되면 자신 대신 조사를 계속 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몇 달 뒤에 임신 중이던 덕임은 세자와 똑같은 증세를 보이며 앓기 시작한다[8] 왕이 덕임의 임종을 지켰는데 죽음을 앞두고 왕이 아닌 친구들인 경희, 복연을 찾았던 덕임은 왕이 바로 곁에 있는데도 친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어야한다며 친구들을 만나지 못 한 것을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슬퍼하는 왕에게 “전하는 저 없이도 잘 사실 거다, 저를 정말 사랑했다면 다음 생에는 아는 척 하지 말고 모른 척 옷깃만 스치고 지나가시라”며 매몰차게 말하며 냉담한 태도로 끝까지 왕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않고 눈을 감는다.

2.6. 사후

왕은 몹시 슬퍼하지만[9] 이후 왕실은 후사가 급하다는 이유로 즉시 새 후궁(가순궁)을 간택한다. 3년 뒤 가순궁이 또 다른 원자를 낳아 후사를 잇자, 덕임은 애초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잊혀진다. 하지만 왕은 새로운 세자가 돌아가신 형님에 대해 묻자 일찍 죽은 큰아들이 살아 있으면 지금쯤 어땠을지 남몰래 생각하며 그리워 했고, 말년에 병을 앓을 때 덕임의 친구인 경희를 만나면서 자신이 그녀를 잊은 척은 할 수 있어도 결코 잊을 수는 없었음을 깨닫는다. 마침내 병사해서 먼저 떠나 있었던 덕임과 아들을 만나는데 돌아가 보라는 덕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덕임의 곁에 남는다. 돌이켜 보면 시간이 별로 없었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덕임에게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왕에게는 다행히도 덕임은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 뒤 순간은 영원이 되었다는 문장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3. 특징

미디어에 많이 노출된 정조 시대 정치사 부분은 배경으로 가볍게 넘기거나 전개에 필요한 만큼만 다룬다. 보통 극의 원활한 전개나 재미를 위해 고증을 희생시키는 데 비해, 본작은 실제 역사에 상당히 부합한다. 굵직한 정치사 이면의 개인적이고 소소한 기록을 잘 발굴하고 활용해 장르 특성에 맞게 녹여냈다. 상상력으로 창작한 에피소드보다 실제 사건의 각색 비중이 크다.

두 남녀주인공에 집중한 인물 중심적 진행으로 로맨스 장르 본연에도 충실하다. 다만 정조가 무작정 사랑꾼이라는 식의 드라마틱하게 과장된 서술은 지양했다. 실제 기록으로 볼 때 과연 그렇게 사랑한다는 여자한테 할 만한 행동인가 싶은 의문이 드는 부분까지 전부 짚고 넘어가 현실성을 높였다.[10]

책 말미의 작가 후기도 충실한 편. 작가가 17살이었던 2007년부터 집필을 시작해 2015년 6월에 완성했다고 밝히고 있다.[11] 또한 집필을 완료한 이후 번역되어 스토리에 반영하지 못한 사료를 정리하여 추가 설명하였다. 진실을 밝히기 어려운 역사적 의문점, 작품을 쓰게 된 계기 등도 덧붙였다.[12]

4. 등장인물

4.1. 주인공

4.2. 왕실 인물

4.2.1. 세자

4.2.2. 군주

4.2.3. 선왕

4.2.4. 내명부 윗전

4.2.5. 후궁

4.2.6. 부마

4.3. 궁녀들

4.3.1. 덕임의 친구들

아래에 서술된 궁녀들 중 손영희, 배경희, 김복연은 실제로 의빈 성씨와 함께 필사한 책에 이름이 등장하는 동료 궁녀들이다. 다만 캐릭터는 작가의 창작.

4.3.2. 대전

4.3.3. 경수궁

4.4. 덕임의 가족

4.5. 은언군 주변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정조실록》에 등장하는 실존인물. 정순왕후의 하교 때문에 은언군이 독살 의혹을 받았을 때 고초를 겪다 사망했다고 한다.

