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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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동 석 보살입상 | 홍재전서 | 인천안목 권상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16호 | |
홍재전서 弘齋全書 | |
소재지 | <colbgcolor=#fff,#191919>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5 (신문로2가, 서울역사박물관) |
분류 | 기록유산 / 전적류 / 전적류 |
수량 / 면적 | 60권 60책 (포갑 5갑) |
지정연도 | 2011년 9월 8일 |
관리자 (관리단체) | 서울역사박물관 |
<colbgcolor=#ae1932> 홍재전서[A] |
포갑에 싸인 홍재전서[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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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의 22대 왕 정조의 문집. 총 184권 100책. 규장각과 장서각 등에 소장되었다.2. 내용
정조의 작품들을 모은 문집으로 크게 초간본과 2차 편집본, 최종 완성본이 있다.초간본은 총 60권 60책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 316호로 지정되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홍재전서 (弘齋全書) 초간본 정조 11년(1787)에 규장각에서 편집한 것으로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되었다.
2차 편집본은 정조 23년(1799)에 완성한 것으로 총 190권이다.
최종 완성본은 순조 1년(1801) 12월에 완성한 것으로 총 184권이다. 최종 완성본의 경우 2차 편집본에 있던 서(書), 논, 잠, 송이 빠지고 분량이 약간 줄어들었다. 규장각에 6부, 장서각에 2부가 있다.
184권 100책 홍재전서와는 별개로 장서각에 홍재고(弘齋稿) 4책이 따로 보관된다.
홍재전서 100책은 우리나라 역대 왕의 문집 중 최대 분량이며, 한국을 넘어서도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이만한 질과 양으로 작품들을 저술하고 남긴 인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예를 찾기 힘들다. 이 외에도 정조는 매일 일기로 일성록 677책을 집필하였고, 어정서(御定書) 2천여 권을 직접 편찬했으며, 기타 4천여 권에는 편찬과정에 관여했다.# 또한 너무 책을 좋아해서 자신이 직접 지은 어제(御製)와 신료들에게 명해 편찬 간행한 책 155종 3991권을 가려 뽑아 아예 해제집인 군서표기(群書標記)를 내기도 하였고, 군사와 무예에 깊은 관심을 두어 무예도보통지의 편찬을 지시하였다. 직접 동의보감의 주요 내용을 채록해 수민묘전(壽民妙詮)을 짓거나 의학 처방전인 강명길의 제중신편(濟衆新編) 편찬을 돕기도 하였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홍재전서 항목을 참조.
여담으로, 정조 말년에 "지금 궁에서 나의 괴임(사랑)을 받는 여인은 없다."라는 말의 출처로 홍재전서가 언급되는데 확인된 바 없다.
3. 구성
- 홍재전서 제1권
- 춘저록(春邸錄) 1 ○ 시(詩)
- 태양 을유년
- 달
- 집경당(集慶堂)의 춘첩(春帖) 2수(二首) ○ 병술년
- 등석(燈夕)
- 달을 읊다
- 벽파담(碧波潭)
- 단양(端陽)에 고사(故事)를 기록하다
- 동산의 학(鶴) 울음소리를 듣다
- 혹인(或人)에게 보이다
- 평락정(平樂亭)에 오르다
- 절함도(折檻圖)에 제(題)하다
- 목멱산(木覓山)을 바라보다
- 연못[荷塘]
- 천하(天下)의 지도(地圖)
- 장락전(長樂殿)에서 옛일을 기억하다
- 행단(杏壇)에 오르다
- 혼자 있을 때를 삼가다(謹獨)
- 오직 하느님과 조종(祖宗)들께서 우리 종묘사직을 보우하시어
- 희우(喜雨)
- 중구(仲舅)가 설서(說書)로 춘방(春坊)에 직숙하고 있는데, 마침 삼복더위를 만났는지라, 한낮에 갈증 날 것이 생각나서 이에 서과(西瓜) 한 쟁반을 보내는 바이다
- 어가(御駕)를 모시고 북원(北苑)에 올라 황단(皇壇)을 바라보며 일을 거행하다
- 어가를 모시고 옛 용흥궁(龍興宮)으로 가는 길에 공주(公主)의 집을 지나면서 애오라지 절구 한 수를 부치다
- 낙선재(樂善齋)의 반송(盤松)을 읊다
- 조양루(朝陽樓)에 오르다
- 백탑(白塔)을 바라보다
- 계명시(鷄鳴詩)
- 광은(光恩)에게 부치다
- 봉상루(鳳翔樓)
- 계구(季舅)가 국자감시(國子監試)에 응시하므로 붓과 먹을 주다
- 진연도계병(進宴圖禊屛)에 쓰다
- 가을밤에 시경(詩經)을 일과로 읽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수(漏水)가 다하였으므로, 인하여 이렇게 읊다
- 꽃 아래서 우연히 읊다
- 시패관(時牌官)을 두고 읊다
- 회상전(會祥殿)의 춘첩(春帖) 정해년
- 관서(關西)의 지도에 쓰다 3수(三首)
- 영사(詠史) 9수(九首)
- 벼루를 주다
- 모기를 미워하다
- 신종황제(神宗皇帝)의 휘신(諱辰)에 느낌이 있어 삼가 짓다
- 또 삼가 숙조(肅祖)의 느낌을 기록한 운에 차(次)하다
- 비가 지나가다
- 음산대렵도(陰山大獵圖)의 병풍을 두고 읊다
- 운대(雲臺)
- 만리장성도(萬里長城圖)에 대하여 읊다
- 위수(渭水)
- 사기(史記)의 항우본기(項羽本紀)를 읽고 읊다
- 선녀가 한무제(漢武帝)를 보고 웃는 모습의 그림을 두고 읊다
- 주 목왕(周穆王)의 팔준도(八駿圖)에 제하다
- 기자묘도(箕子墓圖)를 열람하고 느낌을 기록하다
- 백두산(白頭山)의 사식(祀式)에 대하여 바야흐로 품계를 올릴 일을 의논하는 즈음에 지도를 열람하고 이 시를 쓰다
- 남한산성(南漢山城)의 성가퀴(雉堞)가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마치 눈앞에 있는 것 같으므로 이 시를 읊어서 성윤(城尹)에게 부치다
- 어떤 사람이 풍악산(楓嶽山)에서 유람한 좋은 경치들을 기록하여 보내왔으므로 마침내 이 시를 써서 돌려보내다
- 춘화정(春和亭)에서 도장경(屠長卿)의 운을 뽑아 읊다
- 호남 관찰사로 나가는 백구(伯舅)를 전송하다
- 간의대(簡儀臺)에 오르다
- 경회루(慶會樓)의 못에서
- 어가를 모시고 서교(西郊)에서 즉사(卽事)를 읊다 3수(三首)
- 임연각(臨淵閣)
- 삼가 인평대군(麟坪大君)의 봉상루(鳳翔樓) 연석운(宴席韻)에 차(次)하다
- 인평대군(麟坪大君)의 범주동호도(泛舟東湖圖)를 열람하고 마침내 그 운에 따라 짓다
- 승지 윤면헌(尹勉憲)의 부음(訃音)을 듣고 애도하여 읊다
- 세자익위사의 김기대(金基大)가 과거 급제한 것을 축하하다
- 청의정(淸漪亭)
- 소요정(逍遙亭)
- 금원(禁苑)의 서재에서 네 가지 경치를 읊다
- 취한정(翠寒亭)에서 삼가 숙종대왕(肅宗大王)의 신장(宸章)에 차운하다
- 상림 십경(上林十景)
- 애련정(愛蓮亭)
- 모춘(暮春) 무자년
- 광진(廣津)의 배 위에서
- 강 머리에서 갠 하늘을 바라보다
- 어가를 모시고 헌릉(獻陵)에 가서 하룻밤을 지내다
- 생(生) 자의 운을 뽑아 읊다
- 강서현(江西縣)에 근친(覲親) 가는 흥은(興恩)을 보내다
- 밤에 영취원(映翠園)에 오르다
- 닭 울음소리를 듣다
- 벽화(壁畫)
- 시상행(柴桑行)
- 가을밤에 써서 직숙 도위(直宿都尉)에게 보이면서 차운하기를 요구하다
- 하주(荷珠)
- 그림 부채에 제(題)하다
- 보검행(寶劍行)
- 제방의 버들
- 추사(秋思)
- 삼가 숙묘(肅廟)의 추야(秋夜)에 관한 신장(宸章)에 차운하다
- 귀(歸) 자를 거듭 사용하여 어떤 사람에게 부치다
- 대설(大雪)
- 장서(藏書)하는 날에 읊다
- 영과(瀛果)가 처음 이르렀으므로 이에 한 쟁반을 궁료(宮僚)들에게 보내고 인하여 화답시를 요구하다
- 전추라(剪秋羅)
- 옥잠화(玉簪花)
- 우연히 짓다
- 홍재전서 제2권
- 춘저록(春邸錄) 2 ○ 시(詩)
- 인왕산(仁王山)에 오르다 기축년
- 무예를 보고 인하여 예(藝) 자를 뽑아 운으로 삼다
- 밤에 앉아서 읊다
- 시골에 있는 별장의 4가지 경치를 읊어서 남에게 주다
- 앵무(鸚鵡)
- 분수행(汾水行)
- 의종황제(毅宗皇帝)의 붕어한 날을 당해서 풍천(風泉)의 생각을 감당하지 못하여 애오라지 일률(一律)을 읊다
- 사람에게 주다
- 춘(春) 자를 뽑아 읊다
- 장성행(長城行)
- 원앙(鴛鴦)
- 서재(書齋)
- 춘화정(春和亭)에서 삼가 숙종대왕(肅宗大王)의 신장(宸章)에 차운하다
- 무일합(無逸閤)에서 밤에 이야기를 나누다
- 섬돌의 파초
- 분재한 소나무
- 어가를 모시고 명릉(明陵)을 배알하다 12수(十二首)
- 장님을 두고 읊다
- 영남으로 가는 사람을 보내다 2수(二首)
- 집경당(集慶堂)의 춘첩(春帖) 경인년
- 회상전(會祥殿)의 춘첩(春帖)
- 실제(失題)
- 이교행(圯橋行)
- 새벽에 일어나다 호루(壺漏)의 일전(一箭)을 한계로 삼았다
- 귤(橘)
- 연(煙) 자를 뽑아서 용호(龍湖)의 여러 구씨(舅氏)들에게 보이며 화답하기를 요구하다
- 삼가 조경묘(肇慶廟)의 신련(神輦)을 받들고 나루터에 나아가 지송(祇送)하고 인하여 율시 한 수를 읊어서, 감동하여 사모하는 마음을 부치다
- 오래도록 단비가 내리지 않아서 비를 바라는 마음이 한창 간절했는데, 다행히도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3일 동안 계속 되어 위로의 기쁨이 전야(田野)에 가득하니, 아, 이 정도면 해갈이 될 것이다. 이것이 누구의 힘이던가. 참으로 성상의 정성이 이르는 곳에 천심이 돌본 바가 아니라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나는 경하하는 마음을 감당치 못하여 삼가 율시 한 수를 지어서 기쁨을 기록하는 바이다.
