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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2 01:09:23

태조(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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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 : 목조 ~ 연산군 · 중종 ~ 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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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호가 있거나 문서가 등재된 사람만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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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태조 | 정종 정종 | 태종
세조 예종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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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국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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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고황제 진종 소황제 장조 의황제 정조 선황제
순조 숙황제 문조 익황제 헌종 성황제 철종 장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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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대 국왕
태조 | 太祖
대한제국 추존 황제
태조 고황제 | 太祖 高皇帝
파일:태조 어진.jpg
출생 1335년 11월 4일[1]
(음력 충숙왕 복위 4년 10월 11일 기미일)
쌍성총관부 화령[2]
(現 함경남도 금야군)[3]
즉위 1392년 8월 13일[A] (56세)[5]
(음력 공양왕 4년/태조 1년 7월 17일 병신일)
개경 수창궁 정전
(現 개성시 남안동)[6]
사망 1408년 6월 27일[B] (향년 72세)
(음력 태종 8년 5월 24일 임신일)
한성부 창덕궁 광연루 별전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능묘 건원릉(健元陵)
재위기간 조선 초대 국왕
1392년 8월 13일[A] ~ 1398년 10월 22일[C]
(음력 태조 1년 7월 17일 ~ 태조 7년 9월 5일)
조선 상왕
1398년 10월 22일[C] ~ 1400년 8월 5일[D]
(음력 정종 즉위년 9월 5일 ~ 정종 2년 7월 6일)
조선 태상왕[12]
1400년 8월 5일[D] ~ 1408년 6월 27일[B]
(음력 정종 2년 7월 6일 ~ 태종 8년 5월 24일)
서명
파일:태조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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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본관 전주 이씨
성계(成桂) → 단(旦)[15]
부모 부왕 환조
모후 의혜왕후
형제자매 5남 2녀 중 3남
배우자 신의고황후 (?년 혼인 / 1391년 사망)
신덕고황후 (?년 혼인 / 1396년 사망)
후궁 성비 원씨, 정경궁주 유씨, 화의옹주 김씨, 찬덕 주씨
궁인 김씨, 기생 무협아
자녀 8남 5녀
종교 불교[16]
신장 180cm[17]
중결(仲潔), 군진(君晋)
아호 송헌(松軒), 송헌거사(松軒居士)
전호 문소전(文昭殿)
묘호 태조(太祖)
별호 성조(聖祖)
존호 지인계운응천조통광훈영명
(至仁啓運應天肇統廣勳永命)[18]
시호 조선: 성문신무정의광덕대왕
(聖文神武正義光德大王)[19]
대한제국: 성문신무정의광덕고황제
(聖文神武正義光德高皇帝)
: 강헌(康獻)[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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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숙신옹주가대사급성문.jpg
태조 친필 글씨[21]
1. 개요2. 생애3. 시호, 묘호, 휘4. 가족 관계5. 사용한 무구
5.1. 어궁구5.2. 전어도5.3. 화살보다 빠른 말5.4. 팔준마
6. 직접 쓴 글과 시7. 평가8. 어진9. 여담10. 대중 매체에서11. 관련 문서12.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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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룡 백호가 좌우에 둘렀는데 / 靑龍白虎左右邊
마치 호랑이가 바위에 걸터앉은 듯 / 山虎石上如蹲踞
공후며 부귀며 영화로운 세상 / 公侯富貴榮華世
일세를 통령한 대장군일세 / 出世統領大將軍
명예는 우레처럼 천하에 떨치고 / 雷振名譽天下遍
온 세상 막힘 없어 글과 수레가 사해에 통하였네 / 四海無防車書通
석 자 칼로 사직을 편케 하고 / 三尺劍頭安社稷
한 줄기 채찍으로 천하를 평정하였네 / 一條鞭末定乾坤
'오주연문장전산고 경사(慶事)편 5 - 논사류 中', 영흥부 준원전 소장 태조어진의 뒷면에 적힌 글귀

고려 말기의 명장이자 조선을 건국한 조선왕조창업군주.

묘호태조(太祖), 성은 (李), 초명은 성계(成桂). 즉위 후 개명한 이름은 단(旦).

귀신같은 활솜씨와 지휘력으로 홍건적왜구를 연달아 막아내 최영과 함께 구국의 영웅이 되었다. 고려 말 최대 군벌로서 실력을 갖춘 데다가 신흥무인세력들과 급진 신진사대부들의 협력과 지지를 받으며 정계의 주요 인물로 떠오른다. 위화도 회군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정적들을 차례로 숙청했으며 마침내 1392년에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개국한다.

조준, 남은, 정도전 등을 앞세워 새 왕조의 기틀을 다졌으나, 신덕왕후가 죽자 일어난 1차 왕자의 난으로 둘째 아들 정종에게 전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처가 쪽 생존자였던 조사의를 내세워 1402년 함경도에서 군을 일으켜 권토중래를 노렸지만 태종에게 진압됐다. 1408년 붕어하여 건원릉에 안장되는 한편 신위는 종묘에 봉안됐다.

2. 생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태조(조선)/생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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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3. 시호, 묘호, 휘

묘호는 천자의 칭호이므로 유교 예법상 제후국은 묘호를 올릴 수 없다. 시호도 스스로 올릴 수 없는데, 이는 천자의 신하로서 천자가 주는 시호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22] 그래서 원 간섭기의 고려가 독자적 묘호도 시호도 없었던 것이다. 묘호는 고려 멸망 때까지 회복하지 못했고, 시호는 공민왕 때 회복했다.

하지만 조선은 두 가지를 지키는 척하면서 내부적으로는 몰래 독자적인 묘호와 시호를 써서 태조(太祖)와 그 4대조들에게 모두 천자의 묘호를 올리고 독자적 시호를 올렸다. 물론 명나라와의 외교에 있어서는 명나라가 준 시호를 철저하게 따르는 모습을 보였다.

우선 묘호는 절대 명에 알려지지 않게 했다. 그리고 시호는 독자적으로 올리되 이 보내준 시호를 대표시호로 삼았다. 고려의 경우 원 간섭기 이전엔 묘호를 독자적으로 쓰고 시호도 누구한테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쓰고 독자적 시호를 대표 시호로 삼았다. 고려 국왕 문서의 '태조·○종 ○○대왕'의 빈 칸 모두 독자적 시호이다.

그래서 조선이 올린 시호는 대표 시호로 삼지 않았고 명이 보낸 시호를 묘호 뒤에 대(大) 자를 붙여 사용했다(묘호 + 명으로부터 받은 시호 + 대왕). 그래서 조선이 정한 공식 존호는 '태조 강헌대왕(太祖康獻大王)'으로 조선왕조실록 태조편 제목도 〈태조 강헌대왕 실록〉으로 되어 있다. 명나라가 준 시호가 '강헌(康獻)'이기 때문이다. 명나라 앞에서는 철저히 '강헌왕'이라고만 일컬었다. 훗날 청나라도 당대의 조선 국왕들에게 시호를 줬지만 그때는 받기만 하고 쓰지 않았다.

전조 고려처럼 굳이 조선의 자주적 묘호와 시호를 합쳐 부른다면 '태조 신무대왕(太祖神武大王)'이 된다. 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불린 적은 없다. 조선왕조 당시 이성계의 대표 시호는 어디까지나 강헌대왕(康獻大王)이었다. 신무(神武)는 위대한 무장이었던 점을 감안해 올린 시호로 이성계의 두 아내들도 神 자 돌림 시호를 가지게 된다.(신의왕후, 신덕왕후) 군주와 아내의 시호를 맞추는 예법은 천자국의 예법으로 태조 이성계에게만 한정하여 이 예법을 적용하고 후대 국왕 왕후들은 시호를 맞추지 않았다. 대한제국은 이 시호 예법을 철저히 따랐다.

조선조 역대 국왕의 독자적 시호 중 마지막 부분을 보면 태조 아래의 모든 국왕이 '효(孝)'로 끝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령 태종은 광효(光孝), 세종은 명효(明孝), 숙종은 원효(元孝) 등등. 심지어 대한제국에서도 고종은 정효(貞孝)태황제, 순종은 효(孝)황제로 끝난다. 이들은 태조의 자손으로 효성을 다해 국가를 이끌었다는 뜻으로 받은 것이다. 효종만 정덕(正德)인데, 이는 이미 묘호에 '효'가 있으니 또 쓸 필요가 없어서이다.

종합하면 비록 태조의 대표시호는 의 시호로 했지만, 조선은 시호 예법에서 해줄 수 있는 모든 예우를 바쳤다. 이후 대한제국이 열리고 대표시호를 바꾸었다. 함흥본궁의 위패엔 '태조 고황제'가 쓰여 있는데, 이는 고종이 대표시호를 '강헌대왕'에서 '고황제'로 재추존해서 바꿨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 정식 시호는 명나라와 조선의 시호를 합친 '강헌지인계운성문신무대왕(康獻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이었는데, 1683년(숙종 9년)은 '정의광덕(正義光德)'이 추가되어 '강헌지인계운성문신무정의광덕대왕(康獻至仁啓運聖文神武正義光德大王)'이 되었고, 대한제국고종이 고황제(高皇帝)로 추증하며 명나라로부터 받은 시호인 '강헌(康獻)'을 폐했다. 그래서 최종 정식 시호는 '지인계운응천조통광훈영명성문신무정의광덕고황제(太祖至仁啓運應天肇統廣勳永命聖文神武正義光德高皇帝)'이다. 군주와 아내의 시호를 맞추는 예법도 부활해 태조 고황제의 시호에 맞춰져 왕후들도 신의'고'황후, 신덕'고'황후로 추존됐다.

