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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16:47:35

회안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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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태조의 황자
회안대군 | 懷安大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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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회안대군묘.jpg
회안대군묘 전경
출생 1364년 8월 7일[1]
고려 동계군 동북면 함흥부 귀주동 이성계 사저
(現 함경남도 함흥시 함흥본궁)
사망 1421년 4월 10일[2] (향년 56세)
조선 충청도 홍주군 유배지
(現 충청남도 홍성군)
묘소 회안대군묘(懷安大君墓)[3]
재위기간 조선 회안군
1392년 8월 25일 ~ 1398년 10월 10일
조선 회안공
1398년 10월 10일 ~ 1401년 2월 8일
조선 회안대군
1401년 2월 8일 ~ 1421년 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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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4153e><colcolor=#ffd400> 본관 전주 이씨
방간(芳幹)
부모 부황 태조 고황제
모후 신의고황후
형제자매 부황 기준 8남 5녀 중 4남
모후 기준 6남 2녀 중 4남
배우자
3명 [ 펼치기 · 접기 ]
정부인 삼한국대부인 여흥 민씨
(三韓國大夫人 驪興 閔氏)
1계부인 삼한국대부인 밀양 황씨
(三韓國大夫人 密陽 黃氏)
2계부인 금릉부부인 김포 금씨
(金陵府夫人 金浦 琴氏)
자녀
4남 2녀 [ 펼치기 · 접기 ]
[ 여흥 민씨 소생 - 1남 1녀 ]
장남 - 의령군 이맹중(義寧君 李孟衆)
장녀 - 성혜옹주(誠惠翁主, ? ~1431)
[ 밀양 황씨 소생 - 1남 ]
차남 - 창녕군 이태(昌寧君 李泰)
[ 김포 금씨 소생 - 2남 ]
3남 - 금성군 이선(金城君 李善, 1409 ~ ?)
4남 - 금산군 이중군(金山君 李仲窘)
[ 생모 불명 - 1녀 ]
차녀 - 신혜옹주(信惠翁主)
아호 망우당(忘牛堂)
봉호 회안군(懷安君)[4]
→ 회안공(懷安公)[5]
회안대군(懷安大君)[6]
시호 양희공(良僖公)
}}}}}}}}} ||
1. 개요2. 생애3. 평가4. 가족 관계5. 후손6.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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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초기의 왕족. 태조 이성계의 4남으로 형은 2대 국왕인 정종 이방과이고 동생은 3대 국왕인 태종 이방원이다. 박포가 2등공신에 불만을 품고 마침 아래 동생인 이방원왕위에 오르는 걸 싫어하던 회안군 이방간을 꼬드겨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아들과 함께 귀양을 간 인물이다.

2. 생애

민선의 딸인 민씨와 혼인하였으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회안군(懷安君)에 봉해졌다. 이후 1398년 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과 함께 이방석 등 이복동생들과 정도전, 남은 등 그들을 지지하는 중신들을 모조리 없애버렸다. 같은 해 작위 제도 개정으로 회안공(懷安公)이 되었다. 동생 이방원을 지지해 약간의 권력(?)을 얻었으나 1400년 박포의 거짓 밀고를 믿고 군사를 모아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나름대로 명분 및 지지를 얻을 의도로 당시 정안공 이방원을 증오하던 상왕인 아버지 이성계에게 상장군 오용권을 보내어 각각 그 상황을 알렸는데 정종실록 2년 1월 28일 실록의 내용이 대략 이러했다. (전문) 제2차 왕자의 난. 이방간을 토산에 추방하다
"[ruby(靖安公謀欲害我, ruby=정 안 공 모 욕 해 아)] [ruby(我不得已起兵攻之, ruby=아 부 득 이 기 병 공 지)] [ruby(請上勿驚, ruby=청 상 물 경)]"

(정종에게) "정안공이 저를 해하고자 꾀하니, 제가 부득이 거병코자 하나이다. 청컨대 주상께옵서는 부디 놀라지 마소서."
"[ruby(靖安將害臣, ruby=정 안 장 해 신)] [ruby(臣不可空死, ruby=신 불 가 공 사)] [ruby(故發兵應變, ruby=고 발 병 응 변)]"

(태조에게) "정안이 장차 소신을 해하겠으니, 소신이 헛되이 죽을 수 없으므로 군사를 발하여 응하고자 하나이다."

