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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19:18:39

이왕삼각

1. 개요

이왕삼각(二王三恪)은 동아시아사에서 새 왕가의 군주가 이전의 왕가를 우대해주는 조치를 뜻하는 중국식 한자어다. 중국에서 고대로부터의 전통으로, 과거의 성군을 기리고 그들의 제사가 끊기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 용어 분석

天子存二代之後, 猶尊賢也. 尊賢不過二代.
천자가 이전 2대의 후손을 높이는 것은 존현(尊賢, 어진 이를 존경)하려는 것이다. 존현은 2대를 넘지 않는다.
예기》 권11, <교특생>(郊特生).
周武王克商,而封夏後於杞、殷後於宋,皆爵公,封舜後於陳,爵侯,以備三恪。周得天下,封夏殷二王後,又封舜後,謂之恪。恪,敬也,義取王之所敬,并二王後為三國,其轉降示敬而已,故曰三恪。
주문왕상나라를 무찌르고 하나라의 후손을 기(杞)에, 은나라의 후손을 송(宋)에 봉했으며 모두 (公) 작위를 내렸고, 순의 후손을 진(陳)에 봉해 (侯) 작위를 내렸으니, 이로서 삼각(三恪)을 갖췄다. 주나라가 천하를 얻고 하·은 두 왕의 후손(二王後)을 봉했고, 또한 순의 후손을 봉했으니 이를 일컬어 각(恪)이라고 한다. 각이란 공경함()으로, 왕이 공경하는 바가 두 왕의 후손을 아울러 세 나라가 되는 것에서 뜻을 취한 것이다. 그것이 전해 내려오며 공경을 보일 따름이니, 고로 삼각이라고 한다.
통전》 권74.

우대해야 할 왕조는 바로 전 왕조와 그 전 왕조의 후손(二王後, 이왕후)으로 한정한다. 이들 이왕후 직전 왕조의 후손을 더하면 공경해야 할 대상 셋(三恪, 삼각)이 생긴다. 恪은 "삼갈 각"으로 "공경하다"라는 뜻도 있다. 삼각이왕후(三恪二王後)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현 왕조 직전 왕조 2대 전 왕조 3대 전 왕조 4대 전 왕조
폐지
존현의 대상, 이왕후
삼각

지배자의 이름이 '황제'로 바뀐 뒤로 선대 두 황제의 후손을 (王)으로 봉하는 일도 있었다. 조선에서는 고려 왕조 후손들에게 공 대신 군(君)으로 봉했다.

3. 대우

이전 왕가의 후손들은 임금의 손님()으로 대우됐다. 《통전》에 따르면 우순의 아들 단주(丹朱)를 '우빈(虞賓)'으로 부르며 대우했다. 순의 뒤를 이은 하우는 단주와 상균(商均, 순의 아들)이 그 선조들이 군주로서 입던 의복이나 예악(禮樂) 등도 전과 같이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 역시 왕의 신하가 아니라 빈객으로 대우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편 작위를 받고 땅을 떼어줌으로 그 땅의 수익으로 제사를 지낼 수 있었다. 하우가 처음으로 단주와 상균에게 강토(疆土)를 내렸다. 작위를 내려주게 된 것은 앞 문단에서 인용한 것처럼 주나라 때가 처음이다. 조선의 경우를 보면 제사를 지낼 때는 인력 역시 필요하므로 고려의 봉사손에게 노비를 제공하는 모습도 보인다.

4. 이상과 현실

중국 신화에서 포장된 평화적 선양의 이면에 서로 다른 부족간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듯, 전조의 후손이라고 해서 반드시 우대와 존중의 대상만이 되지는 않았다. 왕실 후손들은 반란 모의에 이름이 오르내리거나 실제로 반란에 가담하는 경우도 있었으니, 실제로는 우환이 될 것 같은 인물이라면 존중하기는커녕 죽여버리기까지 했다. 이왕삼각에 반대되는 상황 역시 공자가 이상향으로 그리는 주나라에서부터 있었다. 그 사례에 대해서는 왕씨 몰살 문서의 비슷한 전 왕가 숙청 사례 문단을 참고.

5. 사례

이하는 나라별로 이전 왕조의 후손을 우대한 사례의 예시이다. 엄밀히 이왕삼각이 아닌 경우가 포함됐을 수 있다.

