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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3 09:34:43

정안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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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등장인물에 대한 내용은 정안왕후(태종 이방원)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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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석 (의안대군) 이방과 (정종)
현빈 유씨
현빈 심씨
덕빈 김씨
(정안왕후)
이방원 (태종) 이제 (양녕대군) 이도 (세종)
정빈 민씨
(원경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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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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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궁 윤씨
(순정효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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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왕태후 원경왕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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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정왕후의 성렬 존호는 대왕대비 시절에 바쳐진 것이므로 왕대비 틀에서는 표기하지 않음.
2. 인성왕후는 인순왕후와 동서지간이었기에 선조조에도 대왕대비가 되지 못하고 왕대비로 재위함.
3. 효의왕후는 생전에 존호를 사양하였으므로 별도로 표기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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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종의 왕비
정안왕후 | 定安王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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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종조 왕태비
순덕왕태비 | 順德王太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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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종 후릉 이미지.jpg
후릉 능침
출생 1355년 1월 30일(음력 1월 9일)
고려 개경 김천서 사저
(現 개성시 판문구역 영정리)
사망 1412년 8월 11일(음력 6월 25일)
(향년 57세)
조선 한성부 인덕궁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45)
능묘 후릉(厚陵)[1]
재위기간 조선 왕세자빈
1398년 10월 14일 ~ 1398년 10월 22일
조선 왕비
1398년 10월 22일 ~ 1400년 12월 7일
조선 왕태비
1400년 12월 7일 ~ 1412년 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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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본관 경주 김씨
부모 부친 증 문하좌시중 김천서
((贈 門下左侍中 金天瑞)[2]
모친 삼한국대부인 담양 이씨
(三韓國大夫人 潭陽 李氏)
형제자매 3남 4녀 중 차녀[3]
배우자 정종
자녀 없음 (양자 15남 8녀)
종교 불교
봉작 덕빈(德嬪) → 덕비(德妃)
→ 순덕왕태비(順德王太妃)
전호 인덕전(仁德殿)
존호 순덕(順德)
휘호 온명장의(溫明莊懿)
시호 정안왕후(定安王后)
}}}}}}}}} ||
1. 개요2. 생애3. 가계
3.1. 본가(경주 김씨)3.2. 외가(담양 이씨)3.3. 시가(전주 이씨)3.4. 배우자 / 자식
4. 대중 매체에서5. 참고 문서

[clearfix]

1. 개요

조선 제2대 국왕 정종왕비이자 조선의 첫번째 대비. 태조 이성계의 둘째 며느리이며, 김천서의 큰딸이다.

2. 생애

1398년(태조 7년) 남편인 영안군(永安君)[4] 이방과왕세자가 되면서 왕세자빈이 되어 덕빈(德嬪)으로 봉해졌으며, 이어 국왕으로 양위받아 즉위를 하자 '덕비(德妃)'로 봉해졌다. 이후 1400년(정종 2년), 정종이 동생인 방원에게 양위하자 '순덕왕대비(順德王大妃)'의 존호를 받았다. 야사에 따르면 정종에게 양위를 권한 사람이 누구도 아닌 바로 아내인 정안왕후라고 한다. 남편 정종과의 사이에 자녀는 없었으며, 58세의 나이에 천식으로 승하하였다.[5]

태종후궁을 들이는 일로 인해 원경왕후와 부부싸움을 하자 애처가인 상왕 정종이 크게 못마땅해하며 말하기를 “나는 아들이 없지만 젊은 날의 정(情)으로 사는데 주상(主上)은 아들이 이미 많지 않소, 왜 또 장가를 들려 하오?”라고[6] 동생인 태종에게 따끔한 한 마디 하기도 했는데, 태종에게 한 소리를 한 실록에 기록된 유일한 사례였다.[7] 사실 상왕 뿐만 아니라 주변 여론 모두 의식해서 태종도 여러 의례를 파하고, 후궁만 조촐히 부르는, 가히 그 태종답지않은 위엄 서리지 못한 모습으로 후궁을 들였다. 더군다나 태종의 충신중 가장 예의 관련해서 파문이 많은 그 이숙번이 직접 주청해서 가례색을 파해달라고 했다.

정안왕후는 당대 부드러운 성격에 검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록에도 유한(幽閑)한 덕이 있고 투기하는 마음이 없어 내조가 대단히 많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친척들과도 무난하게 지냈는데, 여기에 남편인 정종 역시 곧으며 정직하고 바른 성격의 인물이라 이들 부부는 궁합이 잘 맞았던 것 같다. 그러나 정안왕후는 아이를 낳지 못했는데, 정종이 7명의 후궁에게서 난 15명의 왕자와 8명의 옹주에게도 자기 자식들인 마냥 후하게 잘 대해준 것으로 보인다.