이에 대한 두 사람의 답은 대략 이렇다.
"[ruby(爾惑聽亂言, ruby=이 혹 청 난 언)] [ruby(謀戕同氣, ruby=모 장 동 기)] [ruby(狂悖甚矣, ruby=광 패 심 의)] [ruby(爾其釋兵, ruby=이 기 석 병)] [ruby(單騎赴闕, ruby=단 기 부 궐)] [ruby(予將保全之, ruby=예 장 보 전 지)]"

정종: "(주상께서 크게 노하시기를) 네가 헛소리에 홀려서 형제를 해치고자 꾀하니, 네 광기와 패악함이 심각하구나. 네가 스스로 군사를 해산하고 혼자서 대궐로 오면 내가 보호해 주겠다."
"[ruby(汝於靖安, ruby=여 어 정 안)] [ruby(異父乎, ruby=이 부 호)] [ruby(異母乎, ruby=이 모 호)] [ruby(彼如, ruby=피 여)][ruby(牛人, ruby=우 인)] [ruby(何乃至此耶, ruby=하 내 지 차 야)]"

태조: "(태상왕께서 대노하여 말하시기를)네놈이 정안아비가 다르더냐, 어미다르더냐? 같은 녀석[7]이 어찌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단 말인가!"

결국은 실패하고 거짓 밀고를 보낸 박포는 사형되었다. 이방간은 처음에는 황해도 토산군으로 귀양갔다. 이듬해인 1401년, 작위 제도 개정으로 회안대군(懷安大君)이 되었다. 이후 안산, 익산, 순천 등으로 귀양지를 수차례나 옮겨다녔고, 최종적으로는 본관전주에 정착한다.[8] 전적이 있었기에 조정에서는 귀양을 간 이후에도 이방간을 요주의 인물로 간주하고 태종에게 끊임없이 이방간을 죽일 것을 간언하였으나, 태종은 그 때마다 물리쳤다. 그런 태종이 1416년, 이방간의 공신 녹권과 직첩을 회수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방간이 태조의 사위인 심종(?~1418)[9]과 은밀히 거사를 도모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1413년 이방간이 심종에게 개인적으로 생강을 선물한 일이 있었는데, 심종이 조정에 보고하지 않은 것을 두고 3년 뒤에 문제삼고 나선 것. 조정에서 처벌을 요청하자 처음에는 듣지 않았으나 공신 녹권과 직첩을 회수하는 선에서 사건을 덮었으며, 심종 역시 녹권과 직첩을 회수당하고 토산군으로 유배되어 1418년, 그 곳에서 죽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방간과 심종이 사통(私通)하였다는 표현을 쓰며 죄줄 것을 청했지만 생강을 주고 받았다는 것 외에는 이방간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서술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인척끼리 주고 받은 선물을 두고 트집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태종은 이방간의 녹권과 직첩을 거두면서 조정에서 죄를 주라고 여러 번 떠들어서 어쩔 수 없이 특권을 거둘 뿐 편하게 살라며 따로 언질을 주었으며, 심종 역시 유배지를 스스로 고를 수 있게 하여 토산군으로 보내주었다. 이후 전주에서 20년 넘게 살다가 동생 태종이 승하하기 1년 전인 1421년, 와병 중에 태종의 명에 의해 홍주(현재의 충청남도 홍성군)로 거처를 옮겼고 그 곳에서 사망하였으며, 시호로는 '양희(良僖)'가 내려졌다.

묘지는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금상동 법사산 자락에 위치해 있고,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소양면으로 가는 길목에 표지판이 걸려 있다. 2차 왕자의 난 당시 태종의 가족들을 염탐까지 해가며 적극적으로 아버지를 도운 아들 이맹종은 아버지를 따라 귀양지에서 지냈으나, 20여년 후 두고두고 후환이 될 수 있다고 본 세종에 의해 자진하라는 명을 받고 스스로 자살한다. 그래도 맹종의 시체부관참시하라는 신하들의 요청을 거부했으며, 맹종의 유족들은 나름대로 대우를 받아서 혈통이 끊기는 일은 겨우 면했다.