- 솔(松)
- 대(竹)
- 비 온 뒤에 읊다 신묘년
- 자정전(資政殿)에서 느낌이 있어 짓다
- 몽와유고(夢窩遺稿)를 열람하고 읊다 소서(小序)를 아울러 쓰다
- 선기옥형(璿璣玉衡)
- 소나무 병풍
- 종각(鐘閣)
- 영은문(迎恩門)
- 중양(重陽)
- 무당
- 북한산(北漢山) 도중에서 회(回) 자를 뽑아 읊다 임진년
- 시단봉(柴丹峯)에서 붓을 달려 쓰다
- 중흥사(重興寺)에 들러서 농암(農巖)의 시운에 차(次)하다
- 강목(綱目)의 강(講)을 마치던 날에 석상(席上)에서 율시 한 수를 읊어 빈료(賓僚)들에게 받들어 보이다
- 등석(燈夕)에 가(家) 자를 뽑아서 읊다
- 바둑(棊)
- 비장군가(飛將軍歌)
- 국도 팔영(國都八詠)
- 소상 팔경(瀟湘八景) 계사년
- 역생행(酈生行)
- 채빈사(采蘋詞)
- 조공해 온 과일을 서연(書筵)에 반사하고 삼가 문묘(文廟)에서 귤을 두고 지은 성제(聖製) 시의 운을 따라 읊어서 빈료들에게 함께 화답하도록 요구하다 갑오년
- 또 빈료들과 연구(聯句)를 읊다
- 매화가 피었을 때에 여러 가지를 읊다 4수(四首)
- 향산(香山)에 유람하러 가는 궁관(宮官) 정민시(鄭民始)를 보내다
- 회상전(會祥殿) 단오첩(端午帖)
- 성상의 건강이 회복되자 기쁨을 기록하다 3수(三首)
- 밤에 앉아서 무료하여 이 시를 읊어서 혹인에게 보이다
- 회상전(會祥殿) 춘첩(春帖) 을미년
- 읊어서 어떤 이에게 보이다
- 풍서행(豐西行)
- 어떤 사람이 풍악(楓嶽)에서 돌아와 관동도(關東圖)의 병풍을 나에게 보여 주므로, 그 병풍에 써서 돌려보내다 8수(八首)
- 홍재전서 제3권
- 춘저록(春邸錄) 3 ○ 서(書)
- 궁료(宮僚)에게 답하다
- 궁료(宮僚)에게 답하다
- 빈객(賓客)에게 주다
- 빈객(賓客)에게 답하다
- 궁료(宮僚)에게 답하다
- 궁료(宮僚)에게 답하다
- 빈객(賓客)에게 답하다
- 궁료(宮僚)에게 답하다
- 궁료(宮僚)에게 답하다
- 빈객(賓客)에게 답하다
- 빈객(賓客)에게 답하다
- 빈객(賓客)에게 답하다
- 빈객(賓客)에게 답하다
- 빈객(賓客)에게 답하다
- 빈객(賓客)에게 답하다
- 빈객(賓客)에게 답하다
- 춘방(春坊) 이진형(李鎭衡)에게 주다
- 궁료(宮僚)에게 주다
- 혹인(或人)에게 주다
- 홍 봉조하(洪奉朝賀)에게 답하다
- 궁관(宮官)에게 주다
- 혹인(或人)에게 주다
- 혹인(或人)에게 주다
- 홍재전서 제4권
- 춘저록(春邸錄) 4 ○ 서인(序引)
- 양현전심록(兩賢傳心錄)의 초서(初序)
- 사명(使命)을 받들고 봉성(鳳城)에 가는 사람을 보내는 서(序)
- 어가(御駕)를 모시고 공주(公主)의 집에 행행한 데에 대한 인(引)
- 팔가백선(八家百選)에 대한 인(引)
- 춘저록(春邸錄) 4 ○ 기(記)
- 소요정기(逍遙亭記) 병술년
- 영취정기(暎翠亭記) 계사년
- 태호석기(太湖石記) 갑오년
- 춘저록(春邸錄) 4 ○ 제문(祭文)
- 진(禛)을 제(祭)하는 글 신묘년
- 춘저록(春邸錄) 4 ○ 논(論)
- 소종(小宗)을 대종(大宗)에 합치는 데에 관한 논 병술년
- 한(漢) 나라 명제(明帝)와 장제(章帝)의 우열(優劣)에 대한 논 무자년
- 춘저록(春邸錄) 4 ○ 찬(贊)
- 화상(畫像)에 대하여 스스로 찬하다 경인년
- 어화(御畫)에 대한 찬
- 삼가 숙종대왕(肅宗大王)의 어제운(御製韻)에 차하여 문정공(文貞公) 김육(金堉)의 화상에 제(題)하다
- 춘저록(春邸錄) 4 ○ 잠(箴)
- 신언잠(愼言箴) 신묘년
- 언잠(言箴)
- 지일잠(至日箴) 병서(幷序)
- 용직잠(容直箴) 임진년
- 경잠(鏡箴) 계사년
- 춘저록(春邸錄) 4 ○ 명(銘)
- 존현각명(尊賢閣銘)
- 옥명(玉銘) 2수(二首)
- 고비명(皐比銘) 갑오년
- 유배명(柚杯銘)
- 주배명(酒杯銘)
- 투호명(投壺銘)
- 춘저록(春邸錄) 4 ○ 송(頌)
- 월상씨(越裳氏)가 흰 꿩을 바친 데 대한 송 병술년
- 경운궁(慶運宮)에서 뭇 신하들과 잔치하면서 서로 노래를 이어 부른 데 대한 송 정해년
- 춘저록(春邸錄) 4 ○ 잡저(雜著)
- 주자대전차의(朱子大全箚疑)에 대한 발(跋) 임진년
- 역학계몽집전(易學啓蒙集箋)에 제(題)하다
- 해동신감(海東臣鑑)에 제하다
- 강목속편(綱目續編)의 의례(義例)를 새로 정정하다 계사년
- 빈객제명록(賓客題名錄)에 발(跋)하다
- 자치통감강목신편(資治通鑑綱目新編) 이십 권의 첫머리에 제하다 갑오년
- 시략(詩略)에 대한 발
- 후자경편(後自警編)에 대한 발
- 경희궁지(慶煕宮志)
- 삼경사서정문(三經四書正文)에 대한 발 을미년
- 경서정문(經書正文)에 대한 연기(緣起)
- 홍재전서 제5권
- 시(詩) 1
- 고양(高陽)의 아헌(衙軒)에서 삼가 선조(先祖)의 어시(御詩)에 화답하다 무술년
- 삼가 소령원(昭寧園)의 재사(齋舍)에 제(題)하다
- 세마대(洗馬臺)에 친림하여 호궤(犒饋)하고 짓다
- 동덕회(同德會)
-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로 나가는 제학(提學) 김종수(金鍾秀)에게 주어 보내다
- 강화 유수(江華留守)로 나가는 재신(宰臣) 이진형(李鎭衡)에게 주어 보내다 기해년
- 황단(皇壇)의 재계하던 날 밤에 이문원(摛文院)에 묵으면서 각신(閣臣)을 소견(召見)하고 짓다
- 평안도 관찰사로 나가는 원임 제학(原任提學) 이휘지(李徽之)에게 주어 보내다
- 찬집(纂輯)하는 여러 신하들에게 보이다 소서(小序)를 아울러 쓰다 ○ 신축년
- 소요정(逍遙亭)에 이르러 폭포를 구경하고, 거문고 소리를 들으면서 벽상(壁上)의 시운에 차하다
- 남전(南殿)의 납향일(臘享日)에 삼가 영고(寧考)의 어시(御詩)에 화답하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매각(梅閣)에서 난로회(煖爐會)를 베풀고 매(梅) 자를 뽑아서 각각 칠언 절구(七言絶句) 한 수씩을 짓고, 꽃이 핀 뒤에 다시 모이기로 약속하다
- 매화가 이미 활짝 피었으므로, 처음 규정에 따라 이삼자(二三子)를 맞이하여 다시 꽃 아래서 모였는데, 이조 참의도 여기에 참예하다
- 상원일(上元日) 밤에 금직(禁直)하는 여러 신하들과 함께 읊다 임인년
- 보만재고(保晩齋稿)를 구하여 보고 일률(一律)을 읊어서 부치다
- 송경 유수(松京留守)로 나가는 직제학(直提學) 서유방(徐有防)에게 주어 보내다
- 상사(上使)로 심양(瀋陽)에 가는 우의정 이복원(李福源)에게 주어 보내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계묘년
- 해서 관찰사(海西觀察使)로 나가는 원임 직제학(原任直提學) 심염조(沈念祖)에게 주어 보내다
- 연사(燕射)하는 날에 읊어서 여러 신하들에게 보이다
- 안악 군수(安岳郡守)로 나가는 원임 직각(原任直閣) 김재찬(金載瓚)에게 주어 보내다
- 옥류천(玉流川)에서 꽃구경을 하고, 또 벽상(壁上)의 화(花) 자 운을 사용하여 짓다
-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로 나가는 원임 직각 서정수(徐鼎修)에게 주어 보내다 3수(三首)
- 납일 대제(臘日大祭)를 지내려고 망묘루(望廟樓)에서 재숙(齋宿)하면서, 이날 밤에 인(禋) 자의 운을 뽑아 시를 지어서 자리에 있는 여러 신하에게 보이고, 인하여 여기에 따라 짓도록 허락하다
- 납향(臘享)하는 날에 재거(齋居)하면서 연신(筵臣)들과 더불어 연구(聯句)를 짓다 홍문관 제학(弘文館提學) 서유린(徐有隣), 총관(摠管) 홍양호(洪良浩)ㆍ김상집(金尙集), 각신(閣臣) 서유방(徐有防)ㆍ정지검(鄭志儉)ㆍ김희(金憙)ㆍ이곤수(李崑秀)ㆍ윤행임(尹行恁), 승지(承旨) 박우원(朴祐源)ㆍ심풍지(沈豐之)ㆍ이시수(李時秀)이다
- 강화 유수(江華留守)로 나가는 직제학(直提學) 정지검(鄭志儉)에게 주어 보내다
-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로 나가는 원임 직제학(原任直提學) 정민시(鄭民始)에게 주어 보내다 2수(二首) ○ 갑진년
- 건원릉(健元陵)의 재실(齋室)에서 삼가 영고(寧考)의 어시(御詩)에 화답하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중원일(中元日)에 본각(本閣)에 재숙(齋宿)하면서 여러 각료(閣僚)들에게 읊어 보이다 2수(二首)
- 장차 영릉(永陵)을 배알하려고 가는 도중에 고양(高陽)에 들러서 재차 제(題)하다
- 도중에 파주(坡州)에 들러 읊조리다
- 덕수천(德水川)에 주필(駐蹕)하여 대신(大臣), 각신(閣臣), 승지(承旨)들과 더불어 연구를 지었는데, 기백(畿伯)도 거둥길을 인도하기 위해 마중을 나와서 함께 참예하다
- 진전(眞殿)에서 삭조(朔朝)의 전알(展謁)을 행하고서, 네 대신(大臣), 세 장신(將臣), 네 절도사(節度使) 및 달성가(達城家)의 자손들을 소견(召見)하여 일절(一絶)을 읊어 보이고, 인하여 여기에 화답하게 하다
- 학성군(鶴城君) 이유(李楡)에게 궤장(几杖)을 하사하는 날에 읊어 보이다 2수(二首)
-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이휘지(李徽之)가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대신(大臣)으로 장차 연경(燕京)에 가서 천수연(千叟宴)에 참석하게 되었으므로, 시를 지어 주다
- 눈 오는 밤에 옥당(玉堂)의 관원들을 소대(召對)하고 연구(聯句)를 짓다
- 원(園)을 배알하는 예를 마치고 나서 보여(步輿)를 타고 국내(局內)의 등성이와 기슭을 두루 살펴보고, 배봉산(拜峯山)에 올라가 보토(補土)의 역소(役所)를 정한 다음, 주봉(主峯)에 이르러 배종(陪從)한 여러 신하들에게 읊어 보이고, 인하여 이 운자를 따라 짓도록 하다 을사년
- 성천 부사(成川府使)로 나가는 원임 직각(原任直閣) 김재찬(金載瓚)에게 주어 보내다 2수(二首)
- 비 온 뒤에 옥류천(玉流川)에서 폭포를 구경하며 읊다
- 단풍정(丹楓亭)에 임어하여 무신(武臣)들에게 시강(試講)시키고, 인하여 경외(京外)의 전최(殿最)에 관한 문서를 뜯어 본 다음, 자리에 오른 여러 신하들과 함께 옥류천(玉流川)에 이르러 폭포를 구경하다
- 판중추부사 서명선(徐命善)에게 내리다
- 동이루(東二樓)에서 연구를 짓다
- 금성도위(錦城都尉)의 회갑에 음식물과 옷감을 보내고, 인하여 시 한 수를 받들어 보이다
- 홍재전서 제6권
- 시(詩) 2
- 내각 연구(內閣聯句) 아울러 소서(小序)를 쓰다 ○ 병오년
- 함경도 관찰사(咸鏡道觀察使)로 나가는 원임 직제학(原任直提學) 정민시(鄭民始)에게 주어 보내다
- 회방인(回榜人)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강항(姜杭)이 선조(先朝) 2년인 병오년의 문과(文科)에 급제했다 하여, 이날에 화모(花帽)와 공복(公服)을 갖추어 입고 와서 사은(謝恩)하므로, 미백(米帛)을 내리고 편전(便殿)으로 인대(引對)하여 시를 지어서 영화롭게 해 주었으니, 이는 삼가 숙조(肅祖)께서 베푸신 병신년의 성대한 일을 따른 것이다
- 청의정(淸漪亭)에서 꽃구경을 하는 날 자리에 함께한 여러 신하들에게 읊어서 보이다
-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로 나가는 제학(提學) 조경(趙璥)에게 주어 보내다
- 기임각(祈稔閣)에서 선조(先朝) 어제(御製)의 시운(詩韻)을 받들어 화답하다 정미년
- 고양군(高陽郡)에 행차하여 유신(儒臣)들에게 무예를 시험하였다.