5.1. 중화권

5.1.1. 주나라

5.1.2. 진나라

5.1.3. 한나라

순서 작위 이름 재위 비고
1대 주자남군(周子南君) 희가(姬嘉) 기원전 113년 ~ 기원전 107년
2대 주자남군(周子南君) 희치(姬置) 기원전 107년 ~ 기원전 87년 희가의 아들
3대 주자남군(周子南君) 희당(姬當) 기원전 83년 ~ 기원전 67년 희치의 아들
4대 주자남군(周子南君) 희연년(姬延年) 기원전 65년 ~ 기원전 44년 희치의 아들, 희당의 동생
주승휴고후(周承休考侯) 기원전 44년 ~ 기원전 36년
5대 주승휴질후(周承休質侯) 희안(姬安) 기원전 36년 ~ 기원전 23년 희연년의 아들
6대 주승휴리후(周承休釐侯) 희세(姬世) 기원전 23년 ~ 기원전 15년 희안의 아들
7대 주승휴후(周承休侯) 희당(姬党) 기원전 15년 ~ 기원전 8년 희세의 아들
주승휴공(周承休公) 기원전 8년 ~ 4년
정공(鄭公) 4년 ~ 8년
장모공(章牟公) 8년 ~ `14년
8대 장모공(章牟公) 희상(姬常) 14년 ~ 26년 희당의 아들
주승휴공(周承休公) 26년 ~ 29년
9대 주승휴후(周承休侯) 희무(姬武) 29년 ~ 37년 희상의 아들
위공(衛公) 37년 ~ ?
가계 불명

5.1.4. 위(삼국시대)

순서 작위 이름 재위 비고
1대 산양공(山陽公) 유협(劉協) 220년 ~ 234년 후한의 마지막 황제
2대 유강(劉康) 234년 ~ 285년 유협의 장남 유풍의 아들(유협의 손자)
3대 유근(劉瑾) 285년 ~ 289년 유강의 아들
4대 유추(劉秋) 289년 ~ 309년 유근의 아들, 309년 영가의 난 때 피살, 산양국 소멸

5.1.5. 서진

순서 작위 이름 재위 비고
1대 진류왕(陳留王) 조환(曹奐) 265년 ~ 302년 조위의 마지막 황제
가계 불명
진류왕(陳留王) 조매(曹勱) 326년 ~ 358년 조환의 현손
진류왕(陳留王) 조회(曹恢) 363년 ~ 378년 조매의 아들
진류왕(陳留王) 조영탄(曹靈誕) 383년 ~ 408년 조회의 아들
진류왕(陳留王) 조건사(曹虔嗣) 409년 ~ 420년 조영탄의 아들
진류왕(陳留王) 조건수(曹虔秀) 421년 ~ 462년 조건사의 동생
진류왕(陳留王) 조선(曹銑) 463년 ~ 473년 조건수의 아들
진류왕(陳留王) 조찬(曹粲) 474년 ~ 479년 479년 진류국 폐지

후한-삼국시대의 후예들은 조위, 서진에서 우대를 받았고, 영가의 난으로 대부분 단절된다.

5.1.6. 남북조시대

남조의 나라에서 사마씨를 영릉군왕에 봉했고, 제나라에서는 송의 유씨를 여음군왕, 양나라에서는 제의 소씨[4]를 파릉군왕, 진나라에서는 양의 소씨를 강음군왕에 봉했다.

그러나 남조 이후로는 서서히 흔적이 사라지며 찾아볼 수 없게 된다.

5.1.7. 당나라

당나라에서는 이왕후(二王後)인 북주 황실과 수나라 황실의 후예에게 작위를 내렸다.

또한,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백제, 고구려 왕실의 후예에게 작위를 내렸다.

5.1.8. 후량

5.1.9. 요나라

5.1.10. 송나라

5.1.11. 금나라

5.1.12. 원나라

몽골 문단의 하위 문단인 보르지긴 왕조 문단 참고.

5.1.13. 명나라

명나라는 원말명초 군벌 또는 그 후손들에게 작위를 내렸다. 귀의후 명승과 귀덕후 진리는 이웃나라 고려로 귀화했다.

5.1.14. 청나라

5.1.15. 동녕 왕국

5.1.16. 중화민국

5.1.17. 중화제국

5.1.18. 중화인민공화국

5.2. 한국

5.2.1. 신라

5.2.2. 고려

순서 작위 이름 재위 비고
1대 낙랑왕(樂浪王) 김부(金傅) 936년 ~ 978년 신라의 마지막 왕

5.2.3. 조선-대한제국

조선에서는 '삼각'의 예를 따라 팔전을 세우고 선대 여덟 왕조[5]의 제사를 지내게 했다. 직전 왕조인 고려 왕실에 대해서는 팔전이 정립되기 전부터 작위를 내리고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왔다.
제사는 잠시 중단됐으나 문종이 처음으로 고려 태조의 제사를 위한 숭의전을 세우고, 고려 현종의 후손인 왕휴(王休)의 손자 왕우지라는 인물을 찾았다. 단종은 왕우지에게 '왕순례'라는 이름을 주고 숭의전사(崇義殿使)로서 제사를 잇게 했다. 전(殿)의 관직은 감, 영, 수, 부사로 나뉘었으며, 한 명만 임명돼 승진을 거치는 방식이었다. 숭의전에서 제사를 지내는 이들은 빈객의 예, 삼각(三恪)의 의전으로 대우받았다.