하지만 후손들은 형식적으로만 왕족 대우를 받고 왕실 족보인 <선원록>에 그 이름들을 올리지 못해 실질적으로는 왕족 대우를 받지 못해서 면세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었는데, 이때 조정에서는 "노역의 의무를 행하는게 맞다"고 결론을 내려서[10] 후손은 자기들끼리만 왕족이라고 주장한 셈이 되어버렸다.왕위, 아니 왕족 요구자 선조 말기부터 꾸준히 복권을 주장하였으나, 정식으로 왕족의 지위를 되찾은 건 숙종 때였다.[11]

3. 평가

1차 왕자의 난을 주도한 이방원이 내세운 명분은 "어리고 공훈이 없는 막내가 감히 형들을 제치고 세자 자리를 가로채서 바로잡는다."였다. 그래서 이방원은 막내인 이방석과 우유부단하게 가만히 있던 이방번까지 몰아내서 한꺼번에 없앴다. 그러나 이방원의 위에는 이방과 외에도 이방의와 이방간이란 형들이 두 명이나 더 있어서 이방원은 왕위에 오르고 싶어도 일단 참아야 했다. 왕위에 대놓고 눈독들였다가는 이방의와 이방간이 "지가 형들을 제치고 왕위를 가로채면 안 된다고 말한 건 잊어버렸냐?"라고 트집잡았을 때 명분상 반박도 못하고 궁지에 몰릴 수 있기 때문. 그나마 셋째 이방의는 왕위에 욕심이 없었지만, 넷째 이방간은 이방원처럼 왕위에 대한 욕심이 컸다. 그런 상황에서 이방간이 난을 일으켜버렸으니 이방원의 입장에서는 형을 몰아낼 명분이 저절로 굴어들어온 셈. 만약 이방간이 난을 일으키지 않아 이방원의 형 위치에 머물고 있었다면 이방원이 왕위에 올라도 골치아픈 사안이 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소수 주장으로 '이방원이 판을 깔고 이방간이 난을 일으키도록 유도한건 아닐까?'라는 추측도 나온다.

다만 이방원은 형 정종의 양자로서 왕위를 계승한 것이고, 애시당초 왕위를 자연스럽게 잇기 위해 형한테 잠시 보위를 맡겨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12] 이방원은 초대 임금아버지를 상대로 피비린내 나는 권력다툼에서 승리했으며 양자로 들어가는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고도 "오늘부터 동생을 자식처럼 생각하면 되지 않냐?"며 정종이 이방원을 두둔해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조준, 하륜, 이숙번 등 조정도 이미 이방원 측에 의해서 완전히 장악된 상황으로 명분에 밀려 옥좌에 앉지 않았을 뿐이지, 실질적인 임금 노릇은 이방원이 이미 다 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서열이 빠른 형이라는 것만 믿고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용의 눈물>에서도 이방간이 난을 일으켰다는 말을 들은 이성계가 "이방원을 견제할 자가 없어졌다."라며 탄식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나마 이성계이방과가 자기 편이라도 들어줬다면 모를까, 이 둘은 오히려 절규하다시피 이방간을 꾸짖으며 뜯어말렸다. 1차 왕자의 난으로 신덕왕후 소생의 아들들사위까지 잃으면서 이방원을 증오하기로는 당시 누구에도 밀리지 않던 이성계의 입장에서도 이방간의 난은 아둔하고 사리사욕과 같은 욕심만 가득한 행위였고[13] 이방과의 입장에서도 이복형제간의 골육상쟁을 벌인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며 자신 또한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줄 징검다리로서 즉위하면서 가시방석에 앉은 꼴이었는데 이번에는 친형제간의 골육상쟁을 일으키려는 이방간이 한심해서 두고 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성계와 이방과 모두 이방간이 어차피 이방원의 상대도 못 된다는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이방원은 이방간이 난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자 즉각 대응한 게 아니라 "어떻게 형제끼리 싸우냐?"면서 밍기적대다 이화의 설득에 나왔고, 군사를 이끌고 갈 때도 형제간의 골육상쟁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는 를 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고 결과도 그러했다.[14]

4. 가족 관계

5. 후손

그의 후손으로는 IZ*ONE의 멤버였던 이채연과 그 자매 채령, 세븐틴 디노가 있다.
현재 그의 후손은 약 4만명으로 추산된다.

