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려왕릉
1.1. 고려 8대 왕 현종의 3비 원성왕후의 명릉(明陵)
고려 8대 왕 현종의 3비인 원성왕후의 능이다. 고려사 기록에 따르면 1028년(현종 19년) 음력 7월 22일에 승하하였으며, 명릉(明陵)에 장사를 지냈다. 고려사 기사1118년(예종 13년) 12월 22일에 불이 났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사 기사
1.2. 고려 29대 왕 충목왕의 명릉(明陵)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1910년대 명릉의 모습
명릉 최근 모습
북한의 행정구역상 개성시 연릉리(1916년 기준으로는 개성군 중서면 여릉리 명릉동)에 있는 고려 제29대 충목왕이 안장된 왕릉. [1]. 북한 보존유적 제549호. 3기의 능으로 이뤄진 명릉군(문화어로는 명릉떼)의 하나로, 인근에 규모가 비슷한 능이 두 곳 더 있으며, 피장자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1348년(충정왕 즉위년) 12월 5일에 충목왕이 승하한 후, 1349년(충정왕 1년) 3월 6일에 명릉(明陵)에 장사를 지냈다. 고려사 기록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개성역사유적지구에 포함되어 있다.
다만 이 무덤이 현대 학자들의 연구 결과 이 고분이 실제 충목왕의 명릉이 아니라는 주장이 학계에서 제기되는데 기록상 왕릉의 장지방향과 발굴결과를 비교검토하여 능주가 누구인지를 추적해 보았는데 그 결과 비정이 잘못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2]
2. 조선왕릉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72000, #bf1400 20%, #bf1400 80%, #972000); color: #ffd400; min-height: 33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목조 | 효공왕후 | 익조 | 정숙왕후 |
덕릉德陵 | 안릉安陵 | 지릉智陵 | 숙릉淑陵 | |
도조 | 경순왕후 | 환조 | 의혜왕후 | |
의릉義陵 | 순릉純陵 | 정릉定陵 | 화릉和陵 | |
태조 | 신의왕후 | 신덕왕후 | 정종, 정안왕후 | |
건원릉健元陵 | 제릉齊陵 | 정릉貞陵 | 후릉厚陵 | |
태종, 원경왕후 | 세종, 소헌왕후 | 문종, 현덕왕후 | 단종 | |
헌릉獻陵 | 영릉英陵 | 현릉顯陵 | 장릉莊陵 | |
정순왕후 | 세조, 정희왕후 | 덕종, 소혜왕후 | 예종, 안순왕후 | |
사릉思陵 | 광릉光陵 | 경릉敬陵 | 창릉昌陵 | |
장순왕후 | 성종, 정현왕후 | 공혜왕후 | 제헌왕후 | |
공릉恭陵 | 선릉宣陵 | 순릉順陵 | | |
연산군, 거창군부인 | 중종 | 단경왕후 | 장경왕후 | |
연산군묘燕山君墓 | 정릉靖陵 | 온릉溫陵 | 희릉禧陵 | |
문정왕후 | 인종, 인성왕후 | 명종, 인순왕후 | 선조, 의인왕후, 인목왕후 | |
태릉泰陵 | 효릉孝陵 | 강릉康陵 | 목릉穆陵 | |
공성왕후 | 광해군, 문성군부인 | 원종, 인헌왕후 | 인조, 인열왕후 | |
| 광해군묘光海君墓 | 장릉章陵 | 장릉長陵 | |
경기 [[남양주시|{{{#bf1400 | ||||
효종, 인선왕후 | 현종, 명성왕후 | 장렬왕후 | 숙종, 인현왕후, 인경왕후 | |
영릉寧陵 | 숭릉崇陵 | 휘릉徽陵 | 명릉明陵 | |
인경왕후 | 옥산부대빈 | 경종, 선의왕후 | 단의왕후 | |
익릉翼陵 | 대빈묘大嬪墓 | 의릉懿陵 | 혜릉惠陵 | |
영조, 정순왕후 | 정성왕후 | 진종, 효순왕후 | 장조, 헌경왕후 | |
원릉元陵 | 홍릉弘陵 | 영릉永陵 | 융릉隆陵 | |
정조, 효의왕후 | 순조, 순원왕후 | 문조, 신정왕후 | 헌종, 효현왕후, 효정왕후 | |
건릉健陵 | 인릉仁陵 | 수릉綏陵 | 경릉景陵 | |
철종, 철인왕후 | 고종, 명성황후 | 순종, 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 | ||
예릉睿陵 | 홍릉洪陵 | 유릉裕陵 | ||
폐지된 능호 | ||||
소릉昭陵 | 회릉懷陵 | 숙릉肅陵 | 성릉成陵 | 문릉文陵 | ||||
2.1. 조선 19대 왕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두번째 계비 인원왕후의 명릉(明陵)
자세한 내용은 서오릉 문서 참조.[1] 8대 왕 현종의 세 번째 왕비인 원성왕후를 안장한 왕릉과 한자까지 똑같은데, 한 왕조 내에서 한자까지 똑같은 묘호 또는 시호를 쓰는 경우는 고려, 조선왕조를 통틀어서도 이 경우가 유일하다.[2] 고려왕릉의 구조 및 능주(陵主) 검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