4.6. 기타 인물[47]

5.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

6. 탐구

시간선이 대단히 촘촘하고 세세하게 짜였다. 특히 덕임이 승은을 입은 3부 파트부터는 전개를 위한 사이사이의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역사를 거의 옮겨다 놨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동일한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삼은 타 작품들과 달리 의빈 성씨궁녀로 나오고 본명인 덕임으로 등장하는 등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였다. 다만 작가는 2015년에 집필을 완료했는데, 2017년 출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새로 번역되어 공개된 사료를 접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결과적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이 생겨 아쉽다고 밝히고 있다.

2010년대 초중반까진 《일성록》 등의 번역 및 전산화 공개가 상대적으로 미진했으며, 《이재난고》나 《어제의빈묘지명》 등 의빈 성씨에 대한 각종 사료가 지금처럼 대중적으로 정리되지도 않았던 점을 고려해보면[49] 작가가 상당히 공들여 조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집필 완료 후에 새로 국역된 사료를 메인 스토리에 반영시키지 못했음을 추가하여 설명하는 작가 후기에서는 아쉬움이 느껴진다.

6.1. 깨알 같은 역사적 디테일

인물들의 대사, 그냥 지나가는 서술 한 줄마다 소소한 역사적 디테일이 돋보인다. 특히 《일성록》 을 거의 옮겨놓다시피 했다 싶은 부분이 많다.

6.2. 역사와 다른 부분

앞서 언급된 것처럼 작가가 집필을 완료한 이후 새로 국역된 사료는 메인 스토리에 반영되지 못하고 대신 후기에 추가 설명되었다. 비교적 사실성이 높은 책이지만 일단 로맨스 장르소설이고, 전개상 타협이 불가피한 픽션이므로 스스로 판단할 것을 권한다.

6.3. 기타 탐구

7. 미디어 믹스

7.1.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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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12일부터 2022년 1월 1일까지 방영한 MBC 금토 드라마로, 이준호, 이세영이 주연이다.

7.2. 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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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일 카카오페이지 웹툰 연재가 확정되었다.

7.3. 오디오북

윌라에서 오디오북으로 만들어졌다. #

성우진은 김봄, 송하림, 장민혁, 김인형, 박하진, 김채린, 황원종.

