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正統性 / Legitimacy정통성은 어떤 사회에 있어서 특정 정치체제·정치권력을 정당한 것이라고 여기고 허용할 수 있게 하는 논리적이고 심리적인 근거이다. 막스 베버의 카리스마적 정통성, 전통적 정통성, 합법적 정통성의 세 유형이 유명하다.
쉽게 말해서 한 사회 내에서 권력의 기반이 되는 관념이다. 예를 들어 한국사는 한반도의 권력을 기반으로 정통성을 잇는다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군주의 경우 혈통으로, 대통령의 경우 선거를 통해 국민에 의해 선택된 권력자라는 점에서 정통성을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다.[1] 즉, 정통성은 명분의 하위개념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이 없거나 희박하면 정부의 권력기반이 흔들리고 취약해지며 특히 내전 중이라면 그 정권이 붕괴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2. 부여주체
주권을 가진 사람이다.3. 부여방법
일반적으로 군주정에서는 세습, 독재정에서는 지명, 과두정에서는 추대, 민주정에서는 선출로 이루어진다.3.1. 군주정
정통성은 국가기반이 되는 중요한 무형적 자산이므로, 전제군주제 체제를 채택한 국가에서 후계자 선정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동아시아에서는 자신이 권력자가 될 자격이 있음을 확실하게 증명하는 수단이었다. 이러한 동아시아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천명이다. 요순시대에 있었던 고사를 토대로 형식적인 모습이더라도 새 왕조의 창업군주들은 자신이 욕심으로 권력을 찬탈한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대의명분으로 일어나 이전 왕조로부터 선양받는다는 것이라는 명분을 보이기 위해 애썼다. 특히 이전 왕조가 몇백년간 정통성을 유지했다면 이후 나라가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였더라도 새 왕조나 권력자가 이를 무시한다면 민심을 얻기 힘들어지며, 형식적으로라도 이전 왕조를 존중해주고 정당하게 권력을 이어받았다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혼란한 민심을 수습하려했다. 반대로 정통성 있는 황제의 권위를 넘보고 전횡을 일삼은 세력들은 일순간 권력이 정점에 달했더라도 본인 또는 후대에서 파탄을 면치 못했다.
대체로 동아시아 특히 한국과 중국은 적장자 계승이 1순위 원칙이었으므로 임금의 정실의 첫째 아들은 태어날때부터 '원자'라는 칭호를 받고[2] 후계자가 되며 어느 정도 성장하면 임금의 정식 후계자이자 대리역할까지 소화할 수 있는 '세자' 칭호를 받게 된다. 세자는 엄밀히 말해 임금은 아니지만 임금이 행궁을 떠나거나 아플 경우 직접적으로 통치에 관여하며,[3] 유사시엔 조정을 절반으로 나눠 임금과 동등한 권력을 부여받는 경우가 있다. 따지자면 '원자'는 단순한 후계자 개념이고 '세자'는 임금의 대리인 개념으로 보는 것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물론 평시엔 그냥 후계일 뿐이다. 이 후계자가 임금의 손자일 경우엔 '세손'이 되며[4] 동생일 경우엔 '세제(弟)'가 된다. 대표적인 세손은 조선 정조, 대표적인 세제는 영조다.[5]
그 외에도 동아시아에서는 종법 질서라고 하여 같은 혈연이라고 해도 정통성에 따라 상하구분을 명확하게 지켰다. 어느 정도냐면 예송논쟁에서도 볼 수 있듯 정통성이 어디에 있는지 논쟁을 벌였을 정도다.
