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禮記
유교 십삼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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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 | 서경 | 역경 | 주례 | 의례 | 예기 | 춘추좌씨전 | 춘추곡량전 | 춘추공양전 | 논어 | 맹자 | 이아 | 효경 |
1.1. 개요
유교의 경전으로 오경(五經) 중의 하나다. 오경 중의 하나인데 예경(禮經)이라 부르지 않는 이유는 예기(禮記)란 삼대(하, 은, 주)의 예법에 대한 기록 혹은 그에 대한 주석이기 때문이다.1.2. 성립
예기의 성립 과정에 대한 학설은 학계에서 그 의견이 다수 갈리나 대략적으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항상 극기복례(克己復禮) 즉 기존의 '주나라의 전통체계'로 돌아가는 것이 난세였던 춘추시대의 해결법이라 생각했던 공자(孔子)는 저서들을 술이부작(述而不作)하였다. 이에 춘추필법에 의하여 지은 춘추(春秋), 주나라와 그 이전 시대의 노래 등을 모은 모음집인 시경(詩經), 주나라와 그 이전 시대의 공문서 모음집인 상서(尙書)등이 서술되었다. 이는 훗날 사서삼경으로 발전되는데 이 중 삼대(三代)의 문물, 예법을 집대성 하여 체계화 시킬 필요성을 느낀 유가 지식인들이 이에 관련된 내용을 모으기 시작하여 이후 한(漢)나라 시기에 이르기 까지 집대성 된 총합이 지금의 예기를 이뤘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현재 전하는 예기는 기원전 1세기 무렵 전한의 학자 대성(戴聖)이 집대성했다고 전하는데, 별칭은 소대례(小戴禮)라고 한다. 예기의 별칭이 '소대례'인 이유는 숙부인 대덕(戴德)이 남긴 대대례(大戴禮)와 구분하기 위함이다. 소대례와 대대례가 정립된 과정을 두고도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수서 경적지(經籍志)[1]에 의한 설로, 본래 한서 예문지(藝文志)에 언급된 '기(記) 141편'에서 대덕이 먼저 85편을 뽑아 '예기'를 만들었고, 조카인 대성은 대덕의 예기에서 다시 46편을 골라 '예기'를 만들었으며, 이 대성의 예기에 후한 말 마융(馬融)이 3편을 추가해 지금의 49편 '예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설에 따르면 대대례와 소대례는 본래 하나였다는 말이 된다. 또 다른 설은 정현(鄭玄)의 육예론(六藝論)에 나온다. '기 141편'을 보고 두 사람이 서로 별도의 축약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예기라는 책은 공자 사후, 유가의 지식인들이 '예'에 대한 기록이나 공자의 언설을 중심으로 모아온 수많은 기술들로 구성된 자료집이고, 이런 문서들 중 대성이 찬술한 소대례가 대표적인 지위를 차지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1.3. 주석서
예기는 그 내용에 드러난 기물의 문제나 기간, 제도 등으로 인해 내용을 이해하기 쉽지 않아 여러 주석이 나타났던 것으로 보인다.[2]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정현의 '예기 주'.[3] 여기에 당나라 공영달(孔穎達)이 소를 달아 '예기정의'를 유통시켰으며, 이것이 13경주소에 포함되면서, 오랜기간 예기의 정통적 해석으로 굳혀졌다. 그랬던 것이 원나라의 주자학자 진호(陳澔)가 주자학적 입장에서 주석을 달았는데 이것이 '예기집설'(禮記集說)이다.[4]사서의 하나인 대학(大學), 중용(中庸)은 이 예기의 한 편이었다.
예기는 기본적으로 17편에 불과한 의례, 6편으로 구성된 주례에 비교해 49편으로 기본적인 양부터 방대하며, 주석의 양도 매우 방대한 양을 자랑한다. 때문에 경문만 다 읽는 것도 일이라고 평가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예기의 내용은 의례의 해설, 음악, 정치, 학문 뿐만 아니라 예의 근본 정신까지 다방면에 걸쳐 서술되어 있어 고대인의 '예'에 관한 생각을 알 수 있음과 동시에 고대인의 생활상에 대해 다소나마 파악 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다.
우리나라에는 백제의 오경박사(五經博士) 등의 호칭이 삼국사기에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미 삼국시대에는 전래된 것으로 생각되며 일본에도 전파되었다 한다.
조선 초의 유학자 권근이 저술한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교 경전 주석서 『오경견천록』 중 예기에 해당하는 「예기견천록」이 한국 최초의 예기 주석서이다. 이 「예기견천록」은 한국 경학의 정수임과 동시에, 조선의 독자적인 유교적 학맥을 설립할 수 있었던 근본으로 평가받는다.
1.4. 번역본
현재 예기의 완역본으로는 경문만 번역한 경우가 있고 주석을 번역한 경우가 있는데 본래 2000년대 중반까지는 아래의 두 종류만이 완역본으로 존재하고 있던 상황이었다.(1) 1987년 이상옥 교수가 번역한 명문당판
(2) 2000년 한학자 지재희가 번역한 자유문고판.
이 두 번역은 모두 예기의 경문만을 번역하고 있다. 이 두 번역본 이후로 주석을 번역하고 공부하는 연구자들은 있었으나 출판물로 이어지지 않은 경우로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 동안 한국의 고전 연구 번역 시장은 더욱 삭막해지기만 하고 있었다.