태조 왕건과 마찬가지로 '태조'라는 묘호보다 본명이 대중에게 익숙해서 '이성계'나 '태조 이성계'라 많이 부른다. 다른 왕들처럼 그냥 '태조'라고만 하면 고려의 태조 왕건이나 그 외에 태조 묘호를 쓴 국내외 다른 왕들과 혼동이 되고, 즉위 전 고려의 장수로서 오랜 시기를 보냈기 때문에도 그러하다. 오늘날에 많이 쓰이는 표현은 아니지만 과거에는 '이태조(李太祖)'라고도 많이 불렸는데 오늘날에도 중·노년층에서 이성계를 이태조라고 부르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실 이태조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지만 조선시대에도 고려 왕건을 가리켜 '왕태조(王太祖)'라고 부른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다. 여담으로 베트남의 경우 국호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왕조 교체가 자주 일어나서 이태조, 진태조, 여태조와 같이 성과 묘호를 붙여 쓰는 게 정식이다.

왕이 되면서 피휘 문제 때문에 이름을 '단(旦)'으로 개명했는데 개명한 휘가 당예종한자까지 완전히 겹친다. 성(成) 자는 원래 이름으로 잘 쓰고 일상적으로도 자주 쓰이는 글자라서 아예 왕 본인이 갈아버린 것. 피휘로 인해 조선 시대의 문헌에서는 단(旦)자의 日과 一 사이를 연결하는 짧은 획을 하나 더 썼고 함부로 글자를 고칠 수 없는 경전에서 이 글자가 나올 때에는 원래 음 대신에 됴(=조)로 독음을 달았다. 이단이라는 이름조차 군주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도 금기시하기에 거의 불리지 않았다. 이단이라는 이름이 자주 쓰인 것은 구한말의 때로, 피휘를 할 필요가 없던 서양인들은 조선의 역사를 소개할 때 이단이라는 이름을 직접 사용했다. 국내에서는 오랜 피휘의 역사 때문에 이단이라는 이름 자체가 그닥 잘 알려지지 않아서 역시 이성계라는 이름이 주로 쓰인다.

별호로 성조(聖祖)라고도 불리웠는데 세종 시절인 1446년(세종 28년)에 세종용비어천가의 팔준(八駿)에 대한 내용을 보고는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안견을 시켜 태조의 여덟 마리 말들을 그리게 했는데 이것이 바로 '팔준도'로 당시 세종은 이 팔준도에 대해 이듬해인 1447년(세종 29년)에 관료들을 대상으로 하는 과거 시험에서 이 팔준도를 제목으로 하는 글을 짓도록 했다. 이 때 신숙주성삼문이 올린 글귀과 찬시들을 보면 당대 집현전 학사들이 '태조(太祖)'를 '성조(聖祖)'라고도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일종의 '별호'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아들인 태종 이방원의 별호는 성종(聖宗)이었다.

할아버지아버지몽골어 이름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성계는 몽골식 이름이 전해 내려오지 않는다. 아버지 이자춘이 고려로 귀부(歸附, 망명하여 귀속함)할 당시 이성계는 20살이 채 안 된 청년이었을 것이기 때문에 이성계에게도 몽골식 이름이 있었을 확률이 높지만, 아무래도 왕조의 개창자다 보니 정통성 차원에서 본인이 일부러 공개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4.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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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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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 순번 작호 생몰기간 모후 비고
<colcolor=#ffd400> 1남 <colcolor=#b82647,#d94767><colbgcolor=#fff> 진안대군
鎭安大君
<colbgcolor=#fff><colcolor=#000> 방우
芳雨
<colbgcolor=#fff><colcolor=#000> 1354년 ~ 1393년 <colbgcolor=#fff><colcolor=#000> 신의고황후 <colbgcolor=#fff>
2남 영안군
永安君
방과/경
芳果/曔
1357년 ~ 1419년 2대 국왕
3남 익안대군
益安大君
방의
芳毅
1360년 ~ 1404년
4남 회안대군
懷安大君
방간
芳幹
1364년 ~ 1421년
5남 정안공
靖安公
방원
芳遠
1367년 ~ 1422년 3대 국왕
6남 덕안대군
德安大君
방연
芳衍
조졸
7남 무안대군
撫安大君
방번
芳蕃
1381년 ~ 1398년 신덕고황후
8남 의안대군
宜安大君
방석
芳碩
1382년 ~ 1398년 폐세자 }}}}}}}}}

5. 사용한 무구

5.1. 어궁구

태조(太祖)는 대초명적(大哨鳴鏑)[35]을 쏘기를 좋아하였다. 싸리나무로써 살대를 만들고, 의 깃으로써 깃을 달아서, 폭이 넓고 길이가 길었으며, 순록(馴鹿)의 뿔로써 소리통(哨)을 만드니, 크기가 만 하였다. 살촉은 무겁고 살대는 길어서, 보통의 화살과 같지 않았으며, 활의 힘도 또한 보통 것보다 배나 세었다. 젊었을 때 환조(桓祖)를 따라 사냥을 하는데, 환조가 화살을 뽑아서 보고 말하기를, "이는 (범상한) 사람이 쓸 수 있는 보통 물건이 아니다."고 하였다.
- 《조선왕조실록·태조실록》, 태조 총서(太祖 總序)

파일:attachment/sunggyebow1.jpg
이성계가 친히 사용했던 '어궁구(御弓具)'는 일제강점기까지 보존되었던 흔치 않은 활유물이었으며 사실상 조선 최고의 명궁(名弓)으로 알려져 있다. 어궁구는 함경도 함흥의 조선 왕실 사당함흥본궁(咸興本宮)에 소장되어 있었지만, 불행히도 한국 전쟁함흥본궁이 불타버린 이후 행방이 묘연한 상태가 되었다. 당연 소실되었을 것이다.

5.2. 전어도

파일:external/upload.barobook.com/%EC%A0%84%EC%96%B4%EB%8F%84.jpg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 중인 전어도(傳御刀)가 이성계의 칼로 알려졌으나 근거는 없다. 실제 이성계가 썼던 칼은 용두검(龍頭劍)이라 하여 전주 경기전에 소장되어 있었으나 1950년 3월 도난당한 이후로 행방이 묘연한 상황이다. #

5.3. 화살보다 빠른 말

또한 정사가 아닌 야사에만 나오는 내용이지만 이성계의 화살보다 빠른 말도 있다. 내용은 이성계가 젊은 시절 무예를 갈고 닦을때 어느 연못에서 튀어나온 한마리 용마(龍馬)가 있었는데, 이 용마는 몹시 사나워 아무도 길들이지 못했다고 한다. 그때 이성계가 이 소문을 듣고 찾아가 아무도 길들이지 못한 말을 길들이기에 단번에 성공해 자신의 말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후로 무예 연습을 계속하다가 자신의 말이 얼마나 빠른지, 그리고 자신의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알기위해 과녁에 화살을 쏘고 말을 달려 화살을 따라잡기로 했다. 하지만 말을 타고 전력질주로 과녁에 도착하자 화살이 이미 박혀있는걸 보고 말이 화살보다 느린것에 빡친 이성계는 말을 그자리에서 곧바로 죽여버렸는데, 과녁에 박혀있는 화살은 예전에 쏜 화살이었고, 말을 죽이자 자신이 쏜 화살이 날아와 과녁에 꽂히게 된다. 이걸 본 이성계는 자신의 급한 성격을 고쳤다는 이야기. 사실 이 이야기는 견훤의 설화로 상주시에서, 김덕령의 설화로 광주광역시에서 전해 내려오기도 한다.

5.4. 팔준마

용비어천가에서는 8마리의 애마들도 확인된다. 이름은 각각 유린청, 횡운골, 추풍오, 현표, 발전자, 용등자, 응상백, 사자황이다. 이를 조선 왕실에서는 '태조의 팔준(八駿)'이라고 불렀는데, 동각잡기에 이 말들에 대한 간단한 내력도 기록되어 있다.

1446년(세종 28년), 세종은 용비어천가의 팔준에 대한 내용을 보고는 이를 그림으로도 그려 건국의 자취를 남길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림의 발견]안견의 팔준도(八駿圖) 이야기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안견(安堅)이 태조의 여덟 마리 말을 그렸으며, 집현전 학사들은 찬문(撰文)을 붙였다. 이듬해인 1447년(세종 29년)에는 관료들을 대상으로 하는 과거 시험에서도 팔준도를 제목으로 하는 글을 짓도록 했는데, 성삼문이 1등으로 뽑히기도 했다. 해당 그림은 임진왜란 · 정유재란 이후 사라져서 현존하지는 않으나 숙종 대에 어느 사대부가에서 안견의 팔준도를 모사한 듯한 그림이 나와 그 그림을 모사했는데 이것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남아 있는 화첩이다. 비롯 원본은 사라졌지만 그 당시 신숙주성삼문이 올린 글귀과 찬시들은 그대로 남아있다.
동문선 제44권 / 표전(表箋)

집현전 진 팔준도 전(集賢殿進八駿圖箋) /성삼문

하늘이 도와 임금을 내시니 성인(聖人)은 천 년의 운수를 맞추셨고, 땅에서 쓰이는 것은 말[馬] 같은 것이 없으며, 신물(神物)은 한 시대의 재능을 바쳤기로, 감히 새 그림을 만들어서 예감(睿鑑)에 올리옵니다.