후일 순덕대비가 먼저 사망하자 정종의 동생인 태종이 정종을 애도, 위로하는 잔치를 열었는데, 잔치가 한창 무르익던 도중 정종이 갑자기 먼저 간 아내가 떠올라 혼자 즐기지 못하겠다고 잔치를 파하고 돌아간 일화에서 정종과 순덕대비의 애틋하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짐작할 수 있다.[8]

능은 개성시 인근 황해북도 개풍군 영정리 백마산 동쪽 기슭에 있는 후릉(厚陵)이며, 남편 정종과 쌍릉으로 함께 나란히 묻혀 있다. 시어머니인 신의왕후 한씨의 제릉과 함께 북한 내에 있어 민간인의 방문은 아예 불가하다.

3. 가계

3.1. 본가(경주 김씨)

3.2. 외가(담양 이씨)

3.3. 시가(전주 이씨)

3.4. 배우자 / 자식

4. 대중 매체에서

5. 참고 문서



[1] 정안왕후와 남편 정종의 능인 후릉이 현재 북한에 소재하고 있기 때문에 2009년 6월, 시아버지 태조 이성계의 무덤이 있는 동구릉을 포함하여 남한 내의 모든 조선왕릉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지만, 후릉은 북한에 있어 시어머니인 신의왕후가 있는 제릉과 더불어 아쉽게도 등재가 안되었다. 그래서 기신일(돌아가신 날을 기리고 제사지내는 일)이 되면 시아버지가 있는 구리 동구릉건원릉의 정자각에서 남편 정종과 함께 모시고서 제향한다. 링크.[2] 김천서가 김경손 장군의 아들 김신(金信)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고 경주 김씨 족보에도 그렇게 올라가 있는데, 따져보면 생몰연대부터 맞지 않는다. 정안왕후가 1355년생이고 오빠 김수가 1338년생이니 김천서의 생년은 대략 1310년~1320년 사이로 추측해볼 수 있다. 그런데 김경손의 손녀이자 김신의 막내딸인 수령옹주1281년생이다. 김천서가 김신의 아들이라면 친누나, 그것도 막내누나와 30~40살 차이가 나는 것이 된다. 아마도 수백 년 뒤 후대에 족보를 기록하면서 동명이인인 김신(金信)을 혼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외자인 데다가 信이 흔하게 쓰이는 글자이기도 하니 동명이인이 있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3]씨족원류』에 따르면, 오빠가 한 명 있고, 남동생 두 명, 여동생 세 명이 있어서 정안왕후는 장녀가 된다. 그러나 정안왕후의 첫째 남동생으로 기록된 월성군(月城君) 김수(金需)는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338년생으로, 정안왕후보다 무려 17년이나 빠르다. 시동생 태종의 외척숙청 때 유일하게 숙청당하지 않았고, 1409년(태종 9년) 72세의 나이로 편안히 세상을 떠났다.[4] 대군은 태종 즉위 이후 정착한 작호로 정종은 왕자 시절 영안대군의 봉작을 받은 적이 없었다.[5] 태종의 왕비인 동서 원경왕후 민씨가 무려 47세의 나이로 늦둥이 막내를 낳은 지 이틀 후에 순덕대비가 승하했다.[6] 여기서 아들이 없다는 건 정실 소생의 적자가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정종은 정비 정안왕후와의 사이에서 자식이 없었지만, 후궁들 사이에서 많은 서자와 서녀를 낳았다. 오늘날 정종의 후손들은 성빈 지씨가 낳은 두 아들 중 한명인 덕천군의 후손이 주 기반을 이루고 있다.[7] 상왕의 충고에 따라 가례색을 파하다. 태종실록》 3권, 태종 2년(1402년, 명 건문(建文) 4년) 2월 11일 (갑자) 3번째기사.[8]태종실록》 24권, 태종 12년(1412년, 명 영락(永樂) 10년) 8월 15일 (정묘) 2번째기사. 상왕을 받들고 본궁 수각에서 술자리를 마련하다.[9] 박윤선은 1973년생으로 아랫동서를 맡은 최명길보다 10살 이상 아래였다. 실제 정안왕후가 원경왕후보다 10살 연상이었음을 고려하면 반대로 캐스팅이 된 셈. 2000년 KBS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아자개의 딸 대주도금 역을 맡는데 본작과는 달리 강인한 여걸 역인지라 이미지의 갭이 엄청나다.[10] 원경왕후는 대놓고 눈치를 주지만 이방원은 형 정종과 사이가 좋고 정종과 정안왕후 부부가 알아서 욕심없는 모습을 보인지라 심하게 갈군다거나 하는 모습이 안 나온다.[11] 인스타그램 : lovelife.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