유럽에서 정통성은 서유럽과 지중해 세계[6]를 지배했었던 로마 제국으로부터 시작된다. 비록 서로마 제국이 멸망했고 수많은 국가들이 난립하는 시기가 길었지만 로마 황제라는 칭호만으로도 유럽의 지배자라는 정통성을 가지기 충분했기에 유럽의 왕들은 이 칭호를 얻기 위해 애썼다. 특히 동로마 제국이 살아있었던 10세기에 신성 로마 제국이 등장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7][8]
왕권신수설은 유럽의 정치 상황에서 타협적으로 등장한 이념이다. 대체로 왕의 권한을 강화하기도 했지만 이를 부정한 왕도 적지 않았다. 주로 파문된 왕이 그렇다. 유럽 봉건제도는 왕의 통치력이 왕 개인 영지에만 국한되어 있는 극도로 분권화된 체제이기 때문에 국가란 사실상 반독립적인 영주 귀족과 좀 큰 영주에 불과한 왕의 불안정한 계약관계에 불과했다. 이것을 제3의 권력인 가톨릭교회의 권위를 힘입어 하느님과의 관계로 대체하고 왕의 통치권을 지방영주의 영지에까지 뻗는다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 이는 대체로 기존의 봉건제보다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통치 이념으로 작용하지만, 한편으로는 세습과 통치의 정당성을 영주과 왕 사이의 계약, 하느님의 관계가 아닌 가톨릭교회에 넘겨버렸기 때문에 교회와 교황이 개입되기 쉬워졌다.
이런 맹점 때문에 고대의 왕으로서 왕권신수설 비슷한 것을 주장한 왕들은 자신이 신이나 신의 아들을 겸했지만, 중세 이후의 유럽의 왕들이 자신이 하느님이라거나 하느님의 아들(즉 재림 예수)라고 자처하면 가톨릭 교리상 자동파문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질 못했다. 따라서 왕의 권위의 근원을 교회가 부정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왕이 교회의 눈치를 보게 된다는 맹점이 존재했다. 또한 절대선으로 인식되는 하느님의 규범과 행동의 해석은 세속권력이 아닌 가톨릭교회와 교회에서 운영하는 신학대학 등에서 해석하였으므로, 왕이라 할지라도 폭정을 저지르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저항할 수 있다는 논지로 시민 저항권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3.2. 독재정
군주정하고 비슷하지만 후계자 세습은 불가능하고 대신 자신의 뜻을 이을 수 있는 유력자를 지명하여 권력 승계가 이루어진다. 본인이 건재하면 당장은 지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사람의 수명이 정해진 이상 세월이 흐르면 후견인을 남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만 독재자는 권력을 놓는 순간 최소한 위신의 추락은 면하기 힘들고 최악에는 목숨을 부지하기도 힘들어질 수 있기에 정말 죽기 직전까지 공식적인 지명 선언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하지만 이렇게 미루다가 독재자가 후계자 지명을 못하고 갑작스럽게 사망하거나 몰락하면 국가 전체가 큰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누군가가 그의 뒤를 잇고 싶어도 이전의 독재자와 위상 차이가 너무 커서 정통성을 인정받기 힘들기에 한 국가가 여러 세력으로 쪼개지면서 분열하기가 쉽다. 결국 이러한 혼란에 빠진 국가는 내전과 같은 극심한 갈등을 겪고나서야 겨우 재통일하거나 아니면 분열된 상태 그대로 남기도 한다.
역사적으로는 초중기 제정 로마가 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나 플라비우스 왕조 등 세습에 의한 계승으로 정국 안정을 꾀하긴 했고 그게 성공한 경우도 있었으나, 공화정의 전통이 남아있어 황제 독재까지는 필요하다고 넘어가더라도 세습만은 영 못마땅해했던 원로원과 시민들, 여러가지 사유로 직계 계승이 잘 안 되고 방계 계승이 만연했던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아예 자식이 없어서 후계자를 지명해야만 했던 오현제 시대 등 다양한 사건들로 인해 완벽한 세습 군주정보단 공화정의 연장으로 독재정으로 전환된 느낌의 정치 형태를 보였다. 이후 군인 황제 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고, 이 난장판은 세베루스 왕조에 가서야 좀 봉합되는 듯 하다가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다시 선출 독재정으로 전환하고, 이후 콘스탄티누스 1세가 왕권을 반석에 올린 뒤에야 완벽한 군주정에 가깝게 변한다.