- 이날이 바로 명릉(明陵)의 탄신(誕辰)이었으므로, 삼가 본릉(本陵)을 배알하고 이어 소령원(昭寧園)을 배알하고는 고양(高陽)의 군사(郡舍)로 돌아와 머무르면서, 대신(大臣)과 각신(閣臣), 그리고 문원(文苑)의 여러 신하들에게 사운(四韻)을 읊어 보이면서 화답하기를 명하다
- 함경도 관찰사로 나가는 제학(提學) 이성원(李性源)에게 주어 보내다
- 연경(燕京)에 가는 원임 제학(原任提學) 유언호(兪彦鎬)에게 주어 보내다
- 주천현(酒泉縣)의 누대(樓臺)에 봉안된 숙묘조(肅廟朝) 어제의 시운에 삼가 차하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무신년
- 태액지(太液池)에서 꽃구경하며 낚시질을 하다
- 이날에 지난 무신년에 공을 세운 양무 공신(揚武功臣)의 자손들을 불러서 주찬(酒饌)을 내리고 또 시로써 칭찬해 주어, 구갑(舊甲)을 만나서 옛일을 회상하는 뜻을 기록하다
- 호남백(湖南伯)으로 나가는 원임 직각(原任直閣) 서용보(徐龍輔)에게 부쳐 보여서 그의 행차를 영화롭게 하고, 인하여 행(行) 자를 뽑다
- 만보정(晩葆亭)에 제(題)하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기유년
- 와유정(臥遊亭) 주인에게 부치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전 참판 김이주(金頤柱)에게 주다 경술년
- 황제의 팔순 성절(八旬聖節)에 진하사(進賀使)를 보내게 되어, 배표(拜表)하는 날에 부사(副使)인 검교직제학(檢校直提學) 서호수(徐浩修)에게 보이다
- 진하사 창성위(昌城尉) 황인점(黃仁點)이 연경(燕京)에 가는 날에 지은 시
- 세검정(洗劍亭)에서 삼가 선조(先朝)의 어제운(御製韻)에 화답하다
- 배표하는 날에 석상(席上)에서 읊어 상사(上使)인 광은부위(光恩副尉) 김기성(金箕性)에게 보이고, 이것을 그의 여행길에 주어 보내다
- 전별하는 자리에서 또 시 한 수를 부치다
- 호남 관찰사(湖南觀察使)로 나가는 제학(提學) 정민시(鄭民始)에게 주어 보내다
- 세심대(洗心臺)에 올라 꽃구경을 하면서 시를 읊어 여러 신하들에게 보이고 여기에 화답하게 하면서 차(茗)가 끓을 때까지 다 짓기로 규정을 내리다 신해년
- 좌의정 채제공(蔡濟恭)의 번암시문고(樊巖詩文稿)에 제하다
- 사릉(思陵)을 배알하고 느낌을 기록하다
- 편전(便殿)에서 반제(泮製)에 뽑힌 제생(諸生)을 소견(召見)하여 상물(賞物)을 차등 있게 내리고 술을 먹였다.
- 다시 세심대(洗心臺)에 올라 어제 읊은 춘(春) 자 운(韻)의 시령(詩令)을 사용하려고 했는데, 총관(摠管) 이민보(李敏輔)가 길에서 먼저 지었다는 말을 듣고 인하여 그 운에 따라 짓다
- 또 연(姸) 자를 뽑다
- 상림(上林)에서 꽃구경하고 고기를 낚으면서 연구(聯句)를 짓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야차(野次)에서 만장봉(萬丈峯)에 제하다
- 도봉(道峯)으로 가는 도중에 장주(長洲)장주(長洲)정조(正祖) 때의 문신(文臣)인 황승원(黃昇源)의 호이다.에게 주다
- 광릉(光陵)을 배알하던 도중에 운(韻) 자를 뽑아 어가(御駕)를 수행하는 대신(大臣), 각신(閣臣), 경재(卿宰), 승사(承史) 등 여러 신하에게 보이고 연구를 짓다
- 정명귀주(貞明貴主) 댁에서 정혜공(靖惠公)의 연시연(延諡宴)을 베풀었으므로, 시를 지어 그 일을 칭찬해서 내각(內閣)의 신하에게 명하여 주인 영돈녕(領敦寧)에게 보내어 보이다 2수(二首)
- 춘당대(春塘臺)에 임어하여 초계문신(抄啓文臣)들에게 제술(製述)과 활쏘기의 시험을 보이고, 집춘문(集春門)에서 성균관의 유생들을 불러 아침 식당(食堂)을 베풀고 제(題)를 명하여 시취(試取)하다.
- 성절(聖節)ㆍ동지(冬至)ㆍ정조(正朝)의 진하(陳賀) 및 백 폭(幅)의 복자 방전(福字方牋)을 흠사(欽賜)한 데 대한 사은사(謝恩使)로 가는 판중추부사 박종악(朴宗岳)에게 주다 2수(二首)
-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연경(燕京)에 가는 검교직내각(檢校直內閣) 서용보(徐龍輔)를 보내다
- 내각(內閣) 검교대교(檢校待敎) 겸 사헌부장령(兼司憲府掌令) 김조순(金祖淳)이 국경을 나가는 날에 시를 지어 주다
- 내원(內苑)에서 연구를 짓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제학 정민시(鄭民始)에게 내리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원임 제학 김종수(金鍾秀)에게 내리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계축년 3월 계축일에 옥류천(玉流川)에서 술잔을 띄우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계축년
- 이 제독(李提督)을 유제(侑祭)하는 날에 당직하는 각신(閣臣)과 승지(承旨), 사관(史官)에게 읊어 보이다
- 삼가 원릉(元陵)을 배알하고 운(韻) 자를 뽑아 배향(陪享)한 여러 신하들에게 명하여 연구체(聯句體)를 채워 이루게 하니, 이해 이달에 선왕을 감모(感慕)하는 회포를 기록하기 위한 것이다
- 계추(季秋)에 초계문신(抄啓文臣)들에게 제술과 활쏘기의 시험을 보이고, 양(陽) 자를 얻어 시구(詩句)를 지어서 자리에 있는 여러 신하들로 하여금 연구를 지어 올리게 하다
- 기사(耆社)의 여러 신하에게 내리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신해년 봄에 궁(宮)을 배알하고 돌아오는 길에 풍계(楓溪)의 북쪽 기슭에 올라서 “좌중에는 호호백발이 많으니, 내년에도 지금 같은 술자리를 만들자꾸나.(座間多皓髮 來歲又今樽)”라는 시구를 짓고, 그후로는 해마다 이를 상례로 삼았는데, 지금 또 그 언약을 실천하면서 동(同) 자를 뽑아 그 연유를 기록하는 바이다. 갑인년
- 내원(內苑)에서 꽃구경하며 고기를 낚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밤에 부용정(芙蓉亭)의 작은 누각에 오르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장주(長洲)의 회갑(回甲)을 축수하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증(贈) 판서(判書) 김늑(金玏)의 집에 선사(宣賜)한 대학(大學)의 권수(卷首)에 제(題)하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황제가 등극(登極)한 지 60년이 되어 진하 상사(進賀上使) 판중추부사 박종악(朴宗岳)이 떠날 때에 읊어 보이다
- 황제가 등극한 지 60년이 되어 진하 부사(進賀副使) 정대용(鄭大容)이 떠날 때에 읊어 보이다
- 어정 인서록(御定人瑞錄)에 대하여 하전(賀箋)을 올린 날에 연구(聯句)를 짓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정릉(定陵)의 여덟 번째 회갑(回甲)이 되어 섭향(攝享)하는 날에 연구를 짓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을묘년
- 영의정 홍낙성(洪樂性)에게 내리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화성(華城)의 장대(將臺)에서 성안의 군사 훈련을 친히 사열하고 시를 지어 문미(門楣) 위에 제(題)하다
- 화성에서 진찬(進饌)하는 날에 읊조리어 잔치에 참예한 여러 신하에게 보여서 만년 축복의 정성을 부치는 바이다
- 낙남헌(洛南軒)에서 양로연(養老宴)을 거행하였는데, 나이 70세 된 노인에서부터 61세 된 노인까지 참예하였으므로, 배례(拜禮)는 일좌 재지(一坐再至)의 예를 사용하였다. 여러 노인들이 각각 제자리로 나아가려 하자, 내가 노인들을 위하여 일어났다. 이미 당(堂)에 올라가서 술잔이 세 순배가 돌았을 때에 노인들에게 읊어 보이면서 화답하기를 구하다.