그윽이 생각하오면, 왕자의 작흥(作興)에 있어어도 역시 축산(蓄産)에 힘입어 성공하였습니다. 촉한(蜀漢)의 왕적로(的盧)를 타고서 능히 단계(檀溪)의 액(厄)을 면하였고, 금(金) 나라 태조는 자백(赭白)을 타고서 곧장 흑수(黑水)의 깊은 물을 건너갔으니, 진실로 큰 업(大業)이란 돌아갈 데가 정해져 있사오매, 미물(微物)도 또한 그 힘을 분발하는 것이옵니다.

우리 태조(太祖)께옵서 용맹은 하늘에서 타고나시고 부덕(副德)은 오직 날로 새로우시매, 고려의 운수가 끝날 무렵에 외부의 적이 자주 틈을 노리니 나라를 위하여 적개심을 품고 백성 보살피기를 상처입은 것을 대하듯 안쓰러워하셨습니다. 의기(義旗)를 한번 돌이키자 백성은 화난(禍亂)을 면하게 되었고, 신과(神戈)를 사방으로 휘두르매 삼한(三韓)은 청명한 세상을 이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비록 원근(遠近)이 지극한 인(仁)을 당적(當敵)할 길이 없었지만 근골(筋骨)은 먼저 크나큰 임무에 부지런하셔서, 친히 시석(矢石)을 무릅쓰시매, 몸은 상처에 피곤하였습니다.

이 시절을 당하여 세상에 이름난 인재만 용의 비늘(龍鱗)에 붙어 절개를 다한 것이 아니오라, 기르는 짐승 같은 천물(賤物)까지도 제 몸을 바쳐 수고를 맡을 것을 알아서, 혹은 사냥터를 달리기도 하고, 혹은 싸우는 진중을 출입하여 주선(周旋)하는 데 힘을 다하고 걸음걸이는 사람을 따르는데, 그 크고 건장한 체격은 이미 익숙한 모습을 볼 만하고, 달리는 곳에는 앞설 놈이 없어 참으로 사생(死生)을 의탁할 만하더니, 마침내 그 장기(壯氣)를 발휘하여 큰 업을 이룩하는 데 도움되었으니, 어찌 영걸(英傑)만이 유독 능연각(凌煙閣)에 오르리오. 권기(權奇)로 소릉(昭陵)에 참열(參列)하게 된 것을 믿을 만하옵니다.

삼가 생각하오면, 도(道)는 생성(生成)에 흡족하시고, 공은 조화(造化)에 참예(參禮)하시고, 선대의 뜻을 잘 계승하시고 선대의 일을 잘 기술하시어 삼가 수성(守成)만 하시고, 선대의 공을 계승하시고 선대의 정책을 드러내어 창업(創業)이 쉽지 않음을 생각하시며, 사랑은 견(犬)·마(馬)에게도 버리지 않으시고, 신의는 돈(豚)·어(魚)에까지 미치며, 특히 윤음(綸音)을 내리시어 도찬(圖贊)을 지어 올리게 하셨습니다.

신 등은 모두 조전(雕篆)의 기술로써, 외람되게 문한(文翰)의 직을 맡아온즉, 하물며 이 칭송이야. 바로 직분이옵기로 삼가 사적에 실린 것을 상고(上考)하고 겸하여 부로(父老)의 말을 채택하여, 화사(畵師)로 하여금 모형을 그리게 하고 졸(卒)한 글을 엮어서 공적을 기록했사오니, 터럭이 꼬부라진 한혈(汗血)은 완연히 당시의 용모와 같고, 늠름한 자태와 높은 공로는 거의 뒷사람의 안목을 놀라게 할 것이며, 상서로움은 하도(河圖)와 더불어 나란히 가고 노래를 지으면 천마가(天馬歌)를 누추하다며 차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혹시 한가한 틈이 나시오면 한 번 보아 주시옵소서. 그 덕을 칭찬하고 그 힘을 칭찬하지 않은 것은 선니(宣尼 공자(孔子))의 말씀을 따랐고, 아들에 전하고 손자에게 전하여 길이 성조(聖祖)의 공을 살필 수 있사옵니다.
동문선 제3권 / 부(賦)

여덟 준마의 그림을 읊은 부[八駿圖賦] / 신숙주

신(臣)이 듣잡건대, 아조(我朝)가 기업(起業)을 북방에서 비롯한 뒤 세 성인(聖人 목조(穆祖)·익조(翼祖)·도조(度祖))이 서로 이어 충효(忠孝)로 가문(家門)을 전하고 위엄과 덕이 날로 성(盛)하였나이다. 그때가 고려(高麗)의 말기(末期)라 쇠란(衰亂)이 이미 극도에 달했사온데, 하늘이 동방을 돌보시와 우리 태조(太祖) 강헌대왕(康獻大王)을 내시니, 대왕께서 조상의 업(業)을 이어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건지시려고 마음을 두사 분연(奮然)히 몸을 돌아보지 않으셨나이다.

그리하여 지정(至正) 22년 임인(壬寅) 봄에 홍건적(紅巾賊)을 평정하시고, 그해 가을에 나하추[納合出]룰 동쪽으로 몰아내고, 홍무(洪武) 3년 경술에는 북쪽으로 원(元) 나라의 남은 무리를 동녕(東寧)서 평정하시고, 10년 정사(丁巳) 여름에는 남쪽에서 왜구(倭寇)를 지리산(智異山)서 이겼사옵고, 그해 가을에 동정(東亭)에서 싸우시고, 13년 경신(庚申)에 인월역(引月驛)에서 싸우셨으며, 18년 을축(乙丑)에 토동(兎洞)에서 싸우시고, 21년 무진(戊辰)에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回軍)하는 의거(義擧)를 하였사오니, 무릇 27년간에 전후 몇백 번의 싸움이었나이다. 그리하여 만사일생(萬死一生)으로 위난(危難)을 무릅써 마침내 도적을 평정하고 백성을 도탄(塗炭)에서 건지시와, 천명(天命)과 인심(人心)이 임금에게 돌아와 마침내 큰 업을 세우시고 덕택(德澤)을 후세에 길이 끼쳤사옵니다.

그런데 적을 무찔러 함락시키고 나라를 깨끗이 맑힌 공적은 실로 말 위[馬上]에서 얻었사오니, 말의 공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음이 마땅하오이다. 그 중의 가장 준마(駿馬)로서 공이 있은 말이 여덟이 있었사온데, 이제 우리 전하(殿下)께서 명하여 그림을 그리고 찬(贊)을 붙여 오래 전하게 하라 하옵시니, 그 선대(先代)의 공적을 추모하고 편안 중에서도 위험했던 일을 잊지 않으시와, 후손(後孫)을 위하여 교훈을 끼쳐 주시는 뜻이 참으로 간절하시옵니다. 성자(聖子)·신손(神孫)이 이로써 전조(前朝)의 나라 얻기는 어렵고, 나라 잃기는 쉬운 것을 거울삼고, 조종(祖宗)께서 그것을 어렵게 얻었음을 생각하시와, 그리하여 여덟 준마의 공을 잊지 않으시면 이는 곧 동방 억만세에 끝없는 다행이겠나이다. 신(臣)이 외람되게 시종(侍從)의 반열에 있어서 이 성사(盛事)를 보았사오니, 노래하여 기림[頌]이 제 구실이라, 삼가 절하옵고 머리를 조아려 부(賦)를 드리옵나이다.

【신숙주가 올린 팔준도에 대한 찬시】
'성인이 자리에 계셔, 삼가고 애쓰심이, 무릇 30년에
聖人在位<성인재위> 祗懼勵精<지구려정> 凡三十年<범삼십년>

정치와 교화가 훌륭하고 밝으사, 사방에 염려가 없고, 조야가 태평했다
治敎休明<치교휴명> 四境無虞<사경무우> 朝野晏清<조야안청>

이에 수성하기 어려움을 알고, 안락의 해독을 생각하여, 창업의 어려움을 추모하고,
於是知守成之不易<어시지수성지불이> 念燕安之鴆毒<념연안지짐독> 追惟刱業之艱難<추유창업지간난>

성조의 크신 공적을 선양할 제, 여덟 준마의 미미한 것까지, 포장하여 높이는 축에 있게 하였다
敷揚聖祖之義烈<부양성조지의렬> 乃至八駿之微<내지팔준지미> 亦在褒崇之列<역재포숭지렬>

대저 준마의 태어남이, 신비롭고 기특하다
夫駿之生也<부준지생야> 神矣奇矣<신의기의>

방성이 정기를 받아, 용들이 새끼 낳으니, 힘차게 굼실굼실, 끊임없이 움직이며
房星委精<방성위정> 虬螭孕漦<규리잉시> 扶輿磅礴<부여방박> 蜿蟺逶蛇<완선위사>