3.3. 과두정
과두정에서는 일정 조건[9]을 만족하는 사람들이 모여 그들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을 추대하게 된다. 이렇게 추대로 정통성을 확보한 사람은 유력자들의 지지를 업고 자신의 정책을 펼칠 수 있지만, 반대로 그들이 결사 반대하는 사안을 밀어붙일 경우에는 견제를 받을 수도 있다.이러한 과두정은 지지 세력만 확보하면 얼마든지 대표를 갈아치울 수 있기에 겉으로는 안정적인 체제를 유지하는 것 같지만 뒤로는 치열한 권력 암투를 벌이는 경우가 잦다.
공화정 로마가 전형적인 과두정의 표본이다. 흔히 공화정 로마를 민주정의 화신으로 착각하기도 하는데 전혀 아니다. 로마는 처음부터 단 한번도 민주정이었던 적이 없으며, 단지 평민들이 군인으로서 시민의 의무를 다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양보를 하고 호민관을 둔 것 뿐이지 근본적으로는 귀족이나 부유층 중심의 혈통/금권 과두정 국가였다. 과두정 국가에서 지도층이 되는 조건은 다양하나 공통점이라면 의회가 존재하고 의회가 통치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삼권분립이라는 전제는 없거나 명확하지 않으며 의회 독재에 가깝게 정국이 운영된다. 따라서 과두정 체제에서 건전성의 핵심은 평민층이 노력과 실력에 따라 지도층 편입이 얼마나 쉽게 가능하느냐이며 이 부분이 경직되거나 중산층이 경제적으로 붕괴하면 과두정은 흔들린다.
3.4. 민주정
민주정에서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사람이 정통성을 임기만큼 부여받는다. 선출직 공무원이 되는 것으로 정해진 임기를 보장받는 임기가 끝나면 다시 선출되어야 직을 유지할 수 있고, 재선 횟수가 제한되는 경우에는 임기가 끝나면 직을 내려놓아야 한다.이렇게 선거로 선출된 사람은 레임덕이 있더라도 다음 선거 전까지 정통성 자체가 훼손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지지율은 정책 추진력과 관련있는 문제로, 정통성 자체와는 큰 상관관계가 없다.
비록 민주주의의 탈을 쓴 독재라도 선거 결과를 조작하거나 특정 후보를 강요하는 강압적인 투표를 할 지언정 선거제도 자체를 없애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만큼 선거가 정통성을 뒷받침하고 권력을 잡을 명분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다만 현대 서방 세계에서는 민주정은 절대 공격받아서도 안 되는 절대선으로 성역화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당연하게도 민주정에도 큰 단점은 존재한다.
공직의 재임 기간을 엄격히 지켜야만 하는 것이 민주정의 특징이다보니 정책 추진력과 지속성이 모든 체제 중 가장 떨어진다는 것이 단점이다. 또한 과두정과 동일하게 주권자인 민중의 변덕스러운 투표가 권력 근간이기 때문에 정치적 암투가 엄청나며,[10] 동시에 민중의 의도에 반하거나 곧바로 이익을 내지 못하는 일이라면 장기적으로 필요하다 해도 제대로 추진하기 어려워 정책 전반이 단기 이득에만 눈이 먼 근시안적 형태가 될 가능성도 커진다. 또한 주권층인 민중의 공공심과 계몽 수준이 떨어지거나, 혹은 대중 선동에 능한 정치인이 등장할 경우 중우정치로 타락해 난맥상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래서 민주정을 채택할 경우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독재정과 과두정의 일부 요소들을 차용해 정부를 구성한다. 대한민국의 경우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은 선출직이지만 그 휘하 조직은 대통령이 직접적 인사권을 가진 채 독재정 요소를 가미하여 효율성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사법부의 경우 고등교육을 받은 엘리트층이 주도하는 과두정 요소가 강하다. 민중의 선거가 시작이자 끝인 완전한 민주정 체제인 조직은 입법부인 국회로, 행정 실무를 담당하는 일부 사무원을 제외하면 모든 의원이 선출직이며 이들이 강력한 권위와 권력으로 행정부(독재정)와 사법부(과두정)을 견제하는 형태로 정부가 구성된다.