- 세심대(洗心臺)에서 영성군(靈城君)의 운을 따라 짓다
- 부용정(芙蓉亭)에서 꽃구경하고 낚시질하는 놀이에 대하여 지난번의 시운을 거듭하여 짓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밤에 부용정(芙蓉亭)의 소루(小樓)에 올라서 다시 갑인년에 시를 짓던 규정을 되풀이하여 배 안(舟中)과 섬 안(嶼中)의 사람들과 더불어 운자를 나누어서 시를 짓다
- 읍청루(挹淸樓)에서 판상(板上)의 운을 따라 짓다 2수(二首)
- 영흥(永興)의 본궁(本宮)에 올려 향사하는 날에 연구(聯句)를 짓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자궁(慈宮)의 60회 탄신(誕辰)에 축수의 잔을 올리고, 삼가 기쁨을 기록하는 정성을 서술하여 이 자리에 참예한 여러 빈객들에게 보이다 을묘년
- 북창(北倉)은 북영(北營) 뒤편으로 두어 기슭을 지나서 있는데, 보여(步輿)를 타고 지각(池閣)에 등림하여 읊다. 동각(東閣)의 이름은 응향(凝香)이고, 서각(西閣)의 이름은 읍청(挹淸)이다.
- 제일루(第一樓)에 제하다
- 연경(燕京)에 가는 원임 직제학 이병모(李秉模)에게 주어 보내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연경에 가는 원임 직제학 서유방(徐有防)에게 주어 보내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홍재전서 제7권
- 시(詩) 3
- 능은군(綾恩君) 구윤명(具允明)이 사세(四世)가 한 조정에 있다가 90세로 치사(致仕)하였으므로, 친히 임어하여 조서를 내리고 시(詩) 한 수로 그 일을 거듭 서술하다 병진년
- 이십일 일이 어느 날이던고. 와서 초상(肖像)을 참배하고 젖은 이슬을 밟아 보니, 어버이 사모하는 정이 더욱 간절하였다. 화성(華城)에 돌아와서는 비 때문에 어가(御駕)를 멈추었는데, 가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이 마음에 맞아 앉아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새벽에 다시 길을 떠나 지지대(遲遲臺)에서 머물렀다. 구불구불 길을 가는 도중에 어버이 생각이 계속 마음에 맺히어 오랫동안 그곳을 바라보면서 일률(一律)의 시로 느낌을 기록하다.
- 중춘(仲春) 초하룻날에 공경(公卿)과 근신(近臣)들에게 자(尺)를 반사(頒賜)하여 중화절(中和節)의 고사(故事)를 다시 행하고, 시를 지어 은총을 내리다
- 좌상(左相)이 화성(華城)의 역사(役事)를 총괄하여 처리했는데, 해마다 현륭원(顯隆園)을 참배할 때면 그의 나이가 많음을 고려하여 항상 먼저 갔다가 나중에 돌아오도록 했었다. 그런데 그가 돌아올 적마다 시를 지어서 축(軸)이 그득하므로, 그 축을 가져다 보고 그 가운데 양운(兩韻)을 뽑아 지어서 돌려보내다. 4수(四首)
- 남소영(南小營)에 제(題)하다
- 황단(皇壇)의 친향(親享)하는 날에 삼가 양조(兩朝)의 어제운(御製韻)에 차하다
- 압구(狎鷗) 등 여러 승경(勝景)을 두루 유람하고 장차 풍악(楓嶽)으로 가려 하는 돌올공탕서주인(突兀空蕩墅主人)에게 주다
- 영춘헌(迎春軒)에서 축수 잔을 올리고 기쁨을 기록하면서 지난번 낙남(洛南)의 운을 사용하다
- 이문원(摛文院)에 임어하여 꼭 십 일을 지내고 나서, 주자(朱子)의 시운에 차하여 시를 지어 문후하는 대신(大臣)과 각신(閣臣)에게 화답하도록 요구하고, 인하여 이를 연서(聯書)해서 문지방에 걸게 하다
- 규장각(奎章閣), 은대(銀臺), 옥서(玉署)에 음식을 내리고 연구(聯句)를 짓다 소서(小序)를 아울러 쓰다
- 성(城)을 순시하고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에 이르러 활을 쏘아서 무(武)를 숭상하는 뜻을 보이다. 내가 마침 세 번 정곡을 맞혔는데, 내사(內使)와 외사(外使)도 각각 그와 같았으므로, 셋째 구절에서 주례(周禮) 오사(五射)의 전주(箋註)를 인용하여 사실을 기록하다. 정사년
- 채 좌상(蔡左相)이 화성(華城)에서 지은 병진축(丙辰軸)의 시운(詩韻)에 화답하다 3수(三首)
- 영의정 홍낙성(洪樂性)에게 주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봉조하(奉朝賀) 김종수(金鍾秀)에게 주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새벽에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에 당도하다
- 양천(陽川)의 관각(官閣)에 제하다
- 삼가 장릉(章陵)의 재실(齋室)에 제하다
- 금릉(金陵)에서 삼가 선조(先朝)의 어제(御製)에 화답하다
- 금릉관(金陵館)에 제하다
- 금릉(金陵)의 굴포교(掘浦橋)에서 읊다
- 부평부(富平府)의 관아에 주정(晝停)하면서 운자를 불러 읊다
- 인천(仁川)으로 가는 도중에 읊어서 부아(府衙)에 걸도록 명하고 읍쉬(邑倅) 황운조(黃運祚)로 하여금 쓰게 하다
- 밤에 안산(安山)의 아헌(衙軒)에 임어하다
- 남양(南陽)의 도중에서 읊다
- 남양의 구포(鷗浦)에 잠시 머물다
- 노래당(老來堂)에서 읊다
- 응란헌(凝鑾軒)에서 남한산성(南漢山城)을 바라보다
- 안양(安養)의 발사(撥舍)에서 이것을 써서 남충(南充)의 부림헌(富林軒)에 걸도록 명하였다
- 시흥현재(始興縣齋)에서 읊다
- 좌의정 채제공(蔡濟恭)이 화성(華城)에서 지은 시운(詩韻)에 화답하다 4수(四首)
- 속리산(俗離山)에 간 봉조하(奉朝賀) 김종수(金鍾秀)에게 주다 3수(三首) ○ 소서(小序)를 아울러 쓰다
- 사단(社壇)에 기곡제(祈穀祭)를 지내던 날에 한 창려(韓昌黎)의 신묘년설시(辛卯年雪詩)의 운에 화답하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무오년
- 좌의정 채제공(蔡濟恭)의 화성 시축(華城詩軸) 중의 삼운(三韻)에 화답하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문정공(文正公) 윤황(尹煌)의 부조묘(不祧廟)를 세우도록 명하고 시로써 소감을 기록하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철원(鐵原)의 포충사(褒忠祠)에 써서 걸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명하여 용만(龍灣)에 제단(祭壇)을 만들어서 해마다 황조(皇朝)의 유민(遺民) 임인관(林寅觀) 등 95인을 제사 지내게 하고, 고 부제학(副提學) 이단상(李端相)의 시운을 사용하여 소감을 기록하다
- 금강산(金剛山)에 유람 가는 제학(提學) 심환지(沈煥之)를 보내다
- 강정(江亭)에 유람하는 영부사(領府事) 홍낙성(洪樂性)에게 주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검암(黔巖)의 발사(撥舍)에 제하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덕묘(德廟)의 오회갑(五回甲)이 되는 무오년 중추에 삼가 경릉(敬陵)에 제사를 거행하고, 삼가 환묘(桓廟)의 팔회갑(八回甲)이 되던 을묘년에 경사를 기록한 연운(聯韻)을 거듭 사용하여 다시 연구를 지어서 재사(齋舍)에 받들어 걸다
- 어가가 훈련원(訓鍊院)에 임어하여 쓰다
- 상량문(上樑文)의 육위운(六偉韻)을 사용하여 또 제하다 6수(六首)
- 어가가 장의동(壯義洞)에 들러 그 마을 사람들을 불러 보는 것은 곧 옛일을 준행하는 한 가지 도리였으므로, 오늘도 또한 그와 같이 하고 후일의 약속을 거듭 유시하다. 그리고 돌아오면서 시를 읊어 보여 삼가 여러 사람들을 보내다.
- 손수 권점(圈點)을 찍어 초선(鈔選)한 여러 가지 책에 제하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문상정사(汶上精舍)에 제하다
- 고상(故相) 김종수(金鍾秀)의 가묘(家廟)에 써서 걸다 기미년
- 경봉각(敬奉閣)에 삼가 제하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충정공(忠貞公) 윤집(尹集)과 문간공(文簡公) 정온(鄭蘊) 두 충신의 가묘(家廟)에 써서 걸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마음이 맞은 노인(老人)노인(老人)여기서 말한 노인은 바로 이시원(李始源)의 아버지로서, 노인직(老人職)으로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의 위계(位階)에 이르렀던 이민보(李敏輔)를 가리킨 듯하다.의 가장(家狀)에 제하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철옹부백(鐵甕府伯) 서형수(徐瀅修)에게 주다
- 진하 부사(進賀副使) 서형수(徐瀅修)에게 주다
- 두보(杜甫)와 육유(陸游)의 시에 찌를 붙여 뽑으면서 두 직학(直學)에게 읊어서 보이다
- 헌릉(獻陵)을 배알하기 위해 출발하여 새벽에 주교(舟橋)에 당도해서 예전 무자년의 운을 따라 지어 감회를 기록하다 2수(二首)
- 헌릉(獻陵)의 재실(齋室)에 삼가 제하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채로정(采露亭)을 지나면서 느낌을 기록하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고 지돈녕부사 조윤형(曺允亨)의 집에 반사(頒賜)한 춘추(春秋)의 권수(卷首)에 제하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동지 서장관(冬至書狀官) 구득로(具得魯)에게 내리다 3수(三首)
- 춘추를 완독(完讀)하던 날에 자궁(慈宮)께서 음식을 베풀어 주어 기쁨을 표하시므로, 읊어서 여러 신하들에게 보이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지중추부사 홍위호(洪緯浩)에게 내리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경신년
- 사단(社壇)에 기곡(祈穀)하던 날에 읊어서 여러 신하에게 보이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현륭원(顯隆園)을 배알하여 기쁨을 고하고 돌아와 봉수당(奉壽堂)에 임어하여, 지난 을묘년에 영흥(永興)의 본궁(本宮)에 경사를 기록했던 시운을 사용해서 장락궁(長樂宮)의 동쪽 문미(門楣)에 제하다. 때는 경신년 상원(上元) 후 이틀째가 되는 날이다.
