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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b0e64><colcolor=#ffd400> 조선 의안대군의 폐빈 현빈 유씨 | 賢嬪 柳氏 | |||
출생 | 1370년대 후반? | ||
사망 | 1394년 이후[1] | ||
능묘 | 미상 | ||
재위기간 | 조선 왕세자빈 | ||
1392년 ~ 1393년 6월 19일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1b0e64><colcolor=#ffd400> 성씨 | 유(柳) | |
배우자[2] | 의안대군 | ||
봉작 | 현빈(賢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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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의 초대 왕세자빈으로 의안대군 이방석의 전 부인이다.2. 생애
1392년, 조선 개국 후 왕세자 의안대군과 혼인하여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으나 1393년 6월 19일 현빈 유씨는 내시 이만과 간통한 일이 발각되어 이만은 참수되고 현빈 유씨는 폐서인되어 쫓겨났다. 이후의 행적은 불분명하다.현빈 유씨에 대하여는 기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누구의 딸인지, 본관이 어디인지조차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왕실 문서는 물론이고 문중 문서도 현재까지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불미스러운 일로 폐출되었기 때문에 유씨의 가문에서도 기록을 말살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첫 세자빈인데다 이방석의 어머니 신덕왕후 강씨의 당시 영향력을 생각했을 때 이름 높은 명문가 출신이었을 것이다. 여말선초 당시 유(柳)씨 성의 가문 중 당대 세족가문과 자주 통혼했던 가문으로는 문화 유씨가 있다[5]. 문화 유씨 일족의 몇몇 계열은 이미 고려 중후기부터 왕족과 통혼하는 가문이었으며, 여말선초에는 여흥 민씨, 안동 권씨, 평양 조씨 등 세족 가문과 통혼하며 조선 건국세력과 통혼권을 형성했다.[6][7]
3. 대중매체
- 1983년 MBC 조선왕조 500년 시리즈의 첫번째 1화 드라마 추동궁마마 에서 등장. 현빈 유씨 역의 배우는 이름을 알 수 없지만, 상대역인 이만은 이원재가 맡았다. 다만 이 드라마 자체가 30부작 정도로 짧게 편성되어 대충 지나가는데, 이만이 세자빈을 끌어안으려고 하는 장면이 슬로우 모션으로 연출되며 성우 양지운의 내레이션으로 간단히 언급되는 게 전부.
- 1996년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는 이재은이 연기했다. 이방석의 세자 책봉과 함께 가례를 올리지만, 이방석이 자신을 찾지 않아[8] 한탄하다가 내시 이만과 눈이 맞아 여러번 통정한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정안군 부인이 스파이로 심어 둔 김 상궁(문수인 역)에게 발각되고, 군부인의 명을 받은 조영무는 내시부사까지 대동하고 그야말로 보란 듯이 현장을 습격한다. 신덕왕후는 다른 사람도 아닌 정안군의 부하[9]에게 현장이 들켰다는 소식에 경악하여 충격에 휩싸이는데, 이후 정신을 수습하여 친히 세자빈을 잡아와 힐문하고 일단 방에 가둔 뒤 사약을 먹이러 다시 행차하지만 이미 유씨는 목을 매 자진한 다음이다. 이후 시신이 운반되는 장면으로 등장 끝. 이만은 홍내관(이종만 역)의 명으로 포대기에 싸인 후 얼음을 깬 강물 밑으로 수장되는 것으로 생을 마친다. 150부를 넘어가는 장편인 만큼 역대 사극 가운데 가장 많이 등장하며, 이만과의 관계도 서로 눈이 맞기부터 비극적인 결말을 맞기까지의 기승전결이 뚜렷하게 묘사되어 있다.