사실상 현대 사회에서 거의 유일무이하게 서방진영에서 정권에 대한 정통성을 인정받는 체제라고 볼 수 있다.[11]
3.5. 북한
현재 북한에서는 김정은은 백두산의 정기를 받아 태어난 김정일의 자식이므로 혈통 자체가 일반 국민들과 다르다는 논리를 내세워, 골품제 비슷한 것을 만들어 정통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는 전근대적 전제군주제 국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논리다. 왕조의 정통성은 전대 왕의 아들에게 이어진다는 논리다. 사실 뚜껑 따보면 야훼 대신 '민족'을 기반으로 한 왕권신수설이다.북한의 세습제를 떠받치는 백두혈통은 원시적인 세습 논리체계를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다. 북한이 그토록 싫어하는 봉건적 체계에 정확히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봉건적'이라는 용어는, 봉건제의 정의에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에서는 전근대적인 모든 체계를 '봉건적'이라는 용어 하에 묶어서 배척하고 있다. 하지만 자기네 최고존엄의 세습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봉건적'(전근대적)인 사상체계의 정수 중에 정수인 세습군주정의 논리라는 것이 모순 그 자체다. 완전 코미디가 따로 없다.
백두혈통론이라는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에 정확하게 반대되는 주체사상 및 개인숭배와 왕권신수설의 논리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는 권력 부여의 주체만 '야훼'에서 '민족'으로 바꾼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에 기반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의 사상체계는 김씨일가의 행동에 어떠한 제약이나 견제도 허용하지 않으며, 당연히 삼권분립은 개나 줘버렸고, 통치자가 어떤 폭정을 저질러도 이를 견제할 합법적인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지도자가 마음에 안 들면 살아남을 방법이 쿠데타밖에 없으니 김씨일가가 밤에 잘 때 두려움에 떨면서 자야 하는 것. 그냥 "위대한 혈통이고 민족정기를 김씨 일가가 독점하고 있으니, 인민들은 이들의 뜻에 무조건 따르라"는 수준이다.
다만 북한도 완전히 '주민들의 투표로 획득한 정통성'을 포기한건 아니고 북한의 선거로 뽑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의 투표의결로 권력을 부여하는 쇼를 하기는 한다. 결국 백두혈통을 강조하는 북한조차도 민주정식 정통성은 갖고싶었던 것이다. 이는 너무 당연한데 북한은 실상과는 달리 겉으로는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임을 강조한다. 사실상 전제군주제나 다름없는 북한조차 정통성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4. 정통성 논쟁
- 유럽 세계에서는 로마 제국의 후계국이 누구인지를 두고 끊임없이 대립했다. 사실상 이 분야의 끝판왕. 제3의 로마 문서 참조.
- 후계국 문제 뿐 아니라 왕위 계승을 둔 전쟁도 자주 벌어졌다. 이는 동아시아는 중국/몽골/한국/일본/베트남/류큐 식으로 서로간에 왕족 혈통이 어느정도 분리되어 있어 왕위 계승 분쟁이 벌어져도 그 나라 안에서 통용되는 원칙으로 어느정도 해결이 가능한데다 모두 철저히 부계계승이 원칙이라 외부혈통이 계승권을 주장할 수 없었는데 비해 유럽은 왕족들이 저희들간에 결혼해서 꽤 복잡하게 섞인데다 나라별로 계승원칙이 다르기도 했기에 a,b 후보가 있다면 A나라 기준으로는 a가, B나라 기준으로는 b가 정통성이 있기에 서로 지지하는 후보를 밀기 위해 싸우는 일이 빈번했다.