- 북원(北苑)에서 재계하는 날 저녁에 읊어서 여러 신하에게 보이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춘당대(春塘臺)에 임어하여 인일제(人日製)를 베풀고 읊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영의정 이병모(李秉模)가 주청사(奏請使)가 되어 떠나는 데에 대하여 시를 읊다 2수(二首)
- 삼가 주 부자(朱夫子)의 시에 화답하다 8수(八首)
- 장마가 막 개자 여러 신하들에게 읊어서 보이다 소서를 아울러 쓰다
- 악장(樂章)
- 자궁(慈宮)께서 화성(華城)의 행궁(行宮)에 임어하실 때 음식을 올리면서 연주하는 악장 을묘년
- 자궁(慈宮)의 주갑(周甲)에 음식을 올리면서 연주하는 악장
- 치사(致詞)
- 자궁(慈宮)의 주갑일(周甲日)에 올린 치사 을묘년
- 홍재전서 제8권
- 서인(序引) 1
- 궁원의인(宮園儀引) 병신년
- 동덕회축서(同德會軸序) 정유년
- 흠휼전칙서(欽恤典則序) 무술년
- 규장각지서(奎章閣志序) 초본(初本) ○ 기해년
- 열성지장통기서(列聖誌狀通紀序) 경자년
- 국조보감서(國朝寶鑑序) 임인년
- 뇌연집서(雷淵集序)
- 선원계보기략서(璿源系譜紀略序) 계묘년
- 수민묘전서(壽民妙詮序)
- 돈효록서(敦孝錄序)
- 예의류집서(禮疑類輯序)
- 명신주의요략서(名臣奏議要略序)
- 내각학사제명기인(內閣學士題名記引)
- 규장각지서(奎章閣志序) 갑진년
- 병학통서(兵學通序)
- 황극편서(皇極編序)
- 홍문관지서(弘文館志序)
- 구십일 세인 종신(宗臣) 학성군(鶴城君) 이유(李楡)에게 궤장(几杖)을 내린 일에 관한 서(序)
- 대전통편인(大典通編引) 을사년
- 홍재전서 제9권
- 서인(序引) 2
- 안와유고서(安窩遺稿序) 정미년
- 문원보불서(文苑黼黻序)
- 정음통석서(正音通釋序)
- 숙묘(肅廟)는 계사년에 등극(登極) 40년 기념으로 증광 사마 초시(增廣司馬初試)를 보였고, 선조(先祖) 계사년에는 등극 50년 기념으로 증광 사마 초시를 보였는데, 지금 나이 95세가 된 숭록대부(崇祿大夫) 행 지중추부사 겸 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도총관(行知中樞府事兼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都摠管) 성이연(成爾演)이 시골로 돌아간 데 대한 서(序)
- 병학지남서(兵學指南序)
- 무예도보통지서(武藝圖譜通志序) 경술년
- 김충장유사서(金忠壯遺事序)
- 증(贈) 백세 노인(百歲老人)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신의청(申義淸)에 대한 서(序) 신해년
- 충정공(忠定公) 권벌(權橃)의 수진근사록(袖珍近思錄)에 대한 서(序) 갑인년
- 어정(御定) 인서록(人瑞錄)에 대한 서(序)
- 함흥영흥본궁의식서(咸興永興本宮儀式序) 을묘년
- 양현전심록서(兩賢傳心錄序)
- 시관서(詩觀序)
- 군려대성서(軍旅大成序)
- 삼군총고인(三軍摠攷引)
- 학암집서(鶴巖集序) 정사년
- 추서경선서(鄒書敬選序)
- 장차휘편서(章箚彙編序)
- 역대행표서(歷代行表序)
- 도리총고서(道里摠攷序)
- 홍재전서 제10권
- 서인(序引) 3
-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 무오년
- 태학은배시서(太學恩杯詩序) 시해(詩解)를 곁들이다
- 이가전률인(二家全律引)
- 두륙분운인(杜陸分韻引)
- 아송서(雅誦序) 기미년
- 감자인(監玆引)
- 고시인(顧諟引)
- 역대기년인(歷代紀年引)
- 홍재전서 제11권
- 서인(序引) 4
- 익정공주고총서(翼靖公奏藁總叙) 경신년
- 익정공주고전례류서(翼靖公奏藁典禮類叙)
- 홍재전서 제12권
- 서인(序引) 5
- 익정공주고출척류서(翼靖公奏藁黜陟類叙) 경신년
- 익정공주고법기류서(翼靖公奏藁法紀類叙)
- 익정공주고재부류서(翼靖公奏藁財賦類叙)
- 홍재전서 제13권
- 서인(序引) 6
- 익정공주고군려류서(翼靖公奏藁軍旅類叙) 경신년
- 익정공주고영선류서(翼靖公奏藁營繕類叙)
- 익정공주고별고서(翼靖公奏藁別考叙)
- 익정공유집서(翼靖公遺集叙)
- 홍재전서 제14권
- 기(記)
- 홍재전서 제15권
- 비(碑)
- 원릉비(元陵碑) 병신년
- 영우원비(永祐園碑)
- 문정공(文正公) 송시열(宋時烈) 신도비명(神道碑銘) 병서(幷序) ○ 기해년
- 검암기적비명(黔巖紀蹟碑銘) 병서(幷序) ○ 신축년
- 은신군(恩信君) 시(諡) 소민공(昭愍公) 이진(李禛) 신도비명(神道碑銘) 병서(幷序) ○ 계묘년
- 홍릉비(弘陵碑) 을사년
- 영릉비(永陵碑)
- 무안왕(武安王) 묘비명(廟碑銘)
- 덕원부(德源府) 적전사기적비명(赤田社紀蹟碑銘) 병서(幷序) ○ 정미년
- 경흥부(慶興府) 적도기적비명(赤島紀蹟碑銘) 병서(幷序)
- 경흥부(慶興府) 적지기적비명(赤池紀蹟碑銘) 병서(幷序)
- 양성탄강구기비(兩聖誕降舊基碑)
- 대로사비명(大老祠碑銘) 병서(幷序)
- 달천(達川) 충렬사비(忠烈祠碑) 무신년
- 현륭원비(顯隆園碑) 기유년
- 진안대군(鎭安大君) 이방우(李芳雨) 묘비명(墓碑銘) 병서(幷序)
- 금성위(錦城尉) 박명원(朴明源) 신도비명(神道碑銘) 병서(幷序) ○ 경술년
- 안변(安邊) 설봉산(雪峯山) 석왕사비(釋王寺碑) 병게(幷偈)
- 유명(有明) 수군도독(水軍都督) 조선국(朝鮮國) 증(贈) 효충장의적의협력선무 공신(效忠杖義迪毅協力宣武功臣)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영의정(議政府領議政) 덕풍부원군(德豐府院君) 행 정헌대부(行正憲大夫) 전라좌도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제사(全羅左道水軍節度使兼三道統制使) 시(諡)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신도비명(神道碑銘) 병서(幷序) ○ 계축년
- 온궁영괴대비명(溫宮靈槐臺碑銘) 을묘년
- 독서당구기비명(讀書堂舊基碑銘) 정사년
- 치마대구기비명(馳馬臺舊基碑銘)
- 상산부(象山府) 신덕성후(神德聖后) 사제구기비명(私第舊基碑銘) 병서(幷序) ○ 기미년
- 곡산부(谷山府) 하남산(河南山) 치마도비명(馳馬道碑銘) 병서(幷序)
- 홍재전서 제16권
- 지(誌)
- 현륭원지(顯隆園誌) 기유년
- 홍재전서 제17권
- 행록(行錄)
- 영종대왕(英宗大王)의 행록(行錄) 병신년
- 홍재전서 제18권
- 행장(行狀)
- 현륭원(顯隆園)의 행장(行狀) 기유년
- 홍재전서 제19권
- 제문(祭文) 1
- 빈전(殯殿) 고유문(告由文) 병신년
- 빈전(殯殿)에 친히 향(香)을 올리는 제문(祭文)
- 빈전(殯殿)에 별다례(別茶禮)를 올리는 제문
- 효명전(孝明殿) 탄신일에 별다례(別茶禮)를 올리는 제문
- 여귀(厲鬼)를 달래는 제문 정유년
- 사직(社稷)에서 기우제(祈雨祭)를 대신 행하게 할 때의 제문
- 동관왕묘(東關王廟)를 수리할 때의 고유문(告由文)
- 남관왕묘(南關王廟)를 수리할 때의 고유문
- 휘령전(徽寧殿) 탄신일에 작헌례(酌獻禮)를 올리는 제문
- 동관왕묘(東關王廟)를 수리할 때의 고유문 무술년
- 동관왕묘(東關王廟) 치제문(致祭文)
- 홍 봉조하(洪奉朝賀) 봉한(鳳漢) 치제문
- 원릉(元陵)에 친히 드리는 제문 기해년
- 건원릉(健元陵), 목릉(穆陵)에 대신 제사드리게 할 때의 제문
- 현릉(顯陵), 휘릉(徽陵), 숭릉(崇陵), 의릉(懿陵), 혜릉(惠陵)에 대신 제사드리게 할 때의 제문
- 홍 봉조하(洪奉朝賀) 봉한(鳳漢) 치제문
- 남관왕묘(南關王廟) 치제문
- 동관왕묘(東關王廟) 치제문
- 경모궁(景慕宮)에 작헌례(酌獻禮)를 올리는 제문
- 홍 봉조하(洪奉朝賀) 봉한(鳳漢) 치제문
- 원릉(元陵)에 친히 드리는 제문 신축년
- 자운서원(紫雲書院) 치제문
- 명릉(明陵)에 친히 드리는 제문
- 소현서원(紹賢書院) 치제문
- 동적전(東耤田)에서 곡식 베는 것을 보기 하루 전에 선농단(先農壇)에 대신 고하게 할 때의 고유문
- 기우제문(祈雨祭文) 임인년
- 다시 드리는 기우제문
- 우사단(雩祀壇)에서 친히 드리는 기우제문
- 남교(南郊)에서 대신 드리게 하는 기우제문
- 선농단(先農壇)에서 대신 드리게 하는 기우제문
- 사직(社稷)에서 대신 드리게 하는 기우제문
- 증 예조 판서 이진형(李鎭衡) 치제문
- 홍재전서 제20권
- 제문(祭文) 2
- 소현서원(紹賢書院) 치제문(致祭文) 계묘년
- 화양서원(華陽書院) 치제문
- 화순귀주(和順貴主) 치제문
- 화평귀주(和平貴主) 치제문
- 홍 봉조하(洪奉朝賀) 봉한(鳳漢) 치제문
- 유선(諭善) 박성원(朴聖源) 치제문
- 홍 봉조하(洪奉朝賀) 봉한(鳳漢) 치제문
- 참판(參判) 홍낙인(洪樂仁) 치제문
- 봉조하(奉朝賀) 남유용(南有容) 치제문
- 참의(參議) 유언집(兪彥鏶) 치제문
- 직제학(直提學) 심염조(沈念祖) 치제문
- 선무사(宣武祠)에서 절일(節日)에 드리는 제문 갑진년
- 해창위(海昌尉) 오태주(吳泰周)와 명안귀주(明安貴主) 치제문
- 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 김주신(金柱臣) 치제문
- 영종대왕(英宗大王) 정성왕후(貞聖王后)의 존호(尊號)를 정하는 날 진전(眞殿)에 아뢰는 고유문
- 경모궁(景慕宮)에 존호를 정할 때 아뢰는 고유문
- 날이 개기를 빌고 보답하여 사례하는 제문
- 홍 봉조하(洪奉朝賀) 봉한(鳳漢) 치제문
- 오흥부원군(鼇興府院君) 김한구(金漢耇) 치제문
- 영릉(永陵)에 친히 드리는 제문
- 문열공(文烈公) 박태보(朴泰輔) 치제문
- 충숙공(忠肅公) 이세화(李世華) 치제문
- 충정공(忠貞公) 오두인(吳斗寅) 치제문
- 자운서원(紫雲書院) 치제문
- 파산서원(坡山書院) 치제문
- 참찬(參贊) 백인걸(白仁傑) 치제문
- 홍 봉조하(洪奉朝賀) 봉한(鳳漢) 치제문
- 참판(參判) 홍낙인(洪樂仁) 치제문
- 화평귀주(和平貴主)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충헌공(忠獻公) 김창집(金昌集) 치제문
- 충문공(忠文公) 이이명(李頤命) 치제문
- 충익공(忠翼公) 조태채(趙泰采) 치제문