그 기세 왕성하고, 명암이 뒤섞였고
氣化淋漓<기화림리> 晦明雜遝<회명잡답>

풍우처럼 멋대로 변화하고, 음양이 그 굽히고 폄을 좇아서
風雨恣其變化<풍우자기변화> 陰陽從其闢闔<음양종기벽합>

온갖 미를 교묘히 합성하여, 이 탁월한 천조물을 이루었으니
集衆美以妙合<집중미이묘합> 成此天機之卓犖<성차천기지탁락>

의젓하고 조용하며, 윤택하고 큼직하다
旣佶旣閑<기길기한> 孔阜孔碩<공부공석>

귀 늘리면 대를 쪼개논 듯, 굽으로 차면 우박을 흩으며
耳䏉批竹<이습비죽> 蹄蹴散雹<제축산박>

모난 걸음 구에 맞고, 둥근 걸음 규에 맞네
方者中矩<방자중구> 圓者中規<원자중규>

생긴 체격 현란하다, 누운 갈기. 일어선 갈기
姿格絢練<자격현련> 鬃䰕髬髵<종려비이>

껑충껑충 술렁술렁, 휙휙 저벅저벅
駓駓袪袪<비비거거> 翼翼騑騑<익익비비>

뛰는 모습 번개인 듯, 털빛도 찬란해라
電影回合<전영회합> 神光陸離<신광륙리>

머리를 내두르면 서늘바람 불어오고, 몸을 굼틀거리면 봄구름이 일어나네
駊騀而凉颸吹<파아이량시취> 躨跜而春雲起<기니이춘운기>

한 번 울매 서역 사막이 와스스하고, 두 번 울면 기북(冀北 말의 명산지)이 휩쓸어지나니
一鳴兮胡沙浙瀝<일명혜호사절력> 再鳴兮翼北風靡<재명혜익북풍미>

이런 말은 천백 중에 하나 둘, 기린과 봉황과 미를 견준다
如是者顧千百而一二<여시자고천백이일이> 將與麒麟鳳凰而並媺矣<장여기린봉황이병미의>

준마의 쓰임이, 지극하고 크다
若夫駿之用也<약부준지용야> 至矣大矣<지의대의>

나서부터 땅에 쓰여져, 천재일우의 좋은 만남
生爲地用<생위지용> 千載際會<천재제회>

놀랜 듯 나는 듯, 등등하게 날뛴다
若恤若失<약휼약실> 驕騰沛艾<교등패애>

싱싱하게 혼자 걷고, 굼실 높이 서며
騤騤獨步<규규독보> 蟜蟜卓立<교교탁립>

빠른 걸음 바람 치듯, 펄쩍펄쩍, 저벅저벅
馺x飄颺<삽x표양> 蹕蹳躞蹀<필발섭접>

항산·화산을 흙덩이인 양 지나가고, 강과 시내를 잔으로 마시는 듯하며
塊歷恒華<괴력항화> 杯飮河瀆<배음하독>

갈기는 가는 구름을 솔질하고, 꼬리는 유성을 갈기며
鬛刷行雲<렵쇄행운> 尾捎流星<미소류성>

먼지가 발굽에 묻지 않고, 그림자가 몸을 못 따른다
塵不識蹄<진불식제> 影不及形<영불급형>

진중에 힘 바치고, 굴레에 복종한다
輸勞行陣<수로행진> 服力銜勒<복력함륵>

수레 끌어 중한 소임으로 멀리 가건만, 오히려 힘보다 덕을 일컬은다
任重致遠<임중치원> 猶不稱力<유불칭력>

사람과 일심되어, 기특한 공적을 끝내 이루어
與人一心<여인일심> 卒成奇蹟<졸성기적>

명성을 드날리고, 단청으로 전한다
馳聲策名<치성책명> 功歸丹靑<공귀단청>

희어서 길이 후세에 썩지 않고, 천추에 향기를 끼치나니
垂永世而不朽<수영세이불후> 終萬古而揖餘馨<종만고이읍여형>

이런 말은 백대에도 만나기 어려운 것, 기린각·능연각과 명성을 같이 하리로다
如是者曠百代而難遇<여시자광백대이난우> 將與麟臺煙閣而同聲矣<장여린대연각이동성의>