- 한국사에서는 고려왕조 초기에 고구려정통론과 신라정통론이 대립했다는 연구가 있으나 결국 고려 중기에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고 삼국 세 나라를 모두 대등한 정통왕조로 간주해서 삼국사기를 편찬했다. 조선 후기에는 성리학적 해석에 따라 마한정통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 중국사에서는 대표적으로 삼국시대(중국)의 조위정통론 vs. 촉한정통론이 있다. 그리고 원나라에서 요나라, 금나라, 송나라 세 나라의 역사를 정리할 때 어디를 정통으로 볼 지에 대해서도 논쟁이 있었는데 결국 세 나라 모두 정통성이 있다고 치고 요사, 금사, 송사를 편찬했다. 요나라, 금나라, 송나라 모두 대치하는 상황이었기에 정통성 논의 자체가 무의미 할 수도 있다.
- 일본사에서는 남북조시대(일본) 남조와 북조 중 어디가 정통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남북조정윤론 문서 참조.
- 현재 한반도에 2개의 국가가 들어서면서 대한민국과 북한이 서로를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로 주장하고 있다.[12]
-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 하이바툴라 아훈드자다[탈레반]와 암룰라 살레[NRF]가 서로를 아프가니스탄의 지도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탈레반이 대부분 국토를 실효지배하고 있긴 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일단 판단을 보류한 상태.
5. 기타
중세시절엔 혈연에 따른 정통성이 가장 컸기 때문에 이를 연구하는 계보학이 동서를 막론하고 중요한 학문이었다.재벌의 경우 기업 총수가 자녀에게 자신의 자리를 넘겨주는 것을 정통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으며, 그들 중 누가 경영권을 가져가는지에 대해 언론의 이목이 쏠리기도 한다. 이는 재벌이라는 구조가 창업주가 은퇴 전까지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지 않았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6. 그 외
- 명분
- 취약국가지수 - 해당 국가가 얼마나 정통성이 있는지 어느정도 유추해볼 수 있는 지표. 중국이나 러시아처럼 국력은 강하지만 독재체제이고 국민에 대해서 주권보다는 소모품처럼 여기는 성향이 있는 권위주의 국가들의 경우 엄청난 패널티를 받는다.[15]
[1] 설령 이름만 대통령인 독재자나 다름없더라도 선거제도가 있는 국가에서 부정선거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선거 자체를 거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만큼 민주 국가에서는 선거가 권력의 존립근거가 되기 때문이다.[2] 정실이 아니더라도 받은 사례가 있긴 몇몇 있긴 하다. 대체적으로 정실에게서 자식을 못보겠다 싶거나, 정치적인 이유가 있어서 일찍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선의 경종은 태어나고 한 해 후에, 사도세자는 아예 태어난 당일에 원자 칭호를 받았다. 사도세자의 경우 태어난 당시 영조가 40대였고 왕비가 멀쩡히 살아있었는데 아들이 없던지라 전자에 속한다.[3] 평시에도 나이가 어느 정도 차면 조정에 출근하여 왕이 일처리를 하는 모습을 보고 배우게 했다. 현장실습? 이는 세종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이후 세조가 세종-문종의 전례에 따라 예종을 조회에 참석시켰다.[4] 참고로 세자와 세손은 공존할 수 있는데 어차피 정통성이란 개념이 있으면 더 높으면 높을수록 좋은거라 세자가 있는데 그 세자에게서 장남이 태어나면 세손 자리에 앉혔다. 이후에 왕이 죽고 자기 아버지가 왕이 되면 세자가 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이런 단계를 밟은 왕으로는 단종, 현종, 숙종이 있다. 