그랬던 것이 2009년이 되면서 이런 상황에서 반전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정병섭 성균관대 초빙교수가 《예기집설대전》의 번역본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5] 학고방에서 지난 2009년부터 출간되었으며, 제5편인 〈왕제〉가 출간된 것을 시작으로 2017년 12월 전체가 완간되었다. 전체 권수가 무려 53권이다.(쪽수 계산도 힘들다.) 통상 『대학』과 『중용』은 사서로 분류해서 번역에서 빼버리는 기존의 관행과는 달리[6] 이 시리즈에서는 《예기정의》의 대학편, 중용편을 기준으로 번역하여 전체 편을 꽉 채웠다. 최초 완역이라는 점뿐 아니라 이 측면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번역. 출판사의 문제인지 번역자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완벽히 순차적으로 출간된 것은 아니며, 막대한 주석의 양 때문인지 1개 편당 국역본 1책 분량으로 나온 경우가 많았다.[7]
정병섭은 이에 그치지 않고 다음의 예기 주석서들을 완역하기 시작했다.(출판사는 모두 《예기집설대전》을 출간한 학고방이다.)
* 2018년 김재로의 《예기보주》(총9책)
* 2019년 권근의 《예기천견록》(총7책)
* 2021년 최석정의 《예기유편대전》(총8책)
이 정도면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예기》 주석사와 18세기 노론계와 소론계의 중요한 《예기》 주석서를 모두 번역한 셈이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이후로 다른 쪽에서도 관련 번역서들이 출간되기 시작했는데 다음과 같다.(완역본도 있고 아직 완역되지는 않았으나 완역 출간을 목표로 한 것도 있는데 모두 서술한다.)
* 성백효 역 《오서오경독본 - 예기》(총3책, 전통문화연구회, 2021) : 주석 없이 경문만 번역된 것이다.
* 이상아, 조준호 역 《역주 예기정의》(현재 1~3책까지 출간중, 전통문화연구회, 2023) : 정현의 주와 공영달의 소를 함께 번역한 것으로 전통문화연구회 역주 십삼경주소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2021년 역본을 번역한 성백효 선생이 현토 감수로 참여하고 있다. 다만 현재 원본 기준으로 단궁 상편의 전반부까지 번역되어 다소 지지부진한 느낌이 있다.
* 《역주 예기집설대전》(현재 1~6책까지 출간중, 전통문화연구회, 2005~2023) : 본래 2005년 신승운 전 고전번역원장의 번역으로 1책이 출간 되고 오랫동안 번역 작업이 재개되지 않고 있던 것인데 2021년부터 번역이 재개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원문 기준 제14편인 명당위까지 번역되었다. 책별로 번역자가 상이한데 다음과 같다.
* 장동우 외, 《예기 천견록 : 권근의 예기 풀이》(청계, 2021, 총5책) : 완역본으로 한번에 출간된 것이다. 세창출판사에서 출간된 《의례 역주》(총9책)의 번역진들이 참여한 것으로 모두 오랫동안 예제, 예학 전공하여 번역한 연구자들의 번역이다. 대표 번역자는 장동우 전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교수로 되어 있으나, 정확히는 책별로 번역자가 다르다. 다음과 같다.
- 1책 : 장동우 (해제 및 예기집설서, 예기천견록서~단궁 하)
- 2책 : 김용천 (왕제~예운)
- 3책 : 이원택 (예기~학기)
- 4책 : 박례경 (악기 상~공자한거)
- 5책 : 이봉규 (방기~상복사제)
- 2책 : 김용천 (왕제~예운)
- 3책 : 이원택 (예기~학기)
- 4책 : 박례경 (악기 상~공자한거)
- 5책 : 이봉규 (방기~상복사제)
이 외에 완역을 목표로 하였으나 중단된 사례도 있는데. 송명호 번역본이 그것이다.
1.5. 관련 고사성어
1.6. 외부 링크
2. 銳氣
날카로운 기세를 뜻한다. 무협지에서 많이 사용되는 용어.3. 預妓
관기로 지원해서 들어온 기생.4. 銳器
칼, 창 등의 칼날을 가진 날카로운 무기. 날붙이라고도 하며, 반대말은 둔기.[1] 당시까지 출간된, 혹은 되었다고 전해지는 서지에 대한 목록집이다. 한서의 예문지와 같은 성격.[2] 이것은 삼례, 즉 『주례』와 『의례』도 마찬가지이다.[3] 경학사적으로 정현이라는 존재는 매우 대단하다. 일단 13경주소 체제를 기준으로 설명할 때, 그의 주석이 채택된 경전이 『예기』, 『의례』, 『주례』, 『모시』 등 4종에 달한다는 점만 봐도 그렇고, 그의 독립 저작이 남아 있지 않은 다른 경전의 경우에도, 타인에 의해 인용된 예가 수두룩하다. 그 뒤로 경학사에서 이 정도의 압도적인 위상을 갖는 것은 사서와 시경, 주역 등에 주석을 남긴 주희를 들 수 있는데, 주희의 설 조차도 정현의 설을 다수 인용한 부분이 보인다. 그야말로 경학사에서는 끝판왕 급의 비중을 갖는 셈.[4] 그리고 영락제 때, 영락제의 명을 받은 호광에 의해서 여기에 대한 소가 또 붙었는데 이것이 '예기집설대전'이다.[5] 정병섭은 성균관대에서 『예기』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곧, 전공자의 '연구번역'인 셈.[6] 실제로 진호, 호광의 원본도 두 책을 제외하고 있다.[7] 그나마 원문 기준으로도 상, 하 두 편인 곡례와 단궁은 각 3책, 4책으로 나왔고 이 외에 교특생, 악기, 옥조 등은 1책을 넘겨서 출간되기도 했다. 물론 2개 이상의 편이 1책으로 편제되어 나온 경우도 있다.[8] 위의 그 정병섭이 맞다.[9] 같은 출판사의 《예기정의》 번역에도 참여 중.