8. 기타




[1] ebook은 5권으로 출판되었다.[2] 사실 로맨스를 다룬 역사소설에 더 가깝다.[3] 2007년에 (한국 나이로) 17살이었다고 하니 1991년 출생인 것으로 보인다. 경영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이 작품이 첫 작품이라고 하니 27살의 젊은 나이에 데뷔한 셈이다.[4] 역사에서는 문효세자를 낳기 전, 유산을 2번 했지만 소설에서는 2번 유산했다는 소문이 났다고 언급된다[5] 부담감 때문에 원자를 가졌을 때에도 대놓고 태아가 아들이기를 바란 왕과는 달리 딸이기를 원했다.[6] 기본적으로 후궁 소생 왕자녀들은 생모보다 신분이 높았다. 본문에서도 왕의 자손은 있어도 후궁의 자손은 없다는 표현이 나오며, 심지어 예전에 효종후궁안빈 이씨가 공식 석상에서 자기 소생인 숙녕옹주에게 '너'라고 했다가 난리가 났다는 비화가 소개되기도 했다.[7] 중전은 남의 자식이 죽었는데도 자기 자식을 잃은 슬픔을 강요당해야 했고, 정작 생모인 덕임은 마음껏 슬퍼하지도 못하고, 자식을 잃고 슬퍼하는(척 하는) 윗전을 달래야 했다[8] 덕임이 원래 건강한 체질이긴 했으나 겨우 5년 동안 무려 2번의 출산을 하고, 당시 3번째 출산을 앞둔 데다가 태어난 아이들이 모두 요절하고 마음껏 슬퍼할 수마저 없으면서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셋째를 가졌을 때에도 전에 없이 몸이 무겁다는 표현이 나오기도 했다.[9] 덕임과 셋째 아이의 죽음 그 자체에도 슬퍼했고, 덕임이 자신을 한 남자로 사랑해 주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것 때문에도 슬퍼했다. 다만 결국은 덕임 또한 왕을 사랑했음을 그동안의 암시와 마지막 대화로 짐작할 수 있다.[10] 실제로 같은 소재(정조의빈 성씨의 사랑)를 다룬 드라마 《이산》에서는 정조가 그림 솜씨가 뛰어난 송연(의빈 성씨)에게 "여자라서 안 되고, 신분이 낮아서 안 되는 낡은 관습은 내가 바꿔줄 것이니 화원의 꿈을 펼치라"는 말을 한다. 이는 신분 의식이 확고했던 정조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각색이다.[11] 출간은 2017년 4월[12] ebook에는 작가 후기가 실려있지 않다.[13] 의빈 성씨의 실제 본명으로 알려져 있다.[14] 언니들은 모두 요절했다.[15] 사실상 경희라는 캐릭터의 입을 빌려 작가가 덕임의 캐릭터성을 규정하는 문구이다.[16] 궁녀들은 옷소매 끝을 붉게 물들여 입어 홍수(紅袖)라고 불렸다.[17] 작중에서 직접적으로 정조라고 언급되지는 않는데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 정조라는 시호는 왕이 붕어하고 나서 붙여지는 것인데다 심지어 초기 시호는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정조가 아니라 '정종'이기도 했다.[18] 사실 정조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은 아는 사실이지만, 정조는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스타일의 개혁군주라고 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성리학과 유교의 전통 가치를 수호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인, 현대 기준에서는 꼰대 군주에 더 가깝다. 다만 임란호란으로 감소했던 인구수가 재위 기간 동안 점차 회복되고, 이와 맞물려 이모작을 통해 구황작물 재배, 상공업 등이 발흥해 호황기에 접어들던 당시 조선의 경제 상황이나, 서구와의 접촉 등 격변하던 시대 변화 때문에 개혁의 이미지가 후대에 덧씌워진 면이 강하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국사 과목에서 흔히 가르치는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군주라기보다는, 조선의 르네상스 시절에 재위했던 군주라고 보는 것이 정확한 편이다.[19] 다만 마지막 장의 의빈 성씨 캐릭터 묘사를 보면 영혼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아니면 굳이 서술상 통곡하는 신료들의 소리를 집어넣을 필요가 없기 때문.[20] 정조나 황윤석의 주관적인 사료들보다 객관적으로 서술된 정사에 존재하는 기록들이다.[21] 수빈 박씨의 친정은 정조로부터 대접을 잘 받았고, 이후 순조 때 일어난 홍경래의 난에서 국정농단의 주범으로 지목 당할 정도의 권세가로 성장한다.[22] "자궁께서 이미 홍인한에게 은혜를 끊었으니 자전께서도 또한 어찌 김귀주에게 은혜를 끊지 않았겠는가?" # -[23] 이산 방영 당시 모 커뮤니티에서 제기된 의견이기도 하다. 