- 충민공(忠愍公) 이건명(李健命) 치제문
- 충헌공(忠獻公) 이정소(李廷熽) 치제문
- 달성부원군(達城府院君) 서종제(徐宗悌) 치제문
- 선원전(璿源殿) 작헌례(酌獻禮)에 드리는 제문
- 사직(社稷)에 곡식이 잘 되기를 비는 친제문(親祭文) 을사년
- 경모궁(景慕宮) 작헌례(酌獻禮)에 드리는 제문
- 직제학(直提學) 정지검(鄭志儉) 치제문
- 선정신(先正臣) 문순공(文純公) 이황(李滉) 치제문
- 강릉(康陵)에 친히 드리는 제문
- 문충공(文忠公) 김상용(金尙容) 치제문
- 선정신 문정공(文正公) 김상헌(金尙憲) 치제문
- 영우원(永祐園)에 친히 드리는 제문
- 영우원(永祐園) 후록(後麓) 배봉산(拜峯山)에 흙을 채울 때의 고유문
- 경모궁(景慕宮)에 친히 초하루 제사를 행하고 아울러 사유를 고하는 글
- 대로사(大老祠)에 편액을 하사할 때의 치제문
- 경릉(敬陵)의 왼쪽 등성이에 흙을 채울 때의 고유문
- 명릉(明陵) 정자각(丁字閣) 계단을 수리할 때의 고유문
- 홍릉(弘陵)의 비석 음기(陰記)를 친히 쓰고 왼쪽 등성이에 흙을 채울 때의 고유문
- 선정신 문순공(文純公) 권상하(權尙夏)를 고암서원(考巖書院)에 추배(追配)할 때의 치제문
- 화평귀주(和平貴主) 치제문
- 동관왕묘(東關王廟)에 어필비(御筆碑)를 새로 세울 때의 고유문
- 남관왕묘(南關王廟)에 어필비(御筆碑)를 새로 세울 때의 고유문
- 영릉(永陵)에 비석을 새로 세우고 비각(碑閣)을 수리하고 벌목(伐木)할 때의 고유문
- 육상궁(毓祥宮) 작헌례(酌獻禮)에 드리는 제문
- 홍재전서 제21권
- 제문(祭文) 3
- 선희궁(宣禧宮) 작헌례(酌獻禮)에 드리는 제문 병오년
- 영릉(英陵) 국내(局內)에 흙을 채울 때의 고유문(告由文)
- 희릉(禧陵)에 대신 제사드리게 하는 제문
- 효릉(孝陵)에 친히 제사드리는 제문
- 선정신(先正臣) 문정공(文靖公) 김인후(金麟厚) 치제문(致祭文)
- 숙종(肅宗)께서 지으신 무후(武侯)의 도상찬(圖像贊)을 영유(永柔)의 삼충사(三忠祠)에 옮겨 봉안할 때의 치제문
- 영원백(寧遠伯) 이공 성량(李公成梁)의 영당(影堂)에 치제한 글
- 남관왕묘(南關王廟)를 수리할 때의 고유문(告由文)
- 사교(四郊)의 여단(厲壇)에 재앙을 물리치기를 비는 제사를 드리기 이틀 전 성황(城隍)에 고하는 글
- 사교(四郊)의 여단(厲壇)에 재앙을 물리치기를 비는 날 성황(城隍)에게 드리는 제문
- 민회묘(愍懷墓) 고안제문(告安祭文)
- 의소묘(懿昭墓)에 친히 드리는 제문
- 선희묘(宣禧墓)에 친히 드리는 제문
- 오흥부원군(鼇興府院君) 김한구(金漢耇)를 이장(移葬)할 때의 치제문
- 상산부원군(象山府院君) 강윤성(康允成)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육상궁(毓祥宮) 탄신의 작헌례(酌獻禮)에 드리는 제문
- 익안대군(益安大君) 이방의(李芳毅) 의 영당(影堂) 치제문
- 원릉(元陵)에 친히 드리는 제문 정미년
- 제학(提學) 황경원(黃景源) 치제문
- 요동백(遼東伯) 김응하(金應河)의 포충사(褒忠祠)에 치제한 글
- 삼각산(三角山), 백악(白嶽), 목멱산(木覓山), 한강(漢江)에 비를 기원하고 보답으로 사례하는 제문
- 화평귀주(和平貴主) 회갑일의 치제문
- 원릉(元陵)에 사초(莎草)가 무너졌을 때 위안(慰安)하는 제문
- 능원대군(綾原大君) 이보(李俌) 치제문
- 영우원(永祐園) 정자각(丁字閣)을 수리할 때 위안(慰安)하는 제문
- 홍 봉조하(洪奉朝賀) 봉한(鳳漢) 의 묘소에 치제한 글
- 대로사(大老祠) 치제문
- 곡식이 잘 되기를 비는 대제(大祭)를 대신 행하게 함에 관례에 따라 쓰는 축문(祝文) 무신년
- 영희전(永禧殿) 작헌례(酌獻禮)에 드리는 제문
- 증 대사헌 이술원(李述原)의 포충사(褒忠祠)에 치제한 글
- 삼충사(三忠祠) 치제문
- 조 풍릉(趙豐陵) 문명(文命) 치제문
- 영성군(靈城君) 박문수(朴文秀) 치제문
- 문충공(文忠公) 이종성(李宗城)에게 시호를 내리는 날에 치제한 글
- 충민공(忠愍公) 임경업(林慶業)에게 시호를 내리는 날에 치제한 글
- 문경공(文敬公) 정호(鄭澔)에게 시호를 내리는 날에 치제한 글
- 선릉(宣陵)에 대신 드리게 하는 제문
- 정릉(靖陵)에 친히 드리는 제문
- 평창군(平昌郡) 우천우위(右千牛衛) 이공(李公) 공숙(公肅) 과 돌산군부인(突山郡夫人) 정씨(鄭氏) 치제문
- 영월(寧越)의 육신사(六臣祠) 치제문
- 충장공(忠壯公) 김덕령(金德齡)에게 시호를 내리는 날에 치제한 글
- 영릉(永陵) 기일에 대신 제사드리게 하는 제문
- 경모궁(景慕宮)에 동짓날 친히 드리는 제문
- 숭령전(崇靈殿) 치제문
- 숭인전(崇仁殿) 치제문
- 무열사(武烈祠) 치제문
- 제독(提督) 이여송(李如松)에게 부조(不祧)의 특전을 정하고 집을 사서 사당을 세우는 날에 치제한 글
- 선무사(宣武祠) 치제문
- 영남(嶺南)의 곡식을 북쪽으로 운반할 때 삼도(三道)의 해신(海神)에게 고하는 제문
- 충정공(忠定公) 조경(趙璥) 치제문
- 대교(待敎) 이곤수(李崑秀) 치제문
- 문정공(文靖公) 서명응(徐命膺) 치제문
- 월산대군(月山大君) 이정(李婷) 의 묘소에 치제한 글 기유년
- 홍 봉조하(洪奉朝賀) 봉한(鳳漢) 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익성공(翼成公) 황희(黃喜)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충민공(忠愍公) 이건명(李健命)의 묘소에 치제한 글
- 홍릉(弘陵)의 기일에 친히 드리는 제문
- 선정신 문성공(文成公) 이이(李珥)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선정신 문간공(文簡公) 성혼(成渾)의 묘소에 치제한 글
- 화평귀주(和平貴主)의 묘소에 치제한 글
- 홍모당(洪慕堂) 이상(履祥) 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유천군(儒川君) 이정(李濎) 치제문
- 낙풍군(洛豐君) 이무(李楙) 치제문
- 장계군(長溪君) 이병(李棅)과 군부인(郡夫人) 윤씨(尹氏) 치제문
- 문청공(文淸公) 서지수(徐志修) 치제문
- 옥동서원(玉洞書院)에 편액을 내릴 때의 치제문
- 은신군(恩信君) 이진(李禛) 치제문
- 선희궁(宣禧宮)을 수리할 때의 고유문
- 선희궁(宣禧宮)을 수리한 후 다시 봉안할 때의 제문
- 연령군(延齡君) 이훤(李昍) 의 사우(祠宇)에 친히 임하여 잔을 드리는 글
- 은신군(恩信君) 이진(李禛)의 사우(祠宇)에 친히 임하여 잔을 드리는 글
- 화평귀주(和平貴主)의 사우(祠宇)에 친히 임하여 잔을 드리는 글
- 종묘(宗廟)에 드리는 고유문
- 종묘의 의물(儀物)을 수리할 때의 고유문
- 명천부(明川府)에서 홍수로 떠내려가거나 흙에 깔려 죽은 사람들을 위해 지내는 제사의 제문
- 원호(園號)를 의논하여 정하고 원을 여는 날을 택한 후 경모궁(景慕宮)에 고유한 글
- 옛 원소(園所)에서 후토씨(后土氏)에게 제사하는 글
- 옛 원소에서 공사를 시작할 때 친히 드리는 제문
- 수원(水原) 신읍(新邑)의 향교(鄕校)에 위패(位牌)를 봉안할 때의 고유문
- 원(園)을 옮길 때 사직(社稷)에 날이 개기를 비는 제문
- 원소를 옮겨 봉안할 때 지나는 명산대천에 베푸는 제사의 제문
- 안원(安園)에 잔을 드리는 축문
- 정민공(靖敏公) 정홍순(鄭弘淳) 치제문
- 제독(提督) 이여송(李如松)의 사당에 치제한 글
- 선무사(宣武祠) 치제문
- 무열사(武烈祠) 치제문
- 진안대군(鎭安大君) 이방우(李芳雨) 의 묘소를 수리하고 비석을 세우는 날에 치제한 글
- 청권사(淸權祠)에 편액을 하사하는 날에 치제한 글
- 지덕사(至德祠) 치제문
- 창빈묘(昌嬪墓) 치제문 경술년
- 영의정 정태화(鄭太和)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육상궁(毓祥宮) 작헌례(酌獻禮)에 드리는 제문
- 삼성사(三聖祠)를 중수(重修)하고 드리는 제문
- 상산군(商山君) 이민도(李敏道)의 묘소에 치제한 글
- 금성도위(錦城都尉) 박명원(朴明源)의 성복일(成服日)에 치제한 글
- 판중추부사 이성원(李性源) 치제문
- 금호서원(琴湖書院)에 편액을 하사하는 날에 치제한 글
- 문간공(文簡公) 김정(金淨)의 사당에 치제한 글
- 홍재전서 제22권
- 제문(祭文) 4
- 장용영(壯勇營) 기(旗)에 드리는 제문 경술년
- 함경(咸鏡)과 평안(平安) 두 도에 지내는 여제문(厲祭文)
- 금성도위(錦城都尉) 박명원(朴明源) 치제문(致祭文)
- 원자(元子)의 명호(名號)를 정한 후의 고유문(告由文)
- 대원군(大院君)의 봉사손(奉祀孫)이 등과(登科)한 날 고하는 제문
- 동관왕묘(東關王廟)를 개수(改修)할 때의 고유문
- 원릉(元陵)에 친히 드리는 제문
- 문정공(文貞公) 김익(金熤) 치제문
- 봉조하(奉朝賀) 조돈(趙暾) 치제문
- 육상궁(毓祥宮)의 재회(再回) 생신이 든 해에 친히 겨울 제사를 드리는 제문
- 증 영의정 최효원(崔孝元) 치제문
- 육신사(六臣祠) 치제문 신해년
- 사충사(四忠祠) 치제문
- 노강서원(鷺江書院) 치제문
- 당성부부인(唐城府夫人) 치제문
- 화유옹주(和柔翁主) 치제문
- 정민공(靖敏公) 정홍순(鄭弘淳)을 이장하는 날에 치제한 글
-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 치제문
- 금성대군(錦城大君) 이유(李瑜) 치제문
- 화의군(和義君) 이영(李瓔) 치제문
- 한남군(漢南君) 이어(李U2497D) 치제문
- 장릉(莊陵)에 드리는 제문
- 장릉(莊陵) 배식단(配食壇)에 고하는 축문(祝文)
- 의릉(義陵)의 사초(莎草)와 석물(石物)의 수리를 마치고 위안하는 제문
- 강진현(康津縣) 탄보묘(誕報廟)를 수리할 때에 고유한 글
- 증 이조 판서 임성(任珹) 치제문
- 충헌공(忠憲公) 서명선(徐命善)의 성복일(成服日)에 치제한 글
- 사릉(思陵)사릉(思陵)단종(端宗)의 비 정순왕후(定順王后)의 능으로, 양주(楊州)에 있다.에 친히 드리는 제문