어허, 준마의 태어남이, 기특하다, 신비하다
欷駿之生也<희준지생야> 奇矣神矣<기의신의>

말로 다하지 못하겠고, 어허, 준마의 쓰임이
不可陳矣<불가진의> 欷駿之用也<희준지용야>

크다 지극하다. 글로 적지 못하리니
大矣至矣<대의지의> 不可紀矣<불가기의>

하늘이 이런 신물을 낳은 것은, 천백년 대의 이적을 나타내어
此天之所以産<차천지소이산> 此神物顯異於世一千百<차신물현이어세일천백>

우리 조선의 천명받는 상등 상서를 짓고자 함이었네
曠百代而爲我朝鮮受命之上瑞者也<광백대이위아조선수명지상서자야>

생각건대, 금계(金鷄 신라)가 죽고 병록(丙鹿 여(麗)의 파자(破字), 고려)이 잃어지매
想夫金雞滅丙鹿失<상부금계멸병록실>

큰 운이 가고 나라의 맥이 끊겨, 하늘의 벼리가 끊어지고
大運去國脈絕<대운거국맥절> 天網斷維<천망단유>

동녘 땅이 함몰하여, 간신들이 안에서 뽐내고
東土汨沒<동토골몰> 奸回內贔<간회내비>

도적이 사면에서 날뛰고, 북풍이 모래를 휘몰아치고
寇賊四軼<구적사질> 朔風吹沙<삭풍취사>

흑수가 물결을 날려 들리느니, 땅땅 북소리
黑水揚波<흑수양파> 鏜鏜鼙鼓<당당비고>

도처에 칭칭 징라 소리, 서로 깨물고 물어뜯고 아지직
鉿鉿鉦鑼<협협정라> 窫窳叩吻<알유고문>

박박 이를 갈아, 피가 흘러 개울처럼
鑿齒磨牙<착치마아> 殷血瀎㴽<은혈말설>

백골이 쌓여 산 같으며, 집은 모두 타서 잿더미되고
白骨嵯峩<백골차아> 居室化爲煨燼<거실화위외신>

마을이 변하여 싸움터되어, 변방 땅은 폐허되고, 도성은 황지되었네
邑井變爲戰場<읍정변위전장> 邊徼丘墟<변요구허> 神州榛荒<신주진황>

이에 이르러 세도의 어지러움과, 민생의 화가 극했으니
至是而世道之亂<지시이세도지란> 生民之禍極矣<생민지화극의>

성인이 아니면, 누가 이를 건져낼꼬
不有聖人<불유성인> 孰濟墊溺<숙제점닉>

그때에 우리 태조, 천재일우의 운을 타고 나사
時維我祖<시유아조> 運値千一<운치천일>

세상에 드문 신자와, 하늘이 주신 용지로
神姿絕世<신자절세> 勇智天錫<용지천석>

만성의 무고를 불쌍히 여기시고, 사세의 유업을 분연히 일으켜
愍萬姓之無辜<민만성지무고> 奮四世之遺業<분사세지유업>

북두를 응하고 천관을 나르며, 건곤의 추축을 휘둘리어
順斗極而運天關<순두극이운천관> 旅乾樞而轉坤軸<려건추이전곤축>

위무를 떨치고, 풍뢰를 질타하여
伸威奮武<신위분무> 叱風咤雷<질풍타뢰>

창끝이 가리키는 곳, 썩은 가지 꺾어지듯
天戈攸指<천과유지> 若朽斯摧<약후사최>

홍건적이 달려들어, 성읍을 쳐부수고
紅寇豕突<홍구시돌> 殘城破邑<잔성파읍>

뽐내고 으르릉대어, 멋대로 살륙하여
憑陵咆咻<빙릉포휴> 恣其燔炙<자기번자>

종사가 불바다 되고, 군왕은 파천했었다
宗社焚蕩<종사분탕> 乘輿播越<승여파월>

그때 우리 성조께서, 용맹을 뽐내어 깃발을 휘두르고
維我聖祖<유아성조> 賈勇振節<가용진절>

활을 들고 앞장 서서, 친병을 휘몰아 적을 치니
握蝥弧而先登<악모호이선등> 麾親兵而餌敵<휘친병이이적>

흉도들이 서로 짓밟아서, 수급이 십만이라
兇徒自蹈<흉도자도> 十萬其級<십만기급>

손의 칼로 마구 찍고, 말이 뛰어 성을 넘어
手劒縱斮<수검종착> 躍馬踰城<약마유성>

도망하는 놈들을 뒤쫓으니, 도적이 이에 평정되었다
追奔逐北<추분축북> 賊遂以平<적수이평>

납씨가 교활하여, 사나움을 막 부리고
納氏老猾<납씨로활> 逞其猩獰<령기성영>

변방의 간민들과 결탁하여, 백성들을 못 살게 굴며
䏈我邊奸<䏈아변간> 虐我邊氓<학아변맹>

막 죽이고 싹 베면서, 홍원까지 이르러서
䖍劉芟刈<䖍류삼예> 至于洪原<지우홍원>

그 세가 치열하여, 깨물어 삼킬 뜻이었다
厥勢孔熾<궐세공치> 志在噬吞<지재서탄>

그때에 우리 성조는, 지혜를 내고 기회를 타
維我聖祖<유아성조> 運智應機<운지응기>

단기로 내쳐 나아가서, 장수를 베고 기를 뺏으며
單騎梃進<단기정진> 斬將搴旗<참장건기>

입을 쏘고 겨드랑이를 쏘아, 마른 가지 꺾듯 수염 뽑듯
射口射腋<사구사액> 拉槁摘髭<랍고적자>

적이 여러 번 패전에 움츠러져, 도망가 숨만 붙어
累敗窮縮<루패궁축> 犇竄假息<분찬가식>

교활한 놈 넋을 잃고, 종신토록 심복했다
老猾褫魄<로활치백> 終身心服<종신심복>

머나먼 저 동녕은, 망한 원 나라 잔당이다
漠彼東寧<막피동녕> 亡元之蘖<망원지얼>

초황령(草黃嶺 함흥에 있다)·설한령(薛罕嶺 강계에 있다)이, 높이 솟아 험하였고
草黃薜罕<초황벽한> 與天盤折<여천반절>

출렁거리는 압록강이, 남북으로 경계했었다
鴨江澎濞<압강팽비> 限彼南北<한피남북>

고려 왕(王 우왕)이 태조께 명하여, 먼 땅을 회복하라커늘
王命我祖<왕명아조> 圖恢遠略<도회원략>

원수로서 출정할 제, 위령이 떨쳤었네
元戎啓行<원융계행> 威靈震疊<위령진첩>

하늘에 뻗친 자색 기운이, 점사에도 나타났고
漫空紫氣<만공자기> 占辭攸屬<점사유속>

말똥구리가 바퀴를 막은 듯이, 기를 바라보자 적이 갑옷을 벗고 항복했네
螳臂拒轍<당비거철> 望旗釋甲<망기석갑>

완악한 추장이 잘못을 고집하면서, 오히려 올라성을 보호하려 하였네
頑酋執迷<완추집미> 猶保兀刺<유보올자>

저 올라성은, 천생 험준한 곳
維彼兀刺<유피올자> 峻嶮天設<준험천설>

만장 절벽에, 성무 한 번 번쩍이매
峭壁屹屹<초벽흘흘> 聖武赫赫<성무혁혁>

성중이 저희끼리 궤멸되고, 사면으로 나와 항복하여
孤城中潰<고성중궤> 降附四集<강부사집>

와글와글 부산함이, 불나방이 촛불에 날아들 듯
霍繹紛泊<곽역분박> 宵蛾赴燭<소아부촉>

덕과 위엄이 멀리 퍼져, 북방을 완전히 토평했다
仁威遠暢<인위원창> 克淸朔漠<극청삭막>

머나먼 저 동해는, 섬 오랑캐 소굴
逖彼東溟<적피동명> 島夷之窟<도이지굴>

배 타기에 나고 자라, 사납고 영리하며 날쌔고 빨라
生長舟揖<생장주읍> 猂黠飄疾<한힐표질>

죽음에 나아가기를 집에 돌아가듯, 이만 쫓아 다니는 터
視死如歸<시사여귀> 維利是逐<유리시축>

쥐 도적질·개 도적질, 우리 해변의 틈서리로 쳐들어와
鼠竊狗盜<서절구도> 投我邊隙<투아변극>

돛대가 바다를 덮고, 배들이 마치 베를 짜는 듯
帆竿蔽海<범간폐해> 舳艫如織<축로여직>

왕이 태조께 명하여, 성화같이 달려가 치게 하니
王命我祖<왕명아조> 星馳往擊<성치왕격>

적의 무리 구름처럼, 지리산 옆에 진쳤겠다
賦徒雲屯<부도운둔> 智異之側<지이지측>

우리 무용 드날릴 제, 한 살[矢]에 적이 기가 질려
我武惟揚<아무유양> 一箭氣奪<일전기탈>

낭패하여 도망쳐, 험한 곳에 몰려 지켜
敗覆狼狽<패복랑패> 就險自固<취험자고>

깎은 듯한 절벽에, 검과 창이 섞여 쏟아지거늘
峻崖嶙峋<준애린순> 劒槊交注<검삭교주>

흰 칼을 빼어들고 말을 채찍질하니, 붉은 번갯불이 해에 번쩍
白刃鞭馬<백인편마> 紫電干日<자전간일>

준마 한 번 솟구쳐 오르니, 천 척 절벽이 평지인 듯
駿騰一躍<준등일약> 險失千尺<험실천척>

칼을 맞고 떨어지는 적이, 골짜기를 채우고 메워
迎刃崩墜<영인붕추> 塡坑滿谷<전갱만곡>

태산에 눌린 알과 같이, 씨도 없이 다 죽었네
若山壓卵<약산압란> 靡有遺孑<미유유혈>

섬 오랑캐 회개치 못하고, 또 관서에 입구(入寇)하여
島夷罔悛<도이망전> 又寇關西<우구관서>

신천·문화·안악·봉산이, 모두 다 어육되고
信文安鳳<신문안봉> 毒慘鯨鯢<독참경예>

여러 장수들 달아나서, 적의 칼을 못 막았네
諸將奔潰< 제장분궤> 鋒莫敢嬰<봉막감영>

성조(태조)께서 명을 받아, 동정에서 싸우실 제
聖祖受命<성조수명> 戰于東亭<전우동정>

싸움이 한창일 때, 진흙에 빠졌으나
方事之殷<방사지은> 阻于泥淖<조우니뇨>

준마 한 번 치뛰니, 대번에 솟구쳐 나와
龍駒蹀足<룡구접족> 一奮而趒<일분이조>

활시위 소리 나자 떨어지는 열일곱 놈, 모두 왼눈 맞았었네
應弦十七<응현십칠> 皆左其目<개좌기목>

적이 놀라 흩어지며, 저희들끼리 짓밟는 꼴
賊駭而散<적해이산> 爭相轥轢<쟁상인력>

성조께서 말에서 내려, 술마시며 풍악을 치니
聖祖下馬<성조하마> 命酒張樂<명주장악>

남은 적들 험한 데 가서 몰려 의지했다가, 세가 궁하여 충돌하매
遺燼投險<유신투험> 勢窮衝突<세궁충돌>

쏘는 살이 자리 앞에 무수히 떨어져도, 의기가 태연자약
矢集坐前<시집좌전> 意氣自若<의기자약>

천천히 휘하에 명하시와, 남은 적을 섬멸했다
徐命麾下<서명휘하> 遂殲餘賊<수섬여적>

섬 오랑캐 회개치 못하고, 또 남도에 침범했네
島夷岡悛<도이강전> 又寇南道<우구남도>

험함도 지킬 틈 없고, 성도 보전할 겨를이 없어
嶮不睱守<험불하수> 城不睱保<성불하보>

무인지경같이 치고 함락하여, 풀처럼 베며 깎으며
攻陷若空<공함약공> 芟薙如草<삼치여초>

여러 고을을 무찌르고 불사르며, 운봉까지 이르렀네
屠燒州郡<도소주군> 至于雲峯<지우운봉>

성조께서 명을 받아, 흉적을 쓸기 맹세하니
聖祖受命<성조수명> 誓掃頑凶<서소완흉>

정성이 해를 꿰어, 흰 무지개 뻗었었네
精誠貫日<정성관일> 有白其虹<유백기홍>

천 리가 폐허되고, 강시만이 쌓였거늘
千里索漠<천리색막> 僵屍相積<강시상적>

성조께서 측은하사, 침식을 폐하셨네
聖祖惻然<성조측연> 爲廢寢食<위폐침식>

이에 여러 장수를 독촉하여, 인월역에서 싸우실 제
乃督群帥<내독군수> 戰于引月<전우인월>

위무를 드날려서, 사졸의 앞장 서서
振威耀武<진위요무> 身先士卒<신선사졸>

적진을 함락하고 포위를 무너뜨려, 날랜 장수(왜장 아지발도(我只拔都))를 쏘아 죽이니
陷陣潰圍<함진궤위> 殪彼驍將<에피효장>

적군이 칼날이 꺾여져서, 감히 못 대항했네
鋒摧刃折<봉최인절> 莫我敢抗<막아감항>

온 나라가 기뻐하여, 개선가로 맞이했었던 것이다
擧國欣歡<거국흔환> 迎我凱唱<영아개창>

섬 오랑캐 또 개전치 않고, 또 함흥과 홍원에 침범해서
島夷罔悛<도이망전> 又寇咸洪<우구함홍>

고래처럼 날뛰고 미친개처럼 충돌하니, 여러 군이 소문만 듣고 달아나서
鯨奔猘突<경분제돌> 諸軍望風<제군망풍>

싸움도 한 번 못해보고, 양이 범에게 물리는 듯
不敢交綏<불감교수> 若虎驅羊<약호구양>

왕이 명하여 평정하게 하니, 성조께서 나가셨다
王命于襄<왕명우양> 聖祖是將<성조시장>

일곱 살[矢]로 승리를 점치니, 군중이 환호했다
七箭卜勝<칠전복승> 軍中歡呼<군중환호>

지세를 보아 복병을 두고, 고삐를 늦추어 천천히 나가다가
因地設伏<인지설복> 按轡徐移<안비서이>

취라로 적을 놀래니, 적이 간담이 떨어져서
螺聲讋賊<라성섭적> 破膽裂腑<파담렬부>

고기가 솥에서 노닐 듯이, 여기저기서 모여들거늘
魚游於鼎<어유어정> 東西相聚<동서상취>

성조께서 여유를 보이고자, 안장을 끌러놓고
聖祖示閑<성조시한> 從容解鞍<종용해안>

오라고 유인하여, 냅다 싸워 진퇴할 제
誘致其來<유치기래> 轉戰盤桓<전전반환>

사면의 복병이 일어나니, 적군이 모두 그물 안에 떨어져서
四伏並起<사복병기> 若隳于羅<약휴우라>

뛰어 무너지고 서로 짓밟아, 송장이 너저분, 그리하여 동해변이 내 산 되고 내 언덕 되었네
奔崩蹂躡<분붕유섭> 籍籍他他<적적타타> 我岡我陵東海之阿<아강아릉동해지아>

