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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0 01:57:13

태평성대

고사성어
평평할 성인 대신할

1. 개요2. 목록
2.1. 한국2.2. 중국2.3. 일본2.4. 유럽

1. 개요

명군 · 성군이 잘 다스려 백성들이 평안한 시대를 이르는 말로, 태평성세(太平聖歲)라고도 한다. 반의어로는 난세가 있다. 성리학을 포함한 유교에서 말하는 모든 것의 목적은 바로 이 태평성대를 이루기 위한 것이고, 유교에서는 이 다스렸던 시대를 태평성대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본다.[1]

유의어로 강구연월(康衢煙月), 고복격양(鼓腹擊壤)출전(出典), 도불습유(道不拾遺)출전(出典), 지절(堯舜之節)이 있다. 전성기중흥과 맞닿는 면도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국가주의와 맞물리는 표현이기도 한데, 이는 유교적 의미의 태평성대가 성군으로 대표되는, 국가 권력자에 의한 안정적인 통치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어로는 단순한 peace(평화)보다는 a reign of peace(치세)에 더 가까운 개념이다.

그러나 감안해야 할 사실은, 시대에 대한 평가는 어느 정도 주관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대나 중세사도 당연히 당대 기록을 중심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면 당대 기록을 남긴 해당 역사가들의 주관이 당연히 개입될 수밖에 없다. 막말로 신분제가 유지되던 사회의 노예를 비롯하여 사회 및 정치적 부조리에 시달렸던 당시 사회적 약자들에게 태평성대란 말은 가당치도 않았을 것이다.

2. 목록

2.1. 한국

2.2. 중국

2.3. 일본

2.4. 유럽



[1] 다만 요의 시대나 순의 시대나 프로파간다 색채가 다분히 끼어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죽서기년 등의 사료에서는 요의 덕이 쇠했다거나, 순이 요를 가뒀다거나 하는 내용이 나온다.[2]6세기 전반기의 태평성대는 신라에만 해당됨. 고구려백제는 서로 계속 싸우는데 신라는 전쟁 기록 없이 지증왕법흥왕진흥왕 초반까지는 내정 개혁에만 집중했다.[3] 특이하게도 이 시기는 고려 뿐 아니라 동아시아 동쪽의 3국 중 하나인 , 전성기 내지는 안정기였다. 아래에 나오는 요나라의 성종과 송나라의 진종 ~ 인종의 치세가 여기에 겹치며 서하 역시도 숭종의 재위기가 반 이상 겹치며 범위를 좀 더 넓혀서 인종까지도 끼워넣는다면 인종의 재위기 초반도 겹치며 대월리 왕조도 전성기는 영종까지인데, 영종 초반까지는 들어간다. 일본은 그나마 후지와라 가문의 세도정치 때문에 좀 엉망이긴 했어도 이 시기 말엽에는 고산죠 덴노엔큐의 선정시라카와 덴노인세이 등 그나마 안정된 시기가 있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호겐의 난이 이 시기가 끝난 후 벌어졌다. 즉, 여요전쟁 종전부터 예종 ~ 인종 재위기까지는 그 피터지게 싸우는 동아시아 역사에서 몇 안 되는 안정기였다.[4] 후대에 들어 논란이 있다.[5] 엉뚱하게도 당대 재상인 왕맹의 이름이 붙어있는데 아무래도 부견이 잘 나가던 나라를 비수대전으로 말아먹다보니 왕맹이 보좌한 기간만 따로 떼어낸 것으로 보인다.[6] 다만 이 때 실시한 한화정책은 결국 북위 멸망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7] 남조 국가들의 시작인 유송은 그 시작부터가 막장이었지만 그래도 60년 넘게 이어졌는데 이는 원가지치의 덕이 컸다.[8] 혼란스러웠던 남조 국가이지만 이 시기에는 그래도 좀 안정되어 있었다. 다만 말기로 갈수록 속으로 곪아져갔고 말년에 결국 후경의 난이 터지며 다시금 혼란상이 시작된다.[9] 안사의 난 이후는 천보난치로 불린다.[10] 혼란스럽던 오대 국가들에서 그나마 안정적이던 시기이다. 허나 명종 자신이 60세라는 고령으로 즉위하는 바람에 오래 못 살았고 본인 사후 다시 혼란이 시작된다.[11] 이보다 전에 후당의 장종 이존욱이 이에 필적할 만큼 오대 국가의 영역을 넓혔지만 그는 내치에서는 철저히 실패한 반면 이 두 사람은 외치는 물론 내치도 나쁘지 않았다.[12] 요순시대에 빗대어 소요순시대라고도 불린다.[13] 다만 장종 말부터 쇠퇴가 드러나지만 그래도 개희북벌을 막아내는 등 이 때까지는 금나라의 힘이 유지되었다.[14] 초기나 이랬지 중후반으로 가면 다시 막장이 된다. 괜히 만력제가 명나라 4대 암군 중 탑클래스가 아니다.[15] 다만 건륭제 시기는 미묘하다. 건륭제는 군사력을 증강하고 정복전쟁을 많이 벌여 조공국도 늘렸으나, 내부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청나라 내부가 불안정해지며 탐관오리들이 들썩여 정치부패가 만연했을 때도 관심이 없었을 뿐더러, 심지어 말년에는 자신 또한 초심을 잃고 사치와 향락을 즐겼다. 그래도 건륭제도 흑화하기 이전 초반까지는 명군이었다.[16] 도쿠가와 요시무네오고쇼 시절까지만 해당됨. 다만 애초에 이 전 시대가 센고쿠 시대인지라 사람들은 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은 이후를 그냥 태평성대라고 칭했다.[17] 이시기 일본은 나름 사회 혁신 기조 아래 입헌군주제를 갖추고 근대화도 이룩했으나, 그 안엔 사실 천황절대주의라는 전제군주제적 면모가 많이 내포되어있었고, 이는 군국주의의 씨앗이 되었다. 게다가 행적으로만 봐도 보신전쟁, 청일전쟁, 러일전쟁, 중일전쟁 등 무수한 전쟁을 치렀기에 태평성대라고 보긴 좀 웃프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