- 2021년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는 이하은[10]이 연기한다. 10회에서 처음 등장. 남편은 세자로 책봉되어 입궁했지만, 부인인 본인이 세자빈으로 책봉되지 않은 것은 본인의 친정이 보잘 것 없기에 시어머니 신덕왕후 강씨가 자신을 가벼이 봐서 챙겨주지 않은 거라며 불만을 표출한다. 이때 내시에게 넋두리를 늘어놓는데, 결국 12회에서 그 내시[11]와 간통을 저지른 게 발각되었다. 모든 게 끝났다고 체념했는지 신덕왕후에게 당당한 태도를 보이나, 신덕왕후가 "왕실 능멸죄로 너의 아비와 어미까지 모두 목을 베어 주겠다"고 협박하자 그제서야 울면서 두려움에 떤다. 그리고 궁녀들에게 끌려나간 것으로 퇴장.
[1] 늦어도 세종 즉위 이전에는 사망했다.[2] 전 배우자[3] 다만 갓 개국한지 얼마 안된 왕실의 흑역사였던지라 자칫하면 고려 지지세력에게 빌미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되었는지 이 사건에 대해 진상조사를 하라고 간언했던 대간들이 태조 이성계의 분노를 사 대거 유배를 가게 되었다는 기록이 실록에 나온다.[4] 고려왕조와 비교해서보면 개국초기 첫번째 최초의 고려의 세자빈으로는 혜종(고려)의 비 의화왕후 임씨로 볼 수 있는데 무사히 왕후가 된 것만 봐도 개국초기 며느리 경쟁(?)에서는 고려가 조선을 이겼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태조 왕건은 자신이 지정한 후계자마저 후임으로 만드는데 성공했지만 태조 이성계는 후계자마저 폐위후에 살해당했고 개국초기부터 폐세자 1명(이방석), 폐세자빈 2명(현빈 유씨, 현빈 심씨)이라는 개국초기 역사상 역대급 흑역사를 달성했다. 이정도면 솔직히 고려 지지세력이 비웃을 만도 하다. 아무런 공적이 없는 이방석과는 달리 고려는 혜종조차 일찍 죽어서 그렇지 정윤 시절에 아버지 왕건을 도와 일리천 전투에 참가하는등 아버지 왕건의 후삼국 통일을 도운 공적이 있다.[5] 문화 유씨와 전주 이씨의 한 관계를 살펴보면 무신정변에 적극 참여한 이의방의 동생 전주 이씨 이린은 문극겸의 사위이다. 고려 명종 대 활약한 유공권의 아들 유택이 이 이린의 사위이다. 이후 이린-이양무-목조 이안사-익조 이행리-도조 이춘-환조 이자춘-태조 이성계로 그 계보가 이어진다. 유택의 아들, 즉 이린의 외손자가, 김준과 더불어 최씨 무신정권을 종식시킨 유경이다.유경의 외할아버지의 장인이 문극겸으로, 유경은 문극겸의 외증손자이다.[6] 고려 후기 문화 유씨 가문의 가계와 통혼권, 유경래(2007)[7] 전주 유씨와 진주 유씨 등도 명문가이나 전주 유씨는 당대 세족이 아니었고 진주 유씨는 고려말 문화 유씨에서 갈라져나온 본관이므로 당시엔 문화 유씨였을 것이다. 전주 유씨의 시조 역시 문화 유씨계라는 설이 있다.[8] 경순공주가 세자빈에게 잘 대해 주라는 식으로 당부하자 "저는 어머님과 경순 누님 말고는 여자들이 싫습니다" 하는 식으로 대답하는 장면도 있으며, 세자빈은 내버려두고 신덕왕후와 나란히 누워 자기도 한다.[9] 실제로 조영무는 정안군보다 29살이나 많으며, 태조보다 세 살 어리다. 따라서 극중에서처럼 정안군의 충복이라기보다는 태조의 부하였다가 정안군에게로 갈아탄 인물이었는데, 극중에서는 정안군과 조영무의 나이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은 것처럼 묘사된다.[10] 나무위키에 항목이 있는 배우와는 동명이인이다. 해당 배우 인스타그램[11] 이름이 언급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