대명이 장차 바뀌려 하니, 하늘이 우왕의 넋을 빼앗아서
大命將革<대명장혁> 天奪其衷<천탈기충>

저 앙큼스러운 애(우왕)가 자량치 못하고, 숫제 큰 나라를 공격코자
彼狡不量<피교불량> 大邦是攻<대방시공>

6월에 군사를 일으켜, 요동을 지향하니
六月稱兵<륙월칭병> 指遼之東<지료지동>

뭇 신하들 위태로이 여기고, 인심이 흉흉한데
群寮岌岌<군료급급> 萬姓洶洶<만성흉흉>

간절히 충고하나, 이 귀먹어 못 들은 체
告之雖切<고지수절> 聽我若聾<청아약롱>

외로운 섬에 군사를 주둔하니, 마침 큰 장마 져서
屯兵孤島<둔병고도> 霜潦澒浵<상료홍동>

진퇴가 난처하고, 온 군사가 다 불평했다
進退維谷<진퇴유곡> 大小悉恟<대소실흉>

성조께서 의를 드시니, 흰 깃살에 붉은 활
聖祖擧義<성조거의> 白羽彤弓<백우동궁>

만 사람이 경하하여, 서로 도모하지 않으나 한마음이었으며
萬口相慶<만구상경> 不謀而同<불모이동>

멀리 야인(野人 여진)까지, 천 리 길에 따라왔으며
爰至野人<원지야인> 千里影從<천리영종>

늙은이·어린이 손을 잡고, 미음 그릇 들고 맞았으며
老幼相携<로유상휴> 壺漿以迎<호장이영>

사특한 것들 숙청할 제, 시정도 안 놀랬네
蕩滌邪穢<탕척사예> 巿肆不驚<불사불경>

난을 헤치고 반정하여, 병기를 다 거두니
拔亂反正<발란반정> 戢武韜兵<집무도병>

나라가 안정되고 백성이 편안했네, 무릇 이 몇몇 일은
國以之定民以之寧<국이지정민이지녕> 凡是數者<범시수자>

다 우리 태조의 크고 높으신 공적이, 탁월히 성취된 것
寔皆我太祖豐功峻烈<식개아태조풍공준렬> 卓卓有成者也<탁탁유성자야>

깊고 두터운 은택이, 생령들에게 젖어든 것
深恩厚澤<심은후택> 浹于生靈者也<협우생령자야>

경을 쌓고 덕을 심어, 뿌리가 깊고 근원이 멀어
積慶樹德<적경수덕> 根深源遠<근심원원>

후세 자손들이 천만억 년간 의지할 바, 그러나 이것들은 다만 그 대략일 뿐
而爲後世子孫千萬億載之所憑者也<이위후세자손천만억재지소빙자야> 然此亦特其大略耳<연차역특기대략이>

예컨대 저 달천의 이김과, 철관의 승전
如㺚川之勝<여달천지승> 鐵關之捷<철관지첩>

해풍의 싸움과, 요양을 함락시켰음 등
海豐之戰<해풍지전> 遼陽之拔<료양지발>

크고 작은 여러 싸움에, 가는 곳마다 이겼으니
大小百戰<대소백전> 所向輒克<소향첩극>

이것이 비록 신성한 무략에서, 어찌 사람의 힘으로 미칠 것인가
此雖出於聖武神略<차수출어성무신략> 亦豈人力之所能及哉<역기인력지소능급재>

그때에, 용맹 있는 무사들과
于斯時也<우사시야> 材勇之士<재용지사>

지략 있는 사람으로서, 일기와 일능이 있으면
智謀之彦<지모지언> 苟有一技一能<구유일기일능>

각기 재주를 바치며 경쟁하여, 용의 비늘을 잡고 봉의 날개에 붙어
各爭售而竸扇<각쟁수이경선> 攀鱗附翼<반린부익>

앞뒤에 분주하며, 많이 모여 있고
奔走後先<분주후선> 叢叢林林<총총림림>

이리저리 움직이며, 좌우로 잡고 손을 끌어
紜紜紛紛<운운분분> 左右提挈<좌우제설>

함께 대훈을 협찬하였으니, 대개 하늘이 성인을 내어 어려운 시국을 구하려면
共贊大勳<공찬대훈> 蓋天之生聖人以救時艱也<개천지생성인이구시간야>

반드시 영웅·호걸들을 내어 그를 좇게 하고
必生英雄豪傑以爲之從<필생영웅호걸이위지종>

또한 반드시 좋은 상서·신령한 물건을 내어 그로 하여금 쓰게 함이다
亦必生休祥神物以濟其用<역필생휴상신물이제기용>

이로 보면 여덟 준마가 났음은, 곧 하늘의 뜻이요
此八駿之生<차팔준지생> 乃天意也<내천의야>

모두 우리 태조께서 일어나실 것을 도움이었다, 막상 두 진이 교전하려
而無非所以佑我太祖之興者也<이무비소이우아태조지흥자야> 方其兩陣交綏<방기량진교수>

북소리 쾅쾅 울리고, 살기가 하늘을 찌르며
鼖鼓雷轟<분고뢰굉> 殺氣干天<살기간천>

풍운이 첩첩할 때, 기특한 꾀와 임시의 변통으로
陣雲屛屛<진운병병> 出奇制變<출기제변>

기회를 다투고 형세를 노려, 장사와 용사들이
爭機竸角<쟁기竸각> 壯士猛夫<장사맹부>

곰같이 잡고 범처럼 할퀴며, 서릿발 같은 칼과 창에
熊挐虎攫<웅나호확> 白刃霜磨<백인상마>

빗발처럼 떨어지는 화살들, 수선거리기는 들끓어서
飛鏃雨落<비족우락> 紛紜沸渭<분운비위>

구름이 뭉치고 벼락이 터지는 듯, 천만 군병이 와아 와아 소리치고
雲合霆發<운합정발> 濱駍駖礚<빈평령개>

가로 세로 뒤섞여 맞붙어, 성패가 잠깐 사이에 달리고
縱橫膠臈<종횡교랍> 成敗懸於俄頃<성패현어아경>

생사가 순식간에 결정될 때, 늠름하신 성조께서
生死決於呼吸<생사결어호흡> 桓桓聖祖<환환성조>

매처럼 날치시어, 이리 치고 저리 치면, 그 앞에 당할 자 없네
奮我鷹揚<분아응양> 馳堅突衆<치견돌중> 所指無疆<소지무강>

벼락과 번개가, 불을 토하듯 채찍을 갈겨
霹歷列缺<벽력렬결> 吐火施鞭<토화시편>

만 사람이 모두 뒷걸음치매, 혹은 마음대로 출입하네
萬人辟易<만인벽역> 肆意周旋<사의주선>

민첩하고 재빠르게, 안개가 흩어지고 연기가 사라지는 듯
焂䎶倩浰<숙이천리> 霧散煙銷<무산연소>

찬 서리를 날려 나뭇잎을 지게 하고, 맹렬한 불에다가 털을 태우는 듯
飛嚴霜而脫葉<비엄상이탈엽> 擧烈火以燎毛<거렬화이료모>

거기 맞닥치는 자 어느 강함이 안 꺾이며, 거기 부딪치면 어느 굳음이 안 부숴지리
當之者何剛不折<당지자하강부절> 觸之者何堅不碎<촉지자하견불쇄>

파죽지세로도 그 형세를 비유치 못할 것이요, 돌을 굴림으로도 그 쾌함을 논하지 못할지니
破竹不足以諭其勢<파죽부족이유기세> 轉石不足以論其快<전석불족이론기쾌>