6. 대중매체에서


[1] 음력 공민왕 13년 7월 2일[2] 음력 세종 3년 3월 9일[3]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금상동 산 59-5 소재.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123호로 지정되어 있다.[4] 조선왕조실록 태조 1년 1년 8월 7일 병진 2번째기사[5] 조선왕조실록 태조 7년 9월 1일 계유 5번째기사[6] 조선왕조실록 태종 1년 1월 25일 을유 4번째기사[7] 의역이 아니다. 원문을 보면 알겠지만, 실록에도 소 우자가 쓰여 있다. 사극 용의 눈물에서도 2차 왕자의 난 소식을 들은 이성계가 이 표현을 쓰는 대사가 나오며, 이방원과 이방간을 모두 욕하면서도 나라의 이름있는 가문들이 이걸 보고 얼마나 비웃을지 한탄스럽다고 덧붙인다.[8] 이방원이 이방간을 살려준 것에는 정치적 의도도 있었는데, 이미 1차 왕자의 난으로 인해 왕실 내에서 피바람이 몰아친 바 있던 마당에 동복형제들까지 죽였다가는 아무리 진압의 명분이 정당하다 해도 민심이 흉흉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앞으로 이방원 본인의 집권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조선 왕실 전체의 정통성에도 흠집이 날 수 있었고, 후대에도 비도덕적인 짓거리라며 두고두고 손가락질 당해도 싼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임을 마침 주모자였던 박포에게 난의 책임을 다 몰아버리고 왕족이자 혈육인 형 이방간의 목숨은 살려준 것. 이성계(태조)와 이방과(정종)가 동의한 것도 가족에 대한 애정뿐만 아니라 이 부분도 있었다. 게다가 동생들인 방석과 방번과 달리 방간은 본인보다 바로 위의 형인 것도 있다.[9] 태조의 둘째 딸인 경선공주의 남편이었던 심종은 심덕부의 육남이자 세종의 장인인 심온의 동생이었다.[10] 중종 시기의 일이다.[11] 중종 때 복권을 청했다가 이후 선조 때 다시 청해서 허락받았지만 1년 뒤 선조가 죽자 광해군에게 다시 청했으나 광해군은 무시했었다. 수십 년 뒤 인조 말년에 다시 청했는데 이 때 족보에는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노역은 면제받았다. 숙종 때 여러 개로 나뉘어 있던 족보를 통폐합해 새로이 족보를 만들려는 때에 청해서 겨우 족보에 편입될 수 있었다.[12] 양자가 된 것 자체는 방간이 축출된 후였다. 어쨌든 형이라는 위치가 명분이 있는 건 맞긴 했다. 하지만 당시 조정 자체가 태종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상황이었으니 방간에게 마냥 유리한 상황은 아니었을 터.[13] 비록 이성계가 당시 가장 증오하던 존재가 이방원이라고는 하나, 이방간 또한 1차 왕자의 난 당시 이방원에게 적극 가세했다는 점을 보면 이방간이라 해서 딱히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 리가 없다. 정도만 다를 뿐 수준이 똑같은 놈들로 보일 수밖에 없고, 그런만큼 이복형제들을 죽여버린 것도 모자라 이제는 동복형제들끼리 싸우는 작태 자체가 한탄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방간이 이길 가능성이 있었다면 둘이 공멸할 정도로만 적당히 거들어줬겠지만, 둘의 능력, 명분, 세력 모두 넘사벽으로 차이가 났다. 그 이전에 자기가 뒤통수 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찌질하게 아버지한테 도와달라며 염치없이 손을 내민 점을 통해 이방간이 얼마나 눈치 없는 인간인지도 바로 짐작할 수 있다.