-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 정미수(鄭眉壽)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여량부원군(礪良府院君) 송현수(宋玹壽)와 여흥부부인(驪興府夫人) 민씨(閔氏)의 묘에 대한 치제문
- 금평위(錦平尉) 박필성(朴弼成)의 묘소에 치제한 글
-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묘소에 드리는 제문
- 하동부원군(河東府院君) 정세호(鄭世虎)의 묘소에 치제한 글
- 풍원부원군(豐原府院君) 조현명(趙顯命)을 이장하는 날의 치제문
- 숙릉(淑陵) 곡장(曲墻)의 지대석(地臺石)을 수리할 때에 고유한 글
- 고 군수 신홍조(愼弘祚)의 묘에 대한 치제문
- 충헌공(忠憲公) 서명선(徐命善)을 안장하는 날에 치제한 글
- 충헌공(忠憲公) 서명선(徐命善)에 대한 치제문
- 달성부원군(達城府院君) 서종제(徐宗悌) 치제문
- 영원부원군(鈴原府院君) 윤호(尹壕)의 신도비각(神道碑閣)을 세운 뒤에 치제한 글
- 서평부원군(西平府院君) 한준겸(韓浚謙)의 신도비각을 세운 뒤에 치제한 글
- 문청공(文淸公) 남유용(南有容)에게 아들 남공철(南公轍)이 등제(登第)한 뒤에 내린 치제문 하사한 내용과 제문에 관한 하교를 주(註)로 붙였다 ○ 임자년
- 영릉(永陵)에 친히 드리는 제문
- 홍 봉조하(洪奉朝賀) 봉한(鳳漢) 의 묘소에 치제한 글
- 금성도위(錦城都尉) 박명원(朴明源)과 화평귀주(和平貴主)의 묘소에 치제한 글
- 가야(伽倻)의 시조(始祖)인 가락국 왕(駕洛國王)의 능에 치제한 글
- 월성(月城)에 있는 신라(新羅) 시조왕(始祖王)의 사당에 치제한 글
- 월성(月城)에 있는 신라(新羅) 시조왕(始祖王), 남해왕(南解王), 유리왕(儒理王), 파사왕(婆娑王)의 능에 치제한 글
- 옥산서원(玉山書院) 치제문
- 도산서원(陶山書院) 치제문
- 당(唐) 나라의 봉상정경(奉常正卿)이며 신라(新羅)의 흥무공(興武公)인 김유신(金庾信)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영안도위(永安都尉) 홍주원(洪柱元)과 정명공주(貞明公主) 치제문
- 정간공(貞簡公) 홍만용(洪萬容)과 첨정공(僉正公) 홍중기(洪重箕) 치제문 고 판서 홍석보(洪錫輔)와 고 봉조하 홍상한(洪象漢)에게도 함께 제사를 드리게 하다
- 고 판서 김한기(金漢耆) 치제문
- 함흥(咸興)의 본궁(本宮)에 작헌례(酌獻禮)를 대신 행하게 할 때의 축문
- 영흥(永興)의 본궁에 작헌례를 대신 행하게 할 때의 축문
- 영흥 준원전(濬源殿)에 작헌례를 대신 행하게 할 때의 축문
- 금성도위(錦城都尉) 박명원(朴明源)의 담제일(禫祭日)에 치제한 글
- 회양(淮陽)의 의관령사(義館嶺祠) 치제문
- 회양(淮陽)의 덕진명사(德津溟祠) 치제문
- 수원(水原)의 독성산성(禿城山城)을 수리할 때 토지신에게 고유한 글
- 증 병조판서 제말(諸沫)에게 시호를 내리고 묘에 정려를 표하는 날에 치제한 글
- 영중추부사 이복원(李福源)의 성복일(成服日)에 치제한 글
- 탄보묘(誕報廟) 치제문
- 총병(摠兵) 등자룡(鄧子龍)을 강진현(康津縣) 진 도독(陳都督)의 사당에 추배(追配)할 때에 치제한 글
- 참장(參將) 낙상지(駱尙志)를 무열사(武烈祠)에 추배할 때에 치제한 글
- 도봉서원(道峯書院) 치제문
- 화협귀주(和協貴主)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은신군(恩信君) 이진(李禛)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인평대군(麟坪大君) 이요(李㴭) 의 묘소에 치제한 글
- 독성산성(禿城山城)을 수리한 뒤 성황(城隍)에 고유한 글
- 정헌공(靖憲公) 조영국(趙榮國)에게 시호를 내리는 날에 치제한 글
- 충헌공(忠憲公) 서명선(徐命善) 치제문
- 호남(湖南)의 곡식을 제주(濟州)로 운반하기 위하여 배를 출발시키는 날 해신(海神)에게 제사 지내는 글
- 운곡선(運穀船)이 정박하는 날 제주의 해신에게 제사 지내는 글
- 홍재전서 제23권
- 제문(祭文) 5
- 선원전(璿源殿) 작헌례(酌獻禮) 제문 계축년
- 제학(提學) 오재순(吳載純) 치제문
- 상주(尙州)의 충신의사단(忠臣義士壇) 치제문(致祭文)
- 봉조하(奉朝賀) 남유용(南有容) 치제문
- 이 제독(李提督)의 사당에 제사 올린 글
-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치제문
- 충헌공(忠憲公) 서명선(徐命善) 치제문
- 직제학(直提學) 박우원(朴祐源) 치제문
- 충헌공(忠憲公) 서명선(徐命善) 치제문
- 홍 익정공(洪翼靖公) 봉한(鳳漢) 치제문
- 모당(慕堂) 홍 문경공(洪文敬公) 이상(履祥) 의 주손(胄孫)이 크게 떨쳤기에 영의정 홍낙성(洪樂性)을 보내어 치제(致祭)한 글
- 문간공(文簡公) 이천보(李天輔) 치제문
- 해창위(海昌尉) 오태주(吳泰周), 명안공주(明安公主), 문목공(文穆公) 오원(吳瑗), 문정공(文靖公) 오재순(吳載純) 치제문
- 오흥부원군(鼇興府院君) 김한구(金漢耇) 치제문
- 청풍부원군(淸風府院君) 김우명(金佑明) 치제문
- 판돈녕부사 김성응(金聖應) 치제문
- 청원부원군(淸原府院君) 김시묵(金時默) 치제문
-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 김제남(金悌男)과 광산부부인(光山府夫人) 노씨(盧氏) 치제문(致祭文) 갑인년
- 금성위(錦城尉) 박명원(朴明源) 치제문
- 문충공(文忠公) 유성룡(柳成龍) 치제문
- 문정공(文貞公) 김육(金堉)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청풍부원군(淸風府院君) 김우명(金佑明)과 덕은부부인(德恩府夫人) 송씨(宋氏)의 묘소에 치제한 글
- 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 김주신(金柱臣) 치제문
- 탐라(耽羅)로 보낼 곡식을 배에 실을 때 남해신(南海神)에게 제사한 글
- 충정공(忠定公) 조경(趙璥)을 천장(遷葬)하는 날에 치제한 글
- 문충공(文忠公) 이정귀(李廷龜) 치제문
- 문숙공(文肅公) 이성원(李性源)과 내각 대교 이곤수(李崑秀) 치제문
- 선농단(先農壇)의 섭행(攝行) 제문 을묘년
- 홍 봉조하(洪奉朝賀) 봉한(鳳漢) 치제문
- 경모궁(景慕宮)의 초하루 제사의 친제문(親祭文)
- 금성위(錦城尉) 박명원(朴明源)과 화평옹주(和平翁主) 치제문
- 영안도위(永安都尉) 홍주원(洪柱元)과 정명공주(貞明公主) 치제문 영의정
- 정혜공(靖惠公) 홍상한(洪象漢) 치제문
- 화성(華城) 향교의 대성전에 고유(告由)한 글
- 궐리사(闕里祠)에 정경(正卿)을 보내어 잔을 올리는 글
- 양녕대군(讓寧大君) 이제(李禔) 의 묘소에 치제한 글
- 후령군(厚寧君) 이간(李衦)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수천군(秀泉君) 이정은(李貞恩)과 청기군(靑杞君) 이표(李彪)와 함천군(咸川君) 이억재(李億載)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창원군(昌原君) 이성(李晟)과 덕진군(德津君) 이활(李U240BE)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창빈(昌嬪)의 묘소에 치제한 글
- 민회빈(愍懷嬪)의 묘소에 치제한 글
- 명빈(䄙嬪)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연령군(延齡君) 이훤(李昍) 의 묘소에 치제한 글
- 팔달산주인(八達山主人) 처사(處士) 이고(李皋)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충현서원(忠賢書院) 치제문
- 청해백(靑海伯) 이지란(李之蘭) 치제문
- 문정공(文貞公) 강석기(姜碩期)[3]와 정경부인(貞敬夫人) 신씨(申氏)의 묘소에 치제한 글
- 매곡서원(梅谷書院) 치제문
- 명고서원(明皐書院) 치제문
- 찬선 김간(金榦)의 묘소에 치제한 글
- 환조 연무성환 대왕(桓祖淵武聖桓大王)과 의혜왕후(懿惠王后)를 영흥(永興) 본궁(本宮)에 제향(躋享)할 때 고한 축문
- 영흥(永興) 본궁(本宮)에 제향(躋享)하는 날 국초실(國初室) 축문
- 오흥부원군(鼇興府院君) 김한구(金漢耇) 치제문
- 충헌공(忠憲公) 박문수(朴文秀) 치제문
- 영안도위(永安都尉) 홍주원(洪柱元)과 정명공주(貞明公主)의 묘소에 치제하는 글
- 동양위(東陽尉) 신익성(申翊聖)과 정숙옹주(貞淑翁主) 치제문
- 남한산성(南漢山城) 숭렬전(崇烈殿)에 대한 치제문
- 충헌공(忠憲公) 서명선(徐命善) 치제문
- 통영(統營) 충렬사(忠烈祠) 치제문
- 문열공(文烈公) 조헌(趙憲) 치제문
- 홍재전서 제24권
- 제문(祭文) 6
- 선정신(先正臣) 문정공(文正公) 조광조(趙光祖) 치제문(致祭文) 병진년
- 의안대군(宜安大君) 이방석(李芳碩) 의 묘소에 치제한 글
- 문익공(文翼公) 유척기(兪拓基) 치제문
- 문청공(文淸公) 남유용(南有容) 치제문
- 홍 익정공(洪翼靖公) 봉한(鳳漢) 치제문
- 문충공(文忠公) 이종성(李宗城) 치제문
- 영돈녕부사 유언호(兪彥鎬) 치제문
- 충정공(忠正公) 홍익한(洪翼漢), 충정공(忠貞公) 윤집(尹集), 충렬공(忠烈公) 오달제(吳達濟) 치제문
- 지돈녕부사 홍낙신(洪樂信)의 성복일(成服日)에 치제한 글
- 의주(義州) 현충사(顯忠祠) 치제문
- 충렬공(忠烈公) 황일호(黃一皓)를 현충사(顯忠祠)에 추향(追享)할 때 치제한 글
- 충장공(忠壯公) 최효일(崔孝一)에게 시호를 내리는 날 치제한 글
- 정익공(貞翼公) 이완(李浣)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증(贈) 성주 목사(星州牧使) 이사룡(李士龍) 치제문
- 고려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 충절공(忠節公) 유검필(庾黔弼), 무공공(武恭公) 복지겸(卜智謙), 무열공(武烈公) 배현경(裵玄慶)의 철상을 모신 평산부(平山府) 태백산성(太白山城)의 사당에 편액을 내릴 때 치제한 글