대개 세상에 없는 큰 자질을 가진 분은, 마땅히 비상한 천명을 받는 법이요
蓋有不世之資者<개유불세지자자> 當受非常之命<당수비상지명>

세상에 없는 큰 공을 세우는 이는, 마땅히 비상한 경사를 누리게 마련이다
建不世之功者<건불세지공자> 當享非常之慶<당향비상지경>

우리 태조께서 쇠란의 때를 만나, 하늘이 주신 성으로써
我太祖値衰亂之季<아태조치쇠란지계> 以天縱之聖<이천종지성>

애쓰심이 지극하셨고, 공업이 다툼이 없어
勤勞旣至<근로기지> 勳業無竸<훈업무경>

위엄이 임금을 떨게 하고, 공이 상을 초월했으니
威挾震主<위협진주> 功戴不賞<공대불상>

천명이 돌아가는 곳, 인심이 모두 우러러서
惟天命之<유천명지> 所歸亦人心之所仰<소귀역인심지소앙>

드디어 천명에 응하고 인심에 순하여, 끝내 집을 변화하여 나라를 이룩하고
遂應天而順人<수응천이순인> 終化家而爲國<종화가이위국>

당세의 남은 덕택을 펴시어, 길이 만세토록 흘리셨으나
演當世之餘澤<연당세지여택> 流萬葉而不渴<류만엽이불갈>

맨발로 뜀은 원래 무를 연습하는 것이요, 벽돌을 나름은 수고를 단련하는 것이므로
然跣躍所以習武<연선약소이습무> 運甓所以肄勞<운벽소이이로,

)한가하신 때 사냥을 납시니, 거저 놀이가 아니었다
因閑圍獵<인한위렵> 匪以遊遨<비이유오>

때로 벌판을 달리고, 다음 언덕을 지나
時聘廣漠<시빙광막> 乃歷林皐<내력림고>

혹은 벌과 산이 일[起]락 엎드락한 데로, 혹은 언덕이 구불구불 이은 데로
原隴起伏<원롱기복> 丘陵牽聯<구릉견련>

혹은 진펄이 울툭불툭, 밑에는 깊은 소
罷池陂陁<파지피타> 下屬于淵<하속우연>

혹은 깎아지른 듯한 석벽, 하늘에 달린 듯한 뵈는 산은 끝으로
石壁神截<석벽신절> 脩崖天懸<수애천현>

혹은 격한 여울이 못을 이루어, 늠실늠실
激湍成澤<격단성택> 浩汗㶀䔽<호한교애>

서미도 주검을 못 남기고, 열자도 발을 디디지 못할 곳으로
胥靡不能以遺死<서미불능이유사> 御寇不能以展足<어구불능이전족>

혹 큰 못에 다다르면, 갈대가 우거지고
或臨大澤<혹림대택> 蒹葭蓊鬱<겸가옹울>

얼음이 갓 얼었는데, 가벼운 비단을 엷게 편 듯
淵冰初合<연빙초합> 輕羅布薄<경라포박>

맹수가 안 보이는 데 엎드렸다가, 변이 재갈에 나기도 하고
猛獸蔽伏<맹수폐복> 變生銜橜<변생함걸>

혹 얼음판이 기울고 미끄러운데, 혹은 태산 준령이
或當冰坂傾側險滑<혹당빙판경측험활> 或當峻嶺<혹당준령>

드높고 가로질려, 새 짐승이나 살 곳
峌X嶻㠔<질X절배> 飛走之所栖托<비주지소서탁>

인적이 못 미칠 데를, 우리 성조께서는
人迹之所不及<인적지소불급> 維我聖祖<유아성조>

고삐를 놓고 왕복하사, ‘앞으로 가라’ 하면 나아가고
縱轡往復<종비왕부> 曰前而前<왈전이전>‘

물러가라’ 하면 물러나서, 도에 맞는 일거일동이
曰却而却<왈각이각> 周旋合度<주선합도>

좌로 우로 척척 맞아, 별처럼 흐르고, 바람처럼 이르며
左右中節< 좌우중절> 星流歘至<성류훌지>

공처럼 구르고 번개같이 번뜩여, 화살을 헛되이 놓는 법이 없고
圜轉電掣<환전전체> 矢不虛散<시불허산>

맞추면 꼭 눈알을 뚫어, 길짐승은 언덕에 머리 두고 화살을 받고
中必決眥<중필결자> 走獸首丘而斂羽<주수수구이렴우>

나는 새는 공중에 돌다가 피를 뿌리니, 왕량(王良 명기사)·조보(造父 명기사)의 무리와
飛禽盤空而洒血<비금반공이쇄혈> 王良造父之徒<왕량조부지도>

분·육·오획(烏獲 이름난 장사들)의 무리들도, 손을 여미고 숨을 헐떡이며
賁育烏獲之屬<분육오획지속> 斂手喘息<렴수천식>

앞에 와서 굴복하리니, 이는 비록 성인의 신무이나
邀瓻受誳<요치수굴> 是雖聖人之神武<시수성인지신무>

또한 준마의 위대한 공적이다, 저 깎아지른 절벽, 둘러 빠지는 진흙구렁 속에서
抑亦神駿之偉績<억역신준지위적> 當其懸崖峻絕泥淖束阸<당기현애준절니뇨속액>

위험이 경각 창졸 간에 닥쳤을 때, 제 아무리 모사와 맹장으로도
危在頃刻倉卒之際<위재경각창졸지제> 縱有謀臣猛將<종유모신맹장>

제 재주를 부릴 틈이 없겠으니, 이로 보면 준마가 성체를 붙들고 보우함이
亦無所措其技矣<역무소조기기의> 是則神駿之扶佑聖躬<시즉신준지부우성궁>

혹 사람으로는 미칠 바가 아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 전하께서 여덟 준마를 그림에 거두어서
或有非人之所可企者也<혹유비인지소가기자야> 此我殿下之所以收八駿於繪事<차아전하지소이수팔준어회사>

썩은 뼈에게도 신공을 생각하심이니
錄神功於腐骨者也<록신공어부골자야>

이는 대개 효자는 어버이가 사랑하시던 개와 말을 잊지 않음이요
兹蓋孝不遺於犬馬<자개효불유어견마>

교훈은 후손을 편안하게 하려고 남겨, 명과 함께 궤석에 붙여 놓고
謨乃恢於燕翼<모내회어연익> 嫓嚴銘於几席<嫓엄명어궤석>

간절한 경계를 썩은 밧줄에 두심이요, 이제 보건대 새 그림이 하늘에서 내려 펼친 듯
存切戒於朽索<존절계어후색> 觀夫新圖天闢<관부신도천벽>

끼친 빛이 번쩍하니, 바람과 서리가 비단에 일고, 조화가 붓에 생겨
遺光儵爚<유광숙약> 風霜起練<풍상기련> 造化生筆<조화생필>

이미 죽어서 흙 속에 파묻힌 모습을 일으켜, 일세의 위관을 솟구쳤네
起塵土之幽姿<기진토지유자> 聳當世之觀覿<용당세지관적>

형모는 아스름하나, 기상은 늠름, 구름을 가로 지르고 바람을 쫓는 듯
形貌靉靆<형모애체> 氣象鬱勃<기상울발> 橫雲追風<횡운추풍>

번개가 치고 서리가 엉긴 듯, 기린이 놀고 용이 뛰어오르며
發電凝霜<발전응상> 麟游龍騰<린유룡등>

표범은 검고 사자는 누른 듯, 놀이 겹치고 비단을 쌓은 듯
豹玄獅黃<표현사황> 重霞累錦<중하루금>

빛나는 비단에 함께 그려 보물들이 나란히, 공이 같은 다른 놈들이
沓璧連璋<답벽련장> 同功異體<동공이체>

서기를 모으고 상서를 드날리며, 위풍이 늠름하고
集瑞騰祥<집서등상> 威風懍懍<위풍름름>

기염이 당당한데, 백전에 상한 흔적, 아직 살촉이 박혀 있고
峻焰煌煌<준염황황> 百戰瘢耆<백전반기> 尙帶遺鏃<상대유족>

드날리며 날치던 자태, 어제런 듯 여실하매
搶攘之態<창양지태> 視之如昨<시지여작>

장한 기운에 보는 사람 기가 질려, 간담이 서늘, 머리가 쭈뼛
壯氣讋人<장기섭인> 膽寒髮立<담한발립>

놀라 달아난 혼과 넋이, 며칠 만에야 진정될 듯
魂驚魄褫<혼경백치> 彌日而定<미일이정>

이는 다만 여덟 준마의 재강일 뿐으로, 오히려 사람의 시청을 움직이거늘
此特八駿之糟粕<차특팔준지조박> 尙能動人之視聽<상능동인지시청>

당시의 기상을 상상하면, 천년 뒤에도 경의를 일으키리
想當時之氣像<상당시지기상> 隔千齡而起敬<격천령이기경>

이는 신령한 물건의 극치이나, 사람에 있어서도 쉽지 않다
是神物之極致<시신물지극치> 在夫人而亦不易<재부인이역불역>

하필 몸에 날개가 돋치고 그림자가 열이어야, 기이타 할 것인가
又何必肉趐十影<우하필육혈십영> 然後始爲之異哉<연후시위지이재>

아아, 물건이 각기 만남이 있고, 만남이 각기 때가 있나니
嗚呼<오호> 物各有遇<물각유우> 遇各有時<우각유시>

나서 만나지 못하면, 소금 수레에 곤욕을 당하고
生不得遇<생부득우> 則鹽車自足相困<즉염차자족상곤>

만남의 때를 못 얻으면,북 수레에 매어지기 족할 뿐이요
遇不得時<우부득시> 則鼓車徒足見縻<즉고차도족견미>

혹 의장에 참예해 섰더라도, 한갓 콩이나 조나 먹고 배부를 뿐
雖或參於立仗<수혹참어립장> 亦空飽於豆粟<역공포어두속>

한 번 크게 울려 해도,끝내 맘대로 안 되는 것
苟欲一鳴<구욕일명> 終不可得<종불가득>

이제 이 여덟 준마는, 그 출생이 마침 성조께서 용처럼 일어나실 때였고
今夫八駿<금부팔준> 其生也當聖祖之龍興<기생야당성조지룡흥>

그 죽은 뒤에도 성주(聖主 세종)의 추념을 의탁하여, 때를 만나고 의탁할 곳을 얻었으니
其死也托聖主之追念<기사야탁성주지추념> 得時遇而得托<득시우이득탁>