이산 방영 당시 메인커플의 러브라인 전개에 대해 혹평이 많았고, 반대급부로 화빈 윤씨수빈 박씨에 대한 해석도 많이 나왔었다.[24] 본작은 이 발언에 근거한 해석을 내세우는 편.[25] 그러나 이건 당시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화빈은 일개 궁녀 출신이었던 의빈과 달리 당시 영의정과 인척 관계에 있던 명문가의 여식이었다. 여러 자료들로 볼 때 화빈은 정조에게 총애를 받지 못했음이 분명한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녀의 배경을 본다면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존재였다. 따라서 임신하지 않은 것은 확실하나 그녀의 집안 배경을 생각해서라도 산실청을 계속 유지하는 것으로 그 배경에 있는 사람들을 존중해주는 태도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눈여겨 봐야 할 점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서명선과의 언쟁 이후 문효세자의 원자 책봉을 윤허한 것에 있다. 화빈과 인척 관계에 있던 영의정이 바로 서명선이었기 때문. 사실상 문효세자의 원자 책봉을 가장 반대할 만한 진영은 누가 봐도 화빈과 그 주변인들이다. 애초에 원자 생산을 위해 간택되어 들어온 것이므로. 따라서 누가 봐도 무리수인 임신 30개월을 눈감아 주는 것으로 일부러 화빈 측에서 먼저 이야기가 나오게끔 유도하여 문효세자의 원자 책봉에 대한 반대의 싹을 잘라 놓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게 정조에게만 득이 된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서명선은 정조의 총애를 받는 의빈을 지지함으로써 자신의 세력 기반을 더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패를 두 개 가지게 된 셈.[26] 수빈의 경우, 정조에게 후계가 한 명도 없는 상태였고 정조 본인부터 30대에 이르러 노화가 많이 진행되었던 것을 체감했으므로 원자가 매우 절실한 상황이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원자 책봉은 문효세자보다 먼저 되었을지 몰라도 문효세자가 3살에 세자 책봉을 받은 것과 달리 순조는 11살에 세자 책봉을 받았다.[27] 작중에도 언급되지만 기본적으로 왕의 자식은 후궁이 낳았어도 중전의 양자가 되는데, 특히나 세자는 후궁의 친자식이라도 중전의 양자로 입적되어 왕위계승권을 가지게 된다. 후궁에게 모후 대접을 해주면 훗날 정실부인인 중전의 입지가 매우 곤란해지기 때문. 즉, 후궁은 생모일 뿐 법적인 어머니는 왕의 본처인 중전이다.[28] 여담이지만 영조의 자상함을 상징한 이 책은 나중에 덕임을 도리어 곤경에 처하게 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29] 사도세자가 비만에 가까웠는데 영조는 이걸로도 사도세자 생전에 사도세자를 비난했다는 역사를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30] 효강은 정조가 내린 존호. 혜빈은 정조 즉위 전 쓰이던 칭호. 작중에서는 즉위 후에도 혜경궁이 아닌 '효강혜빈 저하'로 불린다. 정조 대의 유명한 인물이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의도한 것으로 짐작된다.[31] 이 장면은 혜경궁의 실제 일화를 반영해 묘사한 것으로 보이는데《혜경궁 지문》에 따르면 혜경궁의 첫 아들, 의소세손이 어린 나이에 죽자 삼전(인원왕후, 영조, 정성왕후)이 매우 슬퍼하였고 혜경궁은 윗전들이 더욱 슬퍼할까 염려하여 윗전들을 뵐 때 슬픔을 감추고 얼굴빛과 말씀을 평상시처럼 했다고 한다.[32] 작중과 달리 《일성록》에 의하면 혜경궁은 손녀의 죽음을 매우 슬퍼하였다고 한다.[33] 덕임은 첫째를 가졌을 때부터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왕실에선 나 같은 후궁은 얼마든 죽어도 상관 없을 거라고 다소 자조적인 얘기를 친구들에게 했는데 실제로 그 얘기가 어느 정도 실현된 셈이다.[34] 정순왕후는 '어미를 죽이며 자식을 얻는 건 천륜에 반한다. 그렇게 얻은 자식이 떳떳할 수 없다.'고 반대했다. 곧이어 정조도 '지금 이 상태로는 산고를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고 편을 들었다. 설령 혜경궁의 뜻대로 유도 분만을 했더라도 작중 묘사된 정황을 감안하면 아이가 사산됐을 가능성이 크다. 덕임이 하혈할 때 태동이 있었는데 여느 때와 같은 태동이 아니라 아이가 괴로워서 몸부림치는 듯한 태동이었다고 했기 때문. 작중 급격히 악화된 덕임의 상태를 감안하면 정조의 소견대로 사산하기 전에 덕임은 산고로 숨졌을 가능성도 크다.