[14] 어느 정도는 진심일텐데 이미 1차 왕자의 난으로 골육상쟁을 펼치며 이복동생들을 살해했는데, 또 골육상쟁을 통해 같은 어머니를 둔 동복형까지 죽인다면 왕실의 명성에 흠집이 얼마나 클지는 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몇 년 안 지나서는 궁궐에서 벗어난 아버지가 조사의를 앞세워 그동안 갈아두던 복수의 칼날을 겨누는 일까지 벌어졌다.[15] 공양왕의 누이[16] 아버지 이성계 역의 배우 김무생과 마찬가지로 1983년 MBC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에 이어 2번째로 같은 역을 맡았는데 전작과는 달리 비중있게 등장한다. 배우 김주영은 2014년 KBS 드라마 <정도전>에서는 조민수를 연기했는데 조민수는 이성계에게 숙청됐다. 그런데 <정도전>에서 이성계를 연기한 배우는 1996년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이방원을 연기했던 유동근이다.[17] 형식상으로는 이방원이 말리지만 전혀 말릴 생각이 없었다.[18] 작품 속 2차 왕자의 난의 경우에는 <조선왕조실록>과 다르게 정말 만만치 않은 반란으로 묘사가 될 정도로 철두철미한 준비로 묘사되었다. 이는 이방간을 작중 이방원 입장에서 중간 보스 보정을 주면서 어느 정도는 고증을 희생해서다.[19]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계와 정종은 방간이 실패할 것을 어느 정도 내다봤다. 극중 이성계는 방원이라면 치를 떨고 심지어 정종에게 방원이를 죽여달라고 할 정도인데 방간이가 자신에게 지지를 요청하자 어째 동복형제를 죽이려 하냐면서 소같은 놈 이라고 화를 냈다. 상황상 방간이 방원이를 죽이는것에 분개한 것보다는 딱 봐도 더 모자란 놈이 괜히 일을 크게 만들어 오히려 잡아먹힐 것 같으니 한심해서 그런 것이라는 점이 느껴진다.[20] 이에 이성계는 그나마 이방원을 견제하던 이가 사라졌음에 더욱 분노했고 퉁두란이 이방원의 편을 들고 이성계에 대한 죄책감으로, 그를 떠나게 되면서 혼자 고립된 이성계가 속으로 더 분노와 고통에 곪다가 내부적으로 더 큰 분쟁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21] 이방과에게 계속 "전하"라고 호칭하자 인내심이 폭발한 이방과가 "이 놈아, 전하는 무슨 전하냐! 난 지금 네 형으로서 널 살리려고 온거다.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이 놈아!"라고 일갈한다.[22] 물론 이성계 입장에서 둘은 가장 왕위를 물려주고 싶지 않은 인물들이었을 것이다. 한 명은 이복동생들을 참살하자는 주동자였고 또 다른 한 명은 자기가 직접 베어죽여버렸으니 말이다.[23] 특히 왕족으로서 신하들의 행동에 반발하거나 왕가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것에 대해 대처하고 뭉쳐야 한다고 주로 주도한 것도 거의 다 회안대군이었다. 이방원은 거의 별도로 움직이고 대처하던 것을 고려하면 왕실측에서 주변의 세태에 대해 가장 핵심적으로 파악하고 있던 셈이었다.[24] 그렇다고 마냥 동생인 이방원을 죽일 듯이 미워한 것은 아니었다. 2차 왕자의 난 직전에도 동생을 안 죽이고 반란을 성공할 방법은 없는지 그 방도를 찾으며 고뇌하기도 했다.[25] 강신효는 1989년생으로 실제로는 동생인 이방원 역의 배우 유아인보다 3살 어리다.[26] 조영규가 정몽주를 죽일 때 사용했던 무기가 이방간이 주로 사용하는 무기 중 하나인 도리깨였기 때문이다.[27] 결국 개그 캐릭터 확정.[28] 훗날 KBS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선 아예 방원의 측근인 박은을 연기하게 된다.[29] 공교롭게도 <육룡이 나르샤>처럼 이방원을 연기하는 실제 배우보다 연하인데 이 쪽은 2살이나 어리다.[30] 2014년 KBS 드라마 <정도전>에서는 이숙번 역. 배우개그로 두 역할의 실존인물들은 다 태종한테 쫓겨나 유배지에서 여생을 보내게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