마땅히 영세토록 유감이 없을지로다, 부를 마치고 또 노래하여 이르되
宜永世而無憾<의영세이무감> 賦已復爲之謌曰<부이부위지가왈>

어허, 용인 듯 준마의 새끼, 하늘이 주셔서 내려왔도다
若有龍兮驥之子<약유룡혜기지자> 其之來兮天所俾<기지래혜천소비>

풍운을 일으키고 뇌우 달릴 제, 어허. 준마여, 용의 벗일세
風雲澀譶兮雷雨走<풍운삽답혜뢰우주> 若有駿兮龍之友<약유준혜룡지우>

살아서 신이 있고 죽어서 이름이 있다, 어허, 준마로고, 용의 정일세
生有神兮死有名<생유신혜사유명> 若有駿兮龍之精<약유준혜룡지정>

이름이 만고에 변치 않으니, 어허. 준마여. 용의 무릴세'

6. 직접 쓴 글과 시

백운봉에 올라
담쟁이 넝쿨 더위잡고 푸른 봉우리 올라가니
흰 구름 속에 암자 하나 높이 누워 있네
눈에 들어오는 곳 모두 우리 땅이 된다면
초나라 월나라 강남인들 어찌 용납하지 못하리
열성어제[36]
북한산에 올랐을 때 쓴 시이다.
서경의 영전 어용에 대해 쓰다
박복한 형상이 어찌 여기에 있는가
이치를 생각하면 선조의 풍모로다
조선의 시조라고 일컬어지지만
선현보다 덕이 적어 끝없이 부끄럽다
열성어제[37]
서경 즉 평양에 있었던 자신의 어진(초상화)를 보고 쓴 시이다.
꿈속에서 지은 시
북소리 종소리 온 나라에 진동하니
바로 이곳이 삼한의 만세 터전이네
열성어제[38]
1398년(태조7) 3월 초하루 밤에 꿈을 꾸고 지은 시이다.
정도전에게 내려주는 글
서로 작별한 지 오래되니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신 중추[39]를 보내어 행역[40]의 수고를 위문하려 하는데, 마침 최긍이 와서 그곳의 소식을 잘 알게 되니, 스스로 조금 위안이 된다. 이번에 유의[41] 한 벌을 보내어 바람과 이슬에 대비하게 하고자 하니, 받아주면 다행이겠다. 이 참찬(이지란), 이 절제사(이원경)에게도 유의 각각 한 벌씩을 함께 보내니, 내가 간절하게 생각하는 뜻을 말해 주면 좋겠다. 나머지는 신 중추에게서 듣고, 봄추위가 한창인 이때에 몸을 잘 보호하여 변방에서의 일을 다 하도록 하라. 나머지는 예를 갖추지 못한다. 송헌거사[42]가 쓰다.
열성어제[43]
1397년 음력 12월 신극공을 통해 정도전에게 보낸 글이다.

7.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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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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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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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대중 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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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관련 문서

12.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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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 홍길동을 언급한 건지 후대 인물 허균이 창작한 의적 홍길동을 언급한 건지 논란이 있지만 간접적인 언급으로 소설 홍길동전에서 대중화된 의적 이미지를 노래 가사로 사용했으므로 저자 허균을 생각하고 언급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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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율리우스력 10월 27일.[2] 흔히 함흥부로 혼동되나, 정확하게는 함흥 인근의 화령(회령)이다. 그래도 함흥부가 이성계의 본거지였던 것은 사실.[3] 대한민국의 제도적인 행정구역 체계인 이북5도청의 행정구역에서는 '함경남도 영흥군'이다. 김일성은 조선왕조가 영원히 흥하라는 의미의 지명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기에 지명을 '금야'로 바꾼 것으로 알려져 있다.[A] 율리우스력 8월 5일.[5] 조선에서 가장 늦은 나이에 즉위한 왕이다.[6] 대한민국 이북5도청 기준 개성시 수창동. 실제로 수창궁에서 따온 지명이다. 광복 후 대한민국은 실제로도 6.25 전쟁 전까지 이곳을 통치했었다.[B] 율리우스력 6월 18일.[A] [C] 율리우스력 10월 14일.[C] [D] 율리우스력 7월 27일.[12] 계운신무태상왕(啓運神武太上王)의 존호를 받은 시점부터.[D] [B] [15] 피휘 시 불편함을 방지하기 위해 자주 쓰이는 글자로 이루어진 성계 대신 덜 쓰이는 단으로 바꾸었다. 굳이 旦(아침 단)으로 개명한 이유는 조선(朝鮮)의 朝(아침 조)와 통하기 때문. 조선의 건국자이므로 조선과 통하는 글자를 골라 개명한 것이다. 여담으로 조선 시대에는(그리고 현대의 유림들도) 피휘 때문에 旦 자를 '단'이라고 읽지 않고 朝의 발음인 '됴'(현대어로는 '조')로 바꿔 읽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고문헌의 旦은 朝로 바꿔 썼고(대자·代字), 정 旦을 써야 하면 획을 하나 빼서 '므'와 비슷한 형태로 적었다(결획·缺劃).[16] 상왕이 된 후에는 유교적 이념에 더해 원래부터 믿고 있던 불교에도 더욱 의지하게 되고 절에 자주 다니기도 하였다. 다음에 왕이 된 아들은 불교를 학이 뗄 정도로 싫어했던 것(숭유억불)을 생각하면 흥미로운 부분.[17] 현대에도 180cm는 큰 편에 속하는 것과 저 당시의 남성 평균 키가 160cm전후였음을 감안했을 때 지금으로 치면 체감상 대략 195cm 정도 되는 엄청난 장신이다.[18] 굵은 글씨는 1871년 고종이 추가로 올린 존호이다.[19] 굵은 글씨는 1683년 숙종이 추가로 올린 시호이다.[20] 1899년(광무 3년), 대한제국 고종의 황제 추존과 동시에 폐지.[21] 본 글씨는 막내 딸 숙신옹주에게 집과 땅을 상속해주는 왕실 문서이다.[22] 그래서 이 기록한 발해연호시호에는 각각 사개(私改: 사사로이 바꾸다), 사시(私諡: 사사로이 시호를 올리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당 입장에선 제후국인 발해가 천자의 연호를 쓰고, 시호를 천자에게 안 받고 독자적으로 올렸기 때문.[23] 신의왕후 소생들은 당시엔 '대군'이라는 칭호가 없어서 그냥 ''으로만 호칭했다. 대군이라는 작위는 태종 시기에 등장한 작위이므로 그 이전에 더 높은 왕이 된 정종태종은 실제 대군이 된 적은 없었다. 나머지는 후세에 추증받은 것이다.[24] 1394년(태조 2년) 사망. 1437년(세종 19년) 진한정효공(辰韓定孝公) 추증.[25] 정사좌명공신(定社佐命功臣)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 이애(李薆)에게 하가(下嫁).[26] 원군(靑原君) 심종(沈淙, 태종의 아들인 세종의 부인 소헌왕후의 작은 숙부)에게 하가(下嫁).[27] 1406년(태종 6년) 공순군(恭順君)으로 추시. 조선 숙종 대 무안대군(撫安大君)으로 복권.[28] 1406년(태종 6년) 소도군(昭悼君)으로 추시. 조선 숙종 대 의안대군(懿安大君)으로 복권.[29] 개국공신(開國功臣) 흥안군 이제(興安君 李濟)에게 하가(下嫁).[30] 경상도 김해관기 출신으로 이름은 칠점선이다. 외모가 출중해서 태조의 눈에 들었다고 한다.[31] 당성위(唐城尉) 홍해(洪海)에게 하가(下嫁).[32] 계천위(啓川尉) 이등(李䔲)에게 하가(下嫁).[33] "임금과 세자가 일어나 춤추니, 태상왕이 총애하는 기생 무협아(巫峽兒)를 불러 내어 잔치에 참여하게 하였다. 임금이 표리(表裏)를 하사하고, 세자가 단(段) 1필을 하사하고, 지극히 즐기다가 파하였다. - 《정종실록》 5권,정종 2년(1400년, 명 건문(建文) 2년) 8월 21일 (계축) 3번째기사".[34] 《선원》에 三女 未適早卒(셋째 딸, 미혼 일찍사망)으로 적혀있다. 적혀있는 순서로 보아 신의왕후의 소생은 아니며, 경순공주신덕왕후의 또 다른 딸이거나 다른 후궁의 소생으로 보인다. 1녀 의령옹주, 2녀 숙신옹주, 3녀 일찍 사망한 미혼의 왕녀, 4녀 경순공주 순으로 적혀있다.[35] 글자 그대로 큰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화살이다.[36] 강진숙 번역본[37] 강진숙 번역본[38] 강진숙 번역본[39] 신극공을 말한다.[40] 나라의 명으로 국경을 지키는 일[41] 솜을 넣은 겨울 저고리[42] 이성계를 말한다.[43] 강진숙 번역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