왕순례의 손자인 왕적 사후 직계가 끊어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후사를 이으려는 왕씨가 많아서 조정에서 왕희를 왕씨의 적통으로 삼기로 정했다. 그러나 사실 왕희는 고려 왕조의 후손이 아닌 전주 왕씨였음이 밝혀졌고, 이를 밝혀낸 왕훈(王勳)이 정파가 되어 그 후손이 숭의전에서 봉사하게 되었다. 왕훈의 후손이 고종 시기까지 11대에 걸쳐 제사를 지냈는데, 왕희의 후손이 또 기어들어와서 참봉에 임명되니 암행어사 이헌영에 의해 발각되어 파면됐다.
귀의군
순서 작위 이름 재위 비고
1대 귀의군 왕우(王瑀) 1392년 ~ 1397년 공양왕의 동생
2대 귀의군 왕조(王珇) 1397년 ~ 1398년 왕우의 아들
숭의전 봉사손
순서 관직 이름 재위 비고
1대 숭의전부사 왕순례(王循禮) 1452년 ~ 1485년 왕미의 아들
2대 숭의전감 왕천계(王千繼) ? ~ ? 왕순례의 서자
3대 숭의전감 왕적(王績) ? ~ 1540년? 후손 단절
숭의전감 왕희(王希) 1541년 ~ 1588년? 파직
4대 왕훈(王勳) 1589년 ~ ?
5대 숭의전수 왕곤(王鵾) ? ~ ? 왕훈의 장손자
숭의전감 왕성원(王聖元) 1710년 ~ 1717년 왕곤의 장증손자
숭의전령 1717년 ~ 1727년
숭의전수 1727년 ~ 1731년
숭의전부사 1731년 ~ ? [6]
숭의전감 왕세빈(王世賓) 1738년 ~ 1749년 왕성원의 장손자
숭의전령 1749년 ~ 1798년
숭의전감 왕경효(王景孝) 1798년 ~ 1811년 왕세빈의 장남
숭의전령 1811년 ~ ?
숭의전령 왕윤동(王尹東) 1819년 ~ 1869년 왕경효의 양자[7]
숭의전참봉 왕재기(王在基) 1870년 ~ 1876년 왕윤동의 장손자
숭의전참봉 왕사희(王師熙) 1876년 ~ 1878년 왕희의 11대손, 파직
숭의전참봉 왕익수(王益修) 1883년 ~ ? 왕곤의 9대손[8]
숭의전참봉 왕재준(王在儁) 1888년 ~ ? 왕익수의 5촌 조카
숭의전참봉 왕재소(王在韶)[9] 1893년 ~ 1898년 왕윤동의 생가 종손(從孫)[10]
숭의전참봉 왕응종(王應鍾) 1898년 ~ 1901년 왕재기의 장남
숭의전참봉 왕재하(王在夏) 1901년 ~ ? 왕익수의 7촌 조카[11]
숭의전참봉 왕회종(王會鍾) ? ~ 1907년 왕재기의 9촌 조카[12]
숭의전참봉 왕재형(王在衡) 1907년 ~ ? 왕재준의 생가 4촌 동생[13]

5.2.4. 대한민국

5.3. 일본

진짜 군주는 천황이지만 일본 무사 정권의 지휘자 또한 실질적 군주로 분류되므로 여기에 등재한다.

5.3.1. 아스카 시대

5.3.2. 에도 막부

5.3.3. 일본 제국

5.4. 몽골

5.4.1. 몽골 제국

5.4.1.1. 보르지긴 왕조
5.4.1.2. 아이신기오로 왕조(청나라)
중국 문단의 하위 문단인 청나라 문단 참고.

5.4.2. 몽골 인민 공화국

5.4.3. 몽골국

5.5. 베트남

5.5.1. 전 레 왕조

5.5.2. 막 왕조

5.5.3.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6. 같이보기



[1] 다만 209년 폐하며 소멸한다.[2] 신찬(臣瓚)의 말에 의하면 위(衛)나라의 공자 자남미모(子南彌牟)의 후손이라고 한다.[3] 명칭이 여러 번 바뀌다 서기 37년 위공(衛公)이 되었다. 사마염의 진나라가 들어서면서 후작으로 강등.[4] 참고로 둘이 먼 친척이다[5] 단군조선+고구려, 기자조선, 백제, 신라(박씨, 석씨, 김씨), 금관가야, 고려.[6] 왕성원의 증조 왕곤 이래 한 봉사자가 숭의전부사까지 오른 경우는 처음이다.[7] 왕경효의 막내 남동생 왕경신(王景信)이 왕경효의 5촌 당숙인 왕세신(王世臣)에 양자로 간 뒤 낳은 장남이다.[8] 전 숭의전감 왕성원(王聖元)의 4촌 동생 왕이원(王履元)의 5대손이다.[9] 족보명 왕재설(王在卨).[10] 왕윤동의 친동생 왕계동(王啓東)의 손자이다.[11] 전임 숭의전참봉 왕재준(王在儁)의 8촌 삼종형(三從兄)이기도 하다.[12] 왕응종의 10촌 동생이기도 하다.[13] 왕재준(王在儁)은 본래 왕기수(王夔修)의 장남인데, 출생 이후 7촌 재종숙 왕철수(王哲修)에 입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