[35] 참고로 문효세자의 사망 이후 순조가 태어날 때까지 4년의 공백기가 있었는데 이때 정조는 덕임처럼 자의로 다른 궁인을 취한 바 없다고 묘사된다.[36] 후에 선희궁으로 궁호를 새로 올리지만 작중 시점에서는 의열궁이 맞다.[37] 후에 정조의 회상으로 한 번 직접적으로 등장하기는 한다.[38] 청선군주도 저때 일을 두고 두고 담아뒀는지 덕임에게 오라버니도 기방에 다녔었다고 해서 덕임을 놀라게 했다.[39] 역변에 가담한 것과는 별개로, 월혜의 아버지도 덕임에게는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저런 부탁을 했던 것. 작중 묘사에 따르면 그는 덕임을 볼 때마다 간식을 잔뜩 쥐어주는 다정한 사람이었다고 한다.[40] 상전이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않고 기어이 몰래 사고를 치더니 뒷수습을 책임 지고 출궁하게 되었으니 억울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41] 작가는 《승정원일기》를 조사해 유원 첨절제사를 지낸 무관 성윤우를 덕임의 부친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승정원일기》의 무관 성윤우와 《이재난고》의 청지기 성윤우는 동일인물이다. 《창녕성씨상곡공파보》, 《어제의빈묘지명》, 《무보》를 토대로 성윤우의 부친은 성수산, 조부는 성근립, 증조부는 성경. 아들은 성담, 성완, 성흡이라는 부분이 일치한다.[42] 실제 임씨는 35세에 출산 중 사망하였는데 공교롭게 덕임도 그와 비슷하게 34세에 임신중독증이 유력한 사인으로 추정되는 사망을 했다. 뿐만 아니라 임씨의 설명에 따르면 덕임과 터울이 한참 나서 덕임이 태어나기도 전에 시집을 갔던 덕임의 두 언니조차 출산 중에 사망했다고 한다. 임신과 출산이 특히 힘겨운 체질이 유전되었을 수도 있지만 터울도 별로 안 두고 잦은 출산을 해야 했던 그 시기 여성들의 열악한 삶을 감안하면 흔한 일일 수도 있다. 덕임은 요즘 기준으로도 다소 늦은 임신을 했는데 심지어 후궁으로 있던 기간의 대부분을 임신한 채 지내야 했다. 그러니 평소에 건강했어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43] 실제 의빈 성씨의 둘째 오빠이다. 성식에서 성완으로 개명했고 1743년에 태어나 1806년 7월 10일에 사망했다.[44] 당대의 이기적인 여느 남자라면 누이가 왕의 총애를 입었으면 자신도 그 덕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좋아했을 것이다. 실제로 정조 초기 세력가였던 홍국영조차 터울이 많이 나는 여동생을 후궁으로 들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성식은 도리어 왕이 한때의 충동적인 쾌락으로 자신의 하나뿐인 여동생을 농락한 것이 아닌가 걱정했던 것. 여동생을 소중히 여겼음을 알 수 있다.[45] 실제 성식과 성완은 동일인물이다. 성식이 성완으로 개명했다.[46] 의빈 성씨의 큰 언니는 승평 강씨의 덕순, 둘째 언니는 파평 윤씨의 귀영과 결혼했다. 다만 둘 다 배우자의 본부인이 아닌 첩실로 들어갔다.[47] 전원 실존인물. 작품 내내 본명 대신 자(字)로 등장하거나, 정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안 나온다.[48] 어진화사 장면의 대사로 추정.[49] 2016년 이전에는 잘못된 정보가 넘쳤고 위키피디아 등의 의빈 성씨 항목도 불모지에 가까웠다.[50] # #[51] 홍인한이 연루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시각이 있다.[52] 혜경궁 홍씨의 친정 어머니가 혜경궁이 출산할 때마다 옆에서 도와주었다는 대사도 실제 역사와 일치한다(...)[53] 1773년의 영조어용화사와 곽장양문록 필사를 1775년의 익명서 투척 사건과 계방일기 성학집요편으로 연결시켜 동궁과의 시작되는 인연을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시간선을 조정한 것으로 짐작된다. 책 말미의 곽장양문록 챕터에서는 영조49년(1773년)이라고 명시했다.[54] 이상하게도 각종 서적에서 보이는 부분. 심지어 일성록과 실록에서도 이와 같은 표기가 보인다.[55] 한국 사극로맨스 작가들이 바이블처럼 참고하는 김용숙 박사의 '조선조궁중풍속연구'에 적힌 오류때문에 빚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해당 서적은 약 50년된 연구들의 모음으로 지금은 오류로 밝혀진 부분도 더러있으니 직접 문헌검색 등을 통해 검증해보는 것이 좋다.[56] 위와 마찬가지로 오래된 연구의 오류를 답습한 것으로 보인다.[57] 명분론이 극에 달한 조선후기에 적법한 적모가 있는 상황에서 입장이 붕 뜬 첩실의 처지에 대해 주목하는 것은 작품의 주제의식과도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