그중에서도 단종은 세자의 적장자이자 왕의 적장손으로 태어나 원손 → 세손 → 세자 → 왕의 단계를 거쳐 역대 왕들 중 가장 완벽한 정통성을 가진 정통성계의 끝판왕…이었지만 옥좌를 탐했던 숙부에 의해 왕위를 내어주고만다.[5] 참고로 태종은 세제가 아니라 세자이다. 형 정종의 양자로 들어와서 왕위에 물려받았기 때문.[6] 남유럽, 서아시아, 북아프리카[7] 후대로 갈수록 권위가 약해지지만 로마 황제의 칭호는 유일한 정통성 있는 황제 칭호였다. 정통성이 있다 여겨진 다른 황제의 칭호도 동로마에서 인정을 해주어 정통성이 인정되었기에 로마와 연관성이 없는 황제 칭호는 '자칭'으로 취급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은 강한 국력과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어 사실상 유럽에서 가장 강한, 패권을 쥐고 있는 국가였지만 유럽과 떨어진 섬나라였던 만큼 '로마 황제'를 칭할 수가 없었다. 인도를 식민지로 점령하고 나서야 무굴 제국의 뒤를 이은 인도의 지배자라는 명분하에 칭제를, 그것도 정확히는 '인도의 황제'라고 칭할 수 있었다. 사실 이 방법은 꼼수라고 할 수 있는데다 식민지인 인도가 본토인 영국보다 앞서있는 것 같은 형태라 영국 내부에서도 이럴 필요가 있냐는 말이 나왔고 다른 국가들도 좋게 보지 않았다.[8] 서쪽에서 신성 로마 제국으로 황제 타이틀 쟁탈전을 벌이고 있을 적에도 동로마 제국의 황제는 당연히 인정받아 정통성 있는 로마 황제였다. 후대에 구분할 필요가 있어서 서로마, 동로마 나누어 부르고, 어느 순간부터 비잔티움이라는 국명이 공식적으로 쓰기긴 했다. 그러나 동로마 제국의 기본적인 국명은 '로마 제국'이었고 당대의 사람들도 로마 제국으로 인식하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로마인으로 봤다. 행정상의 이유로 공동황제를 세워 로마 제국의 동쪽과 서쪽을 나누어 통치한 것이기 때문에 정통성이니 격을 따질 것이 아니었다.[9] 일정 이상의 재산이 기준이면 금권과두정이 되고, 혈통을 기준으로 하면 귀족정이 된다.[10] 다만 재임 기간이 짧고 국민의 눈치를 봐야하는 민주정 특성 상 현 권력자를 언론플레이 등으로 다음 선거에 당선되지 못할 정도만 만들어두면 충분하기 때문에 암살이나 쿠데타 등 극단적인 유혈사태는 잘 일어나지 않는 편이다. 어디까지나 목숨 내놓기 딱 직전 정도로만 정치 암투가 벌어지는 편이다.[11] 입헌군주제의 경우 의회나 선거제도가 잘 갖추어져 있어서 총리를 위시로 하는 내각 제도가 나라의 정치를 잘 이끌어간다면 비슷하다고 여긴다. 이 때문에 이들 국가들은 취약국가지수가 대개 준수하거나 양호하게 집계된다. 반대로, 취약국가지수에서 독재나 신정제, 군주제를 채택한 국가는 십중팔구 점수가 엄청나게 높아지는 모습을 보여준다.[12] 사실 분단국가들은 모두 자기가 정통정부라고 주장한다. 한반도 역시도 분단되어 있기에 서로 자기가 유일합법정부라고 주장하는 것. 물론 보통은 어느쪽이 더 우세한 경우가 존재하긴 한다. 예를 들어 한반도의 경우는 일단 대한민국과 북한 모두 UN 회원국이라 국제적으로는 둘 다 정통성이 있는 셈이라 일단 UN이 먼저 한반도 전역에서 자유선거를 통한 정부수립을 제안했으나 북한 지역을 점거하고 있던 소련의 거부로 선거가 가능한 38도선 이남에서만 선거가 치러져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했고, 또 직전의 정권/왕조인 조선(대한제국 포함)의 수도였던 서울을 그대로 수도로 쓰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좀 더 우세에 있다고 할 수 있다.[탈레반] [NRF]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15] 서방에 편향적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는 지표지만 정치색을 빼놓고 봐도 점수가 낮은 나라들의 국민들의 삶은 대부분 시궁창 수준인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