- 문정공(文貞公) 조식(曺植) 치제문
- 문장공(文莊公) 정경세(鄭經世) 치제문
- 화성(華城) 성신(城神)에게 제사드린 글
- 충렬공(忠烈公) 황일호(黃一皓)와 충정공(忠貞公) 윤집(尹集)을 강화(江華) 충렬사(忠烈祠)에 추배(追配)할 때 치제한 글
- 충헌공(忠憲公) 서명선(徐命善) 치제문
- 탄보묘(誕報廟)를 수리할 때의 고유문 정사년
- 우의정 윤시동(尹蓍東)의 성복일(成服日)에 치제한 글
- 영안도위(永安都尉) 홍주원(洪柱元)과 정명공주(貞明公主) 치제문
- 충문공(忠文公) 유언호(兪彥鎬) 치제문
- 충숙공(忠肅公) 윤숙(尹塾)의 성복일(成服日)에 치제한 글
- 선정신(先正臣) 문정공(文正公) 송시열(宋時烈)의 위패가 서울을 지나는 날 치제한 글
- 요동백(遼東伯) 김응하(金應河) 치제문
- 문정공(文貞公) 김익(金熤)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장릉(章陵)에 친히 제사드린 글
- 우저서원(牛渚書院) 치제문
- 정헌공(貞憲公) 윤우신(尹又新), 문열공(文烈公) 윤섬(尹暹), 충강공(忠康公) 윤형갑(尹衡甲), 충간공(忠簡公) 윤계(尹棨)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여천위(驪川尉) 민자방(閔子芳)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영신군(永新君) 이이(李怡)의 묘소에 치제한 글
- 함원군(咸原君) 이옹(李顒)의 묘소에 치제한 글
- 문간공(文簡公) 이천보(李天輔)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숙원(淑媛) 조씨(趙氏)의 묘소에 치제한 글
- 화유옹주(和柔翁主)의 묘소에 치제한 글
- 민회빈(愍懷嬪)의 묘소에 친히 제사드린 글
- 문정공(文貞公) 강석기(姜碩期)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영의정 하연(河演)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영의정 김재로(金在魯)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영의정 김치인(金致仁)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서평부원군(西平府院君) 한준겸(韓浚謙)과 회산부부인(檜山府夫人) 황씨(黃氏)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신풍부원군(新豐府院君) 장유(張維)와 영가부부인(永嘉府夫人) 김씨(金氏)의 묘소에 치제한 글
- 금양위(錦陽尉) 박미(朴瀰)와 정안옹주(貞安翁主)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진안위(晉安尉) 유적(柳頔)과 정정옹주(貞正翁主)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승평부원군(昇平府院君) 김류(金瑬)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신빈(愼嬪)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용백사(龍柏祠) 치제문
- 좌의정 이복원(李福源)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육신사(六臣祠) 치제문
- 사충사(四忠祠) 치제문
- 노강서원(鷺江書院) 치제문
- 고 참판 홍낙인(洪樂仁) 치제문 무오년
- 충무공(忠武公) 정충신(鄭忠信) 치제문
- 충정공(忠定公) 장만(張晩) 치제문
- 정헌공(靖憲公) 김이주(金頤柱) 치제문
- 삼각산(三角山), 백악(白嶽), 목멱산(木覓山), 한강(漢江)에 드린 기우제문(祈雨祭文)
- 직제학 서유방(徐有防)의 성복일(成服日)에 치제한 글
- 목사 홍수영(洪守榮)의 장례일에 치제한 글
- 참판 홍낙인(洪樂仁)의 천장일(遷葬日)에 치제한 글
- 서천부원군(西川府院君) 정곤수(鄭崑壽) 치제문
- 경릉(敬陵)에 친히 제사드린 글
- 창릉(昌陵)에 친히 제사드린 글
- 명숙공주(明淑公主)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한확(韓確)의 묘소에 치제한 글
- 남양부부인(南陽府夫人) 홍씨(洪氏)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 한명회(韓明澮)와 황려부부인(黃驪府夫人) 민씨(閔氏)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청천부원군(淸川府院君) 한백륜(韓伯倫)과 서하부부인(西河府夫人) 임씨(任氏)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월산대군(月山大君) 이정(李婷) 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인성대군(仁城大君) 이분(李糞) 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제안대군(齊安大君) 이현(李琄) 의 묘소에 치제한 글
- 당양위(唐陽尉) 홍상(洪常)의 묘소에 치제한 글
- 풍천위(豐川尉) 임광재(任光載)와 현숙공주(顯肅公主)의 묘소에 치제한 글
- 고려 충신 평해지군(平海知郡) 김제(金濟)의 쌍절사(雙節祠)에 시호를 내리는 날에 치제한 글
- 고려 충신 황명(皇明) 예부 상서 김주(金澍)에게 시호를 내리는 날에 치제한 글
- 금오서원(金烏書院) 치제문
- 문청공(文淸公) 서지수(徐志修)의 손자 춘보(春輔)가 무과에 급제한 뒤에 치제한 글
- 홍재전서 제25권
- 제문(祭文) 7
- 영중추부사 홍낙성(洪樂性)의 성복일(成服日)에 치제한 글 기미년
- 효안공(孝安公) 홍낙성(洪樂性)의 장례일에 치제한 글
- 참판 홍낙인(洪樂仁)의 부인 여흥 민씨(驪興閔氏) 장례일에 치제한 글
- 영원백(寧遠伯) 이성량(李成梁) 치제문
- 명나라 총병(摠兵) 이여매(李如梅) 치제문
- 양의공(襄毅公) 김경서(金景瑞) 치제문
- 문충공(文忠公) 김종수(金鍾秀)의 발인일에 치제한 글
- 문숙공(文肅公) 채제공(蔡濟恭)의 장례일에 치제한 글
- 선무사(宣武祠)에 의례적으로 쓰는 축문
- 문헌공(文獻公) 박성원(朴聖源) 치제문
- 문간공(文簡公) 김정(金淨) 치제문
- 문간공(文簡公) 박상(朴祥) 치제문
- 종묘의 북쪽 섬돌을 수리하는 일로 고유(告由)한 글
- 충정공(忠貞公) 정뇌경(鄭雷卿) 치제문
- 문간공(文簡公) 정온(鄭蘊) 치제문
-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閔維重) 치제문
- 창빈(昌嬪)의 묘소에 고유(告侑)한 글
- 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 민제(閔霽)와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 송씨(宋氏)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의안대군(宜安大君) 소도공(昭悼公) 이방석(李芳碩) 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의안대군(義安大君) 양소공(襄昭公) 이화(李和) 치제문
- 증 겸병조판서 대제학 충장공(忠壯公) 양대박(梁大樸) 치제문
- 영의정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 문충공(文忠公) 하륜(河崙)의 묘소에 치제한 글
- 좌의정 김종수(金鍾秀) 치제문
- 경모궁(景慕宮)에 고유한 글 경신년
- 좌의정 문충공(文忠公) 김종수(金鍾秀)를 이장할 때 치제한 글
- 우의정 효간공(孝簡公) 김희(金憙) 치제문 시호를 내리라는 하교를 부주(附註)하였음
- 영의정 충헌공(忠憲公) 서명선(徐命善)의 시호를 충문(忠文)으로 고쳐 내리는 날에 치제한 글
- 증 우의정 내각제학 충헌공(忠獻公) 정민시(鄭民始) 치제문
- 영돈녕 김이소(金履素)의 집에 그 아우 이도(履度)가 급제한 날 치제한 글
- 내각 제학 오재순(吳載純)의 집에 그 아들 연상(淵常)이 급제한 날 치제한 글
-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閔維重)의 사당에 치제한 글 사제(賜祭)하라는 하교를 부주(附註)하였음
- 홍재전서 제26권
- 윤음(綸音) 1
- 즉위하는 날 내린 윤음 병신년(1776년)
- 역신(逆臣) 김상로(金尙魯)의 관작을 추탈한 윤음
- 문녀(文女)의 죄악을 포고한 윤음
- 선정(先正) 문정공(文正公) 송시열(宋時烈)을 효종대왕실(孝宗大王室)의 묘정(廟庭)에 배향하도록 한 윤음
- 과거제도를 변통하도록 한 윤음
- 적신(賊臣) 홍인한(洪麟漢)ㆍ정후겸(鄭厚謙) 등의 죄악을 널리 알린 윤음
- 조조(朝祖)의 예를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옛 의식에 따르도록 한 윤음
- 이미 죽은 죄인에 대한 추율(追律)과 가율(加律)을 없앤 윤음
- 척신(戚臣) 김귀주(金龜柱)의 죄상을 분명히 유시한 윤음
- 세수(歲首)의 권농 윤음 북관(北關)과 관동(關東)의 별유(別諭)를 덧붙임 ○ 정유년(1777년)
- 형구(刑具)를 바로잡는 윤음 곤장(棍杖) 제도를 바로잡는 교지를 덧붙임
- 자궁(慈宮)에게 존호를 올리도록 한 윤음 무술년(1778년)
- 담제(禫祭)의 달에 음악을 사용하지 말도록 한 윤음
- 즉위 후 첫 번째 조참일(朝參日)의 윤음
-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에 전알한 날의 윤음 기해년(1779년)
- 관경대(觀耕臺) 자성(粢盛) 곡식의 관예일(觀刈日)에 내린 윤음 신축년(1781년)
- 제주(濟州)ㆍ대정(大靜)ㆍ정의(旌義)의 부로(父老)와 백성들에게 하유(下諭)한 윤음
- 영남 위유사(慰諭使)가 가지고 간 윤음
기타 등등 수많은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